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보고서

통일국가의 정체성 및 통일문제에 대한 주요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통일국가미래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통일국가가 한민족만의 단일민족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상충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통일국가 비전에 관련된 복지와 재분배, 개인과 국가의 관계, 민족주의와 다문화 등에 대해 사회적합의가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한국 사회에 대한 정체성은 상충요인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종족적 의미에서의 한민족 정체성과 시민적 차원에서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혼재하여 지니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고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국가/민족정체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심리적 애착과 일체감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젊은 세대,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 반면, 전후 권위주의 시대를 경험한 고연령층, 저학력층에서는 과거의 권위주의, 집단주의적 가치관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우리 국민들은 북한 및 통일문제에 대해 복합적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적대와 경계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다층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한 및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이념적 성향보다 세대 간 차이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통일을 현실적이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으로서 인식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의 응답자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개성공단사업의 재개 등과 같은 경제협력에 있어서는 찬성, 유보, 반대의견이 거의 비슷하게 나뉘어져 있다.

넷째, 통일국가 비전 및 정체성에 대한 남북한 주민의 인식 차이가 주목된다. 통일국가의 정치체제에 대하여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식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비중이 가장 높은 반면, 남한주민들은 남한식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통일국가 국민의 자격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어 사용과 통일국가의 역사와 전통유지, 통일한국의 정치제도와 법을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남한 주민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은 한민족의 혈통을 남한 주민보다 더 중시했고 남한 주민은 통일한국에서 태어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하여 북한이탈주민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해서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남한 주민은 남북 간의 전쟁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다섯째, 한국 사회의 시민성과 포용성이 통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족/문화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을 한민족으로 보는 응답자들이 70%를 상회하여 다수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30%에 가까운 국민들이 북한 주민을 같은 민족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북한 제도의 존속에 대해서는 대체로 상당 기간 존속해야한다는 의견이 과반을 넘고는 있지만, 북한의 제도/규범을 배제해야 한다는 인식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또한 한국 국민들의 통합인식은 전통적인 지역균열, 정당균열 및 언론의 정치적 정보 유통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이상과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통일국가정체성 형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한국 사회의 사회적 자본을 증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 및 갈등 완화의 성과를 축적함으로써 긍정적인 역사적 기억과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남북한 간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통일국가가 부담해야 할 정치, 사회, 경제적 부담을 분담하려는 사회적 책임감과 시민의식을 배양해야 한다. 특히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관용, 다른 집단 및 다른 개인에 대한 포용의식이 중요하다. 또한 대중언론매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여론을 환기해야 한다. 객관적이면서도 갈등관리에 기여할 수 있는 보도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통합 정체성 형성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출발점은 남북문제와 통합문제에 대한 이념적, 당파적 접근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진단하면서도 문제해결 지향적인 실용적 사고와 다양한 사고에 대한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통일한국의 사회적 조건을 성숙시키는 첩경이다.

둘째,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다문화주의의 수용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인구 구성면에서 다문화주의의 수용이 불가피하다. 통일 이후 여러 인종과 문화가 어울리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대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이 혈연적 민족주의를 강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일 이후 민족주의와 다문화주의를 배합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다.

셋째, 통일의 필요성과 편익을 구체화해야 한다. 통일은 더 이상 당위적이지 않으며, 통일 이유와 필요성, 통일비용 분담 방법, 통일편익의 분배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통일의 필요성과 통일미래상의 구체화, 그리고 통일미래상을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의 분담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하다.

넷째, 북한 주민의 특성을 고려한 통일국가정체성 형성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제도에서 다른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북한이탈주민과 남한 주민의 통일국가정체성에 대한 차이는 너무 당연한 것으로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 그 극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첫째, 통일 이후 국가통합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주민의 수준에 상응하게 정치통합단계를 정하고 점차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로 변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통일국가의 통합을 위해 다원성과 민족주의를 균형되게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 주민이 통일국가의 핵심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 이후 남북 사회통합의 예행 관점에서 탈북민 정착정책을 펴고 경험을 축적하고 해결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북한 주민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빠른 기간에 적응하도록 하는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

다섯째, 통일국가의 대외정체성을 위한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통일한국은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안보위협은 우선적으로 지정학의 변화에 따른 지역질서의 불확실성에 의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역질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정책의 개발이 요구된다. 통일 후 지역내 상호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서 통일 과정에서 주변국가에게 통일한국이 지역안보를 불안하게 하지 않을 것임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과정과 통일 후에도 미국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균형있고 협력적인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통일과정은 통일한국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극복하고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건설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국제 테러리즘과 같은 이슈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기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