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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자료

단행본

폭력사회: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대등서명
Traktat uber die gewalt
발행사항
파주 : 푸른숲, 2010
형태사항
343 p. : 삽화 ; 22 cm
ISBN
9788971848289
청구기호
334.23 조848ㅍ
일반주기
원저자명: Wolfgang Sofsky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3093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3093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폭력은 어떻게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가?

나날이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전쟁, 테러, 인종 차별……
폭력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폭력을 더 체계적인 위협으로 만들어온 과정을 추적한다

간략한 소개


독일의 사회학자인 볼프강 조프스키의 《폭력사회 Traktat ?ber die Gewalt》가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조프스키는 1993년에 《테러의 질서: 유대인 수용소》라는 책으로 지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저작물에 수여하는 ‘숄 남매 상’을 받았으며, 이후 현대 사회에서 부각되는 안전과 자유의 대치 상태를 해부한 《안전의 원칙-위험사회, 자유나 안전이냐》(2007년 푸른숲 출간)를 비롯, 《공포의 시대: 정신착란 테러 전쟁》, 《작전명 ‘자유’: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 테러, 재앙, 경제 붕괴 등 현대 사회에서 즉각적으로 전 인류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들을 거대한 문화의 맥락에서 집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저명한 독일어권 언론 매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며 지속적인 저술과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폭력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매스 미디어가 전달하는 뉴스나 이미지들은 폭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생생한 위협으로 바꿔놓는다. 특히 국가 간, 도시 간의 거리감이 축소된 지금 ‘너의 위험이 곧 나의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해졌다. 《폭력사회》는 이러한 위협의 원천이 폭력임을 밝히며 폭력이 사회와 인간, 그리고 문화와 어떻게 관계 맺으며 서로를 움직이는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인간이란 과연 폭력을 배척하는 존재인가? 사회는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인가? 인류의 빛나는 유산인 문화(문명)은 폭력을 쇠퇴시킬 수 있는가?’ 같은 답이 분명해 보이는 질문을 새로 던지며 우리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인간과 폭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사회가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의 산물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또한 폭력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이들을 예로 들며 인간이 안전한 상태에서 만끽하는 폭력의 쾌감을 해부한다. 아울러 물질 문명 혹은 문화의 발전과 고상한 이념을 추구하는 종교가 폭력을 쇠퇴시키기보다는 폭력을 더 확장시키고, 더욱 잔혹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은 폭력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폭력을 더 체계적인 위협으로 만들어온 과정을 밝히는 1장을 서두로, 자기 확장이 필요해진 인간이 고안한 무기를 다룬 2장, 폭력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밝힌 3장과 폭력 희생자의 내면과 고통을 다룬 4장에 이르기까지 폭력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과 폭력의 산물로서의 사회를 고찰하고 있다. 이후 고문, 구경꾼, 사형 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폭력과 관련을 맺는 인간의 모습과 문화의 작용을 폭넓게 살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만연한 폭력에 대해서 현상적인 대응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의 본질과 속성을 다면적으로 깊게 사유해서 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출간 의의

