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씨네 폴리틱스: 영화는 다 정치적이다
- 개인저자
- 박종성 지음
- 발행사항
- 고양 : 인간사랑, 2008
- 형태사항
- 410 p.; 23cm
- ISBN
- 9788974182595
- 청구기호
- 688.04 박756ㅆ
- 서지주기
- 참고문헌 및 색인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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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0891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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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10891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한국 영화는 이제껏 정치권력의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아니, 칼끝을 제대로 겨누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두려워 못 했든 그렇게 하고픈 의지가 없었든 그나마 영화의 정치성을 드러낼 가장 안전하고 흥미로운 대피소는 이 땅의 ‘역사’였다. 영화가 정치현실을 향해 앵글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가버린 역사로 숨어드는 동안 필름으로 날아들 돌팔매는 줄어들고 있었다.
세상 바꿔 보겠다고 길 떠난 혁명가와 영화감독을 동격으로 인식하던 시절도 있긴 있었다. 그건 혁명의 시나리오를 완수할 수 있다는 믿음과 비록 허구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환호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천으로 넘쳐나는 멜로와 액션의 아카이브 어느 한 구석에선들, 우리 손으로 만든 간담 서늘한 정치영화 한편이 광채 한번 제대로 내뿜지 못했던 까닭은 정말이지 뭐였을까. 조선이 그렇게 망하고 강점기가 저 같은 모습으로 사라졌어도「실미도」는 서슬 푸르고 푸르던 그 시절에,「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죽자마자 나왔어야 했던 게 아닐까.
이제라도 만들어 가는 걸 대견해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당대의 침묵을 다시 단죄해야 하는가. 어떤 물음으로든 말 바꿔 채근해 대도 모두가 각인해야 할 새삼스런 사실은 영화가 갖는 앞으로의 책임 크기다.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만으로 스스로 만족하던 시대는 이제 ‘갔다’. 영화가 떠안아야 할 책무는 문화 예술을 넘어 사회교육차원으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정치 계몽과 비판 영역으로까지 뻗어나가는 중이다. 마이클 무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늘의 영화가 정치권력의 과오와 폭력을 공격적으로 천착하는 자세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영화는 시대의 투쟁을 외면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이유를 충분히 갖는다. 감독들은 작품으로 정치를 말하고 관객들의 역사적 책임을 가르치며 전파해야 할 역할을 장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자비하게 권력의 모순을 물어뜯으며 강호의 열혈관객들로부터 환호와 지지를 끌어 낼 뱃심은 지금 마련되어 있는가. 문제는 현 단계 한국영화가 갖는 정치적 긴장 유발 의 가능성 크기로 모아진다. 한국영화는 스스로 정치화할 저력으로 가득 차 있을까. 그 자존이 오히려 권력을 압도할 위력으로 커갈 때 정치영화를 예술영화의 한 하위영역쯤으로 오인하는 우스운 관행도 사라질 것이다. 적당히 벗고 어설프게 드러낸 다음 법의 이름으로 단죄되느니, 모조리 벗어버린 채 자신의 치부로 상대의 더러움을 공격하는 영화적 순수가 더 감동적인 일임을 어디 꼭 웅변으로만 대신할 일이겠는가. 스크린 쿼터 사수나 영화정책의 민주적 수립도 이 일의 성사여부를 확인한 다음다음에야 짚어 볼 문제다. 잘 만든 영화 하나가 울림이 크고 또 오래도록 멀리 퍼져나가는 이치를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정치영화’라고 생각하는 작품들 모두는 사실 ‘정치적인 영화’로 그친다.
다시 분명히 해 두자. 모든 정치영화는 역사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영화 모두가 정치영화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영화가 곧 정치영화가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비슷하다고 다 같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나아가 그 잠재력이 극대화될 소지마저 늘 안는다. 여기서 ‘모든 영화가 정치적’이라 함은 제작과 유통 주체 혹은 능동적 관객들이 의도하는 일련의 목적성을 뜻한다. 이 말은 곧 모든 영화는 재미있으면 그 뿐, 정치적일 필요까지는 없다는 반론이나 그와 비슷한 항변에 대해서도 똑 같이 반복 적용된다. 뒤집어 표현하자면 영화는 왜 재미있어야 하는지에 화자가 명쾌히 답하지 못할 때 영화는 흥미와 오락성 충족이란 일련의 목적이나 그 정치적 동기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나 ‘돈 되어야 한다’는 타산이 작품성과 예술성에 늘 따라붙는 성가신 불문율이라 해도 영화에서 ‘흥미’란 한 발짝 도망못갈 자신의 존재이유가 된다.
필요와 욕망이 때로 탐욕과 공모하여 영화세계에도 투자와 구매 동기가 일치하는 경제법칙이 통용되고 있음은 그러니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궁금한 일은 따로 있을 터이다. 영화의 정치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반대 경우 말이다. 영화보다 더욱 영화적인 요소로 가득한 정치현실 혹은 현실정치는 막상 영화세계에서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말이다. 이건 영화학의 일상 명제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가 드라마보다 한층 드라마틱한 현실 앞에서 무엇으로 작동하는지의 원론적 질문과 그대로 맞닿는다. 허구의 세계보다 더 허구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그 존재를 관념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수용하는 게 드라마틱한 삶이라면 이 거짓 같은 드라마와 이를 연출하는 거대공간으로 국가와 세상 틀은 필름 안에 무엇으로 녹아들고 있을까.
이 책은 이에 답하려 한다.
