단행본현대사 총서 030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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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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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3098 | 대출중 | 2025.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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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경제 상황은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최악이었고 대규모 탈북이 상징하듯 사회통합도 크게 흔들렸다. 1994년 10월 북·미 기본합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자 체제 밖에서는 ‘북한붕괴론’이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북한체제를 지탱한 힘은 과연 무엇일까?
1. 이 책에서 해명하려 했던 핵심 질문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경제상황은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최악이었고 대규모 탈북이 상징하듯 사회통합도 크게 흔들렸다. 1994년 10월 북·미 기본합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자 체제 밖에서는 ‘북한붕괴론’이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북한체제를 지탱한 힘은 과연 무엇일까?
2. 두 가지 우상(偶像)
한국사회에는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방해하는 두 개의 우상(偶像), 곧 선입견에 따른 그릇된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 이 책에서 ‘신화론’으로 이름 붙인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위기가 전적으로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원인 때문에 발생했고, 당과 인민은 흔들림 없는 통일단결로 위기를 잘 헤쳐 왔으며, 이 과정에 북한에서는 중국, 베트남과 달리 집단주의, 자력갱생 원칙이 견결히 고수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도 위기발생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당과 인민의 통일단결은 한때 심각하게 흔들렸으며, 위기를 겪으면서 북한에서도 집단주의, 자력갱생 원칙이 훼손됐다는 이야기에는 잘 귀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개혁·개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중국, 베트남에나 해당하는 단어라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둘째, 신화론의 반대편에는 ‘냉소론’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단 1980년대 후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호기롭게 외쳤듯이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체제가 인류의 최종선택을 받은 마당에, 자신들이 보기에 ‘무능한’ 국가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의 고집스러움에 냉소를 짓는다. 그런데 이들의 냉소는 북한의 모든 구성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기에 당과 인민의 통일단결이라는 허상(虛像)을 유포하는 지배집단을 향할 뿐이다. 반면에 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여기는 피지배집단에게는 연민에 찬 눈빛을 보낸다.
이들은 북한이 위기 속에서 무너지지 않은 건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어떤 이들은 이를 ‘북한 퍼주기’라고 부른다), 중국의 경제지원,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원조 같은 국제사회의 도움 덕이었고, 조선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위기 완화의 동력이었다고 자랑하는 ‘선군정치’는 오히려 인민의 이해와는 무관한 반(反)인민적 정치이며,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선군정치를 그만두고 중국, 베트남처럼 더욱 화끈하게 개혁·개방을 하는 것이 당과 인민 모두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역시 자기 견해와 달리 당과 ‘지지자들’의 단결력, 선군정치 등이 위기 완화에 혁혁하게 기여했다는 사실, 선군정치가 개혁·개방의 대체재(代替財)가 아니라 오히려 개혁·개방의 토대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 곧 선군정치가 개혁·개방의 보완재(補完財)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는 눈 감는다.
개인 수준이든, 사회 수준이든 특정한 현상은 관찰대상 안과 밖에 존재하는 원인들의 결합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거나 불일치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실 앞에서 이미 신화론과 냉소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우상이 한국사회의 북한인식을 지배해 온 이유는 한국사회가 아직 분단시대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 기득권세력에 맞서왔거나 지금도 맞서려는 이들에게 북한의 약점이나 한계를 발설하는 행위는 곧 상대방을 어떻게든 도와주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 이에 따라 이들은 신화론에 집착하는 것 같다. 반대로 분단 기득권세력은 북한의 강점이나 가능성이 알려지고 부각될수록 자신들의 기득권을 허무는 통일열망이 커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냉소론에 집착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분단 기득권세력은 아직 주관적 의도에 따라 가공되지 않은 북한정보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을 ‘국가보안법’, ‘특수자료 취급지침’ 같은 수단으로 제약함으로써, 의도했던 안 했던 간에 신화론을 키우고 있다. 