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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소앙집: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사상가 조소앙의 저술

대등서명
素昻集
발행사항
서울 : 한국고전번역원, 2019
형태사항
286 p. : 삽화, 초상 ; 24 cm
ISBN
9788928406142
청구기호
911.066 조55ㅅ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지금 이용 불가 (1)
1자료실00019911대출중2025.02.07
지금 이용 불가 (1)
  • 등록번호
    00019911
    상태/반납예정일
    대출중
    2025.02.07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 저술 《소앙집》 완역


봉기하라! 독립군아 일제히. 독립군은 천지를 힘쓸라!
한 번 죽음은 인간의 면할 수 없는 바이니
개, 돼지와 같은 일생을 누가 구차히 도모하겠는가?
살신성인하면 2천만 동포는 하나 되어 부활하니 어찌 제 몸을 아끼며,
집안 재산을 바쳐 나라를 되찾으며 3천리 옥토는 자가의 소유이니
어찌 한 집안의 희생이 아까우랴.
- 대한독립선언서 中-

대한민국헌법 전문 첫줄에는 “유국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조직된 기관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뼈대이다. 이에 한국고전번역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내고 삼균주의의 독립 국가를 꿈꾸었던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 선생의 대표 저술인 《소앙집》을 번역 출간하였다.

□ 조소앙은 누구인가
1887 경기도 파주에서 부친 조정규와 모친 박필양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02 성균관 경학과에 입학
1904 성균관을 수료하고 황실유학생에 선발되어 도쿄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
1912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
1913 중국 상하이로 망명
1917 신규식 등 14인의 명의로 발표한 〈대동단결선언〉에 참여
1919 2월 지린(吉林)에서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
독립운동가 39명이 서명한 최초의 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대한민국임시헌장〉 기초위원으로 선임
1930 안창호,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 창립. 삼균주의에 의거한 독립운동 이념 제시
임시정부 외무부장에 선출
1937 김구, 이청천 등과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결성
1941 광복 후 수립할 대한민국 건설 계획에 구체화한 〈대한민국건국강령〉 기초
1943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에 선임
김구 주석과 함께 장제스를 만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의 독립을 승인받기 위한 외교활동 전개
1950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 성북구에서 당선. 6?25전쟁 때 납북
1958 9월 10일 삼균주의 계승을 유언으로 남기고 순국
1989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 《소앙집》, 세계에 한국의 독립의지를 알리다

“한민족은 일본인에게 무장해제 당한 뒤로
일종의 특수한 무기를 얻어서 일본인가 투쟁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이다.”

조소앙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론가이자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역사 철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저술이 바로 《소앙집》이다. 《소앙집》은 1930년 전후에 쓴 그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1932년 중국 상하이에서 간행되었다.
《소앙집》은 크게 상편과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은 ‘한국의 현황과 혁명의 추세’라는 주제의 글로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3장은 정치, 교육, 경제 세 분야로 나누어 일제의 지배하에 놓인 우리나라의 실상을 진단하였다. 조소앙은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 한민족의 상태를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던 각종 계급이 나라가 파괴되고 집안이 멸망하여 함께 노예로 편입되고 말았다.”라고 진단하였다.
제1장 〈다른 민족 전제 아래의 정지척 유린〉에서는 일본의 식민통치 기본 정책에 대해 한민족을 체포, 구금하는 것을 능사로 삼고 독립운동은 철저하게 탄압하며 전국 각지에 경찰서와 헌병대를 설치하여 압박하는 것이라 판단하였다. 조소앙은 이러한 상황을 통계 자료를 제시하여 증명하였다.

