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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4764 | 대출중 | 2025.01.22 |
지금 이용 불가 (1)
- 등록번호
- 0001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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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중
-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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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왕수쩡의 『한국전쟁』은
중국 역사 논픽션의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들어냈다.”
_ 모옌,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
▲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중국 혁명사 3부작 완결판
▲ 정전 60주년, ‘적군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 전쟁의 원인·결과보다는 인간의 참혹· 각국의 전술/전략에 대한 상세한 기술에 초점
▲ 맥아더와 트루먼의 신경전, 마오쩌둥·김일성·펑더화이의 각기 다른 속내를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한국전쟁에 참여한 핵심 인물과 관계도를 두텁게 그려내다
▲ ‘운산전투’부터 ‘지평리전투’까지 각 전투의 드라마틱한 전개와 의의 언급
▲ 한국전쟁 관련 수많은 전쟁사 서적, 회고록, 문서와 전보, 인물 직접 취재 등 통해 정리한 정치적·사회문화적 에피소드와 비화 소개
동서고금의 결정적 장면을 가감 없는 필치로 소개하는 '걸작 논픽션' 시리즈 4권. 정전 60주년을 맞아 이번에는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이 쓴 한국전쟁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이 중국 역사 논픽션의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본 책은 특히 각기 다른 신분의 참전자들이 구성한 다원화된 역사적 기억을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결과보다는 다채로운 인물 심리 묘사와 중요 전투 및 전술이 갖는 의미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독자들이 책 속에 등장하는 조국, 민족, 이상, 신념, 의지 등의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선대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더불어 모든 개인, 군대, 민족이 시기에 관계없이 늘 갖추고 있어야 할 꺾이지 않는 정신을 배우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한국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전쟁 당시 ‘적군’이었던 중국군의 시선에서 본 한국전쟁이라는 관점을 넘어, 전쟁이라는 세계적 난제를 어떻게 극복해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거리에 뜻있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출간 의의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 논픽션 작가로 평가받는 왕수쩡의 『한국전쟁』이 국내 첫 번역, 출간되었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줄곧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적군을 향한 대항적 성격으로서 한국전쟁을 규정함으로써 이념적·사상적 갈등을 인정하고 하나의 관점으로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좀 더 열린 시각에서 전쟁을 조망하려 했다. 무엇보다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흔히 보이는 각국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권 다툼이라는 시선에서 해부한 한국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오늘날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전쟁 속 잔인한 살육과 그것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범인류적 문제로 끌어옴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휴머니즘을 고수한다.
저자는 전쟁의 경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반도에 진입했던 중국군 소속 15개 군이 전후에 정리한 전쟁사, 전쟁 종식 뒤 귀국한 참전 장병이 쓴 수많은 회고록, 전쟁 당시 한반도 전장에 있던 중국군 지휘부와 베이징의 핵심 지휘자들 간에 교환한 모든 문서와 전보를 열람했다. 아울러 중국 중심의 전쟁 기술을 피하고자 미국 역사학자 모리스 이서먼의 『한국전쟁』, 역사학자 로이스 애플먼의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를 비롯한 다양한 관련 역사서, 더글러스 맥아더 및 매슈 리지웨이 등의 한국전쟁 회고록도 참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개정판 출간시 독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관련된 논의를 거쳐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을 더욱 수렴하였으며, 최신 전쟁사료도 인용해 시선의 객관성과 다양성을 강화했다.
■ 출병_1950년 10월 1일, 고요하던 신新중국을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1950년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1주년을 기념하는 국경일이었다. 국경일의 즐거움에 빠져 있던 중국인들은 거대한 전쟁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신문 기사는 북한군의 승리만을 다뤘을 뿐이었고 보통의 중국인들도 6월 25일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자들은 달랐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유엔군이 38선에 근접하면서 한국전쟁은 더 이상 ‘내전’이 아니었다. 저우언라이는 미군이 38선을 넘어 확전을 기도한다면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경고했고, 반면 미국은 이를 중국의 외교적 제스처라고 치부했다. 10월 8일, 신중국 역사상 대단히 특수한 군사용어로 꼽히는 ‘중국인민지원군’이 탄생했고 이렇게 중국의 출병은 시작되었다.
