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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책략가의 여행: 여러 세계를 넘나든 한 16세기 무슬림의 삶

대등서명
Trickster travels
발행사항
서울 : 푸른역사, 2010
형태사항
611 p. : 삽화 ; 23 cm
ISBN
9788994079103
청구기호
848 데69ㅊ
일반주기
원저자명: Natalie Zemon Davis
서지주기
참고문헌(p. 555-591) 및 \"알와잔 연보 수록\",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2570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2570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미시사 그리고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
미시사란 무엇인가? 과거 역사학의 방법론은 실증주의와 상대주의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실증주의는 사료가 없이는 논의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상대주의 역시 복잡다단한 역사적 사건의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러한 실증주의와 상대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면서 오늘날 새롭게 떠오른 역사학의 한 방법론이 바로 미시사다. 미시사는 대개 생생한 역사적 진실에 더 밀착할 수 있는 주변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또 사료를 실마리로 삼아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역사적 추론을 시도한다. 추론을 통한 가능성의 역사를 가시화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분석과 비전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는 《치지와 구더기》의 카를로 진즈부르그, 《몽타이유》의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 등과 함께 이 같은 미시사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데이비스는 1982년에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출간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16세기 프랑스 랑그독에서 마르탱 게르라는 농민이 아내와 자식을 두고 집을 나간 뒤 8년 만에 돌아와 잘 지내지만 결국 진짜 마르탱 게르가 나타나고 그가 가짜임이 밝혀진다는 사건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데이비스는 여기서 마르탱 게르의 정체성을 둘러싼 진짜 마르탱 게르와 가짜 마르탱 게르(아르노) 그리고 마르탱 게르의 아내(베르트랑드)의 진실게임을 다룬다. 《책략가의 여행―여러 세계를 넘나든 한 16세기 무슬림의 삶》은 이 같은 정체성을 둘러싼 진실게임의 심화·확장판이다. 데이비스는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 무슬림 남성에게 시선을 돌려 그의 내면의 진실을 파헤친다.

알와잔, 정체성을 두고 번민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알하산 알와잔은 1486년에서 1488년 사이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에서는 기독교도에 의해 재정복 운동이 일어난다. 알와잔 가족은 그라나다가 함락되기 직전에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의 파스로 이주한다. 그는 그곳 마드라사(사원학교)에서 수사학, 이슬람법과 아랍시 등을 배운 뒤 파스의 술탄 아래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마그레브, 카이로, 이스탄불 등지를 왕래한다. 또 메디나와 메카를 순례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1518년 카이로에서 파스로 돌아가는 도중 지중해상에서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에스파냐의 기독교 해적에게 붙잡힌 것이다.
이후 그는 자신이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종의 단절과 고립의 삶을 경험한다. 알와잔은 당시의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쳐져 로마 산탄젤로 성에 수감된다. 그러나 곧 풀려나고 1520년에 성베드로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그 뒤 알와잔은 바울서간의 아랍어 역본 전사 작업, 아랍어-히브리어-라틴어 사전 편찬 작업, 쿠란 아랍어 전사본 및 라틴어 역본 교정 작업에 참여한다. 또 1526년에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문화를 담은 대작 《아프리카 우주·지리지》를 저술한다. 이 책은 1550년 베네치아인 라무지오의 편집으로 《아프리카기記》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이후 프랑스어(1556), 라틴어(1556), 영어(1600), 독일어(1805)로 번역되어 아프리카와 이슬람 신앙 등에 관한 유럽인의 시각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알와잔은 1527년 이른바 ‘로마 약탈’ 직후 로마를 떠나 북아프리카로 돌아간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단지 1532년에 투니스에 살았다는 말만 전해질 뿐이다.

