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10
한국현대사. 2: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
- 발행사항
- 서울 : 푸른역사, 2018
- 형태사항
- 511 p. : 삽화, 사진 ; 22 cm
- 총서사항
-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 ISBN
- 9791156121206 9791156120438
- 청구기호
- 911.07 한44ㅎ
- 서지주기
- 참고문헌, 연표 및 색인수록(480~511 p.)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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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6747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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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16747
-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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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자료실
책 소개
현재와 과거가 소통하는 역사서를 꿈꾸며,
역사를 읽는 또 다른 창窓을 열다!
과학적․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해 현재 7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하게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회로 자리매김한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의 대중화에 새 지평을 연 푸른역사가 함께 펴낸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가 《한국현대사》(전2권)를 끝으로 완간되었다. 역사학계의 중진 학자들이 참여해 총 10권(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각 2권)으로 완간 예정이었던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지난 2015년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출간으로 첫걸음을 뗀 후 이번에 선보이는 《한국현대사 1—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과 《한국현대사 2—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 출간으로 전10권 완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전 시대 전 분야를 망라해서 서술하는 대신, 시대별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주제를 선정해 그동안 축적돼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 정리해 깊이 있는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소통하는 역사를 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의 편찬 작업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편찬위원회’를 구성, 집필 원칙과 편찬 일정을 정하고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각 시대별로 팀을 만들어 기획안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필자를 선정해 집필에 들어갔다. 60명에 가까운 필자들이 참가해 공동 작업으로 10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다양한 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으는 작업부터 완성된 원고들을 팀별로 수차례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돌아보게도 한다. 과거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상징하듯이 세계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체제와 이념의 대립보다는 화해와 교류의 방향으로 나가며 21세기를 맞이했다. 한반도도 1998년 ‘현대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이 화해와 교류․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21세기도 18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미국과 알카에다 등 이슬람 진영의 대립,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국가의 등장 등 중동 내부의 갈등과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등이 계속되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도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념 대립보다는 종교․문명 대립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지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 세대와 계층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와 정치 사회적 부패의 사슬에 의해 일상생활의 안전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250명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이 죽은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전과 복지도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 정의는 실종하고 신뢰와 희망 대신 불신과 체념만이 가득 찬 사회에서 과연 역사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한국 역사의 체계화와 소통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이를 이루기 위해 역사를 부단히 새로 써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조망했다.
대전환의 시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분단, 대결 극복의 역사를 살피다
한반도에서 대전환의 역사가 전개되기 시작됐다. 대전환의 서막은 2016년 10월 점화된 ‘촛불항쟁’이었다. 2만 명에서 시작했던 촛불집회 참가자는 2017년 3월 10일 20차 집회까지 누적 기준으로 1600만 명을 돌파했다. 촛불집회는 장기간 이어진 대규모 집회임에도 단 한 건의 폭력사태도 일어나지 않는 등 유례없는 비폭력․평화집회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마침내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확정했다. 현직 대통령 파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최초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촛불항쟁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등장했고, ‘촛불항쟁’의 거대한 파도는 곧바로 평화와 통일문제로 흐름이 이어졌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은 역사의 대전환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책이 남과 북의 현대사 흐름을 민주주의 발전과 분단, 대결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계 각 분야의 권위자 13인이,
해방, 분단, 전쟁, 경제성장, 민주주의의 틀로 바라본 한국현대사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시기(1권, 정병준․정용욱․김광운․정창현․안김정애․기광서․정진아․김보영․노영기․김수자․양영조)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 시기(2권, 홍석률․박태균․정창현)로 나누어 살핀다.
먼저 한국현대사의 첫 시기는 광복(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의 8년사로 현대사를 압도적으로 규정하는 분단이 형성되고 고착화된 때다. 이 시기는 해방된 후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진주한 국제적 규정력 속에서 자주적으로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하려고 시도했으나 남북분단으로 귀결되고, 남북분단이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희망과 좌절의 시기였다.
