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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자료

단행본

공감대화: 존중과 치유로 가는 한 사람, 한 시간의 이야기

발행사항
서울 : 푸른숲, 2022
형태사항
311 p. : 22 cm
ISBN
9791156759683
청구기호
189.2 정44ㄱ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9369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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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19369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대화는 어떻게 공감과 치유의 도구가 되는가

이 책을 엮은 문화인류학자 정병호는 2000년대 초, 한국에 온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공감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5쪽). 남북 청소년이 교류하는 행사에서도 탈북 청소년은 늘 ‘편견이 담긴’ 질문을 받고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하는 입장에 놓였다. 그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남북 청소년들이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모임을 기획했고 그것이 ‘공감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공감대화’는 이주민, 남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2012년부터 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배경의 남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한민족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와 ‘경계를 넘는 삶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아홉 살 어린이부터 아흔 살 노인까지, 지난 10년간 300여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공감대화’는 점차 진화했다. 공감대화는 “다른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평등하게 만나며, 정당한 사회적 존재로서 소수자들의 의미를 확인하고 참가자 개개인의 존중과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토론과 비판을 삼가고 판단을 유보하며 상대방의 삶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경청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30분 이상 온전히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자 평소 편견과 차별, 가부장제에 눌려 지내던 이주여성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6장).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경제 주체로 살아온 사할린동포 여성의 이야기에 탈북 할머니와 조선족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팠던 순간을 떠올라 팔로 자신을 감싸 안고 ‘애썼다’고 토닥인다(6장). ‘다문화’라고 놀림 받던 아이들은 그동안의 차별 경험을 마음껏 털어놓고 맞장구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1장).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뿐인데 어떤 이는 “위로를 받고 생애가 확장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충고와 조언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안전한 공간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외롭지 않은 시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고정관념을 떨치고 새로운 눈이 열리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하며 느끼는 해방감!! 그렇게 대화 모임을 거듭하며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공감대화’라고 부르기로 했다. -10쪽

공감대화는 화해의 도구이기도 하다. 분단과 전쟁, 이념대립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였던 이들이 만난 첫 모임에서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냉전의 한복판을 관통해온 서로의 삶이야기를 들으며, 각기 다른 체제나 이념을 넘어 마침내 서로를 온전한 개인과 개인으로 마주하기 시작한다. 국군 출신 할아버지와 인민군 출신 할아버지가 만나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면서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술잔을 기울인다(4장). 민간인을 학살한 군인의 딸과 학살피해자 유족이 대면한 순간 서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아프게 한 이도 또 다른 아픔과 슬픔을 경험했음을 깨닫는다(4장). 가해와 피해의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특정 이념과 체제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자리가 아닌 오로지 ‘삶’에 주목하는 공감대화 모임에서는 서로의 상처를 알아봐주는 것만으로도 화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듣고 긴장하던, 심지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던 이들은 서로가 냉전 속 열전의 희생자였음이 드러나는 삶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겪은 일이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을 아프게 한 이도 또 다른 아픔과 슬픔을 경험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감대화 과정에서 모든 갈등은 상대적이었다. -132~133쪽

다문화 어린이, 탈북민, 고려인 청소년, 이주여성, 사할린노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생생한 삶이야기,
글로벌 이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대화 지침서

사람과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삶의 경험을 알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대개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지역, 직업, 학력, 가족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상대방을 규정하거나 판단한다. 심지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쓰거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그 최소한의 이해 과정을 생략하기도 한다(257쪽). 사할린동포인 참가자의 “한국에 와서 벌써 14년을 살았는데, 뭐〜 ‘어데서 왔느냐’ 하는 말은 있지만 ‘어떻게 살았느냐’ 하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는 말은 우리 사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이주민이 5%를 넘는 다문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거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미디어와 가짜뉴스에서 퍼뜨리는 다른 집단을 향한 경계심과 혐오 감정을 어떻게 걸러내야 하는지, 상대방을 편견 없이 대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관해 배우고 싶다. 그런 점에서 《공감대화》는 글로벌 이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새로운 대화 지침서가 될 것이다. ‘어디서 왔고, 몇 살이고, 결혼은 했는지’ 대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어본다면 관계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지지 않을까.
이 책은 총 4부에 걸쳐 대화는 어떻게 화해와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타인과의 만남’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지 참가자들의 역동적인 대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1부, ‘평등한 시간, 평등한 공간: 아이들의 해방 체험’에서는 다문화 배경 초등학생들이 상처를 말하며 서로 연결된 이야기 캠프, 고려인 중학생들이 이산과 이주의 어려움을 나눈 이야기 모임, 통일교육과 다문화 교육을 연결하고자 시도한 한국, 탈북, 다문화 배경 고등학생들이 나눈 공감대화를 소개한다. “다문화여서 주목받거나 놀림 받은 것을 솔직히 말해서 좋았다”, “속이 뻥 뚫리고 마음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아픔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등 이야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 공감하는 장면들을 포착했다. 또한 ‘다문화’라는 명칭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37쪽), 고려인 청소년들의 한국 적응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52쪽), 글로벌 이주 시대에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98쪽) 등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지영: 솔직히요, 다문화라는 말 뜻 자체는 좋은데 놀릴 때 애들이 “넌 다문화니까 안 돼”라던가 “너는 다문화니까 이상해” 그런 말을 많이 쓰잖아요. 사람 머리에, 아예 다문화라는 말이 머릿속에 부정적으로 박힌 것 같아요.
성식: 다문화가 혼혈이면 혼혈이 아닌 일반학생을 단문화 학생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40쪽