제2장 〈다른 민족 전제 아래의 교육적 탄압〉에서는 5000년 찬란한 문화를 가진 종족이 다른 민족의 침략으로 하루아침에 문화, 종교, 언어, 습속이 스러지고 매몰되었는데 특히 교육 쪽이 심각하였다. 조소앙은 이러한 상황을 한국 내 보통학교?중등학교 교사 중 한국인과 일본인 인원수 비교, 한국인의 입학 제산, 졸업생들의 진로 등에 대한 통계 자료를 제시하여 설명하였다.
제3장 〈다른 민족 전제 아래의 경제적 파멸〉에서는 한국 경제의 일반적인 상황을 제시하면서 농업 생산액을 비롯하여 수산물?광물?염전?공업?상업?철도?목재?무역 등에 대한 통계자료를 제시하였다. 또한 1910년부터 1926년까지 한국과 일본의 인구 증가 비교표를 제시하여 한국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을 일본인의 침입과 토지의 병탄이 성행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4장 〈한국 혁명의 역사적 토대〉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사회제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일반 백성들이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갖지 못한 채 의무와 억만을 받아온 불평들의 역사를 설명하였다.
제5장 〈한국 혁명운동의 체계〉에서는 흥선대원군 집권한 이래 1919년 3?1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혁명운동사를 정리하였다. 제1기 1863년 이하응(李昰應)의 황족혁명, 제2기 1887년 김옥균(金玉均) 같은 귀족 청년의 벌열혁명, 제3기 1894년 전봉준(全琫準)의 평민혁명, 제4기 1896년 서재필(徐載弼)의 민권혁명, 제5기 1919년 손병희(孫秉熙)의 대일본 독립운동 등으로 구분하여 이 혁명운동의 특징, 주체, 방법, 결과 등을 설명하였다.
제6장 〈광주혁명의 진상〉에서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발발과 그 전개 과정을 설명하였다. 조소앙은 광주의 역사적 지위부터 광주혁명 발생 이전 전국의 불안전한 상태를 설명하고, 이어 광주혁명이 폭발한 진상과 이 운동이 확대되어 서울 시위까지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하였다. 이는 광주학생운동에 관한 기록물 중 단연 주목할 만한 것으로, 조소앙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학생들이 포진하여 시위하였는데 25명이 진두(陣頭)에 서서 5열을 맞추고, 가장 어린 학생들을 가운데 줄에 세웠으며, 다음으로 비교적 건장한 사람을 정렬하여 줄을 세웠다. 서로 왼쪽 어깨를 기대로 오른쪽 어깨에 무기를 나누어 메고서 ‘대한독립만세! 타도 일본제국주의’라고 크게 외쳤으며, 아울러 혁명가를 크게 부르면서 저잣거리를 가로질러 장사진을 이루었다.”

조소앙은 독립운동 방략에 사상적 깊이를 더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을 꾀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하면서 이 명의로 각종 선언문과 성명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는데, 하편에는 이러한 글 1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동성 점거에 대해 중국 당국에 보내는 편지〉, 〈중국 각계에 보내는 전보〉, 〈일본의 죄악을 널리 알리려 중국에 보내는 전보〉에서 3편의 글은 1931년 9월 18일 일본의 관동군(關東軍)이 류탸오후에서에서 만철(滿鐵)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의 장쉐량의 동북군(東北軍) 소행이라고 조작한 사건 이후 발표한 선언서이다. 이 사건 직후 일본은 만주 전 지역을 점령하였고, 조소앙은 한국과 중국의 대일 항전의 연대를 촉구하였다.

“우리는 한국이 원수를 갚고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중국이 의리를 받들고 치욕을 씻기 위해, 국제 사회와 인류가 강도를 박멸하고 공공의 적을 소탕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한국의 지사들과 함께 검을 들고 일어날 것을 맹세하니, 중국의 호걸들과 함께 전선에 서서 저 흉악한 적을 제거하기를 원합니다.”

〈《상하이주간》 사설〉에서는 1925년 5월 9일 발행된 《상하이주간》에 실린 것으로 중?한 양국 간에 의지하고 협력하여 일제의 침략에 맞서 동맹을 맺어 항전할 것을 요구한 글이다. 이 글의 말미에서 조소앙은 중.한 양국 간의 동맹을 가상하여 아래와 같은 조약문을 제시하였다.

