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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11-2012년 한국 정치: SNS 정치의 부상과 정당정치의 위기
2011-2012년 한국 정치를 요약하면, SNS를 통해 새로운 정치 참여의 장이 크게 열리고, 그에 따라 정당정치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국민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평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이라는 '규모의 제약'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면서 정치 참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아테네의 '광장 정치'를 넘어서 'SNS 정치'가 새롭게 등장했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일어난 것은 한국의 소통하지 않는 집권층이, 정치인이, 기존 정당이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리하지도, 대표하지도 그리고 제대로 심의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기성 정당을 불신하고, 정당정치를 회의하는 국민의 힘에 화들짝 놀라 정치권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재창당을 언급하고, 야당은 시민사회, 노동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진보 진영도 여러 세력이 참여하는 신당을 만들었다). 아직 그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당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 『왜 대의민주주의인가』는 심의와 참여, 대표와 대리, 대의성 등 대의민주주의의 철학적 의의, 역사적 기원, 대의제 정치사상 등을 살펴봄으로써 토론과 숙의가 깊어지고 참여가 넘쳐나는 SNS 정치 시대의 대의민주주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참된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기득권 엘리트 계층의 위계(僞計)에 따른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가장 좋은 정치체제로 손꼽는다. 평등한 정치 참여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향수가 깊어가면서 대의민주주의를 마땅찮은 계륵(鷄肋)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은 무지의 발로이거나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거부하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둘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뺀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물리적 이유에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의제와 민주주의는 서로 모순적이지 않으며, 대의제가 오히려 민주적 참여를 확대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자들도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의 실패', '심의의 실패' 앞에서는 고민이 깊다. 한국 정치를 보라. 대표도 심의도 모두 꿈같은 이야기이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왜 대의민주주의인가』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정치철학적 성찰의 결과이다. 이 책에서 논구하는 고민은 대의민주주의자들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면 민주주의도 문을 닫아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대의제'라는 비민주적 실제와 결합시킴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와 차원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다.
대의제가 정치 현실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 '민주주의'라는 말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고 있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민주주의가 '너무 무질서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며, 거칠기 이를 데 없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인간 사회에서 향유하기에는 너무 '비인간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문명의 발전, 특히 대의제의 발견을 통해 그런 저급 단계를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국혁명은 물론 미국혁명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거나 기피되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와 현실적 힘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과 함께였다. 프랑스혁명 시기 민주주의는 인민의 정치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뜻하였다. 이에 대해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들은 대의제라는 개념을 통해 인민의 민주주의적 운동을 제어, 포섭하려 했다. 그 결과가 대의민주주의이다. 흔히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대립시키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 대립의 구도는 '대의제와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그후 근대적 의미의 대의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대의민주주의의 포부
'대의제'란 "대표가 인민의 의사를 대신 표출하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공적 행위를 수행하는 통치 형태"를 가리킨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제를 "전 인민 또는 그들 중 다수가 주기적 선거를 통해 자신들이 뽑은 대표를 통해 최고 권력을 완벽하게 보유, 행사하는 정부 형태"라고 규정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대의제를 '시대의 산물'로 생각한다. 오늘날 정치체제가 너무 커져서, 그리고 정치 구성원 사이에 동질성을 확보할 수 없어서,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 대신 차선책으로 대의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규모의 제약'을 가장 먼저 피력한 사람이 루소였다. 루소는 직접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했다. 아테네식의 민주주의는 제네바와 같은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규모의 제약'을 가지고 있는 근대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민주주의라고 본 것이다.
