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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핵’을 둘러싼 진실 게임 또는 ‘불편한 진실’
70여 년 ‘핵의 역사’, 곧 ‘세계사’를 미국, 소련, 중국, 남북한 등이 대표주자로 나서서 얽히고 설킨 사건과인물 중심으로 명쾌하게 재구성했다. “인류는 핵 때문에 평화로워졌는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에너지난에서 해방되었는가.” 그 모두에 대해서 저자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답한다.
1.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끝났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은 재래식 무기를 통한 연합국의 폭격에 이미 나라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또한 일본은 천황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연합국에 항복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일본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의 참전을 가장 두려워했다. 미국 역시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전후(戰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결국, 트루먼의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일본의 항복을
노린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 (미국은 원래 핵폭탄 투하 예정지로 고쿠라 무기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교토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소련 역시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원자폭탄 개발을 서둘러, 결국 1949년 8월 29일 핵실험에 성공한다. 미소 중심의 세계사, ‘공포의 균형’(상대방의 절멸을 통한 안보 추구와 이를 위한 핵 군비경쟁 및 그 결과)을 통한 무한대립과 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2. 원자폭탄을 창조한 서방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을까?
독일의 악마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갖는다면 세계가 절멸할 것이라는 절대공포에 사로잡힌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등 서방의 과학자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절대무기인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함께했다.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에게 1939년 8월 2일, 1940년 3월 7일과 4월 25일, 장문의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간곡히 호소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가공할 위력을 선보인 핵실험 결과를 보고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핵무기는 도시를 파괴한다. 탱크로 총알을 막을 수 있지만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핵무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아인슈타인),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오펜하이머), “이제 우리 모두는 개자식이 됐다”(케네스 베인브리지)등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핵군축의 선두주자로 대변신을 한다. 테드 홀을 포함한 한 무리의 과학자들은 미국의 핵독점을 막기 위해서 소련에 핵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자발적 스파이’ 노릇을 자처하기도 한다.
3. 미국은 한국전쟁에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국제전쟁인 한국전쟁 당시, 당사국인 미국과 남북한, 소련과 중국은 모두 동상이몽에 빠져 있었다. 미국은 핵의 위력을 믿고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소련 역시, 핵을 보유한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겠는가 낙관했다. 중국은 핵무기를 종이호랑이 취급하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정신력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북한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거침없는 질주, 그리고 소련과 중국의 참전으로 놀란 미국(및 연합국)은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트루먼은 개성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화들짝 놀란 영국 수상 애들리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핵폭탄 사용이 제3차 세계대전을 불러올 수 있다고 강력히 막아 나선다. 결국 미국은 원자탄 사용 계획을 철회한다. 아시아 나라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고, 또 북한에 원폭 투하를 공언한 미국에 특히 아시아 국가(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다. 인종차별주의에 젖은 미국의, 백인의 만행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전협정을 맺음으로써 핵시대의 첫 전쟁, 한국전쟁은 잠정 중단된다. 하지만 그 영향은 대단했다. 북한에 대한 핵위협이 총성을 멈추게 했다고 믿은 미국은 대량보복전략을 필두로 한 더욱 공격적인 핵정책을 펼치고, 소련과 중국 역시 미국과의 대결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북한도 핵무기 개발에 사활적으로 매달린다. 또 핵공격에서도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지하 요새를 나라 곳곳에 만든다. 브레이크 없는, 세계적 차원의 핵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4. 악한 핵‘무기’와 선한 핵‘에너지’는 종이 한 장 차이?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인류는 서로 간에 여러 협상을 맺으면서 공멸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적대적 공범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균형과 견제가 시종일관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었다. 특히 기후 온난화 등 세계적 차원의 위기가 도래하면서 청정에너지 원자력에 대한 신화는 꺼질 줄 몰랐다. ‘원전 르네상스’ 등으로 일컬어지는 핵에너지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등은 그런 인류의 낙관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인재(人災)든, 자연재해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고는 느닷없이 닥쳐올 수 있고, 그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을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영향력이 언제까지 미칠지에 대해서도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핵무기와 핵에너지가 선악의 대표가 아니라, 공포와 경악 자체가 된 것이다. 인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제 경우 반성과 성찰의 지점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핵테러의 위험은 절감하면서도, 핵무기. 핵에너지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직 둔감한 편이다. 2012년 3월 26~27일 치러지는 서울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제 및 준비 과정을 복기해보면 아직은 공포와 위기는 먼 나라 소식인 듯하다.
5.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예고를 둘러싼 진실 게임?