두 번째 시기는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로 변화돼 성장, 발전, 변화의 길을 걸은 때다. 전쟁을 거친 후 평화나 통일이 아닌 대결과 체제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회구조를 형성했다. 남한에서는 1인 독재와 군사독재가 장기간 유지되는 가운데 1960년의 4월혁명, 1964년 6․3항쟁, 1970~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대중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고, 2017년의 촛불항쟁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장기집권체제가 이어지면서 국제정세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고, 1990년대에 들어와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후 개발과 개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남과 북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6․15공동선언을 발표하고, 2007년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 10․4선언에 합의해 화해와 협력 단계로 들어섰고, 이후 다시 나타난 10여 년의 남북 간 대결 시대를 극복하면서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한국현대사 2─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의 구성과 내용
《한국현대사 2─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에서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승만 정권과 4월혁명, 박정희 정부 수립과 유신체제,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6월 민주항쟁,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등 민간정부의 수립과 개혁, 전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김정은체제의 등장,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한 세계사적 냉전의 종식과 한국현대사의 대전환을 촘촘하게 개괄한다.
〈이승만 정권과 4월혁명〉에서는 이승만 정권 하의 정치와 미국 원조 중심의 한국 경제를 살펴보고, 4월혁명의 발발과 전개 과정,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4월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이 항쟁의 시작부터 주장된 것은 아니다. 학생과 시민의 민주항쟁 과정에서 “이승만 물러가라”는 구호가 처음 나온 것은 1960년 4월 11일 제2차 마산봉기 때부터였다. 그러나 이는 시위대 일부가 특정한 국면에서 외친 구호였지 대다수의 시위대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외치는 구호는 아니었다. 대규모 시위 및 희생자가 발생한 1960년 4월 19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4․19 봉기의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이승만 퇴진 구호를 외쳤지만 이러한 구호는 1987년 6월항쟁 때 외쳐진 “호헌철폐”, “직선쟁취” 같이 대부분의 시위대가 공유하면서 반복적으로 외쳐지며 항쟁의 목표를 집약해주는 구호는 아니었다. 당시 학생들이 경무대로 간 것도 여러 정황을 볼 때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항의하고 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경무대 앞에서 시위대에 총을 쏘았고,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민주항쟁은 부정선거 문제보다는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정부와 집권자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4월 25일부터 민주항쟁은 정권타도운동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25일 오후 서울에서는 교수단이 대통령의 퇴진 요구가 포함된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전개했다. 마침내 4월 26일 오전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가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주항쟁이 정권퇴진운동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승만 퇴진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박정희 정부 수립과 유신체제〉는 5․16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의 수립, 한일 국교 정상화와 수출주도성장, 3선개헌과 유신체제, 민주화운동의 성장과 유신체제의 붕괴 등 박정희 정부 하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개괄한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5기 졸업생, 8기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들은 이미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부터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으며, 1961년에 들어서 사회단체, 학생단체들의 민주당 정부에 대한 항의와 통일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전개되던 시기, 사회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군복을 벗고 선거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와 경제 건설을 국가의 목표로 설정하고 산업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베트남전쟁에 파병하는 등 경제 개발과 안보 협력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러나 3선개헌과 유신체제 수립을 통해 장기집권을 시도한 박정희 정권은 학생과 교수, 언론인과 종교인, 노동자와 농민 등 각계각층의 민주화운동에 부딪혔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 저격이라는 10․26사건을 통해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6월 민주항쟁〉에서는 군부의 재집권과 5․18광주민주항쟁, 전두환 정권기의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의 성장, 노태우 정권과 북방 정책 등을 살핀다. 1979년 10․26사건으로 유신정권은 무너졌으나, 12․12를 통해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짓밟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5공 정권은 정당성과 도덕성의 부재로 집권기간 내내 민주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시달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12월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정권 교체는 실패했고,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킬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민간정부의 수립과 개혁〉은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금융위기, 김대중 정부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와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정부의 개혁과 한계, 이명박 정부 수립과 보수의 화려한 복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등 민간정부 등장과 교체 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1992년 30년간의 군부통치를 끝내고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김영삼 정권은 공직자 재산공개, 지방자치제 실시, 금융실명제 실시, 군 개혁과 교육․사법 개혁 등 개혁적 성과를 적지 않게 남겼다. 김영삼 정부는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결말은 참담했다. 1997년 말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는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으로서 국민과 나라에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과정은 순항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기간 후퇴를 거듭했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컸지만 김종필의 자민련과의 연합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신뢰 형성에 성공했고, 그를 바탕으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 ‘검란檢亂’과 대북송금 특검 등의 문제를 탈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며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으나 정치적 주도권 상실과 지지기반 약화는 보수세력에 의한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소통부재와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급기야 광우병 소고기 수입 파동으로 대규모 촛불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 이명박 정부의 지원과 영남패권주의에 힘입어 정권을 장악한 박근혜 정부 또한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극우 보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집권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을 탄생시켰지만, 진정으로 ‘잃어버린 10년’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집권 기간이 되었다. 