누군가가 신화론에서 의식적으로 빠져나와 과학적인 견해를 갖고 싶어도 미화되지 않은 북한정보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북한문헌을 지하철 안에서 거리낌 없이―신고의식 투철한 목격자가 공안기관에 신고할까봐 걱정하지 않고―읽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2000년 이후 한반도가 돌이킬 수 없는 ‘통일시대’로 접어들면서 ‘분단시대’의 정치·경제구조에 뿌리를 둔 신화론과 냉소론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와 통일의 흐름에 밀려 우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많은 이들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 미화나 일방적 비난을 불편해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우상을 넘어서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 안팎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구체적으로 위기발생은 사회주의권 붕괴 탓이고 위기완화는 선군정치 덕이라는 신화론, 위기발생은 개혁·개방 의지 없이 구시대적인 국가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려던 조선노동당의 고집 탓이 크고 북한 안에 실존한 위기완화 동력을 간과한 채 위기완화는 전적으로 대외관계 호전 덕이라는 냉소론을 모두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3. 북한체제 위기의 실체-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책의 ‘5장 결론’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북한체제의 위기는 안보위기, 경제위기, 정치사상위기로 구성된다. 북한체제의 위기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석탄·전력생산의 구조적 한계 도달, 1970년대 후반 이후 ‘세력 불균형적 탈냉전’에 따른 대외관계 악화가 결합되면서 1980년대 후반에 발생했다. 조선노동당은 1990년대 초반까지 개혁·개방, 한·미·일과의 화해시도를 양대 축으로 하는 대응전략을 펼쳤지만 미국의 강압적 태도 고수로 위기진화에 실패하자, 결국 ‘1991년’부터 개혁과 선군을 ‘병행’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안보위기는 미국·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이에 맞서 NPT 탈퇴를 선언하며 고조되기 시작해 1994년 6월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았다. 경제·정치사상위기는 1994년 가을 이후 연이은 자연재해의 여파로 1995~1997년 사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당은 위기가 심화되자 당기구의 행정대행으로 형식화됐었던 국가기구의 지배기능 실질화, 계획경제의 명령성·집권성 완화 같은 정치·경제개혁을 진전시키는 동시에 군대 노력동원과 정치사상 모범 전파, 핵·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경제·정치사상·안보위기에 총체적으로 대응해갔다.
개혁과 선군이 성과를 내던 가운데 러시아·중국의 반(反)패권연대 강화와 김대중정부 ‘햇볕정책’에 따른 대외관계 호전이 결합되면서 마침내 1999년 들어 위기가 완화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시장기구’의 적극적 활용,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설치 등 경제개혁·개방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강압이 ‘재개’되면서 안보위기가 해소되지 않았고, 생산력 또한 경제후퇴가 시작되던 1980년대 후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므로 체제위기는 ‘극복’되지 않은 채 장기지속 중이다.
1. 이 책에서 해명하려 했던 핵심 질문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경제상황은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최악이었고 대규모 탈북이 상징하듯 사회통합도 크게 흔들렸다. 1994년 10월 북·미 기본합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자 체제 밖에서는 ‘북한붕괴론’이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북한체제를 지탱한 힘은 과연 무엇일까?
2. 두 가지 우상(偶像)
한국사회에는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방해하는 두 개의 우상(偶像), 곧 선입견에 따른 그릇된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 이 책에서 ‘신화론’으로 이름 붙인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위기가 전적으로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원인 때문에 발생했고, 당과 인민은 흔들림 없는 통일단결로 위기를 잘 헤쳐 왔으며, 이 과정에 북한에서는 중국, 베트남과 달리 집단주의, 자력갱생 원칙이 견결히 고수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도 위기발생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당과 인민의 통일단결은 한때 심각하게 흔들렸으며, 위기를 겪으면서 북한에서도 집단주의, 자력갱생 원칙이 훼손됐다는 이야기에는 잘 귀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개혁·개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중국, 베트남에나 해당하는 단어라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둘째, 신화론의 반대편에는 ‘냉소론’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단 1980년대 후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호기롭게 외쳤듯이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체제가 인류의 최종선택을 받은 마당에, 자신들이 보기에 ‘무능한’ 국가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의 고집스러움에 냉소를 짓는다. 그런데 이들의 냉소는 북한의 모든 구성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기에 당과 인민의 통일단결이라는 허상(虛像)을 유포하는 지배집단을 향할 뿐이다. 반면에 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여기는 피지배집단에게는 연민에 찬 눈빛을 보낸다.