곧 전장에 투입될 중국군 병사들은 크게 세 가지의 정서를 품고 있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으며 중국 국내전쟁 유경험자이자 정치적 각성도와 계급적 기반이 좋았던 의분강개형, 그다음을 차지한 싸우라면 싸우고 굳이 싸우지 않아도 괜찮은 명령복종형, 마지막으로 고통과 전쟁을 두려워하며 한반도에 가서 싸우는 게 부질없는 참견이라 생각한 유형이 그 예다.
■ 정보전_ 전장에 버려진 서적을 통해 적군의 마음을 상상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됐다.”(238쪽_미 국방장관 마셜의 말 가운데)
정확한 정보를 처음부터 소유한 채 시작하는 전쟁의 가능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지수다. 하물며 과거는? 한 나라의 오판과 오만은 다른 나라의 정치력·경제력·군사력 등 다양한 능력을 쉽게 간과하기 일쑤다. 이런 가운데 저자가 주목하는 양상은 한 나라의 상태를 가늠해보는 정보전의 양상이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전쟁터에 버려진 상대편의 서적 등을 통해 상대편의 모습과 심리 상태를 상상해보는 일이다. 가령 미 제24사단은 전쟁 당시 어떤 중국군 부대가 펴낸 『운산전투경험 총정리』라는 책을 손에 넣은 적이 있었다. 책 앞부분에는 미군의 박격포와 전차, 포병 병력과 공중지원의 배합능력 그리고 보병 화력의 속사 기술에 대해 부러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나 미군 병사들의 전투능력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시하듯이 묘사했다. 미군이 이 책을 보고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310~311쪽 참고). 해병사단 병사들은 소련군 해병 대위가 저자였던 『피비린내 나는 역정』이라는 책을 돌려 읽으면서 야만적이고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그린 것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맥아더가 좋은 술, 맛난 요리, 아가씨, 재산 같은 것들을 약속했다는 허언을 확인하며 유감스러운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책은 미 해군 해병대가 한반도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이었다.
한편 전쟁터에 버려진 서적은 아니었으나, 미국 정보전문가들은 왜 중국이 한반도 전쟁 문제에 끼고 싶어하는가, 중국인민지원군의 작전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때, 마오쩌둥이 1938년에 쓴 저서 『지구전을 논하다』가 ‘한국의 유엔군에 대한 예언적 성격’이 담긴 글들을 담고 있으며, 중국의 전략전술상 핵심을 논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말았다.
한 일본 군사학자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 병사들이 전쟁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만들어냈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왕수쩡은 이를 중국군이 보여준 일곱 가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둘러싼 일곱 가지 미스터리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목적·동기·목표, 둘째, 중국군의 정찰 방법, 셋째, 중국군의 위장·토목공사 능력, 넷째, 원시적 병참 체계로 부대에 장비와 물자를 보급한 방법, 다섯째, 중국군의 탁월한 야간전투 능력, 여섯째, 죽음도 불사하는 인해전술, 일곱째, 기계적 운송수단이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군이 보인 기민한 추격 속도 등이었다.
