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평화와 반평화: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Peace and anti peace
- 판사항
- 개정증보판
- 발행사항
- 서울 :,박영사,,2021
- 형태사항
- xxiv, 453 p. ; 23 cm
- 총서사항
- 한반도평화연구원 총서
- ISBN
- 9791130311449
- 청구기호
- 349.81 전67ㅍ
- 일반주기
- 색인 수록
- 주제
- 평화[平和]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8916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8916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발간사
이 책의 대표저자이신 전우택 교수님이 <평화와 반평화> 1판에 대한 수요도 많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필요도 있어 2판을 개정증보판으로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참여한 필자들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저자 분들이 글을 수정하고 새로운 내용을 저술하는 수고를 기꺼이 해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평화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화에 대해 왜 갈급해하게 되었을까요? 김선욱 교수님은 이 책에 쓴 그의 글에서 “우리가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때는 우리가 평화롭지 않을 때이다. 삶의 평화를 잃어버렸거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아 평화를 잃어버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남북한간 대치와 갈등으로 이 땅에서 평화가 위협받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갈망은 거의 상수가 되어 우리나라 국민들의 DNA에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근래에 평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된 것은 국내외 정세가 더 불안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적 현상이 되어버린 양극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협하고 평화를 깨뜨리고 있다. 미.중간 리더십 갈등은 양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곳곳에 불안을 야기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확산이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고 개인이나 사회를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새롭게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든 주요 위협 요인들일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평화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잠재해 있는 막연한 불안이 평화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안이 세계의 곳곳에, 역사의 곳곳에 존재했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갈망이 인류보편적 본성처럼 된 배경을 가르쳐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재화처럼 평화가 희소하게된 것 역시 우리 속에 있는 욕망과 공격성과 같은 본성의 일부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평화도 반평화도 모두가 다 “내탓이요, 내 큰 탓이로다”를 되뇌게 합니다. 그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의 삶을 통해, 평화를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도 그 행렬 뒤에 어디서 따라가라고 종용합니다. 그들이 가진 특성을 내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기는 하지만. 다시 신발 끈을 묶고 따라가기라도 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내일이 더 평화로워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평화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다시 고민해주신 저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책 출간에 힘을 보태주신 광주서림교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이름으로 다시 출간하는 이 책이 평화를 염원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도록 이끄는 밀알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2021년 1월
한반도평화연구원장 윤덕룡
권두언
오늘의 시대를 한마디로 말하면 갈등과 분노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점점 사나워지는 살벌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따사함이 사라지고 있음을 우리는 절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만날 때 느끼는 낮설음의 감정이 아닙니다. 낮설음을 넘어 의심의 단계, 아니 더 이상 만남과 소통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의심이 사라지지 않으면 갈등관계가 증폭합니다. 갈등이 다시 확대되면 미움이 솟구칩니다. 미움이 반복되면 더욱이 증오감이 난무하는 전투적 관계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현장은 평화를 상실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의심에서 시작했으나 만나보니 호감이 생깁니다. 그러면 호감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존중하는 마음이 지속되면 신뢰가 형성됩니다. 그 신뢰가 축적되면 우정으로 발전하고, 특히 남녀 간에서는 사랑으로 성숙됩니다. 의심과 갈등은 우리에게 소통의 자리를 거부하며 폐쇄적인 인간상을 만듭니다. 그 반면에 신뢰와 존중은 마음의 개방성을 확대하며 소통을 통해 삶의 풍성함을 나누려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인 만남에서뿐만 아니라, 집단 다이내믹에 있어서도, 심지어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사한 과정을 겪습니다.
평화란 갈등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란 오히려 서로 용납하고 신뢰하는 그 지수가 의심하고 갈등하며 다투는 지수보다 더 크다는 뜻입니다. 낯설음이 의심으로, 그리고 갈등과 미움으로, 궁극적으로는 저주와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서로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 다름을 적대적으로 이해할 때에 소통과 나눔의 구조가 해체과정을 겪게 됩니다.