규모의 제약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하나의 상식처럼 퍼져 있지만, 대의민주주의자들은 단순한 물리적 이유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 적합한 '완전한 정부의 이상적인 형태'인 까닭에 대의제를 주창했다. 그들은 두 가지 쟁점을 부각시킨다. 첫째,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대표다. 유권자의 뜻을 복창하는 '대리'가 아니라 독자적 판단 능력을 가지는 '대표'가 대의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둘째, 공공선에 관한 심의(審議)를 잘할 수 있는 '탁월하고 독자적인' 대표다. 한마디로 심의가 대의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에예스는 통치도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지를 잘 해석해내고 일반이익을 잘 인식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지명하는 것이 대의제의 관건이라고 보고, 존 스튜어트 밀은 '전문성'이라는 변수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매디슨은 대표가 인민 자신들보다 공공의 이익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대리인인가, 수탁자인가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을까? 대표는 유권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최선의 것을 추구해야 하는가? 국민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대리인(delegate)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때로 그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불사하는 수탁자(受託者, trustee)여야 하는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불신하는 사람들, 특히 대의정치가 대중의 정치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기제로 고안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대리인 개념을 선호한다. 반면에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상당수 이론가는 자율권을 가진 수탁자 쪽으로 기운다. 대의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표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심의하는 권한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국민의 뜻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대리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버크는 의원이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불편부당한 의견, 성숙한 판단, 양심에 따른 지혜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수탁자론'을 개진한 대표적 이론가이지만, 이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았다. "대의 정부에서 의회의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에 관해 상반된 두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으며 양쪽 모두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에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여전히 '대표의 위기'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심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자들(예를 들어 루소)은 대표가 대리 그 이상도,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대의민주주의자들(특히 밀)은 대표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대의제는 본래 인민을 대표해서 정치 의사를 결정하는 심의 체제로 구상된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이 대리론으로 기울면서 의회를 선호 집합적 정치 기제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의정치의 심의성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것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 심의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런 측면에서 심의민주주의의 대두를 환영해야 하는 것이다.
밀은 누구보다도 대의제의 심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대의제가 심의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전도사가 되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자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밀은 직접민주주의의 부작용을 염려했다. 밀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생각과 취향이 서로 다르다. 인간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모여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게 되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지배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는 이를 방지할 수 있다. 사람들의 성정과 이익이 서로 다르다 보니 생각과 의견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의 충돌은 이익의 대립과 달리 언제나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가 좋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인민이 정부 일을 직접 담당하기보다 통제, 특히 심의하는 것을 주로 한다. 의회는 "모든 이해관계와 생각이 허심탄회하게 검토되고 논의되는 곳"이다. 밀의 기대대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심의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일정 수준에서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직 이런 민주주의만이 평등하고 공정하며 모든 사람이 지배하는 모든 사람의 정부,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흔히 대의민주제가 대중의 직접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시민이 심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반복된 토론을 통해 대중의 심의 능력을 키움으로써 오히려 민주적 요소가 더 강화된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과제
슈미트는 의회가 '국민대표'이면서 동시에 부분이익의 대리자로도 행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의회는 유권자 국민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이해 당사자인 유권자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기도 한 이중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는 대표하지 않고는 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통일성을 대표하지 않고서는 개별적인 부분이익을 조정할 수 없으며, 개별 이익의 조정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통일성을 넘어설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대표가 대리의 전제라는 것인데, 정치 공동체의 통일성과 전체이익의 대표라는 대의제 고유의 과제를 재확인하게 된다.
흔히 대의민주주의가 '대표의 실패'로 말미암아 위기에 몰려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오히려 '심의의 실패'를 더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원래 공화주의적인 심의성을 목표로 구상된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대리'선에서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대표의 실패는 본질적으로 심의 기능의 실패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대표의 역할, 특히 심의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이렇게 오늘날 대의민주주의가 '대표의 실패'와 '심의의 실패'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대표와 대리의 절묘한 배합,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심의의 공간을 확대해나감으로써 민주주의의 내재적 가능성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 과제 앞에는 직접민주주의자, 대의민주주의자 구별이 있을 수 없다.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일만 생기면 지역구로 쫓아간다. 민심을 의사당 안으로 '그대로' 옮기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 '유권자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곧 훌륭한 선량(選良)의 제1요건이라고 여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를 마땅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리 기능의 부족을 집중 성토한다. 국민의 대표가 대표 노릇을 하려 드는 것이 '대표의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이라면 나라 전체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인이 국민을 '거역'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은 어떤가?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본다.
