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대내외적 환경의 변화는 행정의 이념 및 가치의 내용에도 큰 영향을 미쳐 그 초점을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다양한 행정의 이념과 가치들의 충돌로 인해 행정관리 및 공공정책의 많은 부분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곧 국가경쟁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정이념 및 가치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적 연구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적 연구의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행정이념 및 가치에 대한 논의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복잡해서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기본적인 범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행정이념 및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공공성에 대한 지난 연구에서도 나타났듯이, 공공성의 개념으로 포괄되는 다양한 행정이념과 가치들이 각기 다른 정책 분야에서 다른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는 행정이념에 대한 다양성을 논의하면서도 전체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접근이 주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이론적 논의와 실천적 논의 간의 괴리를 지적할 수 있다.

한편, 이론적인 측면과 함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행정이념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도 본 연구의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실용주의 행정의 내용이 기존에 논의되던 행정이념 및 가치와 달리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는 표현에서와 같이 중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고 실리라는 점을 강조한 부분은 특히 최근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더욱 그 적실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용 그 자체가 좋은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으며, 실용에 대한 평가는 어떤 주체나 목적에 근거해서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이념에 대한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실용의 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행정이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날 행정의 위상 및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향후 행정의 미래 연구 방향에 대한 패러다임적 논의를 다루고 있다.
행정이념과 가치의 다양한 혼재 속에서 한국 행정에서 논의되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철학·아이디어 및 현실의 행정과정에서 제기되고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주장들을 정리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실용주의의 시각에서 상호 절충을 통해 국가발전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 책에서는 행정이념과 실용행정에 대한 개념 중심의 이론적 연구와 함께 행정 및 정책 사안을 중심으로 한 실제적 연구의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론적 연구에서는 우선 우리 사회의 국정 현안들과 관련한 다양한 이념적 갈등의 현상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기존의 행정이념 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용주의 철학에 입각한 실용행정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주요국의 행정이념과 실용행정에 대한 사례 분석을 통해 각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행정이념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실용행정의 관점에서 이들을 재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비교하여 한국에서의 행정이념과 실용행정에 대한 이해를 시대적인 변천과 함께 주요 관계집단의 인식 차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실제적 연구의 측면에서는 실용행정의 관점에서 종합된 다양한 행정이념의 논의를 실제 현실의 행정 및 정책 사안에 적용시킴으로써 기존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행정이념 연구의 비현실적인 추상성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행정 및 정책 사안의 선정과 관련해서 인사·조직·재무 등 기존의 일반적인 행정관리 부문뿐만 아니라 복지·교육·환경·경제 정책 등 다양한 정책 부문을 포괄하여 실용행정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결국, 이 책에서 제시하는 실용행정의 의의라는 것은 다양한 행정이념의 갈등이 발생하고 혼란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행정의 바람직한 선택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적 가치로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정부수립과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외부의 다양한 행정이념 및 가치, 이론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한국 현실에 적합한 행정이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이로 인해 외국에서 이론적으로 검증되고 바람직하다고 평가된 행정이념들에 매몰되어 실질적인 현실의 문제해결에 충분한 대응성을 보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행정이념과 그 행정이념을 이해하는 하나의 준거틀로서 실용행정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의의는 상당히 공감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은 다수의 집필진들의 공동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이며, 개별 집필진들의 헌신적 노력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전체 원고의 체계적인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본 편저자들의 책임을 통감하며, 독자들의 다양한 비판과 지적을 통해 행정이념과 실용행정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길 바란다.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직간접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한국행정연구원의 박응격 원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