알와잔, 왜 책략가인가
데이비스는 알와잔을 ‘책략가’라 칭한다. 왜 책략가인가?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러한 침묵과 때때로 드러나는 모순과 미스터리들이 다름 아닌 알와잔의 특징이며, 그것들을 내가 그와 그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 미스터리와 모순과 꾸며낸 일로 가득 찬 텍스트를 남긴 이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알와잔은 자신이 태어난 이슬람 세계에서 의도하지 않게 기독교 세계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함부로 미래에 이슬람 세계에서 불리할지도 모르는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기독교로 개종했다 해도 그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이 기독교 세계에서 섣불리 불리한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요컨대 알와잔은 적어도 기독교 세계에 있었던 1518년부터 1527년까지 약 10년 동안 불안하고도 긴장된 상태에서 매순간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침묵과 모순, 미스터리다. 《아프리카 우주·지리지》, 《아랍 및 유대명사열전》 같은 저작에서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고, 모호한 서술을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데이비스는 이를 고도의 문화적 생존 전략, 즉 책략이라고 말한다. 알와잔이 책략가인 이유는 책략이 곧 그의 생존 방식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양서조, 이중적 자세를 견지하는 알와잔 자신의 이야기
이런 생존 전략을 상징하는 것이 양서조兩棲鳥다.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살 수 있던 이 새는 처음에는 다른 새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새의 왕이 세금을 내라고 하자 바다로 도망쳐 물고기들과 함께 살게 된다. 그러다가 물고기의 왕도 새의 왕처럼 세금을 거두려 하자 새의 무리로 돌아가 산다. 그렇게 해서 이 새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살았다. 알와잔은 《아프리카 우주지리지》에서 양서조 이야기를 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한 뒤 사람이란 이익이 되면 언제나 그것을 따른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 나 역시 이 새와 같이 할 것이다. ……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욕을 먹고 있다면, [필자는] 그가 아프리카가 아니라 그라나다에서 태어났다고 딱 부러지게 변명할 것이다. 또한 만약 그라나다 사람들이 비난을 듣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그라나다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변명할 것이다.

알와잔은 양서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본심을 드러낸다. 양서조처럼 자신도 이중적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것이다. 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문화들 사이를 책략을 구사하며 자유롭게 오가겠다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이렇듯 알와잔을 둘러싼 모호한 정체성의 막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그의 내면의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책략가의 메시지
알와잔에 관한 증거는 희박하다. 그가 저술한 《아프리카·우주 지리지》와 《아랍 및 유대명사열전》, 바티칸 도서관 필사본이나 전사본, 역본 등에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데이비스는 이러한 빈약한 사료에 자신의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알와잔이 보고, 느끼고, 생각했을 법한 것들을 추리해낸다. ‘아마도,’ ‘어쩌면,’ ‘했을 것이다’ 등과 같은 추측성 어구들로 알와잔 이야기의 살을 붙여나가며 가능성의 역사를 가시화한다.
이런 알와잔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 간에 상호 이해와 소통 및 교류의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다. 곽차섭 교수는〈옮긴이의 글〉에서 “알와잔이 겪은 단절의 삶은 그의 개인사로 볼 때 분명히 강제와 폭력이 초래한 비극이었지만, 데이비스는 그것을 ‘문명의 충돌??로 귀결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두/다 문화 간의 교차와 혼종의 가능성을 찾으려 하였다. 이는 하나의 아이러니지만, 소통의 희망을 주는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던져주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시지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고故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1996년에 《문명의 충돌》을 출간하면서 문명충돌론은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특히 2001년 9월 11일에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며 문명충돌론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하지만 문명충돌론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것과 같이 프레임의 함정에 빠진 주장일 수 있다. 예컨대 미국과 이라크 간의 대립을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라는 프레임의 대결로 몰고 감으로써 반목과 갈등의 구조적 원인이나 문제의 해법에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과 이슬람 세계가 양자 간에 이해가 부족하고 편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슬람 국가와 무슬림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독자들이 두 문명 간의 상호 이해와 소통 및 교류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를 기대해본다.
목차
서론 여러 세계를 횡단하다 Ⅰ 이슬람의 땅에서 살아가다 Ⅱ 전쟁의 땅에서 살아가다 Ⅲ 이탈리아에서의 글쓰기 Ⅳ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에서 Ⅴ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Ⅵ 이슬람과 기독교 신앙 사이에서 Ⅶ 호기심과 관계들 Ⅷ 번역, 전달, 거리 Ⅸ 귀향 에필로그 유사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