이들은 북한이 위기 속에서 무너지지 않은 건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어떤 이들은 이를 ‘북한 퍼주기’라고 부른다), 중국의 경제지원,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원조 같은 국제사회의 도움 덕이었고, 조선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위기 완화의 동력이었다고 자랑하는 ‘선군정치’는 오히려 인민의 이해와는 무관한 반(反)인민적 정치이며,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선군정치를 그만두고 중국, 베트남처럼 더욱 화끈하게 개혁·개방을 하는 것이 당과 인민 모두의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역시 자기 견해와 달리 당과 ‘지지자들’의 단결력, 선군정치 등이 위기 완화에 혁혁하게 기여했다는 사실, 선군정치가 개혁·개방의 대체재(代替財)가 아니라 오히려 개혁·개방의 토대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 곧 선군정치가 개혁·개방의 보완재(補完財)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는 눈 감는다.
개인 수준이든, 사회 수준이든 특정한 현상은 관찰대상 안과 밖에 존재하는 원인들의 결합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거나 불일치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실 앞에서 이미 신화론과 냉소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우상이 한국사회의 북한인식을 지배해 온 이유는 한국사회가 아직 분단시대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 기득권세력에 맞서왔거나 지금도 맞서려는 이들에게 북한의 약점이나 한계를 발설하는 행위는 곧 상대방을 어떻게든 도와주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 이에 따라 이들은 신화론에 집착하는 것 같다. 반대로 분단 기득권세력은 북한의 강점이나 가능성이 알려지고 부각될수록 자신들의 기득권을 허무는 통일열망이 커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냉소론에 집착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분단 기득권세력은 아직 주관적 의도에 따라 가공되지 않은 북한정보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을 ‘국가보안법’, ‘특수자료 취급지침’ 같은 수단으로 제약함으로써, 의도했던 안 했던 간에 신화론을 키우고 있다. 누군가가 신화론에서 의식적으로 빠져나와 과학적인 견해를 갖고 싶어도 미화되지 않은 북한정보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북한문헌을 지하철 안에서 거리낌 없이―신고의식 투철한 목격자가 공안기관에 신고할까봐 걱정하지 않고―읽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2000년 이후 한반도가 돌이킬 수 없는 ‘통일시대’로 접어들면서 ‘분단시대’의 정치·경제구조에 뿌리를 둔 신화론과 냉소론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와 통일의 흐름에 밀려 우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많은 이들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 미화나 일방적 비난을 불편해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우상을 넘어서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 안팎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구체적으로 위기발생은 사회주의권 붕괴 탓이고 위기완화는 선군정치 덕이라는 신화론, 위기발생은 개혁·개방 의지 없이 구시대적인 국가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려던 조선노동당의 고집 탓이 크고 북한 안에 실존한 위기완화 동력을 간과한 채 위기완화는 전적으로 대외관계 호전 덕이라는 냉소론을 모두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3. 북한체제 위기의 실체-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책의 ‘5장 결론’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북한체제의 위기는 안보위기, 경제위기, 정치사상위기로 구성된다. 북한체제의 위기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석탄·전력생산의 구조적 한계 도달, 1970년대 후반 이후 ‘세력 불균형적 탈냉전’에 따른 대외관계 악화가 결합되면서 1980년대 후반에 발생했다. 조선노동당은 1990년대 초반까지 개혁·개방, 한·미·일과의 화해시도를 양대 축으로 하는 대응전략을 펼쳤지만 미국의 강압적 태도 고수로 위기진화에 실패하자, 결국 ‘1991년’부터 개혁과 선군을 ‘병행’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안보위기는 미국·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이에 맞서 NPT 탈퇴를 선언하며 고조되기 시작해 1994년 6월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았다. 경제·정치사상위기는 1994년 가을 이후 연이은 자연재해의 여파로 1995~1997년 사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당은 위기가 심화되자 당기구의 행정대행으로 형식화됐었던 국가기구의 지배기능 실질화, 계획경제의 명령성·집권성 완화 같은 정치·경제개혁을 진전시키는 동시에 군대 노력동원과 정치사상 모범 전파, 핵·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경제·정치사상·안보위기에 총체적으로 대응해갔다.
개혁과 선군이 성과를 내던 가운데 러시아·중국의 반(反)패권연대 강화와 김대중정부 ‘햇볕정책’에 따른 대외관계 호전이 결합되면서 마침내 1999년 들어 위기가 완화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시장기구’의 적극적 활용,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설치 등 경제개혁·개방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강압이 ‘재개’되면서 안보위기가 해소되지 않았고, 생산력 또한 경제후퇴가 시작되던 1980년대 후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므로 체제위기는 ‘극복’되지 않은 채 장기지속 중이다.