세상 바꿔 보겠다고 길 떠난 혁명가와 영화감독을 동격으로 인식하던 시절도 있긴 있었다. 그건 혁명의 시나리오를 완수할 수 있다는 믿음과 비록 허구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환호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천으로 넘쳐나는 멜로와 액션의 아카이브 어느 한 구석에선들, 우리 손으로 만든 간담 서늘한 정치영화 한편이 광채 한번 제대로 내뿜지 못했던 까닭은 정말이지 뭐였을까. 조선이 그렇게 망하고 강점기가 저 같은 모습으로 사라졌어도「실미도」는 서슬 푸르고 푸르던 그 시절에,「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죽자마자 나왔어야 했던 게 아닐까.
이제라도 만들어 가는 걸 대견해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당대의 침묵을 다시 단죄해야 하는가. 어떤 물음으로든 말 바꿔 채근해 대도 모두가 각인해야 할 새삼스런 사실은 영화가 갖는 앞으로의 책임 크기다.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만으로 스스로 만족하던 시대는 이제 ‘갔다’. 영화가 떠안아야 할 책무는 문화 예술을 넘어 사회교육차원으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정치 계몽과 비판 영역으로까지 뻗어나가는 중이다. 마이클 무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늘의 영화가 정치권력의 과오와 폭력을 공격적으로 천착하는 자세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영화는 시대의 투쟁을 외면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이유를 충분히 갖는다. 감독들은 작품으로 정치를 말하고 관객들의 역사적 책임을 가르치며 전파해야 할 역할을 장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자비하게 권력의 모순을 물어뜯으며 강호의 열혈관객들로부터 환호와 지지를 끌어 낼 뱃심은 지금 마련되어 있는가. 문제는 현 단계 한국영화가 갖는 정치적 긴장 유발 의 가능성 크기로 모아진다. 한국영화는 스스로 정치화할 저력으로 가득 차 있을까. 그 자존이 오히려 권력을 압도할 위력으로 커갈 때 정치영화를 예술영화의 한 하위영역쯤으로 오인하는 우스운 관행도 사라질 것이다. 적당히 벗고 어설프게 드러낸 다음 법의 이름으로 단죄되느니, 모조리 벗어버린 채 자신의 치부로 상대의 더러움을 공격하는 영화적 순수가 더 감동적인 일임을 어디 꼭 웅변으로만 대신할 일이겠는가. 스크린 쿼터 사수나 영화정책의 민주적 수립도 이 일의 성사여부를 확인한 다음다음에야 짚어 볼 문제다. 잘 만든 영화 하나가 울림이 크고 또 오래도록 멀리 퍼져나가는 이치를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정치영화’라고 생각하는 작품들 모두는 사실 ‘정치적인 영화’로 그친다.
다시 분명히 해 두자. 모든 정치영화는 역사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영화 모두가 정치영화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영화가 곧 정치영화가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비슷하다고 다 같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나아가 그 잠재력이 극대화될 소지마저 늘 안는다. 여기서 ‘모든 영화가 정치적’이라 함은 제작과 유통 주체 혹은 능동적 관객들이 의도하는 일련의 목적성을 뜻한다. 이 말은 곧 모든 영화는 재미있으면 그 뿐, 정치적일 필요까지는 없다는 반론이나 그와 비슷한 항변에 대해서도 똑 같이 반복 적용된다. 뒤집어 표현하자면 영화는 왜 재미있어야 하는지에 화자가 명쾌히 답하지 못할 때 영화는 흥미와 오락성 충족이란 일련의 목적이나 그 정치적 동기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나 ‘돈 되어야 한다’는 타산이 작품성과 예술성에 늘 따라붙는 성가신 불문율이라 해도 영화에서 ‘흥미’란 한 발짝 도망못갈 자신의 존재이유가 된다.
필요와 욕망이 때로 탐욕과 공모하여 영화세계에도 투자와 구매 동기가 일치하는 경제법칙이 통용되고 있음은 그러니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궁금한 일은 따로 있을 터이다. 영화의 정치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반대 경우 말이다. 영화보다 더욱 영화적인 요소로 가득한 정치현실 혹은 현실정치는 막상 영화세계에서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말이다. 이건 영화학의 일상 명제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가 드라마보다 한층 드라마틱한 현실 앞에서 무엇으로 작동하는지의 원론적 질문과 그대로 맞닿는다. 허구의 세계보다 더 허구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그 존재를 관념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수용하는 게 드라마틱한 삶이라면 이 거짓 같은 드라마와 이를 연출하는 거대공간으로 국가와 세상 틀은 필름 안에 무엇으로 녹아들고 있을까.
이 책은 이에 답하려 한다.
목차
머리말
I. 정치영화와 정치적인 영화
1. 정치영화 없는 나라의 정치적인 영화 : 辱과 弄의 결탁
2. 한국영화감독의 역사의식 : 영화로 보는 근 ? 현대 한국정치
2-1. 박 종 원
2-2. 임 권 택
2-3. 정 지 영
2-4. 박 광 수
2-5. 송 능 한
2-6. 류 승 완
II.정치와 영화의 만남 : 스며들기와 물들이기
1. 영화의 정치개입과 정치의 영화간섭
2. 영화의 정치적 중심과 주변
III. 영화의 권력화와 영화권력의 사회화
1. 필름의 역사적 전진 배치
2. 정치영화의 자리 찾기
3. 권위의 추락·저항의 일상화 : 혁명영화의 확산
IV. 영화사상과 정치질서의 변동
1. 포스트모더니즘과 영화
2.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 언제까지 비껴서야 하는가
V. 권력·섹스·영화의 서로 훔쳐보기
1. 폭력과 육체의 탐닉 : 감각의 과잉
2. Queer Politika : 포르노의 정치화
VI. 한국정치의 영화화와 한국영화의 정치화
1. 정치의 과대성장과 영화정치화의 지체
2. 한국영화의 반정치성과 역사의 중재 : 과거로 숨어들기
VII. 한국의 영화정치학을 위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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