둘째는 서로 함께 있을 때에 한쪽에서 열등감을 느낄 때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질 때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내 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대될 뿐입니다.
셋째는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목표가 다르다고 여겼을 때입니다. 무엇보다 나 중심의 이기적인 자기 방어기제가 토치카처럼 나를 둘러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개인을 넘어 집단, 민족, 또는 국가단위로 확대될 때는 엄청난 위험부담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진리, 자유, 평화라는 거대 담론을 표어로 내세우면서, 그 뒷면에는 나 중심적인 이기적 욕망에 휘둘리면 공동체는 금방 갈등과 분노의 편 가르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merica First!’라고 외쳤을 때에 다른 나라들은 곤혹스러운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강력한 권력과 무력을 지닌 국가 지도자가 자기 나라 우선을 세계평화보다 앞세울 때에 다른 국가 또한 이기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일은 힘 있는 자, 강한 자, 있는 자가 편 가름을 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적과 아군이라는 프레임으로 사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다만 힘있는 자 한 사람만이 자유를 구가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아부하고 두려워서 억지로 따라가는 비겁한 허수아비들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파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예수님의 이야기로 이 어려운 숙제의 실타래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하늘의 영광 중에 계셨던 분, 능력이 많으신 분이 이 땅에서 왜 낮은 자리에 오셨을까요? 사람에게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이 땅에 왜 섬기는 자로 오셨을까요? 모든 것을 가진 분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없는 자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 자는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해 지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소중한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종적 차별, 사회경제적인 차별, 남녀의 성별 차별을 부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 개별의 취향과 독특성을 파괴하지 않는 인격적인 주체 경험을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기독교 지성과 영성을 대변하고 있는 한반도평화연구원에 속한 각 분야의 연구위원들이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그들이 먼저 습득한 평화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개인의 평화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평화, 사회와 나라의 평화까지 제시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읽는 독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지적, 영적 에너지가 풍성하게 충전되는 따뜻한 열정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 한 분 한 분, 또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2021년 1월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사장 김지철
개정증보판 서문
2016년 9월. 필자는 요르단 제라쉬의 전통시장 낡은 건물 2층, 좁고 허름한 창고방 속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가 난민 임시 진료소로 급히 지정된 그 건물 속에서도 가장 작은 방이 정신과 진료실로 배정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필자와 통역을 맡을, 그 해 요르단 간호대학을 막 졸업한 아흘람(아랍어로 “꿈”이라는 뜻의 이름이었다)이 앉을 작은 의자가 들어오고 그 앞에 아주 조그만 책상이 하나 들어오자, 환자가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놓기에도 빡빡한 그런 진료실이 드디어 마련되었다. 이미 건물 앞에는 시리아 난민들 백여 명이 앉아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의 진료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난민들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첫 진료가 시작되었다.
필자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43세 여인의 두 눈 뿐이었다. 검은 색 부르카가 온 몸과 얼굴을 다 덮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서는 눈물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3년 전, 6명의 자녀와 함께 부부가 시리아를 탈출하여 요르단에 난민이 되어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은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가버렸다. 여섯 자녀를 데리고 살아남아야 했던 것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캐나다에 난민 이주 신청을 하였고 2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허가가 나왔다. 그러나 21살 난 맏아들이 문제였다. 허가를 기다리던 2년 사이에 20살이 넘어버렸기 때문에, 규정 상 이 아들에게만은 캐나다 이주 허가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아들만 놔두고 떠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모든 가족이 다시 요르단에 남기로 하였다. 극한적 가난 속에 하루하루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홉 살 난 다섯째 아들아이를 진료실에 같이 데리고 왔다. 시리아 고향 마을에 비행기 폭격이 있었을 때, 아이는 너무도 놀라 극단적으로 과호흡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부터 아이는 늘 불안해하였고, 아예 식사를 하려 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 정도를 먹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하는 그 아이가 큰 눈망울로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난민촌 정신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시리아에서 포격 속에 무너지는 집 밖으로 뛰쳐나온 이후,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을 보이는 딸아이를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려 하는 일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젊은 엄마, 음식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고, 멍한 상태에서 그것을 기억 못한 채 다른 곳으로 갔다가 불을 낼 뻔했던 일이 반복되면서 심한 건망증을 호소하는 54세 여자, 난민으로 들어 온 이후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소리를 계속 질러대는 32세 남자와, 그런 남편을 옆에서 바라보며 너무도 무서워하는 가냘픈 24세의 부인 등.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정신과 의사인 필자를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짧은 진료 기간과 제한된 약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도 거대하였기 때문 이었다.
