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현대사: 우리에게 내일이 있는가
- 개인저자
- 권영빈 지음
- 발행사항
- 서울: 살림, 2019
- 형태사항
- 399 p. : 삽화, 초상 ; 23 cm
- ISBN
- 9788952240477
- 청구기호
- 911.07 권64ㄴ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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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7189 | 대출가능 | - |
- 등록번호
- 0001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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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겪어온 질곡의 자화상이다!”
소년기에 각인된 학살 장면
연좌제에 묶여 사학자의 꿈을 접은 청년시절
해방 후 남북이 인정한 최초의 공식방북 취재자
권영빈의 삶 속에 드리운 한국 현대사의 발자취
이 땅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한국 현대사 속 살아 있는 육성을 듣다
한 사람의 삶이 개인의 인생에 머무르지 않고, 질곡에 놓인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있음을 성찰한 에세이다. 「중앙일보」 사장·발행인·편집인을 지낸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 권영빈. 그의 30년 칼럼인생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다. 그가 30년간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이면서도 공정하게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했던 기록이 『나의 삶 나의 현대사-우리에게 내일이 있는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칼럼을 써오면서 평균 2주에 1회꼴로 원고지 약 15~25매 분량의 원고를 써왔다. 이 책에는 현재에도 유효한 글 115편만 엄선하여 실었다.
새벽안개 속 결투판의 심판처럼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공정했다
권영빈은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종사해왔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고백한다.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이 늘 부담이었다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작은 노력이 촛불이 되어 이 사회 어두운 구석 어딘가를 밝히거나, 척박한 땅에
줌 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9쪽)에 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첫 칼럼을 쓴 것은 1988년이었다. 당시 극작가 브레히트의 「코이너 씨 이야기」라는 산문을 인용하며 시작한 「어느 좀팽이의 작은 소망」(10~12쪽)은 그의 대표적인 칼럼이다. 폭력의 사자를 7년이나 모시고, 그가 죽고 나서야 “싫다”고 대답하는 내용의 글이다. 폭력의 사자에 기죽고 숨 죽여 선량하게 살아온 좀팽이들, 말 없는 다수를 겁나게 하지 말라는 것. “험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성취에 이르렀다면 이젠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며 내일의 새길을 찾아나서야 한다”(16쪽)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좌우익 논쟁과 빨갱이 시비로 세월을 허송하고 앞길을 어둡게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 반성의 자료로 삼고자 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이념보다는 실제, 공리공담보다는 실사구시다. 중국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이 사회주의밖에 없다는 리다차오(李大釗)의 주장에 후스(胡適)는 문제를 이념으로 풀 수 없다고 맞섰다. 권영빈은 이 후스의 이론에 적극 동의한다. 최저임금으로 노동자 소득이 오르면 경제도 살아난다는 해괴한 소득주도성장이론으로 접근하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메시지는 분열과 갈등보다는 통합과 공생이다. 남북의 분열과 갈등, 남남 갈등, 동서 갈등,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간의 갈등, 노사 갈등 등. 이런 갈등은 이미 해방공간에서 출발하여 6·25, 4·19, 5·16, 5·18을 거치면서 더 증폭되고 반목하며 되풀이해왔다. 이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우리 모두의 숙제고 과제라고 봤다.
마지막 세 번째는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미화될 수 없다는 메시지다. 평화, 화해, 협상이 세상의 난제를 푸는 열쇠라는 것이다. 권력의 폭력, 갑의 폭력, 집단 폭력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는 이때, 이들의 폭력을 과감히 비판하고 폭로하면서 보통사람들이 미력이나마 항거하고 뭉치기를 그는 호소한다.
그의 글은 엄정하다. 역사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따뜻한 인간의 기미를 느끼게 한다. 문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땅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한다. 잉걸불처럼 속으로 타오르는 사랑 때문이다.
제1부 「나의 삶 나의 현대사」에는 언론인 권영빈 개인의 삶이 한국 현대사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쓰여 있다.
그가 유소년기에 목격한 막냇삼촌의 즉결처형 장면은 안동 보도연맹사건(1950) 때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전쟁 직전 전향을 목적으로 만든 보도연맹을, 전쟁이 일어난 뒤 전원 사살해버린 것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이후 그의 뇌리에 남아 큰 상처로 남게 된다. 게다가 이북으로 월북한 작은삼촌으로 인해 연좌제에 묶여 사학자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학자로서의 길이 막힌 그는 잡지 편집자로 나서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 문인과 교유의 폭을 깊고 넓게 갖는다(4, 40, 81, 265~266쪽). 그러나 그들과의 인연으로 수배 중이던 동료(정태기. 후일 한겨레 대표)를 집에 숨겨주거나, 한수산 필화사건에 엮여들어가는 등(43~46쪽), 남영동 대공분실과 서빙고 보안사무실에서 무시무시한 폭력을 접하게 된다.
중년 시절에는 본격적으로 언론인으로서 칼럼을 쓰며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계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86~397쪽). 이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으로서 북한과 교류에 나서면서, 총 4차에 걸쳐 방북하게 된다(6~8, 49, 50~51, 57, 60~62, 274~276쪽). 이후 2007년 「중앙일보」를 떠나 문화예술위원장으로서의 삶을 산다.
