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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역사의 종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신작
★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 〈타임스〉 선정 정치 분야 올해의 책
★ 빌 게이츠가 읽은 책
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후보 선거 용지가 48.1cm에 이른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낸 탓이다. 사실 숫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각각의 목소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경고장이자 편지는 매우 시의적절한 때에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상반된 두 가지 디스토피아, 즉 과도한 중앙집권화와 분열로 동시에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민족을 끊임없이 호명하고 자극하며 동시에 국민 통제를 강화하는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정 정체성에 대한 신념으로 뭉쳐 외부와 담을 쌓은 정체성 집단이 출현하면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공통의 합의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의 진보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향을 모색한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까.’ 후쿠야마가 찾고자 하는 답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지키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까’
인정에 대한 요구, 타자 혐오, 포퓰리즘 정치 사이에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 가지 현상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인정에 대한 요구, 타자 혐오, 포퓰리즘 정치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들의 근원에는 현대 사회의 필연인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현상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이 질문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왜 정체성의 불안과 혼란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사람들은 정당, 교회, 학교와 같은 거대 집단을 기반으로 강하게 통합되어 있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소속감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세계화, 인터넷의 발달,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대규모 이주, 불평등의 심화, 소수자 운동, 인권 운동 등이 일어남으로써, 과거에 존재감을 지탱해주던 소속과 기존에 유지되던 삶의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또한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 되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속감과 정체성의 안정을 제공해주던 단단한 토대가 사라진 것이다.
이렇듯 정체성의 안전지대가 사라진 이들은 더욱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줄 집단에 몰입하게 된다. 정체성의 강조와 재등장은 곧 정체성 결핍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 소속감을 갖기 어렵고 인정의 결핍을 겪어온 이들이 민족·인종·성별·종교에 몰두하게 되며,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대상에 대한 혐오로 번지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개별 정체성을 기반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상황은 민족을 비롯해 특정 정체성을 기치로 내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출연하기 좋은 토양이 되어준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백인 민족주의, ISIS 문제, 힌두 민족주의 등이 그 증거다.
여기까지만 보면, 백인·서구·남성으로 대표되는, 과거에 기득권을 누렸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집단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저자는 그러한 시각과 거리를 둔다.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다원화된 사회에서 여러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은 불공평과 부당함에 대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반응이며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투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이해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 법규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흑인인권운동은 소수 집단 시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강한 자각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의 절박한 목소리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정체성에 대한 강조와 정체성 정치의 발흥을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어서 민주주의의 가치, 즉 존엄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길은 무엇인가. 후쿠야마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없던 시기, 정체성 정치가 발흥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다만 우려를 표하는 것이 있다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돼온 30년간의 추세를 반전시킬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대신하는 편리한 대용물”로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동안 외면받아온 집단은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이들의 처지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 경고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의 것이지만, 이와 같은 모순은 정치적 진영논리와 종교의 유무와 지역에 따라 균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한국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끊임없는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학자의 경고를 못 들은 척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다음의 말로 책을 매듭짓는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다양성이 증가하는 사회 현실을 고려하되, 그 다양성 속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약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굳건하게 만들 비전을 제시하는 세상 말이다.
정체성은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운동, 이슬람주의 과격 세력,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많은 정치 현상의 기저에 깔린 공통 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회를 정체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정체성이 고정된 것도, 꼭 출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체성은 분열로 가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통합으로 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에는 그것이 오늘날의 포퓰리스트 정치를 치료하는 해법일 것이다.”
★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 〈타임스〉 선정 정치 분야 올해의 책
★ 빌 게이츠가 읽은 책
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후보 선거 용지가 48.1cm에 이른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낸 탓이다. 사실 숫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각각의 목소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경고장이자 편지는 매우 시의적절한 때에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상반된 두 가지 디스토피아, 즉 과도한 중앙집권화와 분열로 동시에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민족을 끊임없이 호명하고 자극하며 동시에 국민 통제를 강화하는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정 정체성에 대한 신념으로 뭉쳐 외부와 담을 쌓은 정체성 집단이 출현하면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공통의 합의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의 진보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향을 모색한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까.’ 후쿠야마가 찾고자 하는 답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지키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까’
인정에 대한 요구, 타자 혐오, 포퓰리즘 정치 사이에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 가지 현상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인정에 대한 요구, 타자 혐오, 포퓰리즘 정치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들의 근원에는 현대 사회의 필연인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현상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이 질문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왜 정체성의 불안과 혼란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사람들은 정당, 교회, 학교와 같은 거대 집단을 기반으로 강하게 통합되어 있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소속감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세계화, 인터넷의 발달,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대규모 이주, 불평등의 심화, 소수자 운동, 인권 운동 등이 일어남으로써, 과거에 존재감을 지탱해주던 소속과 기존에 유지되던 삶의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또한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 되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속감과 정체성의 안정을 제공해주던 단단한 토대가 사라진 것이다.
이렇듯 정체성의 안전지대가 사라진 이들은 더욱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줄 집단에 몰입하게 된다. 정체성의 강조와 재등장은 곧 정체성 결핍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 소속감을 갖기 어렵고 인정의 결핍을 겪어온 이들이 민족·인종·성별·종교에 몰두하게 되며,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대상에 대한 혐오로 번지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개별 정체성을 기반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상황은 민족을 비롯해 특정 정체성을 기치로 내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출연하기 좋은 토양이 되어준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백인 민족주의, ISIS 문제, 힌두 민족주의 등이 그 증거다.
여기까지만 보면, 백인·서구·남성으로 대표되는, 과거에 기득권을 누렸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집단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저자는 그러한 시각과 거리를 둔다.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다원화된 사회에서 여러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은 불공평과 부당함에 대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반응이며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투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이해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 법규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흑인인권운동은 소수 집단 시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강한 자각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의 절박한 목소리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정체성에 대한 강조와 정체성 정치의 발흥을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어서 민주주의의 가치, 즉 존엄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길은 무엇인가. 후쿠야마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없던 시기, 정체성 정치가 발흥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다만 우려를 표하는 것이 있다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돼온 30년간의 추세를 반전시킬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대신하는 편리한 대용물”로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동안 외면받아온 집단은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이들의 처지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 경고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의 것이지만, 이와 같은 모순은 정치적 진영논리와 종교의 유무와 지역에 따라 균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한국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끊임없는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학자의 경고를 못 들은 척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다음의 말로 책을 매듭짓는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다양성이 증가하는 사회 현실을 고려하되, 그 다양성 속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약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굳건하게 만들 비전을 제시하는 세상 말이다.
정체성은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운동, 이슬람주의 과격 세력,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많은 정치 현상의 기저에 깔린 공통 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회를 정체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정체성이 고정된 것도, 꼭 출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체성은 분열로 가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통합으로 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에는 그것이 오늘날의 포퓰리스트 정치를 치료하는 해법일 것이다.”
목차
서문 006
1장 존엄의 정치 021
2장 영혼의 세 번째 부분 035
3장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055
4장 존엄성에서 민주주의로 073
5장 존엄성 혁명 081
6장 표현적 개인주의 093
7장 민족주의와 종교 107
8장 잘못 배달된 편지 129
9장 보이지 않는 인간 139
10장 존엄성의 대중화 155
11장 정체성에서 정체성들로 175
12장 국민 정체성 203
13장 국민의식을 위한 내러티브 225
14장 무엇을 할 것인가 257
주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