신잔나: 반명함판 사진. 그거 뭔지 몰랐어요. 그리고 교복에 이름표 새기는 거요. 그거 선생님이 해오라고 했는데 엄마도 모르고 계속 그냥 다녔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왜 말 안 듣냐고 했어요. -59쪽

초희의 질문에 혁진이는 선선히 대답했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서 한참 망설이고 질문했을 초희의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야기를 시작한 윤정이는 너무 떨려서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다고 했으나,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오랫동안 성찰해온 것 같은 여러 경험과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북한사람’이라는 낙인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89쪽

2부, ‘개인으로 이야기하기: 국적과 이념, 가해자와 피해자의 벽을 넘어’에서는 냉전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체제, 이념, 국적이 규정한 적대 관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허물었는지 밝힌다. 평생 대화를 나눌 수 없으리라 여겼던, 심지어 존재만으로도 치떨리는 분노를 일으켰던 사람의 삶 속에서 ‘나와 공감할 지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온전한 개인으로 만나는 장면에서는 ‘이야기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113쪽).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에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의 삶이야기는 역사가 다 담지 못한 한민족 이주의 역사의 한 조각을 채워 넣는다(148쪽). 나아가 국민, 국적, 고향이 다른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소개하고 그 경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둥글게 자리한 여섯 명의 노인은 얼굴만 봐서는 영락없이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다. 깔끔한 테이블보와 꽃이 핀 나뭇가지로 장식한 무릎 높이의 낮은 테이블을 두고 둘러앉은 그 70대 노인들은 진행자가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서로 통성명을 자세히 나누지도 않았다. 카메라와 진행자가 노인들을 둘러싸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참가자가 낯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테이블 중앙에 놓인 마이크와 프로그램 안내 리플릿만 보고 있는 이들 사이는 어딘지 서먹하다. -112쪽

공감대화 모임은 한국전쟁과 냉전이 만든 뾰족한 ‘빨갱이’ 이야기를 뭉툭하게 만드는 평등한 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차원의 질문과 대화를 이틀 동안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을 전혀 다른 세 가지 시점(남한, 북한, 중국)으로 바라보는 삶이야기들이 하나씩 더해지며 참가자 각자가 확신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과거의 경험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을 남측 입장으로 설명할 수도, 북측 입장에서 이해할 수도, 중국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도 없는 단지 슬프고 아픈 대립의 기억으로만 새롭게 의미화한 것이다. -134쪽

오성희 : 사람들이 다 고향, 다 한 곳이지요. 그런데 저는 고향이 세 곳이에요. (웃음) 제가 난 고향은 일본이거든요. 그다음은 두 번째 제 청춘 시절, 가정 시절 거의 반년 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제가 다시 태어난 고향이 대한민국이에요. 그래서 저는 세 개 고향 가지고 있습니다. -164쪽

그들은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한국 생활 경험을 이야기했다. 또한 삶의 어떤 시기에든 한국을 방문했거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경우 그 이야기도 공유했다. 이때 표준 한국어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약간 어색하고 이상한, 소위 표준어와 다른 한국어로 이야기를 해도 “저런 한국어 표현을 쓰니 저분은 한국사람이 아니야”라는 사람은 없었다. -172쪽

3부, ‘공감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여성, 이주, 가족’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공감하며 연대의 파트너로 연결되는 순간과 공식적인 삶이야기 시간이 끝난 뒤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이어진 비공식적 대화에서의 자매애를 소개한다. 6장에서는 젠더, 이주, 가족과 관련된 기존의 대화 프로그램과 시도하지 않았던, 결혼이주 가정의 자녀와 재외동포 남성 등 이주 경험이 있거나 소수자로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는 남성의 이야기도 포함한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젠더와 세대, 국적을 가로질러 각자의 삶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서로에게 공감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182쪽).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동포들로 구성된 여성단체 조각보의 대화 모임에서 들려주는 삶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유라시아 지도가 그려진다(215쪽). 나아가 7장에서는 배려와 환대로 시작하는 조각보 모임이 동창 모임과 새로운 진행자 양성으로, 차별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연대활동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소개한다.