■ 심리전_ 트루먼 대 맥아더의 ‘웨이크섬 회동’부터 중국군 제38군 춘제의 추억까지
저자의 언급에 따르면, 전후 한국전쟁을 기록한 무수한 글에는 부주의하게 적은 몇 줄의 글이 작고 큰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둘러싼 각 세력의 심리전은 대단했다. 왕수쩡은 한·미 vs 북·중이라는 표면적인 구도뿐만 아니라 세력의 내부에 깃든 긴장감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전쟁 하면 떠오르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이 한국전쟁에 개입된 여러 관점을 놓고 대립하는 장면을 ‘웨이크섬 회동’을 비롯해, 각종 전보의 교신에서 쌓인 불신과 맥아더의 언론 플레이로 인해 빚어진 갈등 등으로 비중 있게 다뤘으며, 중국인민지원군 지휘관 펑더화이가 적군인 한국과 미군을 대상으로 한 3차 전역을 도중에 중지한 것을 두고 소련과 북한(특히 김일성)의 심경이 불편했던 상태였음을, 이들이 벌인 날선 대화를 통해 보여주었다.(666~670쪽 참고)
이밖에도 각종 전단지 살포와 방송을 통해 적군을 회유했던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도 저자는 빼놓지 않았다. 중국군 저지진지의 최전방에 설치된 미군의 대형 나팔 속에는 투항을 권하는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중국군 장병 여러분,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에도 산을 지키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세요. 제대로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다리도 얼어서 퉁퉁 부으셨죠.” 동시에 다음의 내용이 적힌 전단지가 미군 비행기에서 뿌려졌다. ‘새해 축하’라는 네 글자와 함께. “새해가 다가와도 당신 마누라는 집에서 빚도 못 갚고 있고, 당신은 아마도 외국 전쟁터에서 죽을 운명이다.”(이상 718쪽 참고)
■ 전술·전략전_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부터 펑더화이의 중국식 유인 전술까지
“전쟁은 정치적 수단의 일종이다. 전쟁에서 정치적 열정은 불가결한 것일뿐더러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획득하는 보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부적이고 구체적인 전투를 진행하면서 전쟁의 쌍방이 더 염두에 두는 것은 지피지기나 운주유악(군막 안에서 전략을 세운다) 같은 전쟁 지략이며, 전쟁 특유의 규율을 준수해서 치밀하고도 정확하게 전술을 운용하는 것이다. 고루한 전쟁 관념, 뒤떨어진 전쟁 수단과 전술로 인해 궁극적으로 손해를 입는 것은 정치적 이익이다.”(914쪽)
왕수쩡의 『한국전쟁』에서 눈여겨볼 지점 중 하나는 각국이 구사하는 전술·전략의 유래와 전개 양상이다. 맥아더는 한국전쟁 이전 태평양 여러 지역의 여러 섬에서 미군의 상륙작전을 지휘한 경험이 있었으며, 이는 이른바 ‘개구리 뜀뛰기 전법’이라 불렸다. 이 전법은 방어가 취약하거나 아예 방어지가 되지 않던 상대편 군사의 후방 요충지에 기동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착상은 이 당시 경험에서 유래했다. 소위 ‘치고 빠지기’를 시종일관 전개하면서 적군의 혼을 빼놓는 펑더화이의 유인 전술은 전통적인 중국식 전투법이자 나름 비장의 무기였다. 일찍이 이 전술을 경험한 것은 일본군과 타이완에 있는 국민당 군대뿐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군과 유엔군은 이 전법의 새로운 체험자가 되어버렸다.
그밖에도 리지웨이의 ‘선더볼트 작전’ ‘킬러 작전’(중국군에 휴식과 재편성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한 연속 공격 작전, 784쪽 참조) ‘리퍼 작전’(전장 중부전선에서 틈을 벌려 공격해 들어가 중국군과 북한군을 분리하고, 서울 정면을 방어하는 중국군의 방어선을 위협하면서 서울을 포위하는 작전, 795쪽 참조) 등 한국전쟁을 수놓은 다양한 작전이 소개되어 있다.
한편 마오쩌둥은 불리한 중국군 전세를 감안해 ‘뉴피탕 조각 판매 전술’이라는 기본적인 지도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뉴피탕은 중국 남방 지역에서 엿기름으로 만든 둥근 빵 모양의 사탕을 가리키는데, 뉴파탕을 파는 사람은 작은 망치로 손님이 달라는 만큼 조각내서 팔았다. 이 비유를 통해 마오쩌둥은 중국은 더 이상 대규모로 적군과 싸울 수 없으니, 미군과 접촉하는 전선에서 조금씩 타격을 가하는 전법을 취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950쪽 참조).
■ 정전_ 협상이라는 전쟁의 또다른 형식
1951년 5월 16일 트루먼은 한국전쟁을 종결하자는 제안을 승인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5차 전역, 한반도에 투입된 병력은 어느덧 100만 명을 넘어섰고, 이제 곧 세계 전쟁사상 가장 지난하고, 가장 극적이며, 가장 치열했던 심리전인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연출될 일만 남았다. 2년간 벌어진 협상 기간 동안 쌍방의 방어선에는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집중 배치되었다. 저자의 진술에 따르면, 정전협정의 각 조항이 협의되거나 심지어 글자 하나에 대한 논쟁까지 그 모든 결과가 전 세계에 순간적인 절망과 희망을 안겨다주었다.