또는 북미 관계를 둘러싼‘불편한 진실’
얼마 전 북한은 내외에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4월 중순경 쏘아 올리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2.29 합의를 체결한 미국, 그리고 한국은 곧바로 “국제적인 의무를 터무니없이 깨버린 정권과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 없다”(미국), “중대한 도발”(한국)등으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나섰다.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우선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강성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내부용의 성격이 짙다. 또한 김정일 사후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입지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점도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핵 억제력’(상대방에게 핵무기의 가공할 보복 능력을 과시해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집착이 엿보인다. ‘광명성 3호’ 발사체인 ‘은하 3호’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로 전용(轉用)될 수 있다. 또한 발사가 예고된 지역은 평안북도 동창리로 알려졌는데, 북한이 이곳에서 로켓을 발사하면 함경북도 무수단리에 이어 두 번째 장거리 로켓 발사 기지의 존재를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핵 억제력’에서 가장 중요한 2차 공격 능력이다. 상대방의 선제공격으로부터 하나의 기지가 파괴되더라도 다른 기지에서 보복할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군사적 의도가 내포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 이번 사태의 전사(前史)격인 2009년 4월 광명성 1, 2호 발사 및 5월 2차 핵실험 등은 아무 이유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 불이행이나 대화 거부 등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29장 핵무기를 사랑한 남자, 김정일? 참조). 현재의 특정 사안이 어느 날 불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전개 과정과 고유한 맥락을 총체적으로 살필 때만이 온전한 이해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70여 년 ‘핵의 역사’, 곧 ‘세계사’를 미국, 소련, 중국, 남북한 등이 대표주자로 나서서 얽히고 설킨 사건과인물 중심으로 명쾌하게 재구성했다. “인류는 핵 때문에 평화로워졌는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에너지난에서 해방되었는가.” 그 모두에 대해서 저자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답한다.
1.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끝났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은 재래식 무기를 통한 연합국의 폭격에 이미 나라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또한 일본은 천황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연합국에 항복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일본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의 참전을 가장 두려워했다. 미국 역시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전후(戰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결국, 트루먼의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일본의 항복을
노린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 (미국은 원래 핵폭탄 투하 예정지로 고쿠라 무기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교토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소련 역시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원자폭탄 개발을 서둘러, 결국 1949년 8월 29일 핵실험에 성공한다. 미소 중심의 세계사, ‘공포의 균형’(상대방의 절멸을 통한 안보 추구와 이를 위한 핵 군비경쟁 및 그 결과)을 통한 무한대립과 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2. 원자폭탄을 창조한 서방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을까?
독일의 악마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갖는다면 세계가 절멸할 것이라는 절대공포에 사로잡힌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등 서방의 과학자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절대무기인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함께했다.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에게 1939년 8월 2일, 1940년 3월 7일과 4월 25일, 장문의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간곡히 호소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가공할 위력을 선보인 핵실험 결과를 보고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핵무기는 도시를 파괴한다. 탱크로 총알을 막을 수 있지만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핵무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아인슈타인),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오펜하이머), “이제 우리 모두는 개자식이 됐다”(케네스 베인브리지)등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핵군축의 선두주자로 대변신을 한다. 테드 홀을 포함한 한 무리의 과학자들은 미국의 핵독점을 막기 위해서 소련에 핵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자발적 스파이’ 노릇을 자처하기도 한다.
3. 미국은 한국전쟁에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국제전쟁인 한국전쟁 당시, 당사국인 미국과 남북한, 소련과 중국은 모두 동상이몽에 빠져 있었다. 미국은 핵의 위력을 믿고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소련 역시, 핵을 보유한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겠는가 낙관했다. 중국은 핵무기를 종이호랑이 취급하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정신력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북한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거침없는 질주, 그리고 소련과 중국의 참전으로 놀란 미국(및 연합국)은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트루먼은 개성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화들짝 놀란 영국 수상 애들리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핵폭탄 사용이 제3차 세계대전을 불러올 수 있다고 강력히 막아 나선다. 결국 미국은 원자탄 사용 계획을 철회한다. 아시아 나라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고, 또 북한에 원폭 투하를 공언한 미국에 특히 아시아 국가(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다. 인종차별주의에 젖은 미국의, 백인의 만행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전협정을 맺음으로써 핵시대의 첫 전쟁, 한국전쟁은 잠정 중단된다. 하지만 그 영향은 대단했다. 북한에 대한 핵위협이 총성을 멈추게 했다고 믿은 미국은 대량보복전략을 필두로 한 더욱 공격적인 핵정책을 펼치고, 소련과 중국 역시 미국과의 대결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북한도 핵무기 개발에 사활적으로 매달린다. 또 핵공격에서도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지하 요새를 나라 곳곳에 만든다. 브레이크 없는, 세계적 차원의 핵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4. 악한 핵‘무기’와 선한 핵‘에너지’는 종이 한 장 차이?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인류는 서로 간에 여러 협상을 맺으면서 공멸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적대적 공범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균형과 견제가 시종일관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었다. 특히 기후 온난화 등 세계적 차원의 위기가 도래하면서 청정에너지 원자력에 대한 신화는 꺼질 줄 몰랐다. ‘원전 르네상스’ 등으로 일컬어지는 핵에너지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등은 그런 인류의 낙관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인재(人災)든, 자연재해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고는 느닷없이 닥쳐올 수 있고, 그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을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영향력이 언제까지 미칠지에 대해서도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핵무기와 핵에너지가 선악의 대표가 아니라, 공포와 경악 자체가 된 것이다. 인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제 경우 반성과 성찰의 지점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핵테러의 위험은 절감하면서도, 핵무기. 핵에너지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직 둔감한 편이다. 2012년 3월 26~27일 치러지는 서울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제 및 준비 과정을 복기해보면 아직은 공포와 위기는 먼 나라 소식인 듯하다.
