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전자도서관

로그인

통일연구원 전자도서관

소장자료검색

  1. 메인
  2. 소장자료검색
  3. 신착자료

신착자료

단행본

선을 넘는 일본 간첩대: 그 기막힌 교활함

개인저자
박해순 지음
발행사항
서울: 나녹, 2022
형태사항
435 p.: 삽화, 지도; 23 cm
ISBN
9791191406177
청구기호
911.06 박92ㅅ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9470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9470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반드시 밝혀야 할 일본 간첩대의 전모, 이 책 속에 있다.

우리는 광복을 기뻐해야 했던가, 통탄해야 했던가!
없어도 될 일을 당하고 지금도 극복하지 못하는 역사, 누구의 책임일까?


일본은 1868년(메이지 원년)부터 은밀하게 시간과 공력을 쏟아 치밀하게 큰 그림을 그리며 조선 무력침략을 준비했다. 1872년부터 1894년까지 조선으로 보낸 외교관을 빙자한 첩보원, 첩보 수집에 투입된 정보장교라는 이름의 첩보원들, 각계각층의 민간인들에 의해 수집된 첩보를 분석·평가하고 축적한 정보를 통해 조선을 지배하고, 약탈할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겼다. 저자는 일본 정부가 벌인 군사정보, 정세 파악, 지도 제작을 담당한 참모부 내 간첩대의 활동에 주목했다. 군사기밀로 숨겨둔 참모본부 역사 초안, 육군성 참모본부 일기, 외무성 기록 등을 샅샅이 훑으며 첩보원의 전모를 파헤쳐 일본의 책략과 술수, 조선을 침략하려는 야욕이 차고 넘쳤음을 확인했다. 결코 1894년 조선 무력침략, 1905년 통감부 설치, 1910년 강제병합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일제 강점 이후 간첩대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독립운동의 감시도 더욱 잔혹해졌다. 조선 패망을 나약하고 무능한 조선의 왕, 부패한 정부 관료의 잘못으로 떠넘기는 얄팍한 식민지 사관 뒤에 숨은 일본 정부의 음흉하고 교활한 민낯! 이 책을 펼치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반드시 첩보원은 있었다. 정보자산이 없으면 적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첩보원을 해외로 파견해 미확인 사실과 확실치않은 풍문을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해서 취득한 첩보를 모아 정보화시킬수록 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전쟁에서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신묘한 계략은 적의 정보를 더많이 아는 자만이 짜낼 수 있다. 상대를 모르고 싸움을 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는 것처럼, 나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는데 싸움을 걸어온다면 백전백패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최상의 전쟁 기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일본은 조선을 상대로 최선의 전쟁 승리를 거두었다. 1894년 조선을 무력침략해 싸우지 않고 조선 왕을 사로잡았다. 어떤 희생조차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이때 조선의 수도궁궐은 철저히 약탈당했다. 무엇을 약탈당하고 무엇을 빼앗겼는지 기록하고 남아 있지 않다. 느닷없는 침략에 항거한 지 10년 뒤 조선 전체를 일본에 넘겨주고 망국민이 되어야 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준비는 언제부터였을까. 완벽한 지배를 위해 저들은 무엇을 했을까. 우리는 과연 일본 침략의 단계적 분석을 행한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있는가. 일제강점기를 공포정치, 문화정치, 민족말살정치 시기를 구분하면서 배운 적은 있다. 하지만 조선침략 전 일본이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는지 가르치고 배운 적이 있었던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임진왜란이라는 가공할 침략을 당하고도, 또다시 대비하지 않은 조선은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을 무시하다 강제 병합을 당하며 망국의 수치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코앞까지 닥쳐온 쓰나미를 무시하며 “왜놈들은 늘 우리를 넘보아 왔고 왜구들은 수시로 해안으로 들어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임진왜란이라는 가공할 침략을 해와 도적질을 해갔다.”며 안일하게 대응하다 휩쓸려 버렸다.
