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핵 벼랑을 걷다: 윌리엄 페리 회고록
- 대등서명
- 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
- 개인저자
- 윌리엄 J. 페리 지음 ; 정소영 옮김
- 발행사항
- 파주 : 창비, 2016
- 형태사항
- 386 p. : 삽화, 초상 ; 24 cm
- ISBN
- 9788936486075
- 청구기호
- 390.99 페239ㅎ
- 일반주기
- 색인수록 원저자명: William James Perry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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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6369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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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16369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핵위기를 넘으려면 냉전을 돌아보라
전생애에 걸쳐 핵과 싸워온 윌리엄 페리 前 미 국방장관의 회고
『핵 벼랑을 걷다: 윌리엄 페리 회고록』(원제: 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은 윌리엄 페리 전(前) 미 국방장관이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벌어진 핵과 전쟁의 일화들을 돌아보며 특히 1960년부터 2010년대까지 핵안보 외교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연구자이자 첨단위성기술 개발자이며 전문경영인이었던 한 개인이 어쩌다 냉전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논픽션이다. 학문과 공직이라는 두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매번 고민에 빠지는 그가 첨단기술에 대한 폭넓고 기민한 지식을 통해 스텔스(F-117) 등의 스마트무기를 선보이며 냉전기 군비경쟁의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린 장면은 이 책의 백미다. 또한 이와 같은 연구·기술 전문인의 삶을 벗어나 국방장관 시절과 그뒤 민간외교 시절 모두에서 과감히 평화외교의 전선에 뛰어든 평화외교가로서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페리는 1990년대 중반 한반도 핵위기 당시 제네바합의 체결부터 ‘페리 프로세스’ 제안까지를 종횡무진 오가며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깊이 남은 인물이기도 하다.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해결 방안으로서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대표적 보고서로 꼽힌다. 이 책에서 페리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돌아보며 김대중정부와의 협업에서 배운 점, 북한이 위기를 벌이는 속내 등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수학연구자다운 정확한 추정과 근거 제시, 단호한 결정과 추진력, 주위의 무수한 조언을 끊임없이 경청하는 태도 등은 윌리엄 페리의 삶에서 돋보인다. 또한 낮은 계급의 군인과 부하에게 보이는 살뜰함, 난국 속에 던지는 생생한 유머는 그의 회고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재미다.
수학을 좋아했던 한 청년은 어쩌다 냉전기 최고의 전략가가 되었는가
회고록이지만 단순히 개인사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책 전반을 꿰뚫는 주제는 ‘핵 없는 세계를 위한 실천과 모색’이다. 특히 핵군축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혹은 러시아) 간의 갈등 국면에서 페리가 보인 참신한 착상은 흥미롭다.
1962년 페리가 막 서른여섯살이 되었던 어느 가을날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페리는 전자정찰 씨스템을 개발하는 어느 전자방어연구소 소장이었다. 페리는 본래 “수학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경외감”을 느끼며 학문연구의 꿈을 품었던 연구자였다. 결혼 직후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방위산업체 파트타임 근무는 그에게 “방위상의 곤란한 문제를 푸는 데 수학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42면)을 일깨워주었고 이로써 그는 순수학문 연구자에서 냉전시대 전략가로 스스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가 처음 맡은 공무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 내 주요 기지를 촬영한 사진을 정밀판독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위기는 미소 간 큰 충돌 없이 종료되긴 했지만 페리는 당시의 그 사건이 “핵재앙의 벼랑 끝까지 간” 역사적 사건이었음에도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때가 많았”(35면)다고 회고한다. 이후 그가 학문연구와 공무수행의 두갈래 길에서 결국엔 매번 후자를 택했던 이유는 바로 핵이라는 지구상 가장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데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없길 바라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과 소련은 본격적으로 군비경쟁에 발을 디딘다. 흐루쇼프 퇴진 이후 브레즈네프는 핵개발과 ICBM(대륙간탄도탄미사일)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를 탐지하는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미국은 첩보수집에 더욱 열을 올렸고 이로써 방위산업은 최대 활황을 맞게 되었다. 이때 페리가 세운 디지털 정찰기술 회사는 미 서부 씰리콘밸리의 첫번째 입주기업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기술진이자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는 소련의 ICBM을 매번 어떻게 원격으로 측정할 수 있을지, 소련 전체 미사일방어체제의 핵심신호를 어떻게 탐지할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기발한 착상의 소유자들이 똘똘 뭉친 그의 회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당대 최고의 기술로 디지털 이미지를 신호로 전환하여 처리하는 씨스템을 개발해냈다.