인간의 삶을 그 뿌리부터 흔들면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있는 이 반(反)평화적 상황 속에서, 평화에 대한 생각은 관념과 개념의 문제가 아닌, 현실 속의 절박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리아 난민촌에서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전 중인 남수단과 예멘에서, 민주화 투쟁 과정 속에 있는 동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치가 더 치열해 지고 있는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그리고 그 어디보다도 더 안보적, 사회적, 이념적 갈등과 긴장이 높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평화’를 ‘보통명사’가 아닌, 마치 어느 딴 행성 속 현상인 것 같은 ‘특수 고유명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평화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확신 아닌 확신이, 우리 사회와 우리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다. 평화를 이야기할수록 반(反)평화적 상태가 되는 그런 모순과 딜레마가 우리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이 책은 2013년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아홉 번째 총서로 나왔던 <평화와 반평화.평화인문학적 고찰>의 개정증보판이다. 당시, 이 책은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여러 학문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구성하여, 관련 연구자들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었던 바 있었다. 이제,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 책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져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개정증보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저자는 초판의 저자 8명이 그대로 다시 저자가 되었다. 초판은 각 저자들이 1장씩을 집필하여 총 8장으로 구성되었었는데,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기존 원고들을 크게 손보아 더 충실하게 다듬었고, 거기에 4명의 저자들이 새로 한 장씩을 더 추가로 실어 총 12장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새로 추가된 장은 5장 폭력과 휴머니티-인류에게 폭력 극복의 희망은 있는가?(김선욱), 7장 권력, 자유, 헌법(이국운), 11장 아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기원과 해결 전망(김회권), 12장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특징(전우택)이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7년 전 원고들을 다시 정성스레 수정하시고, 또 새로운 원고들을 써주신 모든 저자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초판을 만들 때는 숭실대 철학과의 김선욱 교수님께서 대표편저자로 수고하여 주셨다. 그리고 당시 서문에 이 책의 전체 정신과 구성 내용을 정리해 주신 바 있다. 그 정신과 구성은 지금 개정증보판에서도 그대로 유효하기에, 초판 서문을 같이 싣는다. 이번에 이 책은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열여섯 번째 총서로 나오게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싱크탱크로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벌써 15년이 된 한반도평화연구원을 통하여, 향후 차세대 연구자들이 더 많이 양성되고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15년 동안 한결 같이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섬겨주신 김지철 이사장님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 주신 박영사의 안종만 대표님과 안상준 대표님, 조성호 이사님과 전채린 과장님, 그리고 이미연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제라쉬의 그 구석진 방에서 바짝 마른 큰 눈망울로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 아홉 살짜리 아이는 이제 15세의 사춘기 남자 소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시리아 사태는 전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을 엄마와 가족들과 함께 제라쉬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의 나이가 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 민족, 국가가 놓인 상황에 대한 어떤 생각을 주입받기도 하고, 또 스스로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소년이 평화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커가기를 바란다. 가장 큰 반(反)평화의 공간 속에서 자라났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더 평화를 깊이 생각하고 결심 속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조건도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소년들과 함께 나누어지는 책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1년 1월
이 땅에 새로운 평화가 시작되기를 기원하면서
저자들을 대표하여
전우택 드림