강제병합에서 벗어나고 7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오늘의 세상은 한일간의 화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케케묵은 옛날 일 자꾸 들춰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기도 한다. 유사 이래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고 국력과 병력을 갖춘 때도 없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그런 축복받은 세상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지난 18, 19세기 때 우리는 힘없는 약소국이었고 세계는 정벌과 약탈의 시대였다. 나라를 돌보지 않고 부패한 정치판에서 자기 배만 불린 위정자로 인해 나라가 망했는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배까지 하게 된 과정이 뭐그리 중요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조선이 망한 데는 정치 부패로 인한 사회혼란이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일본의 침략이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침략의 조짐을 보고도 끝내 대비하지 않아 조선이 도륙당했다. 그 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 본성과 전쟁의 과정을 복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계획했는지를 파헤치고 연구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일본에 대한 자료를 저들만큼 갖고 있는 임진왜란 이후 다시 밀어닥친 일본군으로 한반도 전체가 고통을 당한 지 128년이 지난 지금, 일본 방위대신의 집무실에는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 뒤 한반도 지도가 자기네 나라의 것인 양 걸려 있다. 앞에서는 화해와 진정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일본의 검은 속내를 보란 듯이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가해를 한 일본은 화해를 먼저 말해서는 안 된다. 한국인 역시 쉽게 화해를 말해서는 안 된다. 식민지배를 겪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바탕으로 한 평화이고 화해이어야 한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침략당해 지배받게 된 과정이 뭐 그리 중요해? 그래 우리 식민지배 받았어. 그런데 그 영향으로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잖아.
조선 말기 정보체계 별거 없어. 일본이 보낸 첩보원에 대한 연구 그거 뭐 대단할 게 있겠어. 찾아낸다 해도 기록도 별로 없고, 찾아내 확인하고 글로 쓴다 해도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야. 쓰임도 많지 않은데 그런 일을 왜 해.”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찾아내 이 세상 사람 몇몇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밝힌다 해도 읽어주는 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저들이 이런 일까지 했었다고 알려 줘도 놀라고 분노하기는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인공위성을 통해 적국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 보고 읽으며, 인문정보를 포함한 감시정보 체계의 발달로 정보자산이 넘쳐나는 지금 세상에, 그까짓 발로 걸으면서 조금씩 확보했을 첩보와 정보쯤은 그리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일까.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숨기고 싶어 하는 일본의 속내에 발을 맞추고, 먹고 사는 일상의 평온함과 안일로 길들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운 침략과 학살의 모든 기록은 지워지고 숨겨져 역사로 남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인류의 공통된 실상이다.
일본 방위대신의 집무실에 버젓이 걸려 있는 한반도지도에는 저들의 근본 깊숙이 배어있는 한반도 지배에 대한 무서운 집념이 아로새겨져 있다. 지금도 여전히 영토분쟁으로 시끄러운 독도, 역사 왜곡, 강제징용 문제가 왜 지속되고 있을까. 역사를 왜곡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여전히 많이 있음에 놀라지도 않을 만큼 일상화되어 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교육하지도 않은 탓이 크다. 지금의 역사는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본다 한들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패배의 역사는 힘이 없다. 승리자가 은폐하고 왜곡한 기록만이 역사에 남아서 얼마나 많은 세계사 속에 아로새겨져 있는가. 지금의 역사는 여전히 역사의 구체적 사실을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연관지어 검토하고 규명하는데 미흡한 면이 많다
메이지 원년부터 태평양전쟁 패전까지 태생부터 조선을 비롯해 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전역에서 수많은 학살과 약탈, 전쟁을 자행한 가해자 일본은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책임은커녕 피해자인 척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덮는 데 날이 갈수록 더 집중하고 있다. 이 역시 같은 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저들이 자행한 역사의 부끄러운 행위를 제대로 밝혀 일본의 거짓 역사를 반박하고 알리는 일에 소홀했던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전쟁에 대한 책임 의식은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은 일본인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우리의 올바른 역사교육과 인식이 자리를 잡아야 생길 수 있다.