결국 2016년 10월부터 본격화된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고, 새로운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전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김정은체제의 등장〉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 1960~7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 유일사상체제 확립, 1970년대 후계체제 수립과 수령제 정치체제 완성, 김정일시대 북한의 노선과 김정은체제의 성립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핀다. 3년간의 전쟁을 겪으면서 북한 전역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북한은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노선’에 따라 전후 복구에 나섰고, 1960년대까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농업협동화가 완료되면서 사회주의 제도가 확립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박헌영 중심의 일부 남로당세력과 최창익 중심의 연안파세력이 숙청되면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항일빨치산’ 세력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고, 1972년 사회주의헌법 채택과 함께 김일성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었다. 이와 함께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고, 1980년 제6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2세대’들이 정권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내부 생산력 저하, 계속된 자연재해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었고, 이후 선군정치와 우리식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내세우며 사회주의체제 고수에 주력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정은체제가 출범했고, 김정은시대 북한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후 한반도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한편, 경제운영 방식을 개혁하고 적극적으로 대외 개방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사적 냉전의 종식과 한국현대사의 대전환〉은 촛불항쟁에서 시작된 대전환의 과정, ‘4․27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의미, 한반도 비핵화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첫 북미정상회담의 의의를 살피고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전망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잃어버린 11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역주행을 했다. 사실상 남북관계나 ‘통일담론’은 1980년대 이전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2016년 말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의 거대한 민주화의 파도는 곧바로 평화와 통일 문제의 진전으로 이어졌다. 남과 북은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선언’(판문점선언)에 합의했고, 6월 12월 북한과 미국은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남과 북,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관계를 강조했다. 해방 후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가르고, 70년 넘게 분단을 유지시킨 냉전과 정전체제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현대사 대전환의 서막이 올랐다.
역사를 읽는 또 다른 창窓을 열다!
과학적․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해 현재 7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하게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회로 자리매김한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의 대중화에 새 지평을 연 푸른역사가 함께 펴낸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가 《한국현대사》(전2권)를 끝으로 완간되었다. 역사학계의 중진 학자들이 참여해 총 10권(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각 2권)으로 완간 예정이었던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지난 2015년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출간으로 첫걸음을 뗀 후 이번에 선보이는 《한국현대사 1—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과 《한국현대사 2—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 출간으로 전10권 완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전 시대 전 분야를 망라해서 서술하는 대신, 시대별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주제를 선정해 그동안 축적돼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 정리해 깊이 있는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소통하는 역사를 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의 편찬 작업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편찬위원회’를 구성, 집필 원칙과 편찬 일정을 정하고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각 시대별로 팀을 만들어 기획안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필자를 선정해 집필에 들어갔다. 60명에 가까운 필자들이 참가해 공동 작업으로 10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다양한 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으는 작업부터 완성된 원고들을 팀별로 수차례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돌아보게도 한다. 과거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상징하듯이 세계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체제와 이념의 대립보다는 화해와 교류의 방향으로 나가며 21세기를 맞이했다. 한반도도 1998년 ‘현대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이 화해와 교류․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21세기도 18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미국과 알카에다 등 이슬람 진영의 대립,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국가의 등장 등 중동 내부의 갈등과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등이 계속되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도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념 대립보다는 종교․문명 대립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지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 세대와 계층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와 정치 사회적 부패의 사슬에 의해 일상생활의 안전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250명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이 죽은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전과 복지도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 정의는 실종하고 신뢰와 희망 대신 불신과 체념만이 가득 찬 사회에서 과연 역사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한국 역사의 체계화와 소통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이를 이루기 위해 역사를 부단히 새로 써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조망했다.
대전환의 시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분단, 대결 극복의 역사를 살피다
한반도에서 대전환의 역사가 전개되기 시작됐다. 대전환의 서막은 2016년 10월 점화된 ‘촛불항쟁’이었다. 2만 명에서 시작했던 촛불집회 참가자는 2017년 3월 10일 20차 집회까지 누적 기준으로 1600만 명을 돌파했다. 촛불집회는 장기간 이어진 대규모 집회임에도 단 한 건의 폭력사태도 일어나지 않는 등 유례없는 비폭력․평화집회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마침내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확정했다. 현직 대통령 파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최초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촛불항쟁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등장했고, ‘촛불항쟁’의 거대한 파도는 곧바로 평화와 통일문제로 흐름이 이어졌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은 역사의 대전환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책이 남과 북의 현대사 흐름을 민주주의 발전과 분단, 대결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계 각 분야의 권위자 13인이,
해방, 분단, 전쟁, 경제성장, 민주주의의 틀로 바라본 한국현대사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시기(1권, 정병준․정용욱․김광운․정창현․안김정애․기광서․정진아․김보영․노영기․김수자․양영조)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 시기(2권, 홍석률․박태균․정창현)로 나누어 살핀다.
