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1894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1894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뉴라이트, 그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초의’ 전방위 비판
현재는 ‘시대정신’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개칭한 구 뉴라이트재단, 막강한 대중동원력을 자랑하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비전 설정과 정책 제안에 앞장서며 보수의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2004년 이후 ‘신보수’를 표방하며 탄생한 이 뉴라이트 단체들은 현 정권의 탄생 과정에서 한 몫을 톡톡히 했고, 현 정권의 출범 이후에도 정권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 때로는 ‘브레인’으로 때로는 ‘행동대’로 주요한 정책의 생산과 집행을 이끌어왔다. 특히 ‘뉴라이트재단’은 역사관, 국가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던져옴으로써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들은 이제 단순한 담론 생산을 과감히 넘어서서, 절차도 원칙도 무시하고 정권 입맛대로 교과서를 바꾸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민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실천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이는 부유층 규제 완화와 감세, 저소득층 최저 임금제 흔들기, ‘선진화’(민영화) 시도, 대북 강경책 등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뿌리를 같이한다.
이 책은 이러한 뉴라이트의 활동과 담론, 이념에 대해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최초의’ 책이다. 그간 이러한 본격적인 비판서가 나오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의 활동 범위가 워낙 넓고 다양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뉴라이트 운동에서 가장 기초적인 이데올로기 생산을 담당해온 ‘뉴라이트재단’의 담론과 이념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며. 그렇게 함으로써 좀더 근본적인 비판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때 또다른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들 담론이 사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용은 너무나 빈약해서, 기존의 역사학계나 정책 연구자들이 진지한 대응과 비판을 하기에 민망하고 곤란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2004년 이후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진지한 비판이나 대응이 어째서 그렇게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관에 대해 다룰 때에도 사실관계에서의 오류를 따지기보다는 그 사실관계를 바라보는 ‘눈’, ‘관점’에 집중한다.(사실관계에서의 오류를 따지는 작업은 <역사평론> 등의 지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바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어려움을 넘어서는 비평이 역사학계 내부나 외부에서보다는 그 경계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요약하자면, 이 책은 역사를 공부했지만 시사에도 관심이 많은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이 ‘역사적 지식’뿐 아니라 ‘상식’을 무기로 뉴라이트의 본질과 현상을 전방위로 비판하는 최초의 본격 단행본이다.
* 역사관으로부터 우리 삶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까지 통찰한 비평서
이제 뉴라이트의 담론은 눈앞의 정책들로 현실화되어 더 이상 그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에 직면해 평소 객관적인 역사 인식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이 나섰다. ‘뉴라이트는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화두로 열여덟 꼭지의 에세이 속에 그들의 인간관, 역사관, 국가관, 민족관, 대북관, 대미관 등에 대한 비판을 꾹꾹 눌러담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등 뉴라이트 진영에서 출간한 도서들을 포함해 다양한 참고 자료를 조목조목 따져봄으로써, 뉴라이트의 이념과 이데올로기, 담론을 입체적으로 비평한다. 그들의 기본 이념을 뒷받침하는 역사관, 즉 그 저작들에 나오는 일제 식민지, 친일파, 이승만, 박정희 등에 대한 평가에서 그들의 철학(?)이 서서히, 결국 적나라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단지 역사와 인간을 보는 관점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방식과 그것을 결정하는 정책 일반이라는 현실과 긴밀히 연관된다. 환율, 제세, 복지 등 온갖 사회 정책은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가치 판단은 그들이 사람과 역사, 물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따라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하는 저자의 시도가 광범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관통하며, 현재 일어나는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관한 진단으로 연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무조건 본뜨려고만 하는 것 같다. 40년 전 상황에서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던 통치 스타일도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그늘을 후세에 남겼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고속 성장을 위해 분배를 외면하고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가진 자들의 본딩 조직력만 키우는 개발독재를 재현하겠다고? 물질족 자본만으로 세상을 보는 편협한 역사관이 거들어주지 않는다면 상상해내기도 어려운 시대착오다.
안병직과 이영훈은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주도한 하나의 집단을 상정한다. 개항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지주층이 일제에 협력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 기술을 가진 실력자 집단으로 자라났고, 대한민국에서도 경제 발전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이 지금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 정부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은 이 집단의 본딩 조직력을 지키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 본문 115쪽 중에서
*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정보, 역사학자의 통찰이 녹아든 교양서
이 책은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이라는 부정적인 서술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서고금의 역사적·시사적 정보를 곳곳에서 엮어넣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거대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저자의 통찰을 통해 독자에게 풍부한 교양과 글맛을 제공한다. 또 역사를 보는 치우친 시각을 경계해온 저자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하여 ‘역사학자’로서 ‘방어’하러 나선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그만큼 취약한 한국 역사학계도 동시에 꼬집으며 ‘할 말은 하는’ 비판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기존의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냉철한 시각을 제시하며, 어느 정치적 성향에 있든지 합리적인 논리와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포괄적인 비평을 시도한다. 식민지, 친일파, 수탈, 근대화에 대한 냉철한 평가 작업은 이러한 바탕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인간이란 대단히 복잡하고 심오한 존재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인간이란 존재의 한 모퉁이라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진 여러 학문 가운데 하나가 역사학이다. 역사학자는 인간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해온 일들을 살펴 그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려 노력한다.