목차
서문: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넘어야 할 두 개의 우상
제1장 서론
Ⅰ. 연구목적
Ⅱ. 이론적 논의
1. 국가사회주의체제와 북한
2. 위기, 개혁, 선군의 정의
3. 국가사회주의체제 유형론
Ⅲ. 연구방법과 자료
1. 연구방법
2. 자료
제2장 체제위기 발생과 병행전략의 등장(1988~1992)
Ⅰ. 위기로 들어선 북한체제
1. 경제후퇴와 정치사상적 동요
1) 중요 산업의 생산량 감소
2) 개인이기주의와 패배주의 확산
2. 미국의 대북 강압 본격화
Ⅱ. 체제위기를 낳은 원인들
1. 석탄·전력생산의 구조적 한계 도달
2. 세력 불균형적 탈냉전과 대외관계 악화
1) 초기 탈냉전과 전통적 유대관계 균열
2)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와 노동력 부족 심화
3) 비동맹운동의 쇠퇴와 자원배분 왜곡
4) 탈냉전 따라잡기: 한·미·일과의 관계개선 노력
5) 전통적 유대관계 해체와 군사적·경제적 악영향
Ⅲ. 개혁과 선군의 순차적 시작
1. 생산능력 저하와 개혁의 시작
1) 자원배분구조: 계획명령형에서 계획개선형으로
2) 지배구조: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3) 대외경제관계 발전 노력
[보론 1] 조선노동당의 승부수-3차 7개년계획
2. 외교적 고립과 선군의 시작
1) 개혁보다 늦게 시작한 선군
2) 선군을 위한 국가지배체계 변화와 군사선행
Ⅳ. 소결
제3장 체제위기 심화와 병행전략의 강화(1993~1998)
Ⅰ. 파국적 경제난과 체제혼란
1. 경제후퇴에서 경제파탄으로
1) 3차 7개년계획 실패
2) 혁명적 경제전략의 좌절과 폐기
3) 파국적 경제난의 실상
2. 동요를 지나 혼란으로
1) 정치사상적 동요의 심화
2) 혼란에 빠진 북한체제
Ⅱ. 미국의 지속적 대북 강압
1. 미국·IAEA의 특별사찰 수용 압박
2. 핵연료봉 교체와 북·미기본합의 도출
1) 핵연료봉 교체: 핵무기양산체제로의 돌입 경고
2) 군사적 충돌위기와 극적 해소
3) 북·미기본합의의 내용과 의의
3. 북·미기본합의의 불안한 이행
4. 미국의 북한 미사일개발 포기 압력
Ⅲ. 선군의 전면화와 개혁의 진전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
1) 선군정치 전면화의 능동적 조건
2) 체제위기 극복을 위한 선군정치
2. 체제개혁의 진전과 일단락
1) 계획개선형 자원배분구조 정립
2) 분산형 지배구조 정립
Ⅳ. 소결
제4장 병행전략의 지속과 체제위기 완화(1999~2002)
Ⅰ. 반패권연대와 햇볕정책에 따른 대외관계 호전
1. 러시아·중국의 반패권연대와 양국 대북정책 차이
1) 러시아의 대북 접근과 북한의 호응
2) 중·미관계 조정과 소원한 북·중관계 지속
2. 일본의 대북 접근과 걸림돌
3.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화해
4. 외교적 고립 해소와 햇볕정책의 촉진 기능
1)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밀착: ‘적의 적은 내 편’
2) 두 가지 제약의 약화와 북·일 수교회담 재개
3)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북·중관계 회복
5. 대외관계 호전의 경제 효과
Ⅱ. 개혁의 가속과 선군의 지속
1. 계획보완형 자원배분구조로 진입
1) 경제적 공간 활용의 심화 : 경영활동 평가제도 개혁과 ‘7·1경제관리개선조치’
2) 경제적 의사결정의 분권화 심화
3) 시장기구의 적극적 활용
4) 실리 개념의 제시: 경제개혁의 이데올로기적 지지(支持)
2. 대외적 선군의 일시적 완화와 대내적 선군의 지속
Ⅲ. 위기에서 벗어나는 북한체제
1. 생산능력 회복과 체제혼란 수습
1) 중요 산업의 생산량 증가
2) 조직생활과 대중운동의 부활
[보론 2]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 등장
2. 정상회담 문턱까지 갔던 북·미
1) 페리보고서와 북·미화해 급진전
2) 부시행정부의 강압 재개와 대외적 선군의 재강화
Ⅳ. 소결
제5장 결론
부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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