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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착자료

단행본

이승만이 대한민국이다: 대륙문명권에서 해양문명권으로

개인저자
이주영
발행사항
서울 : 북앤피플, 2022
형태사항
528 p. ; 23 cm
ISBN
9788997871582
청구기호
340.99 이76ㅇ
서지주기
참고문헌, "이승만 연보: 독립·건국·호국을 위한 투쟁 일지"와 색인 수록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지금 이용 불가 (1)
1자료실00020042대출중2024.12.02
지금 이용 불가 (1)
  • 등록번호
    00020042
    상태/반납예정일
    대출중
    2024.12.02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이 책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인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 Syngman Rhee, 1875-1960)의 생애를 그가 살았던 시대(時代) 상황에 비추어 서술한 전기(傳記)이다. 필자는 그의 생애에서 우리 국민이 참조해야 할 귀중한 경험(經驗)과 유산(遺産)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은 조선왕조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는 드물게 90년의 긴 세월을 살면서 1890년대 말의 애국계몽운동,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해방 후의 건국운동, 6·25전쟁 수행, 1950년대의 국가경영에서 많은 족적을 남겼다. 따라서 그의 생애는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일생을 합친 것만큼 많아 보인다. 게다가 그의 활동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냉전 등 세계현대사의 거대한 사건들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승만은 조선왕국의 가난한 백성으로 태어나 청년기에 나라까지 잃었던 “불쌍한” 조선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국적 없는 망명객 신분으로 나라를 찾는다며 낯설은 외국 땅을 헤매며 갖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얻은 교훈은 간단했다. 약소민족의 운명은 강대국(强大國)들의 국제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따라서 군사력이 없는 한(韓)민족이 독립을 찾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독립운동은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외교독립론(外交獨立論)으로 나타났고, 독립 후의 국가수호 전략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는 한미동맹론(韓美同盟論)으로 구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이 같은 이승만의 교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민족의 자주성과 통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족주의(民族主義)와 엘리트에 대항한 민중을 예찬하는 민중주의(民衆主義)의 감정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인들이 약소민족의 지도자 이승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명분론(名分論)에서 벗어나 강대국들의 냉혹한 현실정치(現實政治)에 비추어 역사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약소국의 현실을 무시한 채 지도자는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다는 당위(當爲)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태도는 삶의 실제와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해석(解釋)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역사해석이 그처럼 비현실적이 되는 것을 우려해 역사학계에는 오래전부터 사용되는 경구(警句)가 있다. 그것은 역사책을 읽기 전에 먼저 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보라는 말이다. 저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 출신 지역, 신분, 종교, 이념에서 오는 편견 때문에 “있었던 그대로” 써야 한다는 객관성(客觀性)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목차