5.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예고를 둘러싼 진실 게임?
또는 북미 관계를 둘러싼‘불편한 진실’
얼마 전 북한은 내외에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4월 중순경 쏘아 올리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2.29 합의를 체결한 미국, 그리고 한국은 곧바로 “국제적인 의무를 터무니없이 깨버린 정권과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 없다”(미국), “중대한 도발”(한국)등으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나섰다.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우선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강성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내부용의 성격이 짙다. 또한 김정일 사후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입지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점도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핵 억제력’(상대방에게 핵무기의 가공할 보복 능력을 과시해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집착이 엿보인다. ‘광명성 3호’ 발사체인 ‘은하 3호’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로 전용(轉用)될 수 있다. 또한 발사가 예고된 지역은 평안북도 동창리로 알려졌는데, 북한이 이곳에서 로켓을 발사하면 함경북도 무수단리에 이어 두 번째 장거리 로켓 발사 기지의 존재를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핵 억제력’에서 가장 중요한 2차 공격 능력이다. 상대방의 선제공격으로부터 하나의 기지가 파괴되더라도 다른 기지에서 보복할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군사적 의도가 내포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 이번 사태의 전사(前史)격인 2009년 4월 광명성 1, 2호 발사 및 5월 2차 핵실험 등은 아무 이유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 불이행이나 대화 거부 등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29장 핵무기를 사랑한 남자, 김정일? 참조). 현재의 특정 사안이 어느 날 불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전개 과정과 고유한 맥락을 총체적으로 살필 때만이 온전한 이해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목차
프롤로그 왜 ‘핵’인가?
1부 핵의 출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과학과 문명
1장 히틀러의 야만과 아인슈타인의 편지
2장 트루먼의 ‘장군’과 스탈린의 ‘멍군’
3장 트루먼의 원자폭탄 투하는 스탈린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
4장 미국 핵 독점의 종말과 ‘슈퍼 폭탄’의 등장
5장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와 과학자들의 반란
2부 핵시대의 첫 전쟁, 한국전쟁
6장 트루먼과 스탈린의 ‘핵’ 오판이 만나다
7장 한국전쟁, 두 예방 전쟁의 충돌
8장 ‘인천의 마법사’ 맥아더, ‘승자의 저주’에 걸리다
9장 트루먼 원자폭탄을 만지작거리다
10장 핵폭탄은 아시아로, 맥아더는 집으로
11장 인종차별주의, 이승만의 분노, 그리고 김일성의 프로파간다
12장 개성, 원자폭탄 맞을 뻔했다
13장 미국의 핵 위협이 총성을 멈추게 했는가?
14장 미국은 왜 핵공격을 안(못)했는가
3부 세계로 가는 핵, 절멸의 사선에 선 인간
15장 미국의 대략 보복 전략과 북한
16장 ‘인간의 집단 자결’을 향한 미국과 소련의 질주
17장 핵무기가 무섭지 않다는 마오쩌둥
18장 베트남의 우공이산
19장 박정희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장 무시무시한 핵을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21장 체르노빌의 사람들
22장 레이건의 ‘두 얼굴’과 고르바초프의 혁명
4부 핵과 인간, 현재와 미래를 묻는다
23장 조지 W. 부시의 쌍권총, MD와 소형 핵무기
24장 한반도와 MD, 그 기구한 악연에 관하여
25장 엇갈린 운명들, 후세인, 카다피, 아마디네자드
26장 오바마의 ‘허무 개그’
27장 후쿠시마의 경고와 이명박의 ‘원전 사랑’
28장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핵 안보 정상 회의
29장 핵무기를 사랑한 남자, 김정일?
30장 김정은과 핵무기
에필로그 왜 ‘탈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