먼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위임의 원리를 떠받치는 전체 대표성이 필수적이지만, 한국 정치는 '국민대표성'이 점차 '지역대표성'에 의하여 왜곡되거나 심지어 상당 부분 대체되어가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다음으로 대표 개념의 형성과 대표 기관의 권한 획득 과정을 고려할 때 한국 의회가 대표 권한을 인정받고 보유하는 길은 쉽지 않다고 본다. 여러 여건상 국민은 의회를 대표 기관으로 보지 않으며, 의회 스스로도 정부와 법원에 앞서서 대한민국의 정치적 통일성을 대표한다는 대표 의식이 없는 것이다. 입법부가 입법권의 관철을 통해 집행권과 판결권에 대해 정치 공동체의 통일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부분이익의 조정과 합의라는 대리 역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대표의 위기와 연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바 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정치는, 첫째 보수정당 중심의 협소한 대표 체계가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대표되지 못하는 정당정치의 위기, 둘째 다문화의 위기, 셋째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에서 보이는 낮은 정치 참여의 위기로 인해 대표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의 문제를 둘러싼 위기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연대의 위기를 불러오고, 연대의 위기는 다시 대표의 위기를 악화시킨다. 한국 정치는 경직된 다수제 민주주의를 넘어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가야 대표의 위기와 연대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
※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정치사상총서>의 첫 번째 책, 『인권의 정치사상』(김비환 외 지음)에 이은 두 번째 책입니다. 『인권의 정치사상』은 '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와 '2011 올해의 인권 책'(한국인권재단)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2년에는 <정치사상총서>의 세 번째 책과 네 번째 책으로 『민의와 의론의 정치사상』(가제)과 『보수주의』(가제)를 출간할 계획입니다.
2011-2012년 한국 정치를 요약하면, SNS를 통해 새로운 정치 참여의 장이 크게 열리고, 그에 따라 정당정치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국민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평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이라는 '규모의 제약'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면서 정치 참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아테네의 '광장 정치'를 넘어서 'SNS 정치'가 새롭게 등장했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일어난 것은 한국의 소통하지 않는 집권층이, 정치인이, 기존 정당이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리하지도, 대표하지도 그리고 제대로 심의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기성 정당을 불신하고, 정당정치를 회의하는 국민의 힘에 화들짝 놀라 정치권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재창당을 언급하고, 야당은 시민사회, 노동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진보 진영도 여러 세력이 참여하는 신당을 만들었다). 아직 그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당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 『왜 대의민주주의인가』는 심의와 참여, 대표와 대리, 대의성 등 대의민주주의의 철학적 의의, 역사적 기원, 대의제 정치사상 등을 살펴봄으로써 토론과 숙의가 깊어지고 참여가 넘쳐나는 SNS 정치 시대의 대의민주주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참된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기득권 엘리트 계층의 위계(僞計)에 따른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가장 좋은 정치체제로 손꼽는다. 평등한 정치 참여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향수가 깊어가면서 대의민주주의를 마땅찮은 계륵(鷄肋)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은 무지의 발로이거나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거부하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둘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뺀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물리적 이유에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의제와 민주주의는 서로 모순적이지 않으며, 대의제가 오히려 민주적 참여를 확대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자들도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의 실패', '심의의 실패' 앞에서는 고민이 깊다. 한국 정치를 보라. 대표도 심의도 모두 꿈같은 이야기이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왜 대의민주주의인가』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정치철학적 성찰의 결과이다. 이 책에서 논구하는 고민은 대의민주주의자들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면 민주주의도 문을 닫아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대의제'라는 비민주적 실제와 결합시킴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와 차원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다.