이 책의 대표저자이신 전우택 교수님이 <평화와 반평화> 1판에 대한 수요도 많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필요도 있어 2판을 개정증보판으로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참여한 필자들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저자 분들이 글을 수정하고 새로운 내용을 저술하는 수고를 기꺼이 해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평화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화에 대해 왜 갈급해하게 되었을까요? 김선욱 교수님은 이 책에 쓴 그의 글에서 “우리가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때는 우리가 평화롭지 않을 때이다. 삶의 평화를 잃어버렸거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아 평화를 잃어버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남북한간 대치와 갈등으로 이 땅에서 평화가 위협받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갈망은 거의 상수가 되어 우리나라 국민들의 DNA에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근래에 평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된 것은 국내외 정세가 더 불안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적 현상이 되어버린 양극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협하고 평화를 깨뜨리고 있다. 미.중간 리더십 갈등은 양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곳곳에 불안을 야기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확산이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고 개인이나 사회를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새롭게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든 주요 위협 요인들일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평화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잠재해 있는 막연한 불안이 평화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안이 세계의 곳곳에, 역사의 곳곳에 존재했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갈망이 인류보편적 본성처럼 된 배경을 가르쳐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재화처럼 평화가 희소하게된 것 역시 우리 속에 있는 욕망과 공격성과 같은 본성의 일부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평화도 반평화도 모두가 다 “내탓이요, 내 큰 탓이로다”를 되뇌게 합니다. 그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의 삶을 통해, 평화를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도 그 행렬 뒤에 어디서 따라가라고 종용합니다. 그들이 가진 특성을 내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기는 하지만. 다시 신발 끈을 묶고 따라가기라도 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내일이 더 평화로워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평화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다시 고민해주신 저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책 출간에 힘을 보태주신 광주서림교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이름으로 다시 출간하는 이 책이 평화를 염원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도록 이끄는 밀알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2021년 1월
한반도평화연구원장 윤덕룡
권두언
오늘의 시대를 한마디로 말하면 갈등과 분노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점점 사나워지는 살벌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따사함이 사라지고 있음을 우리는 절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만날 때 느끼는 낮설음의 감정이 아닙니다. 낮설음을 넘어 의심의 단계, 아니 더 이상 만남과 소통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의심이 사라지지 않으면 갈등관계가 증폭합니다. 갈등이 다시 확대되면 미움이 솟구칩니다. 미움이 반복되면 더욱이 증오감이 난무하는 전투적 관계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현장은 평화를 상실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의심에서 시작했으나 만나보니 호감이 생깁니다. 그러면 호감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존중하는 마음이 지속되면 신뢰가 형성됩니다. 그 신뢰가 축적되면 우정으로 발전하고, 특히 남녀 간에서는 사랑으로 성숙됩니다. 의심과 갈등은 우리에게 소통의 자리를 거부하며 폐쇄적인 인간상을 만듭니다. 그 반면에 신뢰와 존중은 마음의 개방성을 확대하며 소통을 통해 삶의 풍성함을 나누려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인 만남에서뿐만 아니라, 집단 다이내믹에 있어서도, 심지어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사한 과정을 겪습니다.
평화란 갈등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란 오히려 서로 용납하고 신뢰하는 그 지수가 의심하고 갈등하며 다투는 지수보다 더 크다는 뜻입니다. 낯설음이 의심으로, 그리고 갈등과 미움으로, 궁극적으로는 저주와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서로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 다름을 적대적으로 이해할 때에 소통과 나눔의 구조가 해체과정을 겪게 됩니다.
둘째는 서로 함께 있을 때에 한쪽에서 열등감을 느낄 때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질 때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내 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대될 뿐입니다.