역사를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라크 전쟁, 9·11 테러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테러 시도와 위협, 아이티와 칠레 지진 현장에서의 약탈과 폭동 등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21세기에도 여전히 폭력은 우리 곁에서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통신망의 발달로 모든 소식이 즉각 타전되면서 폭력은 더더욱 인류에게 생생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게임에서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테러와의 전쟁’에 각국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공항마다 전신 스캐너 도입 여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지금, 한편에서는 테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다각적인 위협의 대상이자 대중 오락물이라는 양가적인 얼굴을 가진 폭력을 저자는 역사적 장면을 통해 본질적이고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그 결과 폭력은 ‘선’에 대비되는 ‘악’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와 깊숙이 관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이 사회가 생겨난 근원이다
저자는 1장 <질서와 폭력>에서 “사회가 생겨난 근원은 행동이 아니라 신체상의 고통이다”라는 도발적이고도 낯선 주장을 내세우며 사회와 폭력의 관계를 추적한다. 사회가 구성되던 최초의 순간을 압축적으로 기술하면서 저자는 신체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자 자유를 포기한(자기 방어 수단을 버리고 공동 의지의 대표자에게 자신의 무기와 목소리를 넘긴) 인간의 선택이 가져온 혼란스러운 상황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폭력의 집중화와 중앙집권화가 인간을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했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 답은 ‘아니오’이다. 오히려 폭력의 행사자가 아닌 폭력 행사의 대상물로만 남은 인간 개인은 폭력 앞에 한없이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편재해 있던’ 불안 요소가 사회가 구성되고 지배 질서가 확립되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위협’으로 바뀐 것이다. 질서가 수립된 사회는 그것의 창안자인 인간을 보호하기보다 체제가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예외 사항’들을 막고, 그 사항들을 범한 인간을 처벌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인간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수립한 사회 질서가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처벌이나 절멸의 대상인 사회 질서 밖의 인물, 즉 타자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이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명쾌하다. 사회는 타인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끊임없는 충동이나 노동의 필요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의 경험이다. 사회란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공동의 보호를 위해 만든 예방 조치이다. 사회가 구성되면 각자가 누리던 절대적 자유의 상태는 끝이 난다. 이제 만사가 허용되던 시절은 끝났다. <질서와 폭력> 41~42쪽

질서를 세우려는 프로젝트는 폭력의 무한 진행뿐만 아니라 규제의 무한 전진에 빠지게 된다. 즉 모든 사건이나 사람들에게는 각자 정해진 자리가 있고, 모든 학과에는 해당되는 분야가 정해져 있으며, 모든 개인에게는 하나의 방이 할당되는 철칙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질서의 유토피아는 자유의 완전무결한 제거를 목표로 삼게 된다. 질서의 이상은 가끔 수리하고 점검만 하면 되는 사회 기계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것은 행동하고 느끼는 생명체인 인간의 죽음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 즉 사회적 지배의 죽음이기도 하다. […] 질서는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질서와 폭력> 29~30쪽

이 책에서는 폭력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타자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동질적인 사회의 핵심 영역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회적 범주’, 즉 타자로 분류되고 취급되는 사람들은 중세 기사의 노리개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 사형, 박해, 또는 추방이라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희생된다. 이들이 실제로 사회 질서를 위협하였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폭력과 사회(지배) 질서의 관계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해석한 저자는 사회가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자극한다는 점을 밝혀낸다. 즉 사회는 지배의 위엄을 내세우고자 스스로 희생물을 찾는다. 저자는 여러 폭력 형태를 아우르며 폭력 희생물의 공통점을 찾아가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바로 폭력의 역사는 ‘하층민, 아웃사이더, 부적응자의 사회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많은 학살자들은 자신의 학살 행위에 정당성이라는 외피를 입히기 위하여 희생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허구를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을 통해 단지 법의 이념적 타당성만을 다시 한 번 확증할 뿐이다. 사형 집행은 금지된 선을 넘어서는 것에 반응한다. 거기에는 늘 희생자의 행위가 실재적인 것이건 상상에 의한 것이건 간에 죽일 만한 범죄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나 국가 당국 같은 집단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제거하는 처벌을 어떤 종류의 범죄에 적용하는가? 일탈이나 법규 위반에 대한 문화적인 분류는 무척 다양하겠지만 결국 사형을 당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늘 위법과 금기 파괴이다. <학살> 177쪽

[…] 사냥꾼들은 폭력에 대한 허기를 사후에라도 정당화하기 위해 공식적인 외관을 갖춘다. 희생자에게 섹스나 종교와 관련된 범죄를 덧씌우기도 하고, 악령의 힘이나 전염병을 가진 자로 몰기도 한다. 신체적인 결함이 사회적인 낙인으로, 통념에서 벗어난 사고는 정신착란의 표시로 간주된다. 사회적인 박해와 추방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일탈에 대한 딱지 붙이기는 늘 반복되고 있다. 그중에 타자로 지목되거나 유죄로 찍히는 자는 비교적 임의로 선정된다. <사냥과 도주> 230쪽

