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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문학동네 산문집

풍경과 상처: 김훈 기행산문집

개인저자
김훈
판사항
2판
발행사항
파주 : 문학동네, 2009
형태사항
223 p. ; 20 cm
ISBN
9788954609319
청구기호
814.6 김97ㅍ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2077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2077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내 초로의 가을에, 상처라는 말은 남세스럽다.
그것을 모르지 않거니와,
내 영세한 필경은 그 남세스러움을 무릅쓰고 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_서문에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94년, (그의 말대로라면) “초로”의 김훈은 (그러나 아직) 사십대 중반이었고, 아직 첫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1995, 문학동네)이 출간되기 전이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이미 유려한 문장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그의 문장을 이야기할 때, 『풍경과 상처』는 빼놓을 수 없는 산문이다.

그러므로 김훈 소설을 읽는 것은 사실은 그의 문장을 읽는 일이다.

일몰의 서해에서 소멸하는 것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하늘과 바다와 개펄에 가득 찬 빛의 미립자들은 제가끔 하나의 단독자로서 반짝이고 스러지지만, 그것들은 그 소멸의 순간순간마다 다른 단독자들과의 경계를 허물어,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빛의 생성을 이루면서 큰 어둠을 향하여 함몰되어간다. 떼지어 소멸하는 빛의 미립자들은 시공(時空) 속에 아무런 근거도 거점도 없이 생멸했고, 다만 앞선 것들의 소멸 위에서만 생성되었고, 앞선 것들의 생성 위에서 소멸되었으며, 생성과 소멸의 종합으로서 함몰하였다._「저 일몰_서해/대부도」

저들은 두 겹의 네모꼴을 이루는 산악에 존재를 의탁했고, 거대한 원호를 그리며 그것들을 싸안는 강에 생성을 의탁했다. ‘됨’의 띠를 둘러 ‘있음’의 외곽을 삼았다. 굳어져버린 시간의 껍데기 위에 어찌 삶의 터전을 들여앉힐 수 있으랴. 존재하는 것들이 생성하는 것 위에 실려서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들이 흐르고 흘러서 새로운 존재로 돌아오는 만다라의 강가에 새 날개치는 소리 들린다. 그 강가에 영원성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죽은 정도전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자명하다.

수직들은 견고하고 완강하고 높다. 그것들은 부동하는 존재들이다. 부동하는 것들의 내면에는 죽음이 박혀 있다. 부동하는 것들 사이를 흐르는 강은 그것들의 그림자를 바다에 가져다 버린다. 바다와 만나는 어귀에서, 싣고 온 존재들의 중량을 하역하고 강은 자진自盡한다.

(……)

거대도시의 적막은 무섭다. 인기척 없는 거대도시의 풍경은 마치 유목하는 족속들이 버리고 떠나간 삶의 껍데기처럼 강안과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적막한 거대도시는 인간의 자취에 눈물겨워하는 한 고고학자의 누선을 건드려 거기에서 한 옹큼의 빗살무늬토기라도 찾아내게 할 만했다. 그 수직구조물들의 들판을 숨통이 막힌 큰 강이 도시의 고름과 구정물을 수거해서 겨우겨우 흐르고 있다._「강과 탑_한강/행주산성」

최근 『공무도하』를 펴내며 작가는 ‘스트레이트체’만의 강력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책을 다시 펴내며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풍경’들 앞에서도―그의 말대로라면 상처를 경유해온 그 풍경들임에도―자칫 어설픈 감상으로 빠져들지 않고, ‘이미지와 인문학적 사유가 서로 스며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로 씌어진 이 산문들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다른 어떤 설명도 사족일 것이다.

여기에 묶인 글을 쓰던 시절에 나는 언어를 물감처럼 주물러서 내 사유의 무늬를 그리려 했다.
화가가 팔레트 위에서 없었던 색을 빚어내듯이 나는 이미지와 사유가 서로 스며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를 도모하였다.
몸의 호흡과 글의 리듬이 서로 엉기고, 외계의 사물이 내면의 언어에 실려서 빚어지는 새로운 풍경을 나는 그리고 싶었다. 그 모색은 완성이 아니라 흔적으로 여기에 남아 있다.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 나는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이 챙기는 글을 쓰려 한다.
그러하되, 여기에 묶은 글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 오지의 풍경을 보여준다.

_개정판을 내며


또하나, 을숙도와 다산초당과 한강과 소쇄원과 강진……의 풍경에서 여자와 겸재와 무기와 악기와 시간을 읽어낸 십수 년 전 그의 산문에서, 소설가 김훈의 현재를 읽어낼 수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피리 죽창, 악기와 무기는 꿈과 욕망의 양쪽 극한이다. 겨울 수북의 대숲 속에서 나는 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이, 선율의 혁명의 꿈이, 한데 합쳐져 오직 거대한 침묵으로 눈을 맞고 있는 장관을 보았다. 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은 결국 다르지 않다. 안중근의 총과 우륵의 가야금은 결국 같은 것이다. 그것들의 꿈은 세계의 구조와 시간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악기는 시간의 내용을 변화시키고 무기는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관여한다. 악기의 꿈은 무기 속에서 완성되고 무기의 꿈은 악기 속에서 완성된다.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의 잃어버린 반쪽이며, 찾아 헤매는 반쪽이지만, 찾아 헤맬수록 그것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서 그것들은 이제는 세계의 두 극지로 갈라져 있다. 악기는 비어 있음의 소산이고 무기는 단단함의 소산이다. 대나무는 연금술사의 귤나무처럼 저 자신의 운명을 연금하지 못하지만,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에 닿았을 때 인간은 그 나무의 속 빔과 단단함에 의지해서 세계와 시간을 흔들어 연금하려는 욕망을 키우기 마련이고, 그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된 운명일 것이다.

_「악기의 숲, 무기의 숲 _ 담양, 수북」
목차

서문 -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건너오는 시조새들
AD 632년의 개
겸재의 빛
정다산에 대한 내 요즘 생각
낙원의 치욕
도망칠 수 없는 여름
산유화
돌 속의 사랑
악기의 숲, 무기의 숲
강과 탑
대동여지도에 대한 내 요즘 생각
오줌통 속의 형이상학
염전의 가을
시간과 강물
먹이의 변방
가을의 빛
저 일몰
억새 우거진 보살의 나라
깊은 곳에 대한 성찰
무늬들의 풍경
헬리콥터와 정현종 생각
'천상병'이라는 풍경
천상병의 정치의식

개정판을 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