대의제가 정치 현실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 '민주주의'라는 말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고 있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민주주의가 '너무 무질서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며, 거칠기 이를 데 없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인간 사회에서 향유하기에는 너무 '비인간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문명의 발전, 특히 대의제의 발견을 통해 그런 저급 단계를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국혁명은 물론 미국혁명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거나 기피되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와 현실적 힘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과 함께였다. 프랑스혁명 시기 민주주의는 인민의 정치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뜻하였다. 이에 대해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들은 대의제라는 개념을 통해 인민의 민주주의적 운동을 제어, 포섭하려 했다. 그 결과가 대의민주주의이다. 흔히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대립시키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 대립의 구도는 '대의제와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그후 근대적 의미의 대의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대의민주주의의 포부
'대의제'란 "대표가 인민의 의사를 대신 표출하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공적 행위를 수행하는 통치 형태"를 가리킨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제를 "전 인민 또는 그들 중 다수가 주기적 선거를 통해 자신들이 뽑은 대표를 통해 최고 권력을 완벽하게 보유, 행사하는 정부 형태"라고 규정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대의제를 '시대의 산물'로 생각한다. 오늘날 정치체제가 너무 커져서, 그리고 정치 구성원 사이에 동질성을 확보할 수 없어서,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 대신 차선책으로 대의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규모의 제약'을 가장 먼저 피력한 사람이 루소였다. 루소는 직접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했다. 아테네식의 민주주의는 제네바와 같은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규모의 제약'을 가지고 있는 근대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민주주의라고 본 것이다.
규모의 제약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하나의 상식처럼 퍼져 있지만, 대의민주주의자들은 단순한 물리적 이유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 적합한 '완전한 정부의 이상적인 형태'인 까닭에 대의제를 주창했다. 그들은 두 가지 쟁점을 부각시킨다. 첫째,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대표다. 유권자의 뜻을 복창하는 '대리'가 아니라 독자적 판단 능력을 가지는 '대표'가 대의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둘째, 공공선에 관한 심의(審議)를 잘할 수 있는 '탁월하고 독자적인' 대표다. 한마디로 심의가 대의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에예스는 통치도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지를 잘 해석해내고 일반이익을 잘 인식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지명하는 것이 대의제의 관건이라고 보고, 존 스튜어트 밀은 '전문성'이라는 변수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매디슨은 대표가 인민 자신들보다 공공의 이익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대리인인가, 수탁자인가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을까? 대표는 유권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최선의 것을 추구해야 하는가? 국민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대리인(delegate)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때로 그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불사하는 수탁자(受託者, trustee)여야 하는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불신하는 사람들, 특히 대의정치가 대중의 정치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기제로 고안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대리인 개념을 선호한다. 반면에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상당수 이론가는 자율권을 가진 수탁자 쪽으로 기운다. 대의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표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심의하는 권한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국민의 뜻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대리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버크는 의원이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불편부당한 의견, 성숙한 판단, 양심에 따른 지혜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수탁자론'을 개진한 대표적 이론가이지만, 이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았다. "대의 정부에서 의회의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에 관해 상반된 두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으며 양쪽 모두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에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여전히 '대표의 위기'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심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자들(예를 들어 루소)은 대표가 대리 그 이상도,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대의민주주의자들(특히 밀)은 대표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대의제는 본래 인민을 대표해서 정치 의사를 결정하는 심의 체제로 구상된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이 대리론으로 기울면서 의회를 선호 집합적 정치 기제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의정치의 심의성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것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 심의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런 측면에서 심의민주주의의 대두를 환영해야 하는 것이다.
밀은 누구보다도 대의제의 심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대의제가 심의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전도사가 되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자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밀은 직접민주주의의 부작용을 염려했다. 밀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생각과 취향이 서로 다르다. 인간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모여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게 되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지배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는 이를 방지할 수 있다. 사람들의 성정과 이익이 서로 다르다 보니 생각과 의견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의 충돌은 이익의 대립과 달리 언제나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가 좋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인민이 정부 일을 직접 담당하기보다 통제, 특히 심의하는 것을 주로 한다. 의회는 "모든 이해관계와 생각이 허심탄회하게 검토되고 논의되는 곳"이다. 밀의 기대대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심의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일정 수준에서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직 이런 민주주의만이 평등하고 공정하며 모든 사람이 지배하는 모든 사람의 정부,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흔히 대의민주제가 대중의 직접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시민이 심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반복된 토론을 통해 대중의 심의 능력을 키움으로써 오히려 민주적 요소가 더 강화된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과제
슈미트는 의회가 '국민대표'이면서 동시에 부분이익의 대리자로도 행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의회는 유권자 국민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이해 당사자인 유권자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기도 한 이중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는 대표하지 않고는 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통일성을 대표하지 않고서는 개별적인 부분이익을 조정할 수 없으며, 개별 이익의 조정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통일성을 넘어설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대표가 대리의 전제라는 것인데, 정치 공동체의 통일성과 전체이익의 대표라는 대의제 고유의 과제를 재확인하게 된다.