책머리에
1. 서양문명과의 만남
(1) 위정척사파 나라에서 성장
(2) 배재학당에서 만난 선교사들
2. 애국계몽운동
(1) 민주주의 첫 학습
(2) 언론인으로 출발
3. 왕조에 대한 저항과 감옥생활
(1) 황제에 대한 반역
(2) 5년 7개월의 감옥생활
(3) 기독교는 문명개화의 도구
4. 유학길에 맡은 정부밀사
(1) 선교사들 도움으로 미국유학
(2) 미 대통령 만나 독립보전 호소
(3) 조지워싱턴대학 시절
5. 외교전문가가 되기 위한 길
(1) 하버드대학 석사과정
(2) 프린스턴대학 정치학 박사
6. 잠시 귀국해 YMCA 활동
(1) 조심스러운 애국계몽운동
(2) ‘105인 사건’으로 미국 망명
7. 외교독립론의 정립
(1) 독립운동 기지가 된 하와이
(2) 무장투쟁론자와의 첫 충돌
8. 제1차 대전과 외교독립론의 실험
(1) 윌슨 민족자결주의의 영향
(2) 임시대통령 자격으로 외교·홍보활동
9. 상해에서 당한 수난
(1) 무장투쟁론자들로부터의 공격
(2) 좌우합작론자들의 비협조
10. 워싱턴 군축회의와 임시정부
(1) 시험대에 오른 외교독립론
(2) 탄핵으로 잃은 임시대통령직
11. 국제연맹에서 펼친 외교독립론
(1) 임시정부 전권대표로 복귀
(2) 동지이기도 한 아내 프란체스카
12. 임시정부 승인 투쟁
(1) 미국 대통령 설득이 목표
(2) 제2차 대전과 독립의 희망
13. 바뀌기 시작하는 미국의 태도
(1) 한국독립을 도운 미국인들
(2) 미 대통령에 전달된 독립의지
14. 한국독립 약속의 기적
(1) 1943년의 카이로 선언
(2)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절감
15. 소련과 반드시 협의하려는 미국
(1) 소련의 한반도 개입을 우려
(2) 샌프란시스코 연합국회의로부터 소외
16. 해방 후 소련과 미국의 점령정책
(1) 해방 당시의 이승만
(2) 소련의 북한 단독정부 수립
(3) 좌·우파에 중립적인 미군정
17.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
(1) 모스크바 의정서의 파장
(2) 소련에 대한 미국의 헛된 기대
18. 자율적 정부수립으로 방향 전환
(1) 남한 과도정부의 추진
(2) 미군정은 좌우합작 추진
(3) 대한노총 위원장이 된 이승만
19. 대안 제시를 위한 미국 방문
(1) 선거를 통한 정부수립 건의
(2) 트루먼 선언에 대한 감사
(3) 귀국길에 중국의 장개석 방문
20. 유엔으로 넘긴 한국독립 문제
(1) 다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2) 유엔의 남북한총선거 결의
21. 유엔 결의 실행을 둘러싼 대립
(1) 좌파와 중도파의 선거저지 운동
(2) 총선거를 못하게 될 위험성
22. 남한만의 선거를 허락한 유엔
(1) 남한만은 ‘선거가 가능한 지역’
(2) 평양에 간 남북협상파
23. 한반도 최초의 자유민주국 305
(1) 1948년의 5·10선거
(2)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의 도입
24. 신생국의 불안한 출범
(1) 건국세력의 분열
(2) 힘들게 받은 유엔의 국가승인
25. 신생국의 취약한 국가기반
(1) 극심한 내부분열
(2) 서두른 농지개혁
26. 미군철수와 안보위기
(1) 1949년의 미군철수
(2) 북한의 오판을 부른 애치슨 발언
27. 6·25전쟁과 호국투쟁
(1) 대한민국 소멸의 위기
(2) 통일의 기회가 된 38선 소멸
(3) 중공군 참전과 통일의 좌절
28. 전쟁 중의 정치적 위기
(1) 국회와 대통령의 충돌
(2) ‘부산 정치파동’과 대통령 직선제
29. 휴전과 한미동맹
(1) 재침략의 위험을 남길 휴전
(2) 동맹확보를 위한 ‘벼랑끝 외교’
(3) 이승만을 달래려는 제네바 정치회의
30. 휴전 후 국가의 안정과 발전
(1)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의 정착
(2) 미국문명과 기독교의 영향
31. 국민교육과 인재양성
(1) 전쟁으로 높아진 고등교육 열기
(2) 전쟁으로 형성된 전문가 집단
32. 해양문명권 편입에 따르는 진통
(1) 미국과의 군사적·문명적 결합
(2) 1954년의 미국 국빈 방문
33. 시련의 ‘건국 대통령’
(1) 자유당의 인질이 된 이승만
(2) 물러날 때를 놓친 지도자
(3) 4·19혁명 이후의 이승만 지우기
34. 마지막 5년의 하와이 생활
(1) 국내체류를 어렵게 만든 상황
(2) 잊혀져 가는 ‘건국 대통령’
35. 이승만의 유산
(1) 인간적 면모
(2) ‘문명전환’의 시대적 역할

이승만 연보: 독립·건국·호국을 위한 투쟁 일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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