셋째는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목표가 다르다고 여겼을 때입니다. 무엇보다 나 중심의 이기적인 자기 방어기제가 토치카처럼 나를 둘러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개인을 넘어 집단, 민족, 또는 국가단위로 확대될 때는 엄청난 위험부담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진리, 자유, 평화라는 거대 담론을 표어로 내세우면서, 그 뒷면에는 나 중심적인 이기적 욕망에 휘둘리면 공동체는 금방 갈등과 분노의 편 가르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merica First!’라고 외쳤을 때에 다른 나라들은 곤혹스러운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강력한 권력과 무력을 지닌 국가 지도자가 자기 나라 우선을 세계평화보다 앞세울 때에 다른 국가 또한 이기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일은 힘 있는 자, 강한 자, 있는 자가 편 가름을 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적과 아군이라는 프레임으로 사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다만 힘있는 자 한 사람만이 자유를 구가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아부하고 두려워서 억지로 따라가는 비겁한 허수아비들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파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예수님의 이야기로 이 어려운 숙제의 실타래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하늘의 영광 중에 계셨던 분, 능력이 많으신 분이 이 땅에서 왜 낮은 자리에 오셨을까요? 사람에게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이 땅에 왜 섬기는 자로 오셨을까요? 모든 것을 가진 분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없는 자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 자는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해 지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소중한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종적 차별, 사회경제적인 차별, 남녀의 성별 차별을 부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 개별의 취향과 독특성을 파괴하지 않는 인격적인 주체 경험을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기독교 지성과 영성을 대변하고 있는 한반도평화연구원에 속한 각 분야의 연구위원들이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그들이 먼저 습득한 평화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개인의 평화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평화, 사회와 나라의 평화까지 제시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읽는 독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지적, 영적 에너지가 풍성하게 충전되는 따뜻한 열정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 한 분 한 분, 또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2021년 1월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사장 김지철
개정증보판 서문
2016년 9월. 필자는 요르단 제라쉬의 전통시장 낡은 건물 2층, 좁고 허름한 창고방 속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가 난민 임시 진료소로 급히 지정된 그 건물 속에서도 가장 작은 방이 정신과 진료실로 배정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필자와 통역을 맡을, 그 해 요르단 간호대학을 막 졸업한 아흘람(아랍어로 “꿈”이라는 뜻의 이름이었다)이 앉을 작은 의자가 들어오고 그 앞에 아주 조그만 책상이 하나 들어오자, 환자가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놓기에도 빡빡한 그런 진료실이 드디어 마련되었다. 이미 건물 앞에는 시리아 난민들 백여 명이 앉아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의 진료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난민들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첫 진료가 시작되었다.
필자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43세 여인의 두 눈 뿐이었다. 검은 색 부르카가 온 몸과 얼굴을 다 덮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서는 눈물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3년 전, 6명의 자녀와 함께 부부가 시리아를 탈출하여 요르단에 난민이 되어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은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가버렸다. 여섯 자녀를 데리고 살아남아야 했던 것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캐나다에 난민 이주 신청을 하였고 2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허가가 나왔다. 그러나 21살 난 맏아들이 문제였다. 허가를 기다리던 2년 사이에 20살이 넘어버렸기 때문에, 규정 상 이 아들에게만은 캐나다 이주 허가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아들만 놔두고 떠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모든 가족이 다시 요르단에 남기로 하였다. 극한적 가난 속에 하루하루가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홉 살 난 다섯째 아들아이를 진료실에 같이 데리고 왔다. 시리아 고향 마을에 비행기 폭격이 있었을 때, 아이는 너무도 놀라 극단적으로 과호흡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부터 아이는 늘 불안해하였고, 아예 식사를 하려 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 정도를 먹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하는 그 아이가 큰 눈망울로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난민촌 정신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시리아에서 포격 속에 무너지는 집 밖으로 뛰쳐나온 이후,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을 보이는 딸아이를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려 하는 일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젊은 엄마, 음식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고, 멍한 상태에서 그것을 기억 못한 채 다른 곳으로 갔다가 불을 낼 뻔했던 일이 반복되면서 심한 건망증을 호소하는 54세 여자, 난민으로 들어 온 이후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소리를 계속 질러대는 32세 남자와, 그런 남편을 옆에서 바라보며 너무도 무서워하는 가냘픈 24세의 부인 등.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정신과 의사인 필자를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짧은 진료 기간과 제한된 약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도 거대하였기 때문 이었다.