김미숙 : 저, 질문 하나 할게요. 가정불화 때문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은데, 부모님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많이 도움이 됐나요?
이한수 : 어우, 도움이 됐어요. 저는 크게 도움받았어요.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아버지가 만약에 그 집에 있었다면 […] 어머니하고도 연을 끊으려고 했어요. -192쪽

김미숙은 국가 간 경계를 넘으며 잃었던 자신의 꿈을 되찾을 기회로 생각하고 이중언어 강사 양성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데 김미숙이 꿈을 찾아 신나게 배울 때 남편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국가 정책이 바뀌면 금방 없어질 직업이니 들어서지도 말라며 “이거는 정책적으로 이용하는 거야. 니네 미끼야 미끼. 다니지 마”라고 했다. 교육받는 7개월 동안은 월급이 없었는데 남편은 “돈 한 푼이 급한데 쓸데없는 곳에 가서 시간을 쓴다”라며 매일 잠도 못 자게 하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래도 김미숙은 결혼 이후 처음으로 뜻대로 밀고 나가 7개월간의 교육도 마치고 이중언어 다문화 강사로서 학교도 배정받았다. -196쪽

우즈베키스탄동포 : 할아버지, 할머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았고 엄마와 아빠도 러시아에서 태어났어요. 블라디보스토크 쪽에서. [그 후] 우즈베키스탄 와서 결혼했어요. 왜냐면 우리 언니가ㅜ41년 때 태어났어요. 37년 때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니까.
북한동포 : 제 조상으로부터 이야기한다면, 제 증조할아버지 [고향은] 함경북도 ○○군이래요. 왜정 때 살기 곤란해서 중국 만주에 가서 자리 잡았어요. 연길 위에 작은 마을.
중국동포 : 엄마는 아빠는 평안북도, 할아버지 시대 때 중국 이주해온 것 같아요. 저는 3.5세대 아니면 4세대인 것 같습니다. [소학교] 2〜3학년 때까지만 해도 가난했던 것 같은데 식구가 너무 많았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증조할머니까지 살았던 기억이 나요. -217쪽

참가자들은 북한・중국・우즈베키스탄・남한 등 다른 지역에서 살았지만 가족의 생계를 감당했던 어머니 세대와 함께한 기억, 딸이었기에 희생하고 감수해야 했던 생활의 무게처럼 여성으로서의 삶의 노동이 놀랄 만큼 비슷했다. -220쪽

4부, ‘공감대화란 무엇인가’에서는 공감대화의 이론과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직접 시행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감대화 프로그램 가이드’를 실었다. 아울러 부록으로 이 대화모임을 계기로 참가자들이 함께 실천한 활동 사례를 덧붙였다.

공감 위기의 시대,
‘타인과의 만남’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감이란 “자신이 판단력을 유지한 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지적 능력”을 말한다. 공감은 동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인 ‘친절함’의 바탕이 된다(247쪽).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영어 ‘empathy’를 번역한 말이다. 이러한 공감(共感, 함께하는 또는 같이하는 느낌)은 감정적 느낌을 강조하면서 동감이나 동정sympathy, 연민compassion과 비슷한 뜻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사실 동정과 연민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정서적 느낌이지만, 공감은 자신의 판단력을 유지한 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지적 능력이란 의미가 강하다. 다시 말해 공감의 뜻은 ‘상대방과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비슷하다. -246쪽

그런데 고도산업사회로 갈수록 공감 능력이 쇠퇴하고 아예 공감 능력이 마비된 사람도 늘어난다. 더구나 ‘다른 집단’을 향한 경계심은 SNS와 가짜뉴스로 폭넓게 퍼져나가 혐오 감정을 퍼트린다. 아울러 디지털 소통 방식은 폐쇄적 집단편향도 심화한다. 이런 현상은 인류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글로벌 협동 역량을 약화한다(248~249쪽). ‘공감 위기’의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지키고 다양한 집단과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보인다. 저자는 과거에는 대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으로 공감 능력을 자연스럽게 키웠지만, 핵가족으로 분화한 오늘날에는 이 능력을 키우려면 문화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250쪽).