제2부 「우리에게 내일이 있는가」는 그가 1988~2011년까지 「중앙일보」에 쓴 칼럼 중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2019년에 읽어도 전혀 과거의 내용으로 읽히지 않는 현재화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명칼럼들을 모았다(86~397쪽).
올해 희수(喜壽)를 맞은 권영빈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그리고 그 말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며 살아왔다. 그는 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엄중하면서도 신랄한 글쓰기를 해왔으며, 한국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쓴소리를 던져왔다. 그의 작은 한마디가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문제다.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삶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 또한 글쓰기의 전범(典範)으로서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권하고 싶다. 또한 남북 분단 후 치열하게 살아온 어르신들께는 당시의 향수와 정서를 읽을 수 있어 반가울 것이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글들이 20여 년 전에 쓰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깔린 부조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에 쓴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즉 이 책은 단순한 칼럼집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DNA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 현대사 앨범이다.
▶키워드
칼럼, 언론, 언론인, 신문, 논설, 사설, 논설위원, 기자, 중앙일보, 잡지, 편집, 편집자, 편집인, 발행인, 취재, 취재자, 역사, 현대사, 한국현대사, 실제, 실사구시, 공정, 연좌제, 방북, 공식방북, 방북취재, 후스, 통합, 공생, 해방공간, 평화, 화해, 협상, 통일
목차
서문 | 왜 이 글을 쓰는가·9
어느 좀팽이의 작은 소망·10
제1부·나의 삶 나의 현대사
그 하나 - 모래톱 위의 사형장·22
누가 누구에게 돌 던지나·26
그 둘 - 연좌제, 젊은 꿈의 좌절·30
남은 자의 부끄러움·36
그 셋 - 두 개의 폭력·39
두 개의 고문, 서빙고와 남영동 대공분실·41|어느 시인이 남긴 한恨·43
그 넷 - 북한문화유산답사기·47
범주汎舟의 역役·51|“바람과 햇빛”·54|광명성이 가야 할 길·64
그 다섯 - 문화예술위원장 시절과 블랙리스트·71
문예진흥기금이 절박하다·76
제2부·우리에게 내일이 있는가
1 문제를 주의로 푸나·86
김우중의 꿈과 박노해의 꿈·86|미제 군화와 총독부의 건물·89|기업인과 청지기 의식·93|‘옛날의 금잔디’가 아니다·96|살인마가 의적義賊 되는 세상·99|성난 얼굴로 고향을 보게 할 건가·102|6·29와 민주화 가로채기·105|밝은 미래는 거저 오지 않는다·109|봄날은 간다·111|세계화의 덫, 3김金의 덫·114|빛바랜 두 편의 글·117|좀 떳떳하게 살자·119|치세治世를 배우자·122|문제를 주의로 푸나·125|위기는 기회다·127|대통령의 아들들·130|역사에 공짜는 없다·133|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135|노무현식 어젠다의 시작과 끝·138|진보는 없다·140|아직도 가신정치라니·143|좀 솔직하게 살자·145|건국 대통령은 없다?·148|시계 추는 우로 가고 있다·151|아! 노무현 대통령·153|누가 내일을 준비하는가·156|진보가 밥 먹여준다?·158
2 분열 갈등 아닌 통합 화해를·162
도천의 물, 마신 사람과 판 사람·162|창 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166|TK를 위한 반 TK론·169|“만만디” 중국식 통일방안 3제·172|부천시향의 고향 만들기·176|전임 대통령이 가야 할 길·179|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82|대담 『전환시대의 논리』 이영희 교수·184|죄와 벌·189|또 하나의 국치일國恥日·191|역순逆順·194|합종연횡合從連橫·196|법은 정의로운가··199|호남의 전국화와 호남의 호남화·202|고르비가 없다·204|생사람 잡는 지식풍토·207|A4 용지의 「귀거래사歸去來辭」·210|지역감정 어떻게 푸나·212|정치가 경제를 망치려나·215|냄비, 하이에나, 언론·218|황장엽은 트로이 목마인가·220|바람 바람 바람·223|항아리 속 참게·226|‘화和’의 정치 ‘강剛’의 정치·228|내 마음속 DJ 정서·231|불평등 즉 평등·234|“안정 없는 개혁은 공허할 뿐”―2003 새해특집 김수환 추기경 인터뷰·236|‘낮은’ 연방제의 함정·242
3 폭력은 안 된다. 평화와 공존이다·245
누가 매카시즘을 부르는가·245|전교조 3막4장·248|누구를 위한 ‘진군의 북소리’인가·251|우리 속의 ‘와부와부’ 징후·255|민주화 위협하는 두 세력·258|우리 마음속의 ‘6·25’·261|암울한 시대 그는 참지도자였다―황인철 변호사를 보내는 부끄러운 마음·265|운동권 문화 청산 방식·267|느림의 미학·270|존경과 인기·272|의경義警은 서럽다·275|‘무서운 남한 사람들’·277|빨치산 흉내 내기·280|한민족韓民族 네트워크·283|구월산, 장길산, 황석영·285|북한 바로 알기·288·|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291|떠도는 탈북자脫北者들·293|음모의 계절·296|‘강행군’ ‘총진군’·298|박정희와 김일성·301|북한 TV와 「강철 서신」·304|‘6·29’가 명예혁명인가·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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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이 책을 마치면서·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