1951년 7월 10일,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공식적으로 개시되었다. 양측 대표단이 모인 곳은 내봉장. 중국인들에게 봉황이 날아온다는 것은 곧 환영의 뜻이었다. 정전협정이 정식 서명된 시각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의 서명 이후 12시간이 지나 정식 발효한다는 조항 때문에, 서명 뒤 12시간 동안 전체 수백 킬로미터의 전선에서는 여전히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총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흡사 새로운 대전투가 시작되는 듯했다. 7월 27일 오후 10시. 전선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으로 기괴한 갑작스러움”이었다(976쪽 참조).
저자의 표현을 계속 이어나가 한국전쟁의 의의를 되새겨본다면,
“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어느 한쪽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심지어 쌍방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전쟁은 자체의 규율이 있고, 우연과 필연이 한데 섞여 흐름이 결정되기도 하며, 삶의 희열과 죽음의 함정을 안배하기도 한다.”(894쪽)
중국 역사 논픽션의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들어냈다.”
_ 모옌,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
▲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중국 혁명사 3부작 완결판
▲ 정전 60주년, ‘적군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 전쟁의 원인·결과보다는 인간의 참혹· 각국의 전술/전략에 대한 상세한 기술에 초점
▲ 맥아더와 트루먼의 신경전, 마오쩌둥·김일성·펑더화이의 각기 다른 속내를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한국전쟁에 참여한 핵심 인물과 관계도를 두텁게 그려내다
▲ ‘운산전투’부터 ‘지평리전투’까지 각 전투의 드라마틱한 전개와 의의 언급
▲ 한국전쟁 관련 수많은 전쟁사 서적, 회고록, 문서와 전보, 인물 직접 취재 등 통해 정리한 정치적·사회문화적 에피소드와 비화 소개
동서고금의 결정적 장면을 가감 없는 필치로 소개하는 '걸작 논픽션' 시리즈 4권. 정전 60주년을 맞아 이번에는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이 쓴 한국전쟁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이 중국 역사 논픽션의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본 책은 특히 각기 다른 신분의 참전자들이 구성한 다원화된 역사적 기억을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결과보다는 다채로운 인물 심리 묘사와 중요 전투 및 전술이 갖는 의미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독자들이 책 속에 등장하는 조국, 민족, 이상, 신념, 의지 등의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선대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더불어 모든 개인, 군대, 민족이 시기에 관계없이 늘 갖추고 있어야 할 꺾이지 않는 정신을 배우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한국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전쟁 당시 ‘적군’이었던 중국군의 시선에서 본 한국전쟁이라는 관점을 넘어, 전쟁이라는 세계적 난제를 어떻게 극복해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거리에 뜻있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출간 의의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 논픽션 작가로 평가받는 왕수쩡의 『한국전쟁』이 국내 첫 번역, 출간되었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줄곧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적군을 향한 대항적 성격으로서 한국전쟁을 규정함으로써 이념적·사상적 갈등을 인정하고 하나의 관점으로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좀 더 열린 시각에서 전쟁을 조망하려 했다. 무엇보다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흔히 보이는 각국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권 다툼이라는 시선에서 해부한 한국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오늘날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전쟁 속 잔인한 살육과 그것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범인류적 문제로 끌어옴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휴머니즘을 고수한다.
저자는 전쟁의 경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반도에 진입했던 중국군 소속 15개 군이 전후에 정리한 전쟁사, 전쟁 종식 뒤 귀국한 참전 장병이 쓴 수많은 회고록, 전쟁 당시 한반도 전장에 있던 중국군 지휘부와 베이징의 핵심 지휘자들 간에 교환한 모든 문서와 전보를 열람했다. 아울러 중국 중심의 전쟁 기술을 피하고자 미국 역사학자 모리스 이서먼의 『한국전쟁』, 역사학자 로이스 애플먼의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를 비롯한 다양한 관련 역사서, 더글러스 맥아더 및 매슈 리지웨이 등의 한국전쟁 회고록도 참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개정판 출간시 독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관련된 논의를 거쳐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을 더욱 수렴하였으며, 최신 전쟁사료도 인용해 시선의 객관성과 다양성을 강화했다.
