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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대중적 차원에서든 학술적 차원에서든 아니면 정치적 차원에서든 간에, 오늘날 ‘공간’이라는 용어는 많은 행위자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사(修辭)나 정당화의 서사에 전유되고 있다. 이는 특히 어떤 현상이나 대상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현시대를 ‘글로벌화’라고 규정하려는 시도에서 두드러진다. 가령,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지배적 서사는 대개 국가의 ‘외부’ 세계를 위험과 기회가 병존하는 ‘공간’으로 그려냄으로써 자국민들에게 모험적이고 외부지향적인 개척자가 될 것을 독려한다. 스타벅스나 중국인 거리와 같은 우리 주변의 일상 ‘공간’이 (다국적기업의 상품사슬이나 초국가주의와 관련하여) 어떻게 글로벌화라는 거시적 과정과 얽혀있는지를 성찰하려는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대안적인 시민·사회운동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지향해 온 방향도 ‘공동체적’, ‘자립적’, ‘지속가능한’, ‘환경친화적’ 등의 형용사로 수식되는 ‘공간’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공간이 오늘날 글로벌화의 환대(歡待)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반(反)글로벌화 진영의 환대 또한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분명 지리학자들에게 솔깃하고도 반가우며 놀라운 현상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공간을 둘러싼 이러한 환대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현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화에 의한 공간의 생산과 부침(浮沈)과 그 변동이 자본의 축적과 자본주의 확대 재생산의 과정과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간 서사 중심 시대로의 변동에 대한 축배를 들기 이전에, 글로벌리즘은 공간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는지, 글로벌리즘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고 공간 서사를 생산, 전유, 유포하는지, 그리고 글로벌화는 궁극적으로 어떤 지리적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터이다.
공간이 이처럼 중요한데도, 지리학이나 그 외의 관련 분야에서 공간 그 자체를 질기고도 치열하게 성찰하려고 했던 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인문지리학에서는 1990년대를 즈음하여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동과 방법론적 논쟁을 둘러싸고 벌어진 절대적·상대적 공간과 추상적·구체적 공간에 관한 논의가 이런 노력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공간에 관한 이야기는 빈곤과 부의 집중을 논하면서,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와 변동을 논하면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식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사회에 대한 권력의 관계망을 논하면서, 아니면 흐름과 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다루어져 왔을 따름이다.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설파하면서도, 막상 공간 그 자체의 철학적 문제설정,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지리적 상상, 공간 그 자체의 정치적 전망과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도린 매시의 『공간을 위하여』는 문자 그대로 오직 공간을 위하여 집필된 책이라는 점 자체로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책은 글로벌화라는 맥락 속에서 공간에 대한 사유를 폭넓고도 깊이 있게 추적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저자는 공간에 대한 자신의 풍부한 지리적 상상을 풀어내며 그 상상의 정치적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안하고 있다. 우선, 매시는 글로벌화가 일종의 ‘프로젝트’임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글로벌화가 프로젝트라는 주장은, 글로벌화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고 글로벌화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는 일련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시도라는 것을 함의한다. 글로벌화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리를 역사로 전환시키고 공간을 시간으로 전환시키는 서사에 있다. 가령, 모잠비크와 니카라과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며 ‘우리’와 공존한다는 서사는, 곧 이들은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역사와 발전 과정도 없고 따라서 잠재적 미래 또한 글로벌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매시는 이 책 전반에서 공간이란 상이한 역사적 궤적들을 지니고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현재의 모순적인 상황을 돌파하고자 한다. 매시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태도 자체를 심문하며, 정치적 변화와 가능성을 열어젖히기 위해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한편, 장소와 관련해서도 글로벌화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장소를 일상적 실천의 장이고 지리적 의미의 원천이라고 간주하게 하고 냉엄한 글로벌화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소속감과 안정을 주는 보루로서 인식하게 한다. 