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소련의 재래식 무기증강에 대한 미국 내의 우려는 상당했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재래식 병기 증대로 맞서야 한다는 의견이 거셌다. 그즈음에 국방부 연구기술 차관으로 발탁되어 기존의 ‘상쇄전략’을 첨단기술로 새롭게 탈바꿈해내는 페리의 활약상이 담긴 5~6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새롭게 소개되는 내용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상쇄전략은 소련의 양적 우세에 맞서는 미국의 핵억제력 강화전략을 가리키는데, 페리는 여기에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한 첨단 스마트무기 개발을 접목한다. 다량의 재래식 무기를 많은 비용을 들여 생산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당대의 신기술인 GPS와 레이더 씨스템을 적용한 소량의 첨단무기를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때 개발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에겐 1991년 이라크전쟁으로 익숙해진 스텔스기(F-117), 토마호크 미사일 등이다.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미국이 벌인 실용적·경제적·과학적 노력은 그와 정반대로 무지막지한 비용을 들여온 소련의 노력을 “순식간에 가치절하한 현명한 해결방법”(105면)이었다. 그후 본래의 연구기술에서 외교 분야로 임무가 달라진 페리는 중국, 이스라엘, 이집트 등 세계 각지의 갈등 현장을 방문한다. 한창 냉전 중에 진행된 미소 양방의 군비통제와 군축을 위한 회담, 갈등중재자로서 참여한 각종 방문 등은, 당시에도 반목과 갈등만이 아닌 협력의 경험이 풍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주며, 이는 냉전기 미소갈등에만 익숙한 우리의 관련 연구자, 평화운동 활동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북핵위기를 돌파하다
카터행정부 이후 한동안 민간과 공직을 오가며 외교 현장에서 활동하던 페리는 1994년 클린턴행정부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며 한반도 북핵위기와 곧장 인연을 맺는다.(14장) 페리는 “북한의 비밀무기 프로그램”을 “평화적인 핵발전 프로그램”(189면)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품는다. 다만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북한의 대미공세가 거세지자 페리는 남한과 일본을 방문하여 북의 선제공격에 대응하는 “도려내기”(191면) 식 타격 태세가 가능할지를 점검한다. 이 때문에 북한은 그를 ‘전쟁광’이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그 이면에서 페리가 찾고자 했던 것은 외교적 해결이었다.
1994년 당시의 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은 플루토늄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일본과 남한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두기의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다 1998년 북한이 로동(중거리), 대포동 1·2호(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이를 실험발사하면서 북미 간 갈등은 재개되었다. 페리는 한국의 임동원, 일본의 카또오 료오조오와 함께 한미일 3자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결국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는다.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을 전제로 국가 간 포괄적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을 위해 단계적·점진적으로 노력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보고서를 북한에 제안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오는 내용(300~302면)은 북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간파한 저자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논의 중에 엄포나 위협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북한은 (…)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수십년간 이어진 불안정한 상황을 끝내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한반도를 이룰 수 있는 관계정상화를 분명 바라고 있었다.”(302면)
2010년대 북핵위기에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윌리엄 페리의 조언
페리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핵위기는 심화된다. 가장 큰 이유는 클린턴이 재선에 실패하고 이후의 부시행정부가 대북정책의 노선을 180도 바꾼 데서 기인한다. 페리는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짙게 토로한다. 실제로 부시행정부의 콜린 파월 국방장관은 페리에게 대북협상의 기조를 계승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이후 부시는 김대중과의 회담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후로는 북미 간 대화가 향후 2년간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이는 곧 북핵실험의 도화선이 되었다.(306~307면) 반북 성향의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페리가 직접 ‘트랙 2’ 활동(민간외교)을 벌이며 북한 현지에 다녀오는 등 북한과 긴밀히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꽤 있었지만 사실상 미국의 거부로 때를 놓치기도 했다.(309~11면) 미국이 북핵위기를 심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미국의 전직 국방장관의 이와 같은 고백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매번 곱씹어보아야 할 장면이다.