■ 출병_1950년 10월 1일, 고요하던 신新중국을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1950년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1주년을 기념하는 국경일이었다. 국경일의 즐거움에 빠져 있던 중국인들은 거대한 전쟁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신문 기사는 북한군의 승리만을 다뤘을 뿐이었고 보통의 중국인들도 6월 25일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자들은 달랐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유엔군이 38선에 근접하면서 한국전쟁은 더 이상 ‘내전’이 아니었다. 저우언라이는 미군이 38선을 넘어 확전을 기도한다면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경고했고, 반면 미국은 이를 중국의 외교적 제스처라고 치부했다. 10월 8일, 신중국 역사상 대단히 특수한 군사용어로 꼽히는 ‘중국인민지원군’이 탄생했고 이렇게 중국의 출병은 시작되었다.
곧 전장에 투입될 중국군 병사들은 크게 세 가지의 정서를 품고 있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으며 중국 국내전쟁 유경험자이자 정치적 각성도와 계급적 기반이 좋았던 의분강개형, 그다음을 차지한 싸우라면 싸우고 굳이 싸우지 않아도 괜찮은 명령복종형, 마지막으로 고통과 전쟁을 두려워하며 한반도에 가서 싸우는 게 부질없는 참견이라 생각한 유형이 그 예다.
■ 정보전_ 전장에 버려진 서적을 통해 적군의 마음을 상상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됐다.”(238쪽_미 국방장관 마셜의 말 가운데)
정확한 정보를 처음부터 소유한 채 시작하는 전쟁의 가능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지수다. 하물며 과거는? 한 나라의 오판과 오만은 다른 나라의 정치력·경제력·군사력 등 다양한 능력을 쉽게 간과하기 일쑤다. 이런 가운데 저자가 주목하는 양상은 한 나라의 상태를 가늠해보는 정보전의 양상이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전쟁터에 버려진 상대편의 서적 등을 통해 상대편의 모습과 심리 상태를 상상해보는 일이다. 가령 미 제24사단은 전쟁 당시 어떤 중국군 부대가 펴낸 『운산전투경험 총정리』라는 책을 손에 넣은 적이 있었다. 책 앞부분에는 미군의 박격포와 전차, 포병 병력과 공중지원의 배합능력 그리고 보병 화력의 속사 기술에 대해 부러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나 미군 병사들의 전투능력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시하듯이 묘사했다. 미군이 이 책을 보고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310~311쪽 참고). 해병사단 병사들은 소련군 해병 대위가 저자였던 『피비린내 나는 역정』이라는 책을 돌려 읽으면서 야만적이고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그린 것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맥아더가 좋은 술, 맛난 요리, 아가씨, 재산 같은 것들을 약속했다는 허언을 확인하며 유감스러운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책은 미 해군 해병대가 한반도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이었다.
한편 전쟁터에 버려진 서적은 아니었으나, 미국 정보전문가들은 왜 중국이 한반도 전쟁 문제에 끼고 싶어하는가, 중국인민지원군의 작전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때, 마오쩌둥이 1938년에 쓴 저서 『지구전을 논하다』가 ‘한국의 유엔군에 대한 예언적 성격’이 담긴 글들을 담고 있으며, 중국의 전략전술상 핵심을 논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말았다.
한 일본 군사학자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 병사들이 전쟁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만들어냈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왕수쩡은 이를 중국군이 보여준 일곱 가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둘러싼 일곱 가지 미스터리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목적·동기·목표, 둘째, 중국군의 정찰 방법, 셋째, 중국군의 위장·토목공사 능력, 넷째, 원시적 병참 체계로 부대에 장비와 물자를 보급한 방법, 다섯째, 중국군의 탁월한 야간전투 능력, 여섯째, 죽음도 불사하는 인해전술, 일곱째, 기계적 운송수단이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군이 보인 기민한 추격 속도 등이었다.
