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의 대전환이 숨 가쁘다. 북한과 미국의 양자회담이 잇따르면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가동기록을 미국에 전달하고 본격적인 핵신고에 들어갔고 불능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영변의 냉각탑 폭파를 생중계하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도 상응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북한이 기다려온 테러지원국 해제를 의회에 통보할 예정이고 조만간 식량 50만 톤도 지원할 계획이다. 6자회담이 재개된 이후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돼 있다는 설도 거론되고 있다.
북미관계가 발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북핵 6자회담은 다음 단계로 접어든다. 3단계는 북한의 핵 폐기를 논의하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시도다. 과연 북미간의 협상과 6자회담은 어디로 갈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독자들에게 답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체제의 외교전략과 전술을 분석한 ‘북한의 선군외교’이다.
서 훈 전 차장은 1997년 KEDO 금호지구 사무소의 대표로 북한에 상주한 첫 대한민국 국민으로 북측과 다양한 협상을 직접 도맡아 왔다. 또 2000년에는 막후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후에는 국정원과 청와대 등에서 일하며 현장을 지키는 가운데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크고 작은 남북회담을 지휘했다. 2000년 이후 나온 다양한 남북간 합의서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핵과 미사일을 손에 쥐고 미국과 협상을 벌이는 북한의 외교전략은 무엇인가.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핵위기와 2000년대 초반 핵위기를 비교해 북한이 추구하는 외교전략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북한의 외교전략을 ‘선군외교’로 규정했다. 북한은 약소국 입장에서 군사와 외교를 결합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핵과 미사일과 같은 비대칭 무기를 개발해 협상카드로 활용하면서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 순응하기 보다는 갈등을 통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선군외교 하에서 북한의 대미 핵외교 행태는 ‘악명 및 모호성유지 전략→벼랑끝 전략→맞대응 전략→위기관리 전략→북미양자협상→포괄적 일괄타결→근본문제카드 활용→단계별 동시행동 방식의 협상전략’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2차 핵위기 때는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북한의 벼랑끝 전략이 더 단호하고 공세적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패턴은 유지되고 있고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선군외교는 계속될 것인가. 이 책은 선군외교를 낳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가 청산되면 선군외교도 점차적으로 이완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북한 선군외교의 작동영역을 제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향후 북미관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김정일 위원장의 노령화와 새로운 비전 제시 필요성, 부시 대통령의 내부 정치적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2008년은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의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전망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북미관계의 급진전은 북한의 선군외교의 필요성을 감소시키면서 장기적으로 변화의 과정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서 북한을 직접 상대해 온 실무자의 고민과 분석을 담은 이 책은 북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장 선군외교의 전략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