곧, 글로벌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적 공간을 상상하는 반(反)글로벌화 진영의 사람들도 장소는 정치적 저항의 토대이자 안식처로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장소는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거부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거절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장소는 민족주의, 지역주의처럼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자기중심적 정치를 위해 매우 효율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장소는 글로벌화 프로젝트를 구현하고 발전시키며 조정하는 근거와 결절의 위치라는 측면에서, 글로벌화와 불가결의 관계로 얽혀 있다. 매시는 장소가 이처럼 이중적이고 모호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장소의 ‘교묘함’ 내지 ‘모호함’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장소를 다중적인 궤적들이 결합하는 지점이자 ‘함께 내던져져 있음’의 공간으로 파악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날 ‘글로벌’한 것은 권력적이고 능동적이며 공식적인 ‘공간’으로서, 반면 ‘로컬’한 것은 주변적이고 수동적이며 비공식적인 ‘장소’로 상상이 되고 설파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측면에서 매시는 이렇게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지리적 상상을 유발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장소와 공간의 구분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고 말이다. 매시에 따르면, 공간을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지표로 상상하는 것, 공간을 시간으로 전환하는 것, 로컬 장소를 외부 공간과 뚜렷이 분리하려는 것은 세계의 고유한 공간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방해하는 것이다. 매시는 공간을 이질적인 궤적들이 동시대적으로 공존하는 다중성과 구성적 복잡성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소는 이런 공간적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에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도린 매시의 치열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비판과 상상이 곳곳에 묻어나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관계적 지리학의 입장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다중적 궤적들의 역동성을 일관성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상상이 중요한 이유는, 공간을 단순한 표면이나 배경으로 인식하고 장소를 단순한 위치나 묶음으로 인식하게 하는 현행의 글로벌화 프로젝트를 넘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바로 이러한 공간적 상상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간에 대한 관계적 지리학은, 글로벌화로 인해 삶과 생활공간의 파편성과 분절성과 이질성이 극대화된 작금의 상황에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적, 전략적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으므로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공간이 오늘날 글로벌화의 환대(歡待)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반(反)글로벌화 진영의 환대 또한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분명 지리학자들에게 솔깃하고도 반가우며 놀라운 현상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공간을 둘러싼 이러한 환대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현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화에 의한 공간의 생산과 부침(浮沈)과 그 변동이 자본의 축적과 자본주의 확대 재생산의 과정과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간 서사 중심 시대로의 변동에 대한 축배를 들기 이전에, 글로벌리즘은 공간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는지, 글로벌리즘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고 공간 서사를 생산, 전유, 유포하는지, 그리고 글로벌화는 궁극적으로 어떤 지리적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터이다.
공간이 이처럼 중요한데도, 지리학이나 그 외의 관련 분야에서 공간 그 자체를 질기고도 치열하게 성찰하려고 했던 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인문지리학에서는 1990년대를 즈음하여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동과 방법론적 논쟁을 둘러싸고 벌어진 절대적·상대적 공간과 추상적·구체적 공간에 관한 논의가 이런 노력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공간에 관한 이야기는 빈곤과 부의 집중을 논하면서,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와 변동을 논하면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식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사회에 대한 권력의 관계망을 논하면서, 아니면 흐름과 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다루어져 왔을 따름이다.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설파하면서도, 막상 공간 그 자체의 철학적 문제설정,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지리적 상상, 공간 그 자체의 정치적 전망과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도린 매시의 『공간을 위하여』는 문자 그대로 오직 공간을 위하여 집필된 책이라는 점 자체로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책은 글로벌화라는 맥락 속에서 공간에 대한 사유를 폭넓고도 깊이 있게 추적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저자는 공간에 대한 자신의 풍부한 지리적 상상을 풀어내며 그 상상의 정치적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안하고 있다. 