■ 심리전_ 트루먼 대 맥아더의 ‘웨이크섬 회동’부터 중국군 제38군 춘제의 추억까지
저자의 언급에 따르면, 전후 한국전쟁을 기록한 무수한 글에는 부주의하게 적은 몇 줄의 글이 작고 큰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둘러싼 각 세력의 심리전은 대단했다. 왕수쩡은 한·미 vs 북·중이라는 표면적인 구도뿐만 아니라 세력의 내부에 깃든 긴장감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전쟁 하면 떠오르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이 한국전쟁에 개입된 여러 관점을 놓고 대립하는 장면을 ‘웨이크섬 회동’을 비롯해, 각종 전보의 교신에서 쌓인 불신과 맥아더의 언론 플레이로 인해 빚어진 갈등 등으로 비중 있게 다뤘으며, 중국인민지원군 지휘관 펑더화이가 적군인 한국과 미군을 대상으로 한 3차 전역을 도중에 중지한 것을 두고 소련과 북한(특히 김일성)의 심경이 불편했던 상태였음을, 이들이 벌인 날선 대화를 통해 보여주었다.(666~670쪽 참고)
이밖에도 각종 전단지 살포와 방송을 통해 적군을 회유했던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도 저자는 빼놓지 않았다. 중국군 저지진지의 최전방에 설치된 미군의 대형 나팔 속에는 투항을 권하는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중국군 장병 여러분,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에도 산을 지키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세요. 제대로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다리도 얼어서 퉁퉁 부으셨죠.” 동시에 다음의 내용이 적힌 전단지가 미군 비행기에서 뿌려졌다. ‘새해 축하’라는 네 글자와 함께. “새해가 다가와도 당신 마누라는 집에서 빚도 못 갚고 있고, 당신은 아마도 외국 전쟁터에서 죽을 운명이다.”(이상 718쪽 참고)
■ 전술·전략전_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부터 펑더화이의 중국식 유인 전술까지
“전쟁은 정치적 수단의 일종이다. 전쟁에서 정치적 열정은 불가결한 것일뿐더러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획득하는 보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부적이고 구체적인 전투를 진행하면서 전쟁의 쌍방이 더 염두에 두는 것은 지피지기나 운주유악(군막 안에서 전략을 세운다) 같은 전쟁 지략이며, 전쟁 특유의 규율을 준수해서 치밀하고도 정확하게 전술을 운용하는 것이다. 고루한 전쟁 관념, 뒤떨어진 전쟁 수단과 전술로 인해 궁극적으로 손해를 입는 것은 정치적 이익이다.”(914쪽)
왕수쩡의 『한국전쟁』에서 눈여겨볼 지점 중 하나는 각국이 구사하는 전술·전략의 유래와 전개 양상이다. 맥아더는 한국전쟁 이전 태평양 여러 지역의 여러 섬에서 미군의 상륙작전을 지휘한 경험이 있었으며, 이는 이른바 ‘개구리 뜀뛰기 전법’이라 불렸다. 이 전법은 방어가 취약하거나 아예 방어지가 되지 않던 상대편 군사의 후방 요충지에 기동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착상은 이 당시 경험에서 유래했다. 소위 ‘치고 빠지기’를 시종일관 전개하면서 적군의 혼을 빼놓는 펑더화이의 유인 전술은 전통적인 중국식 전투법이자 나름 비장의 무기였다. 일찍이 이 전술을 경험한 것은 일본군과 타이완에 있는 국민당 군대뿐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군과 유엔군은 이 전법의 새로운 체험자가 되어버렸다.
그밖에도 리지웨이의 ‘선더볼트 작전’ ‘킬러 작전’(중국군에 휴식과 재편성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한 연속 공격 작전, 784쪽 참조) ‘리퍼 작전’(전장 중부전선에서 틈을 벌려 공격해 들어가 중국군과 북한군을 분리하고, 서울 정면을 방어하는 중국군의 방어선을 위협하면서 서울을 포위하는 작전, 795쪽 참조) 등 한국전쟁을 수놓은 다양한 작전이 소개되어 있다.
한편 마오쩌둥은 불리한 중국군 전세를 감안해 ‘뉴피탕 조각 판매 전술’이라는 기본적인 지도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뉴피탕은 중국 남방 지역에서 엿기름으로 만든 둥근 빵 모양의 사탕을 가리키는데, 뉴파탕을 파는 사람은 작은 망치로 손님이 달라는 만큼 조각내서 팔았다. 이 비유를 통해 마오쩌둥은 중국은 더 이상 대규모로 적군과 싸울 수 없으니, 미군과 접촉하는 전선에서 조금씩 타격을 가하는 전법을 취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950쪽 참조).