1894년 6월 일본의 조선 무력침략과 1905년 통감부 설치, 1910년 강제병합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메이지 원년(1883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며 시간과 공력을 쏟아 치밀하게 계획한 큰 그림이 있었다. 이 책은 일본 군대가 처음 창설된 1871년 병부성 창립 당초부터 군사정보, 정세 파악, 지도제작, 측량을 담당했던 참모본부내 간첩대의 활동에 주목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참모본부가 주력했던 핵심 분야는 전쟁 수행의 핵심이자 군사기밀에 속하는 국정조사, 주변국(조선, 중국,러시아)의 정세 파악, 첩보 수집, 지도 제작이었다. 참모본부 역사초안과 육군성 내 참모본부 일기, 내각의 전신인 태정관, 외무성 기록 등은 그들이 파견한 첩보원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뒤 일본 정부가 취한 대외외교에서 구미 열강을 비롯한 중국, 조선에 대한 외교의 틀은 명확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일본정부 초기부터 조선은 존중받아야 하는 이웃 나라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땅’으로 취급되었다. 다른 나라들보다 조선의 국격을 한두 등급 낮춰야 한다는 멸시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인식 아래 1876년 조선과 일본 정부의 수교가 이루어졌다. 1878년 세이난 전쟁으로 일본은 내란이 종식되자 대외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책은 메이지 정부 초기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 기록과 외무성 기록 등 정부문건을 토대로 조선을 어떻게 침략하고자 했는지를 살폈다. 그런 다음 침략의 핵심 역할을 맡은 참모본부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는 공문서를 바탕으로 하면서 내용을 보충해 줄 육군성, 해군성, 내각, 외무성의 공식기록을 날짜와 인물을 따라 교차해서 살폈다. 또한 개인들의 문집, 자료, 기록들도 함께 보았다. 이로써 간첩대와 첩보원이 일본 정부와 어떻게 협력하고 일을 추진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참모본부 역사초안』은 참모본부에서 편찬한 사료로, 메이지 초기 1903년까지의 참모본부 역사, 대외 정보활동을 위해 파견된 첩보장교들의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조선,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으로 파견되어 탐지한 첩보활동과 내용에 대해서는 알릴 건 알리고, 숨길 건 숨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당 인물이 소속되어 있는 육군성의 참모국, 함께 파견된 외무성 관리, 파견 군함을 움직인 해군성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내각문서 『공문잡찬』 등의 공문서를 교차하면서 첩보원과 간첩대의 정황을 살폈다.
군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측량지도를 제작하고, 지속적으로 수정을 가해 완성도를 높여 지금의 네비게이션처럼 면밀한 조선 침략지도를 만들어낸 데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참모본부 내 육지측량부가 제작한 지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치밀하고 정확도가 높아졌음을 확인했다. 이 땅에서 일본침략에 대항해 맨몸으로 항일 투쟁을 하던 우리 민중은 일본군과 달리 극비 특비로 다루던 지도 한 장조차 손에 넣기 어려웠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맞대응해 싸울 수 있었겠는가.
조선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일본의 계획된 첩보활동과 정보에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패망의 원인을 단순히 나약하고 무능한 조선의 왕, 부패한 정부 관료에게만 떠넘기기에는 일본 정부가 관리해온 당시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일본의 책략과 술수, 정벌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했고 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정부 수립 초기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첩보원들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사전 첩보활동으로 어떤 일을 행했는지를 담고 있다. 침략의 정서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이 일본정부의 참모국 즉 참모본부와 소속 첩보원들이었다. 엄청난 양의 첩보를 축적해낸 이들의 정보활동은 우리가 굳이 알 필요 없는 하찮은 정보가 아니다. 저들의 시작은 청일전쟁, 대만병합, 러일전쟁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했고, 한국병합, 만주국 건설, 중일전쟁, 태평전쟁으로 치닫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우리가 무시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사사하고 미미한 것이 아니었다. 저들이 만든 인문정보, 지리정보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으로 막강하고 방대하다.
이제부터라도 일본을 제대로 알자, 조선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장래가 없다
목차

지은이의 말

1부 메이지 원년, ‘신의 나라’ 선포하다
1. 메이지 정부, 시작부터 조선침략 기
조선은 낮추고, 일본은 높이다

2. 조선, 꼭 먹어야 할 ‘도마 위의 고기
쓰시마번, 조선 외교에서 밀려
“조선은 반독립

3. 일본정부, 조사정찰단 특파
침략의 명분 쌓기 사전
외무성 조사정탐보고서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
외교 조사 정탐원의 속내

4. 메이지 정부의 은밀한 조선침략 준비
먼 나라는 친하게, 가까운 나라는 발밑에
일본이 청국에 묻기를 “조선은 속국?”

