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보고서

소비재는 가계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화이다. 우리는 북한의 인도적 위기 상황을 파악하고 향후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북한주민들의 생활여건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이 일상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화의 생산과 유통 실태는 북한의 민생여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계의 소비지출은 국민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가계소득의 향상은 소비재 수요 증가를 통해 관련 산업의 발전을 촉진한다. 북한과 같은 저소득 개발도상국의 발전경로에서 식료가공품, 의류, 가전제품과 같은 소비재 생산은 수출산업의 성장 및 산업 고도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한다.
본 연구는 북한의 대표 소비재를 내구성의 정도에 따라 식료품, 의류, 휴대전화로 구분하여 각각의 생산과 유통 실태가 김정은 집권 이후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김정은 집권 초기 정권 안정성 확보를 위해 북한당국은 민생과 직결된 소비재 생산에 자원배분을 확대하는 한편 유통 측면에서도 시장판매 경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식료품, 의류, 휴대전화의 생산‧유통에서 제품의 다양성과 전국적 브랜드의 형성이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김정은 집권 초기부터 대북제재 강화 이전까지는 소비재에 대한 수요 증가가 생산을 확대하고, 전국 시장을 대상으로 유통망이 확장되는 변화의 움직임이 제한적이나마 관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북한의 소비재 생산‧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는데, 이는 상당 부분 북한당국의 정책에서 비롯된 생산과 유통 측면의 취약성과 경직성에 기인한다. 북한의 경제발전 노선에서 소비재 산업은 후순위를 차지하며, 생산의 상당 부분은 시‧군 단위로 배치된 중소규모 지방공업이 담당하고 있다. 소비재의 생산과 소비를 지역 내에서 연계하고자 하는 북한의 정책은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생산과 전국적 수요에 부응하는 유통 구조 형성을 어렵게 한다.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유통의 경직성도 생산역량을 축소하는 원인이다. 시장판매에 대한 제도적 허용은 소비재 생산 확대에 기여한 측면이 있으나, 계획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생산단위는 수익에 도움이 되는 시장판매를 원하는 만큼 확대하기가 어렵다.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북한의 소비재 생산역량은 위축되는 경향이 뚜렷하며, 유통 측면의 국가개입은 강화되고 있다. 국경봉쇄나 외화부족에 따른 수입원자재 공급축소는 식료가공품, 의류, 휴대전화 생산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시장판매를 공식화한 ‘사회주의상업법’과 ‘양정법’의 개정은 시장유통에 대한 중앙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시장거래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소비재 생산역량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담대한 구상’에 포함된 우리 정부의 대북 경제협력 구상은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부터 신뢰 조성을 위한 과감한 선제조치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상당 부분은 북한주민의 생활여건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핵화 단계와 연동하여 이루어질 대북 경제협력은 북한의 소비재 생산역량 제고를 통하여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수출경쟁력을 확보하여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남북한 산업구조가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남북한 경제가 공동 발전할 수 있는 경제통합 구상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