인간의 삶을 그 뿌리부터 흔들면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있는 이 반(反)평화적 상황 속에서, 평화에 대한 생각은 관념과 개념의 문제가 아닌, 현실 속의 절박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리아 난민촌에서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전 중인 남수단과 예멘에서, 민주화 투쟁 과정 속에 있는 동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치가 더 치열해 지고 있는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그리고 그 어디보다도 더 안보적, 사회적, 이념적 갈등과 긴장이 높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평화’를 ‘보통명사’가 아닌, 마치 어느 딴 행성 속 현상인 것 같은 ‘특수 고유명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평화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확신 아닌 확신이, 우리 사회와 우리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다. 평화를 이야기할수록 반(反)평화적 상태가 되는 그런 모순과 딜레마가 우리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이 책은 2013년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아홉 번째 총서로 나왔던 <평화와 반평화.평화인문학적 고찰>의 개정증보판이다. 당시, 이 책은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여러 학문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구성하여, 관련 연구자들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었던 바 있었다. 이제,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 책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져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개정증보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저자는 초판의 저자 8명이 그대로 다시 저자가 되었다. 초판은 각 저자들이 1장씩을 집필하여 총 8장으로 구성되었었는데,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기존 원고들을 크게 손보아 더 충실하게 다듬었고, 거기에 4명의 저자들이 새로 한 장씩을 더 추가로 실어 총 12장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새로 추가된 장은 5장 폭력과 휴머니티-인류에게 폭력 극복의 희망은 있는가?(김선욱), 7장 권력, 자유, 헌법(이국운), 11장 아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기원과 해결 전망(김회권), 12장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특징(전우택)이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7년 전 원고들을 다시 정성스레 수정하시고, 또 새로운 원고들을 써주신 모든 저자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초판을 만들 때는 숭실대 철학과의 김선욱 교수님께서 대표편저자로 수고하여 주셨다. 그리고 당시 서문에 이 책의 전체 정신과 구성 내용을 정리해 주신 바 있다. 그 정신과 구성은 지금 개정증보판에서도 그대로 유효하기에, 초판 서문을 같이 싣는다. 이번에 이 책은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열여섯 번째 총서로 나오게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싱크탱크로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벌써 15년이 된 한반도평화연구원을 통하여, 향후 차세대 연구자들이 더 많이 양성되고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15년 동안 한결 같이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섬겨주신 김지철 이사장님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 주신 박영사의 안종만 대표님과 안상준 대표님, 조성호 이사님과 전채린 과장님, 그리고 이미연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제라쉬의 그 구석진 방에서 바짝 마른 큰 눈망울로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 아홉 살짜리 아이는 이제 15세의 사춘기 남자 소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시리아 사태는 전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을 엄마와 가족들과 함께 제라쉬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의 나이가 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 민족, 국가가 놓인 상황에 대한 어떤 생각을 주입받기도 하고, 또 스스로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소년이 평화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커가기를 바란다. 가장 큰 반(反)평화의 공간 속에서 자라났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더 평화를 깊이 생각하고 결심 속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조건도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소년들과 함께 나누어지는 책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1년 1월
이 땅에 새로운 평화가 시작되기를 기원하면서
저자들을 대표하여
전우택 드림
목차
PART 01 평화와 반(反)평화에 대한 성찰
01 반(反)평화의 개념과 구조 이해 3
_김선욱
02 폭력의 내면적 원인과 평화의 내면적 토양 31
_이해완
03 ‘이웃사랑’의 철학 79
_서경석 _한양대 국문과
04 ‘모방 욕망’의 창으로 본 우리 안의 폭력과 예수를 모방한다는 것 99
_심혜영
05 폭력과 휴머니티: 인류에게 폭력 극복의 희망은 있는가? 135
김선욱
PART 02 한반도의 평화와 반(反)평화
06 인간의 공격성과 한반도의 평화 157
_전우택
07 권력.자유.헌법 201
_이국운
08 자치분권의 이념과 헌법개정의 당위 225
_이국운
PART 03 팔레스타인과 세계의 평화와 반(反)평화
09 기독교의 ‘반유대주의’ 담론과 평화의 문제 259
_박정수
10 역대기서의 민족화해 신학 299
_김회권
1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기원과 해결 전망 349
_김회권
12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특징 401
_전우택
찾아보기 _443
저자소개 _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