우선, 매시는 글로벌화가 일종의 ‘프로젝트’임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글로벌화가 프로젝트라는 주장은, 글로벌화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고 글로벌화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는 일련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시도라는 것을 함의한다. 글로벌화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리를 역사로 전환시키고 공간을 시간으로 전환시키는 서사에 있다. 가령, 모잠비크와 니카라과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며 ‘우리’와 공존한다는 서사는, 곧 이들은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역사와 발전 과정도 없고 따라서 잠재적 미래 또한 글로벌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매시는 이 책 전반에서 공간이란 상이한 역사적 궤적들을 지니고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현재의 모순적인 상황을 돌파하고자 한다. 매시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태도 자체를 심문하며, 정치적 변화와 가능성을 열어젖히기 위해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한편, 장소와 관련해서도 글로벌화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장소를 일상적 실천의 장이고 지리적 의미의 원천이라고 간주하게 하고 냉엄한 글로벌화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소속감과 안정을 주는 보루로서 인식하게 한다. 곧, 글로벌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적 공간을 상상하는 반(反)글로벌화 진영의 사람들도 장소는 정치적 저항의 토대이자 안식처로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장소는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거부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거절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장소는 민족주의, 지역주의처럼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자기중심적 정치를 위해 매우 효율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장소는 글로벌화 프로젝트를 구현하고 발전시키며 조정하는 근거와 결절의 위치라는 측면에서, 글로벌화와 불가결의 관계로 얽혀 있다. 매시는 장소가 이처럼 이중적이고 모호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장소의 ‘교묘함’ 내지 ‘모호함’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장소를 다중적인 궤적들이 결합하는 지점이자 ‘함께 내던져져 있음’의 공간으로 파악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날 ‘글로벌’한 것은 권력적이고 능동적이며 공식적인 ‘공간’으로서, 반면 ‘로컬’한 것은 주변적이고 수동적이며 비공식적인 ‘장소’로 상상이 되고 설파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측면에서 매시는 이렇게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지리적 상상을 유발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장소와 공간의 구분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고 말이다. 매시에 따르면, 공간을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지표로 상상하는 것, 공간을 시간으로 전환하는 것, 로컬 장소를 외부 공간과 뚜렷이 분리하려는 것은 세계의 고유한 공간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방해하는 것이다. 매시는 공간을 이질적인 궤적들이 동시대적으로 공존하는 다중성과 구성적 복잡성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소는 이런 공간적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에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도린 매시의 치열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비판과 상상이 곳곳에 묻어나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관계적 지리학의 입장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다중적 궤적들의 역동성을 일관성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상상이 중요한 이유는, 공간을 단순한 표면이나 배경으로 인식하고 장소를 단순한 위치나 묶음으로 인식하게 하는 현행의 글로벌화 프로젝트를 넘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바로 이러한 공간적 상상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간에 대한 관계적 지리학은, 글로벌화로 인해 삶과 생활공간의 파편성과 분절성과 이질성이 극대화된 작금의 상황에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적, 전략적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으므로 더욱 중요한 것이다.
목차
서문
제1부 상황 설정
세 가지 사고
1장. 문제제기
제2부 희망 없는 연합
2장. 공간/재현
(과학에 대한 신뢰? 1)
3장. 공시성의 감옥
구조주의 ‘공간들’
구조주의 이후
4장. 해체의 수평 상태
5장. 공간에서의 삶
제3부 공간적 시간들 속에서 살아가기
6장. 모더니티의 역사를 공간화하기
(과학에 대한 신뢰? 2)
(다시 재현으로, 지식 생산의 지리 1)
7장. 즉시성/피상성
8장. 비공간적 글로벌화
9장. 공간은 시간에 의해 소멸될 수 없다(일반적 견해에 대한 반박)
10장. 대안의 요소들
제4부 재방향화
11장. 공간의 조각들
지도의 실패
공간의 우연성
상상(想像)의 여행
(과학에 대한 신뢰? 3)
12장. 장소의 난해함
이주하는 바위
장소라는 사건
(지식 생산의 지리 2: 지식 생산의 장소)
제5부 공간적인 것의 관계적 정치
13장. 함께 던져져 있음: 장소라는 사건의 정치
14장. 공간과 장소에 규칙이란 없다
15장. 시간-공간 만들기와 투쟁하기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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