먼저 한국현대사의 첫 시기는 광복(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의 8년사로 현대사를 압도적으로 규정하는 분단이 형성되고 고착화된 때다. 이 시기는 해방된 후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진주한 국제적 규정력 속에서 자주적으로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하려고 시도했으나 남북분단으로 귀결되고, 남북분단이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희망과 좌절의 시기였다.
두 번째 시기는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로 변화돼 성장, 발전, 변화의 길을 걸은 때다. 전쟁을 거친 후 평화나 통일이 아닌 대결과 체제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회구조를 형성했다. 남한에서는 1인 독재와 군사독재가 장기간 유지되는 가운데 1960년의 4월혁명, 1964년 6․3항쟁, 1970~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대중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고, 2017년의 촛불항쟁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장기집권체제가 이어지면서 국제정세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고, 1990년대에 들어와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후 개발과 개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남과 북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6․15공동선언을 발표하고, 2007년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 10․4선언에 합의해 화해와 협력 단계로 들어섰고, 이후 다시 나타난 10여 년의 남북 간 대결 시대를 극복하면서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한국현대사 2─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의 구성과 내용
《한국현대사 2─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의 과제》에서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승만 정권과 4월혁명, 박정희 정부 수립과 유신체제,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6월 민주항쟁,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등 민간정부의 수립과 개혁, 전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김정은체제의 등장,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한 세계사적 냉전의 종식과 한국현대사의 대전환을 촘촘하게 개괄한다.
〈이승만 정권과 4월혁명〉에서는 이승만 정권 하의 정치와 미국 원조 중심의 한국 경제를 살펴보고, 4월혁명의 발발과 전개 과정,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4월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이 항쟁의 시작부터 주장된 것은 아니다. 학생과 시민의 민주항쟁 과정에서 “이승만 물러가라”는 구호가 처음 나온 것은 1960년 4월 11일 제2차 마산봉기 때부터였다. 그러나 이는 시위대 일부가 특정한 국면에서 외친 구호였지 대다수의 시위대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외치는 구호는 아니었다. 대규모 시위 및 희생자가 발생한 1960년 4월 19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4․19 봉기의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이승만 퇴진 구호를 외쳤지만 이러한 구호는 1987년 6월항쟁 때 외쳐진 “호헌철폐”, “직선쟁취” 같이 대부분의 시위대가 공유하면서 반복적으로 외쳐지며 항쟁의 목표를 집약해주는 구호는 아니었다. 당시 학생들이 경무대로 간 것도 여러 정황을 볼 때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항의하고 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경무대 앞에서 시위대에 총을 쏘았고,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민주항쟁은 부정선거 문제보다는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정부와 집권자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4월 25일부터 민주항쟁은 정권타도운동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25일 오후 서울에서는 교수단이 대통령의 퇴진 요구가 포함된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전개했다. 마침내 4월 26일 오전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가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주항쟁이 정권퇴진운동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승만 퇴진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박정희 정부 수립과 유신체제〉는 5․16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의 수립, 한일 국교 정상화와 수출주도성장, 3선개헌과 유신체제, 민주화운동의 성장과 유신체제의 붕괴 등 박정희 정부 하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개괄한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5기 졸업생, 8기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들은 이미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부터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으며, 1961년에 들어서 사회단체, 학생단체들의 민주당 정부에 대한 항의와 통일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전개되던 시기, 사회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군복을 벗고 선거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와 경제 건설을 국가의 목표로 설정하고 산업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베트남전쟁에 파병하는 등 경제 개발과 안보 협력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러나 3선개헌과 유신체제 수립을 통해 장기집권을 시도한 박정희 정권은 학생과 교수, 언론인과 종교인, 노동자와 농민 등 각계각층의 민주화운동에 부딪혔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 저격이라는 10․26사건을 통해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6월 민주항쟁〉에서는 군부의 재집권과 5․18광주민주항쟁, 전두환 정권기의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의 성장, 노태우 정권과 북방 정책 등을 살핀다. 1979년 10․26사건으로 유신정권은 무너졌으나, 12․12를 통해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짓밟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5공 정권은 정당성과 도덕성의 부재로 집권기간 내내 민주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시달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12월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정권 교체는 실패했고,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킬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민간정부의 수립과 개혁〉은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금융위기, 김대중 정부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와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정부의 개혁과 한계, 이명박 정부 수립과 보수의 화려한 복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등 민간정부 등장과 교체 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1992년 30년간의 군부통치를 끝내고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김영삼 정권은 공직자 재산공개, 지방자치제 실시, 금융실명제 실시, 군 개혁과 교육․사법 개혁 등 개혁적 성과를 적지 않게 남겼다. 