폭력을 장악하는 순간, 일상적인 삶을 뛰어넘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회의 탄생이 ‘인간이 경험한 신체상의 고통’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인간은 폭력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폭력을 오락으로서 향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폭력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여러 예를 보여준다. 3장 <폭력과 격정>에 등장하는 중세 프랑스의 기사 ‘질 드 레'는 폭력을 쾌락으로 삼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발각되기 전까지 자신의 하수인들과 함께 유아 살해를 반복적으로 저질렀다. 사회적 신분이 높았던 그는 살해할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하수인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높은 신분의 귀족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완벽하게 폭력을 장악하고 그야말로 순수하게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예를 예외적인 일탈 상황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타인에게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폭력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점의 쾌락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잔혹 행위가 인간에게 ‘구역질과 혐오감만을 불러일으킨’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 시합과 공개 처형장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자신은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기고 폭력을 향유했던 이들이다. 이와 같은 구경꾼들을 오늘날 안방에서 폭력 영화나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원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폭력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오락거리이다. 저자는 검투장의 구경꾼들이 처음에는 단순한 관찰자였다가 나중에는 엄지를 올리고 내리며 검투사의 생명까지 좌지우지하게 되는 폭력의 주재자로 변모하는 모습을 통해 폭력이 단순한 오락거리에 그치지 않음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무비판적으로 폭력을 즐기는 우리의 모습이 파병 문제나 대량살상 무기 개발과 같은 문제에 자신도 모르게 엄지를 내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사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질 드 레라는 실존 인물은 전설의 인물인 17세기 프랑스 동화에 나오는 푸른 수염의 기사와 합쳐졌고, 담시(譚詩)나 동화, 영화, 오페라, 오라토리오의 소재로 자리 잡았다. 이 음울한 귀족에 대한 오랜 세월에 걸친 주목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리는 과연 정말로 잔혹 행위가 구역질과 혐오감만을 불러일으킨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구역질과 혐오감은 내면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것을 꺼릴 때 우리 인간을 덮친다. 확 끄는 매력이 없으면 놀라 밀쳐낼 일도 없다. 깜짝 놀라는 행위는 거의 대부분 가식일 뿐이다. <폭력과 격정> 88~89쪽

폭력 행위자와 구경꾼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자극을 가한다. 구경꾼의 환호와 열광은 행위자를 고무하고 부추기며 앞으로 나아가게끔 채찍질한다. 폭력 행위자가 (폭력 행위에) 요구되는 에너지나 전의(戰意), 무용(武勇), 야수성을 단시간 안에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경우 엄청난 야유와 경멸이 돌아온다. 하지만 (구경꾼들이 내지르는) 환호와 외침은 (마음속에 숨어 있던) 잔혹성의 족쇄를 풀어내며, 비행을 저지를수록 집단적 열정은 더욱 높아진다. 환호하는 다중 자체가 파괴하는 힘이다. 처음에는 폭력이 관객을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관객이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낸다. 이제 폭력 행위자는 구경꾼의 대리인으로 바뀐다. 그는 단지 구경꾼이 원하는 바를 연기할 뿐이다. 또 그들이 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폭력은, 그 안에서 구경꾼들이 그 자신의 영상(影像)을 인식하게 되는 표상이나 공연으로 바뀐다. 행위자는 구경꾼과 닮았고, 구경꾼도 행위자와 닮았다. 행위자는 구경꾼의 집단 의지를 구현하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바를 실행에 옮긴다. 이제 진정한 살인 집행자는 개별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구경꾼 집단이다. <구경꾼> 166쪽

전지전능함의 쾌락을 느끼기에는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한 자는 때때로 자신이 폭력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오히려 지배 질서의 논리에 철저하게 복무하며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과정에 동참하기도 한다. 고문이 일어날 때, 고문 하수인이나 사형장에서의 사형 집행인, (인간) 사냥에서의 추격자는 자신도 언제나 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더욱 폭력적으로 변모한다. 죽음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남에게 폭력을 행하고, 자신이 폭력으로 인해 고통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더욱 더 철저한 폭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다.