공감 훈련 프로그램의 공통 특징은 ‘대화’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이 이해한 만큼 말로 표현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 차이가 크거나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서로에 대한 편견이 강한 집단 구성원이 공감하게 하려면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상대주의적 대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251쪽

실제로 지난 100년간 교육학, 심리학, 인류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른 집단 사람들과 진행하는 ‘대화’ 프로그램은 꾸준히 연구되어왔다. 이 책에서는 미국, 유럽 등에서 시도한 대화 프로그램을 소개, 그것이 어떻게 ‘공감대화’와 이어지는지 그 맥락을 소개한다(8장).
1920년대 초 미국의 고등학교 교사 레이첼 데이비스 뒤부아,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마틴 루서 킹, 유럽연합, 독일의 동서포럼 등 이주민과 소수자 집단의 불평등과 차별 문제를 적극 해결하며, 다른 문화의 지식보다 다른 집단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과 관계 개선을 중심에 둔 대화 프로그램을 시도해왔다(252~253쪽). 서로 문화가 다른 집단 간 대화뿐 아니라 사회집단 간 갈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 북아일랜드의 ‘기억을 통한 치유’, 범죄자나 약물의존증 환자들의 재활과 치료를 목적으로 심리학자가 개발한 ‘치료 공동체’ 등이 있다(256쪽).
독일의 ‘동서포럼’은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학력, 직업, 지위가 다른 남녀노소 10여 명이 2박 3일 동안 자신의 생애사를 이야기한다. 참가자 중에는 전직 대통령, 기업가, 노동자뿐 아니라 비밀경찰 출신과 고문 피해자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사회 안에서도 지역, 이념, 세대, 성별, 계급, 장애 등 나와 다른 집단을 향한 배제, 편견, 차별,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하다. 공감대화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바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경계를 넘어 ‘존중과 화합’으로 가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어쩌면 더딜 수 있다. 하지만 ‘공감대화’의 힘은 오래간다. 이제 우리는 ‘경계’를 넘을 준비가 되었다.
목차

1부 평등한 시간, 평등한 공간: 아이들의 해방 체험
1장 한국에서 ‘다문화’로 산다는 것: 상처를 말하며 서로 연결되다 이향규
다문화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 ‘솔직 토크’를 위한 질문들 | 공감의 말들 | 타인이 나를 부르는 말에 대하여
2장 고려인 청소년들의 흔들림과 어울림: 이야기할수록 단단해진다 김기영
고려인, 다문화 학생, 그리고 중도입국 청소년 | 라이프사이클, 청소년 삶이야기의 시작 | 헤어짐과 이산: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공통 감정 | 태어난 곳, 사는 곳, 살고 싶은 곳
3장 한국, 탈북, 다문화 학생의 만남: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 이향규
‘삶이야기’의 확대 | 사람책 도서관, 타인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 돌아보기 | 내 이야기를 하는 시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과 지금 걱정하는 것 | 네 이야기를 듣는 시간: 내 상처 보기 | 대화는 다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 통일한 사회, 나의 삶 상상하기 | ‘타인과의 만남’을 배우다

2부 개인으로 이야기하기: 국적과 이념, 가해자와 피해자의 벽을 넘어
4장 냉전의 한복판을 관통해온 사람들: 다름을 이해하고 같음을 뛰어넘기 조일동
온전한 개인으로 만나다 | 모든 삶이야기의 시작점 | 대화는 어떻게 화해의 도구가 되는가 |이야기하기, 경청하기, 묻고 답하기 | 차별의 토로는 차별의 시선을 거둔다
5장 밀려났다가 돌아오고 정착했다가 떠나는 사람들: 경계를 초월한 경험 문현아
역사를 현실로 살아낸 사람들 | 고향의 정의 | “앉은 자리에서 세 나라를 겪은 셈입니다” | 글로벌 이주 시대에 맞는 질문

3부 공감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여성, 이주, 가족
6장 젠더와 가족: 경계를 넘어 차별과 억압 경험을 나누다 최은영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기 | 가족이라는 아픈 속살을 드러내다 | 결혼이주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가장이 된 여성들, 국경을 넘다
7장 다시 만난 코리안 여성들: 사적이고 작은 이야기로 이산의 역사를 꿰다 이해응·윤은정
첫 만남,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장치들 | 100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삶의 여정 |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삶을 말하다 | 진행자는 어떻게 공감의 조력자가 될 수 있는가

4부 공감대화란 무엇인가
8장 공감대화의 이론과 방법 정병호
공감의 위기 | 공감 능력과 대화 | 공감대화 프로그램 | 삶이야기의 힘 | 존중과 화합을 위한 공감대화
9장 공감대화 프로그램 가이드 정병호
참가자 | 진행자 | 프로그램 진행 | 시간과 공간 구성 | 통과의례 | 진행 주체와 비용

부록 공감대화 사례: 여섯 번의 1박 2일, ‘시민’이란 이름으로 연결된 사람들 김기영
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