페리는 북핵위기뿐 아니라 구 유고연방의 해체와 갈등, 아이티 쿠데타 진압, 중국(남중국해 영유권 등)·이란(농축우라늄), 그리고 인도·파키스탄 간 갈등 등 수많은 세계적·국지적 위기 때마다 평화를 전제로 한 민간외교 활동을 벌여왔다. 또한 현재는 핵의 위협을 널리 알리며 반핵활동을 독려하려는 프로젝트에 앞장서고 있다. 자신의 표현 그대로 그는 “핵의 위험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사실상 불가능한 추구일 수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핵의 벼랑 끝에서 여전히 나의 길을 가고 있다”.(351면) 핵이 지구상에 나타난 때에 태어나 그 위협을 알리는 데에 평생을 바쳐온 한 전략가의 꿈이 이뤄지길 빈다.
전생애에 걸쳐 핵과 싸워온 윌리엄 페리 前 미 국방장관의 회고
『핵 벼랑을 걷다: 윌리엄 페리 회고록』(원제: 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은 윌리엄 페리 전(前) 미 국방장관이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벌어진 핵과 전쟁의 일화들을 돌아보며 특히 1960년부터 2010년대까지 핵안보 외교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연구자이자 첨단위성기술 개발자이며 전문경영인이었던 한 개인이 어쩌다 냉전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논픽션이다. 학문과 공직이라는 두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매번 고민에 빠지는 그가 첨단기술에 대한 폭넓고 기민한 지식을 통해 스텔스(F-117) 등의 스마트무기를 선보이며 냉전기 군비경쟁의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린 장면은 이 책의 백미다. 또한 이와 같은 연구·기술 전문인의 삶을 벗어나 국방장관 시절과 그뒤 민간외교 시절 모두에서 과감히 평화외교의 전선에 뛰어든 평화외교가로서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페리는 1990년대 중반 한반도 핵위기 당시 제네바합의 체결부터 ‘페리 프로세스’ 제안까지를 종횡무진 오가며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깊이 남은 인물이기도 하다.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해결 방안으로서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대표적 보고서로 꼽힌다. 이 책에서 페리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돌아보며 김대중정부와의 협업에서 배운 점, 북한이 위기를 벌이는 속내 등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수학연구자다운 정확한 추정과 근거 제시, 단호한 결정과 추진력, 주위의 무수한 조언을 끊임없이 경청하는 태도 등은 윌리엄 페리의 삶에서 돋보인다. 또한 낮은 계급의 군인과 부하에게 보이는 살뜰함, 난국 속에 던지는 생생한 유머는 그의 회고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재미다.
수학을 좋아했던 한 청년은 어쩌다 냉전기 최고의 전략가가 되었는가
회고록이지만 단순히 개인사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책 전반을 꿰뚫는 주제는 ‘핵 없는 세계를 위한 실천과 모색’이다. 특히 핵군축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혹은 러시아) 간의 갈등 국면에서 페리가 보인 참신한 착상은 흥미롭다.