개개인은 공통적인 우월감, 자기 공동체의 힘을 느낀다. 집단적 행동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개인의 힘을 강화하고 흥분 상태를 고조시킨다. […] 혼자서는 팔 하나도 제대로 들어 올릴 용기가 없던 사람들이 사냥꾼 무리 속에 있다 보면 갑자기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야만성을 발산할 수 있게 된다. 사냥꾼 무리는 불안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함께 행동한다는 것만으로도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런 양심도 없으며 도덕적인 굴레에서도 벗어나 있다. <사냥과 도주> -236~237쪽

피에 대한 굶주림과 살인 욕망은 적대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증오나 분노가 대량학살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체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자기 한계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충동이 마구 발산된다. 이런 충동은 더 이상 비밀의 보호막 속에 숨거나 의식의 질서 속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 학살자들은 자신을 맹목적인 분노 속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맞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싸움의 광폭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전혀 다른 곳으로부터 자극을 받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제한적인 자기 발산에서 오는 야수적인 만족감이다. 그는 스스로 총체적인 세계가 된다. 그의 육체는 폭력과 융합되어 스스로 폭력이 된다. <학살> 267쪽

문화와 문명의 발전이 폭력의 쇠퇴나 소멸을 가져오는가?
흔히 문화나 문명은 인류 진보의 빛나는 상징으로 꼽힌다. 문화는 인간의 행동과 상상력의 산물로, 삶에 형태와 표현, 질서와 실체를 부여하는 수단과 형식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문화에 대해 낙관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즉 기술이 발전하면 폭력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또는 문명이나 의식의 진보가 폭력을 사라지게 하리라는 편리하고 상식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통념과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문화의 산물인 관습과 제도는 억압하고 배제해야 할 일탈 행위를 규정함으로써 그 안에 폭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으며, 종교와 이데올로기들, 국가와 민족은 전쟁과 대량살육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하는 등 오히려 문화가 폭력을 통해 스스로 존속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폭력은 ‘유일한 생명의 영약’이라고까지 평한다.
문화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 기틀을 마련했다면, 폭력 역시 문화의 발전을 통해 자신을 발산하고 더욱 확장했다. 물질문화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기의 파괴력을 무한대로 증폭시켰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에서 발원한, 불변의 가치를 내걸며 고안된 종교는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희생물을 만들어내고, 폭력을 막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단을 배척하는 데 사용했다. 종교전쟁이 언제나 가장 참혹하게 진행되는 이유는 바로 이단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종교는 (자신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가치들과는 다르게) 폭력이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문명에 대한 신앙은 일종의 유럽 중심적인 신화이다. 이런 신화 속에서 근대는 스스로를 숭배하고 있다. […] 야생의 세계는 사람들이 그것을 박멸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신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야만적이지 않았고 ‘문명인들’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문명 친화적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하는 일은 결코 이전 시대의 특권이 아니다. 폭력은 인류의 숙명이다. 폭력의 형태와 장소, 시간, 기술적인 효율성, 제도적인 구조와 정당성의 의미 등의 요소에서 오늘날의 폭력과 과거의 폭력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 변화는 결코 일직선적이거나 목표 지향적, 또는 누적적인 발전의 과정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왕복 운동이나 지속적인 상승 하강의 반복 운동과 비슷하다. <문화와 폭력> 325쪽
목차
질서와 폭력-사회 구성의 기본 원리 : 폭력으로부터 파생되는 고통과 불안 무기-무기의 발전과 문화의 발전, 그리고 둘의 상호작용 폭력과 격정-잔인한 행위를 통해 맛보는 전능이라는 환상 폭력,불안,그리고 고통-폭력 희생자의 내면과 고통 고문-절대적인 폭력의 공연장, 파괴적인 환상의 실험실 구경꾼-폭력에 가담하는 일시적인 익명의 공동체 사형 집행-모든 지배체제의 가장 명확한 상징 전투-자기보존이라는 법칙만이 존재하는 폭력 사냥과 도주-사회적인 박해와 추방 : 일탈에 대한 딱지 붙이기 학살-비무장 민간인에게 가해지는 집단적 폭력 사물들의 파괴-폭력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백지판 문화와 폭력-문화를 통해 더욱 견고해지는 폭력 각주 역자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