흔히 대의민주주의가 '대표의 실패'로 말미암아 위기에 몰려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오히려 '심의의 실패'를 더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원래 공화주의적인 심의성을 목표로 구상된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대리'선에서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대표의 실패는 본질적으로 심의 기능의 실패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대표의 역할, 특히 심의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이렇게 오늘날 대의민주주의가 '대표의 실패'와 '심의의 실패'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대표와 대리의 절묘한 배합,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심의의 공간을 확대해나감으로써 민주주의의 내재적 가능성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 과제 앞에는 직접민주주의자, 대의민주주의자 구별이 있을 수 없다.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일만 생기면 지역구로 쫓아간다. 민심을 의사당 안으로 '그대로' 옮기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 '유권자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곧 훌륭한 선량(選良)의 제1요건이라고 여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를 마땅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리 기능의 부족을 집중 성토한다. 국민의 대표가 대표 노릇을 하려 드는 것이 '대표의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이라면 나라 전체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인이 국민을 '거역'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은 어떤가?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본다.
먼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위임의 원리를 떠받치는 전체 대표성이 필수적이지만, 한국 정치는 '국민대표성'이 점차 '지역대표성'에 의하여 왜곡되거나 심지어 상당 부분 대체되어가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다음으로 대표 개념의 형성과 대표 기관의 권한 획득 과정을 고려할 때 한국 의회가 대표 권한을 인정받고 보유하는 길은 쉽지 않다고 본다. 여러 여건상 국민은 의회를 대표 기관으로 보지 않으며, 의회 스스로도 정부와 법원에 앞서서 대한민국의 정치적 통일성을 대표한다는 대표 의식이 없는 것이다. 입법부가 입법권의 관철을 통해 집행권과 판결권에 대해 정치 공동체의 통일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부분이익의 조정과 합의라는 대리 역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대표의 위기와 연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바 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정치는, 첫째 보수정당 중심의 협소한 대표 체계가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대표되지 못하는 정당정치의 위기, 둘째 다문화의 위기, 셋째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에서 보이는 낮은 정치 참여의 위기로 인해 대표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의 문제를 둘러싼 위기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연대의 위기를 불러오고, 연대의 위기는 다시 대표의 위기를 악화시킨다. 한국 정치는 경직된 다수제 민주주의를 넘어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가야 대표의 위기와 연대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
※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정치사상총서>의 첫 번째 책, 『인권의 정치사상』(김비환 외 지음)에 이은 두 번째 책입니다. 『인권의 정치사상』은 '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와 '2011 올해의 인권 책'(한국인권재단)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2년에는 <정치사상총서>의 세 번째 책과 네 번째 책으로 『민의와 의론의 정치사상』(가제)과 『보수주의』(가제)를 출간할 계획입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총론
대의민주주의의 꿈과 포부, 그리고 과제_서병훈
제2부 대의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
1장 심의민주주의인가, 참여민주주의인가?_김주성
2장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의성: 일반의사, 부분의사 그리고 더 나은 대의를 위한 제도 디자인_임혁백
3장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타난 정치 참여와 대의제_강정인
제3부 대표와 대리, 그 철학적 간격
4장 서양 중세의 대의 사상: 대표성의 실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_이화용
5장 '국민에 대한 거역'?: 존 스튜어트 밀의 '민주적 플라톤주의'_서병훈
6장 칸트와 대의_정호원
제4부 대의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
7장 프랑스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치철학과 역사_홍태영
8장 정치적 '대표' 개념과 대의제: 독일 입헌군주정의 '대표' 개념을 둘러싼 논쟁_오향미
9장 한국 정치의 대안 모델로서 합의제 민주주의_김남국
각 장에 대한 안내 및 각 장이 처음 게재된 학술지
지은이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