중.한 동맹조약
제1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인민은 상호 협력해서 일본을 배척할 의무를 균등하게 지킨다.
제2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인민은 일본인과 교류를 끊을 의무를 균등하게 지킨다.
제3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인민은 일본 재화를 사용하지 않을 의무를 균등하게 지킨다.
제4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인민은 일본인의 비밀과 죄악을 폭로할 의무를 균등하게 지킨다.

위 4개 조항은 반드시 21개 조항이 완전히 폐기되고 아울러 한국이 완전하게 독립했을 때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인민이 폐지를 공식 선포한다.

중화민국 4억 인민
대만민국 2000만 인민


〈중국 각계에 삼가 알림〉에서는 다나카 기이치가 실시한 만몽정책(滿蒙政策)의 내막과 실상을 밝힌 글이다. 조소앙은 중국의 형세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서 “만주와 몽골은 두뇌와 같다.”라고 하여 이 지역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다. 일본의 대륙 정책과 중국과의 관계, 일본 제국주의 유린하의 만주와 몽골의 상황을 등 21가지 예시를 통하여 일제의 만몽 침략을 제시하여 중국 사회를 각성하는 데 치력하였고, 이를 통해 만주와 몽골의 자유, 중국의 독립, 동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일본에 대항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조소앙은 동삼성(東三省)에 이주한 한국 교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 내 화교 사상자 발생 사건에 대한 선언〉에서는 일본의 간교한 술책에 빠져 한국인과 중국인이 갈등을 빚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한국 교민의 정체성을 해명하고,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조리 있게 제시한 글이다.
목차

일러두기
해제|문필 혁명가의 자화상, 《소앙집》

소앙집 상편
한국의 현황과 혁명의 추세(1930년 저술)

제1장 다른 민족 전제 아래의 정치적 유린
1. 체포만 일삼는 일본의 정치
2. 혁명 사상에 대한 단속망
3. 한국인을 탄압하는 군대와 경찰 기관
4. 죄수의 급격한 증가와 감옥의 확장
5. 언론, 집회, 결사, 출판에 대한 탄압의 일반적 상황

제2장 다른 민족 전제 아래의 교육적 탄압
1. 교육계의 모순성
2. 가혹한 입학 제한
3. 학생의 저항
4. 졸업생의 진로는 어떠한가
5. 최근 학생의 혁명운동 및 일본인의 심한 탄압의 참상

제3장 다른 민족 전제 아래의 경제적 파멸
1. 한국 경제의 일반적인 상황
2. 한국의 인구 문제
3. 토지 겸병의 위기
4. 지주의 몰락과 농노의 급격한 증가
5. 한국인 쇠락의 실제 상황

제4장 한국 혁명의 역사적 토대
1. 인민 기본 권리의 불평등
2. 인민 생활 권리의 불평등
3. 인민의 배울 권리의 불평등
4. 망국조약의 연혁

제5장 한국 혁명운동의 체계
1. 총서
2. 제5차 혁명 이후 각 방면 활동의 대략적 상황

제6장 광주혁명의 진상
1. 광주의 역사적 지위
2. 광주혁명 발생 이전 전국의 불안정한 상태
3. 광주혁명 폭발의 진상
4. 경성 제1차 시위
5. 경성 제2차 시위
6. 여자 시위운동의 예비 대표회의

소앙집 하편
일본의 동성 점거에 대해 중국 당국에 보내는 편지
중국 각계에 보내는 전보
일본의 죄악을 널리 알리려 중국에 보내는 전보
《상하이주간》 사설
중국 각계에 삼가 알림
《한보특간》 간행사
화교 사상자 발생 사건에 대한 한국 상하이임시정부 외무장의 성명서
한국 내 화교 사상자 발생 사건에 대한 선언
한국독립당 선언
성명서
동삼성의 한국 교민 문제
한국독립당의 근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