김영삼 정부는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결말은 참담했다. 1997년 말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는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으로서 국민과 나라에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과정은 순항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기간 후퇴를 거듭했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컸지만 김종필의 자민련과의 연합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신뢰 형성에 성공했고, 그를 바탕으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 ‘검란檢亂’과 대북송금 특검 등의 문제를 탈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며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으나 정치적 주도권 상실과 지지기반 약화는 보수세력에 의한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소통부재와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급기야 광우병 소고기 수입 파동으로 대규모 촛불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 이명박 정부의 지원과 영남패권주의에 힘입어 정권을 장악한 박근혜 정부 또한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극우 보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집권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을 탄생시켰지만, 진정으로 ‘잃어버린 10년’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집권 기간이 되었다. 결국 2016년 10월부터 본격화된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고, 새로운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전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김정은체제의 등장〉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 1960~7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 유일사상체제 확립, 1970년대 후계체제 수립과 수령제 정치체제 완성, 김정일시대 북한의 노선과 김정은체제의 성립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핀다. 3년간의 전쟁을 겪으면서 북한 전역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북한은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노선’에 따라 전후 복구에 나섰고, 1960년대까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농업협동화가 완료되면서 사회주의 제도가 확립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박헌영 중심의 일부 남로당세력과 최창익 중심의 연안파세력이 숙청되면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항일빨치산’ 세력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고, 1972년 사회주의헌법 채택과 함께 김일성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었다. 이와 함께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고, 1980년 제6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2세대’들이 정권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내부 생산력 저하, 계속된 자연재해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었고, 이후 선군정치와 우리식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내세우며 사회주의체제 고수에 주력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정은체제가 출범했고, 김정은시대 북한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후 한반도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한편, 경제운영 방식을 개혁하고 적극적으로 대외 개방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사적 냉전의 종식과 한국현대사의 대전환〉은 촛불항쟁에서 시작된 대전환의 과정, ‘4․27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의미, 한반도 비핵화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첫 북미정상회담의 의의를 살피고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전망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잃어버린 11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역주행을 했다. 사실상 남북관계나 ‘통일담론’은 1980년대 이전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2016년 말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의 거대한 민주화의 파도는 곧바로 평화와 통일 문제의 진전으로 이어졌다. 남과 북은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선언’(판문점선언)에 합의했고, 6월 12월 북한과 미국은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남과 북,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관계를 강조했다. 해방 후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가르고, 70년 넘게 분단을 유지시킨 냉전과 정전체제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현대사 대전환의 서막이 올랐다.
목차
이승만 정권과 4월혁명
이승만 정권 하의 정치|1950년대 한국경제와 미국의 대한 원조|4월혁명과 장면 정권
박정희 정부 수립과 유신체제
5․16군사정변과 군정|한일 국교 정상화와 근대화론|수출입국론과 3선개헌|유신체제|민주화운동의 성장과 유신체제의 붕괴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6월 민주항쟁
군부의 재집권과 5․18광주민주항쟁|전두환 정권기 한국 사회|민주화운동의 성장|노태우 정권과 북방 정책
민간정부의 수립과 개혁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남북관계의 경색, 그리고 금융위기|첫 평화적 정권 교체와 남북정상회담|좌측 신호등 켜고 우회전한 정권|또 한 번의 정권 교체, 보수의 화려한 복귀|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김정은체제의 등장
한국전쟁 이후 정치갈등과 사회주의 이행|1960~7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 유일사상체제 확립|1970년대 후계체제 수립과 수령제 정치체제의 완성|김정일시대 북한의 노선과 김정은체제의 성립
세계사적 냉전의 종식과 한국현대사의 대전환
대전환의 시작|‘4․27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의미|첫 북미정상회담, 새로운 관계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의 첫걸음|평화체제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