■ 정전_ 협상이라는 전쟁의 또다른 형식
1951년 5월 16일 트루먼은 한국전쟁을 종결하자는 제안을 승인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5차 전역, 한반도에 투입된 병력은 어느덧 100만 명을 넘어섰고, 이제 곧 세계 전쟁사상 가장 지난하고, 가장 극적이며, 가장 치열했던 심리전인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연출될 일만 남았다. 2년간 벌어진 협상 기간 동안 쌍방의 방어선에는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집중 배치되었다. 저자의 진술에 따르면, 정전협정의 각 조항이 협의되거나 심지어 글자 하나에 대한 논쟁까지 그 모든 결과가 전 세계에 순간적인 절망과 희망을 안겨다주었다.
1951년 7월 10일,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공식적으로 개시되었다. 양측 대표단이 모인 곳은 내봉장. 중국인들에게 봉황이 날아온다는 것은 곧 환영의 뜻이었다. 정전협정이 정식 서명된 시각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의 서명 이후 12시간이 지나 정식 발효한다는 조항 때문에, 서명 뒤 12시간 동안 전체 수백 킬로미터의 전선에서는 여전히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총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흡사 새로운 대전투가 시작되는 듯했다. 7월 27일 오후 10시. 전선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으로 기괴한 갑작스러움”이었다(976쪽 참조).
저자의 표현을 계속 이어나가 한국전쟁의 의의를 되새겨본다면,
“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어느 한쪽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심지어 쌍방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전쟁은 자체의 규율이 있고, 우연과 필연이 한데 섞여 흐름이 결정되기도 하며, 삶의 희열과 죽음의 함정을 안배하기도 한다.”(894쪽)
목차
한국어판 서문
시작하는 말│오래된 명제
제1장 전쟁의 발발과 미국의 개입
1950년 6월 25일│타이완,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서울 대피란│한국전쟁과 두 미군 장군의 운명, 그리고 중국 국방안보회의│인천상륙작전│어려운 선택│웨이크 섬-미국식 정치게임│인민지원군, 압록강을 건너다
제2장 운산전투-중국군과 미군의 첫 번째 육박전
‘요요’ 작전과 한국어로 부르는 「둥팡훙」│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우익의 붕괴│운산전투-중국군과 미군의 첫 번째 육박전│우리는 아직 연대봉에 있다!│중국군이 사라졌다│먹으나 마나
제3장 38군 만세!
“대단한 전력이 아니다”│“중국군 밥 냄새만 맡아도 철수하라”│한국군 제2군단은 더 이상 없다│비참한 ‘베이커 중대’와 ‘까만 미국인’│‘가장 이상한 회의’와 닫혀버린 ‘철책문’│38군 만세!
제4장 메리 크리스마스!
“진심으로 중국 놈들이 애석하다!”│“해병대, 남쪽으로 진격!”│악몽의 시작│수문교 _509│메리 크리스마스!
제5장 리지웨이, 중국군 총사령관에게 안부를 전하다
차오?주러우炒麵煮肉 회의│“한 번의 승리가 정말 중요하네”│대빙하│“미국을 물리치기 전에는 귀국하지 않으리”│“서울로 가라! 그곳엔 아가씨가 있다”│치약한통주의一甁牙膏主義
제6장 피로 물든 한강
“36선을 쟁취하라!”│“중국군 장병 여러분, 오늘은 설날입니다!”│최악의 손실을 입은 전투│폭설 속에 묻힌 유해│분노한 펑더화이│리퍼 작전-가장 어려운 시기│‘죽지 않는 노병’ 사라지다
제7장 누가 승기를 잡을 것인가
밴 플리트 장군, “공산군의 공격을 환영한다!”│성 조지 축일│한국군을 무찌르러 가자! _867│진지를 사수하지 못한 쪽은?│밴 플리트 탄약량│영원한 슬픔│누가 승기를 잡을 것인가?│조지 케넌과 내봉장
맺는 말│오색나비가 뒤섞여 날아오르는 듯한 환각
개정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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