1962년 페리가 막 서른여섯살이 되었던 어느 가을날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페리는 전자정찰 씨스템을 개발하는 어느 전자방어연구소 소장이었다. 페리는 본래 “수학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경외감”을 느끼며 학문연구의 꿈을 품었던 연구자였다. 결혼 직후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방위산업체 파트타임 근무는 그에게 “방위상의 곤란한 문제를 푸는 데 수학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42면)을 일깨워주었고 이로써 그는 순수학문 연구자에서 냉전시대 전략가로 스스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가 처음 맡은 공무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 내 주요 기지를 촬영한 사진을 정밀판독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위기는 미소 간 큰 충돌 없이 종료되긴 했지만 페리는 당시의 그 사건이 “핵재앙의 벼랑 끝까지 간” 역사적 사건이었음에도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때가 많았”(35면)다고 회고한다. 이후 그가 학문연구와 공무수행의 두갈래 길에서 결국엔 매번 후자를 택했던 이유는 바로 핵이라는 지구상 가장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데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없길 바라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과 소련은 본격적으로 군비경쟁에 발을 디딘다. 흐루쇼프 퇴진 이후 브레즈네프는 핵개발과 ICBM(대륙간탄도탄미사일)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를 탐지하는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미국은 첩보수집에 더욱 열을 올렸고 이로써 방위산업은 최대 활황을 맞게 되었다. 이때 페리가 세운 디지털 정찰기술 회사는 미 서부 씰리콘밸리의 첫번째 입주기업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기술진이자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는 소련의 ICBM을 매번 어떻게 원격으로 측정할 수 있을지, 소련 전체 미사일방어체제의 핵심신호를 어떻게 탐지할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기발한 착상의 소유자들이 똘똘 뭉친 그의 회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당대 최고의 기술로 디지털 이미지를 신호로 전환하여 처리하는 씨스템을 개발해냈다.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소련의 재래식 무기증강에 대한 미국 내의 우려는 상당했다. 미국 의회 내에서도 재래식 병기 증대로 맞서야 한다는 의견이 거셌다. 그즈음에 국방부 연구기술 차관으로 발탁되어 기존의 ‘상쇄전략’을 첨단기술로 새롭게 탈바꿈해내는 페리의 활약상이 담긴 5~6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새롭게 소개되는 내용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상쇄전략은 소련의 양적 우세에 맞서는 미국의 핵억제력 강화전략을 가리키는데, 페리는 여기에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한 첨단 스마트무기 개발을 접목한다. 다량의 재래식 무기를 많은 비용을 들여 생산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당대의 신기술인 GPS와 레이더 씨스템을 적용한 소량의 첨단무기를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때 개발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에겐 1991년 이라크전쟁으로 익숙해진 스텔스기(F-117), 토마호크 미사일 등이다.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미국이 벌인 실용적·경제적·과학적 노력은 그와 정반대로 무지막지한 비용을 들여온 소련의 노력을 “순식간에 가치절하한 현명한 해결방법”(105면)이었다. 그후 본래의 연구기술에서 외교 분야로 임무가 달라진 페리는 중국, 이스라엘, 이집트 등 세계 각지의 갈등 현장을 방문한다. 한창 냉전 중에 진행된 미소 양방의 군비통제와 군축을 위한 회담, 갈등중재자로서 참여한 각종 방문 등은, 당시에도 반목과 갈등만이 아닌 협력의 경험이 풍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주며, 이는 냉전기 미소갈등에만 익숙한 우리의 관련 연구자, 평화운동 활동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북핵위기를 돌파하다
카터행정부 이후 한동안 민간과 공직을 오가며 외교 현장에서 활동하던 페리는 1994년 클린턴행정부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며 한반도 북핵위기와 곧장 인연을 맺는다.(14장) 페리는 “북한의 비밀무기 프로그램”을 “평화적인 핵발전 프로그램”(189면)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품는다. 다만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북한의 대미공세가 거세지자 페리는 남한과 일본을 방문하여 북의 선제공격에 대응하는 “도려내기”(191면) 식 타격 태세가 가능할지를 점검한다. 이 때문에 북한은 그를 ‘전쟁광’이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그 이면에서 페리가 찾고자 했던 것은 외교적 해결이었다.