2부 일본정부, 간첩대를 두다
1. 간첩대, 첩보활동 시작
참모국, 일본 최초 군사정보조직

2. 1872년, 첩보원들 조선과 청국으로 뱀의 눈으로 스며들다
1871년, 미국의 군사력을 등에 업으려는 일본
첩보장교의 업무 매뉴얼을 만들다
1872년, 칼 차고 동래 왜관 밖으로
일본 외무성, 동래 왜관 장악 준비
조선의 정세, 정확하게 간파하라
미국 군함에서 조선 항해지도를 빌리다
첩보원들의 활동비 책정
육군성.해군성.외무성.대장성, 첩보원들 전폭 지원
「만주시찰복명서」
조선침략을 둘러싼 일본 수뇌부의 집안싸움

3. 육군 참모국, 조선침략의 발톱을 달다
1873년, 간첩대 조선.청국 특파
첩보원들의 은밀한 첩보 수집

4. 1873년, 고종의 집권과 외교정책의 변화
대원군, 뒤로 밀리다
1875년, 일본 군함 군사력 과시

5. ‘친일파 1호’ 김인승
외방도의 본얼굴
조선침략 준비지도를 만들다
외무성 첩보원 세와키 히사토, 조.러 국경지대로 특파
일본 외무성, ‘친일파 1호’ 조선인 김인승 고용
강화도조약 체결단 속으로 들어온 첩보원
일본 해군성, 조선 연안 측량

6. 농락당한 통상 교섭
미야모토 고이치, 첩보원과 동행
일본 외무성.육군성.해군성, 조선침략 준비현황 보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 알아내기 위한 밀탐

3부 일본 첩보원들, 활개를 치다
일본, 해외 침략으로 방향을 틀다


1. ‘늑대의 탈’을 감춘 하나부사
측량을 위장한 조선 정탐
서울로 들어가는 지도 만들어 조선 압박
조선 침략 준비를 위한 사전측량
하나부사, 조선을 간보다

2. 1878년, 개항장을 핑계로 들쑤신 조선의 해안
아마기 군함에 실린 일본의 속내
약탈무역에 맞선 해관세 징수

3. 1879년, 전략의 요충지 원산항 뚫리다
외교관 야마노조 스케나가의 조선 염탐보고
열고 싶지 않았던 원산항 열다
하나부사, 철저하게 계획한 오만방자
하나부사와 동행한 첩보원들
가이즈 미즈오, 정탐 내용 수뇌부에 보고
곤도 마스키의 「진강기」와 『조선팔역지』
도쿄지학협회 속내, ‘동아시아는 내 것
해군성, 조선 해안을 장악

4. 공사관부 무관, 공인 첩보원
공사관부 무관의 실체
공사관부 무관의 첩보원 관리
첩보원 관리 시스템 구축
조선어.중국어 유학생의 현지 첩보원화
일본공사관 서울 개설과 어학생의 첩보원 활동 시작

5. 임오군란, 일본에겐 다시 없는 기회
첩보원이 본 임오군란의 첫날
일본 참모본부 창립 후 첫 동원령 발동

4부 일본 간첩대, 이겨 놓고 침략한다
1. 1883년, 어둠 내리깔린 한반도
‘외방도’, 비밀에 싸인 침략
‘조선털이 허가증’ 호조와 간행

2. 자근자근 조선밟기
‘간행이정’ 확대를 최대한 활용
조선의 특별 보호 아래 대놓고 정탐
희생으로 포장된 이소바야시 신조
가이즈 미즈오, 조선을 속속들이 파고들다
식물.광물 조사를 위장한 첩보원
해군 첩보요원의 정탐보고서

3. 첩보원들 ‘한반도 침략준비지도’ 완성
1884년
1885년
1886년
일본정부, 1886년부터 중국을 넘어 베트남과 인도로 첩보요원 파견
1887년~1888년
1888년, ‘알려지면 정말 안 되는 책’ 『조선지지략』
『조선지지략』 완성 이후 더 치밀해진 첩보 수집

4. 조선, 외세의 일본 침략을 막아주는 방어
최초의 일본총리 야마가타 아리토모, “조선은 일본의 생명선”
‘새 사냥’을 빙자한 무력침략 루트 확정

5. 일본, “가즈아, 조선을 먹으러”
참모본부 최고 사령탑, 이름까지 바꾸고 조선 정세 재정탐
조선 무력침략 전 대놓고 한반도 정밀 측량
해군성 쓰쿠바함, 1893년 12월 발동 걸다

부록 ‘조선털이 허가증’ 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