1994년 당시의 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은 플루토늄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일본과 남한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두기의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다 1998년 북한이 로동(중거리), 대포동 1·2호(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이를 실험발사하면서 북미 간 갈등은 재개되었다. 페리는 한국의 임동원, 일본의 카또오 료오조오와 함께 한미일 3자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결국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는다.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을 전제로 국가 간 포괄적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을 위해 단계적·점진적으로 노력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보고서를 북한에 제안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오는 내용(300~302면)은 북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간파한 저자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논의 중에 엄포나 위협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북한은 (…)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수십년간 이어진 불안정한 상황을 끝내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한반도를 이룰 수 있는 관계정상화를 분명 바라고 있었다.”(302면)
2010년대 북핵위기에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윌리엄 페리의 조언
페리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핵위기는 심화된다. 가장 큰 이유는 클린턴이 재선에 실패하고 이후의 부시행정부가 대북정책의 노선을 180도 바꾼 데서 기인한다. 페리는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짙게 토로한다. 실제로 부시행정부의 콜린 파월 국방장관은 페리에게 대북협상의 기조를 계승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이후 부시는 김대중과의 회담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후로는 북미 간 대화가 향후 2년간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이는 곧 북핵실험의 도화선이 되었다.(306~307면) 반북 성향의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페리가 직접 ‘트랙 2’ 활동(민간외교)을 벌이며 북한 현지에 다녀오는 등 북한과 긴밀히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꽤 있었지만 사실상 미국의 거부로 때를 놓치기도 했다.(309~11면) 미국이 북핵위기를 심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미국의 전직 국방장관의 이와 같은 고백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매번 곱씹어보아야 할 장면이다.
페리는 북핵위기뿐 아니라 구 유고연방의 해체와 갈등, 아이티 쿠데타 진압, 중국(남중국해 영유권 등)·이란(농축우라늄), 그리고 인도·파키스탄 간 갈등 등 수많은 세계적·국지적 위기 때마다 평화를 전제로 한 민간외교 활동을 벌여왔다. 또한 현재는 핵의 위협을 널리 알리며 반핵활동을 독려하려는 프로젝트에 앞장서고 있다. 자신의 표현 그대로 그는 “핵의 위험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사실상 불가능한 추구일 수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핵의 벼랑 끝에서 여전히 나의 길을 가고 있다”.(351면) 핵이 지구상에 나타난 때에 태어나 그 위협을 알리는 데에 평생을 바쳐온 한 전략가의 꿈이 이뤄지길 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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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감사의 글
주요 약어
1 쿠바 미사일 위기 핵악몽
2 하늘 높이 솟구친 화염
3 소련 미사일 위기의 부상과 그에 대한 정보수집 경쟁
4 최초의 씰리콘밸리 기업가와 첩보기술의 발전
5 복무 명령
6 상쇄전략의 실행과 스텔스 기술의 출현
7 미 핵무기의 증강
8 핵경보, 군축, 그리고 놓쳐버린 비확산의 기회
9 외교관으로서의 차관
10 다시 민간인의 삶으로 냉전은 끝났지만 핵을 둘러싼 여정은 계속된다
11 다시 워싱턴으로 ‘유출된 핵무기’라는 새로운 도전과 휘청거리는 방위사업 개혁
12 국방장관이 되다
13 핵무기의 해체와 넌-루거 프로그램의 맥 잇기
14 북한 핵위기 새로 부상하는 핵보유국 저지하기
15 START II의 비준과 핵실험금지조약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
16 나토와 보스니아의 평화유지 작전, 그리고 러시아와의 안보유대관계 생성
17 “오점 없이 완벽한” 아이티 침공작전과 서반구 안보를 위한 연대구축
18 군사역량과 삶의 질 간의 ‘철의 논리
19 무기여 잘 있거라
20 러시아와의 안보유대관계의 단절
21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란과 공통기반 찾기
22 대북정책 심사 승리와 비극
23 이라크에서의 대실책 그때와 지금
24 핵안보 프로젝트 예전의 ‘냉전 전사들’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다
25 앞으로 전진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옮긴이 후기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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