그런데 안병직과 이영훈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놓고 그 위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영훈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경제학의 가정적 명제를 인간 전체에 스스럼없이 적용한다. 이 자의적 규정이 우리 사회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논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홉스Thomas Hobbes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고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설명한 것은 1651년의 일이다. 이기심은 인간성의 엄연한 한 부분인데, 그때까지 인식되어온 것보다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홉스의 지적이었다. 당시의 시대 변화 속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 지적을 절대적 진리처럼 받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홉스 자신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 본문 19∼20쪽 중에서
* ‘상식’과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펼치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비판
‘뉴라이트’가 사방에서 들려오지만 막상 그들이 누구인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연구자나 관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뉴라이트의 실체와 현 정부 정책의 윤곽을 그리고 싶은 독자, 정확히 어떤 것이 잘못되어 불편한지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 독자, 촛불 집회를 계기로 정치와 역사 문제에 새삼 관심을 갖기 시작한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상식 수준에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역사가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당연한 전제를 바탕으로, 정치적 불만을 막상 표현하기 어려웠던 일반인들에게 생생하고 구체적인 준거들과 함께 눈앞의 그림과 전망을 제시한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1945년 8월 15일보다 1948년 8월 15일이 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본 식민 통치를 근대화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뉴라이트에게는 일본의 패전으로 이뤄진 민족의 광복이 반가운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광복 당시에 일본의 패전을 슬퍼한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에 속한 채 수십 년을 지낸 시점에서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그렇다 쳐도, 대한민국에 속한 채 수십 년을 지낸 시점에서 그런 사람들을 떼로 보게 되는 것은 참 뜻밖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나라 노릇에 결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부실했던가 하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본문 27∼28쪽 중에서
현재는 ‘시대정신’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개칭한 구 뉴라이트재단, 막강한 대중동원력을 자랑하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비전 설정과 정책 제안에 앞장서며 보수의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2004년 이후 ‘신보수’를 표방하며 탄생한 이 뉴라이트 단체들은 현 정권의 탄생 과정에서 한 몫을 톡톡히 했고, 현 정권의 출범 이후에도 정권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 때로는 ‘브레인’으로 때로는 ‘행동대’로 주요한 정책의 생산과 집행을 이끌어왔다. 특히 ‘뉴라이트재단’은 역사관, 국가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던져옴으로써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들은 이제 단순한 담론 생산을 과감히 넘어서서, 절차도 원칙도 무시하고 정권 입맛대로 교과서를 바꾸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민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실천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이는 부유층 규제 완화와 감세, 저소득층 최저 임금제 흔들기, ‘선진화’(민영화) 시도, 대북 강경책 등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뿌리를 같이한다.
이 책은 이러한 뉴라이트의 활동과 담론, 이념에 대해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최초의’ 책이다. 그간 이러한 본격적인 비판서가 나오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의 활동 범위가 워낙 넓고 다양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뉴라이트 운동에서 가장 기초적인 이데올로기 생산을 담당해온 ‘뉴라이트재단’의 담론과 이념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며. 그렇게 함으로써 좀더 근본적인 비판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때 또다른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들 담론이 사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용은 너무나 빈약해서, 기존의 역사학계나 정책 연구자들이 진지한 대응과 비판을 하기에 민망하고 곤란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2004년 이후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진지한 비판이나 대응이 어째서 그렇게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관에 대해 다룰 때에도 사실관계에서의 오류를 따지기보다는 그 사실관계를 바라보는 ‘눈’, ‘관점’에 집중한다.(사실관계에서의 오류를 따지는 작업은 <역사평론> 등의 지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바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어려움을 넘어서는 비평이 역사학계 내부나 외부에서보다는 그 경계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요약하자면, 이 책은 역사를 공부했지만 시사에도 관심이 많은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이 ‘역사적 지식’뿐 아니라 ‘상식’을 무기로 뉴라이트의 본질과 현상을 전방위로 비판하는 최초의 본격 단행본이다.
* 역사관으로부터 우리 삶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까지 통찰한 비평서
이제 뉴라이트의 담론은 눈앞의 정책들로 현실화되어 더 이상 그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에 직면해 평소 객관적인 역사 인식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이 나섰다. ‘뉴라이트는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화두로 열여덟 꼭지의 에세이 속에 그들의 인간관, 역사관, 국가관, 민족관, 대북관, 대미관 등에 대한 비판을 꾹꾹 눌러담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등 뉴라이트 진영에서 출간한 도서들을 포함해 다양한 참고 자료를 조목조목 따져봄으로써, 뉴라이트의 이념과 이데올로기, 담론을 입체적으로 비평한다. 그들의 기본 이념을 뒷받침하는 역사관, 즉 그 저작들에 나오는 일제 식민지, 친일파, 이승만, 박정희 등에 대한 평가에서 그들의 철학(?)이 서서히, 결국 적나라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단지 역사와 인간을 보는 관점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방식과 그것을 결정하는 정책 일반이라는 현실과 긴밀히 연관된다. 환율, 제세, 복지 등 온갖 사회 정책은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가치 판단은 그들이 사람과 역사, 물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따라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하는 저자의 시도가 광범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관통하며, 현재 일어나는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관한 진단으로 연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무조건 본뜨려고만 하는 것 같다. 40년 전 상황에서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던 통치 스타일도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그늘을 후세에 남겼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고속 성장을 위해 분배를 외면하고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가진 자들의 본딩 조직력만 키우는 개발독재를 재현하겠다고? 물질족 자본만으로 세상을 보는 편협한 역사관이 거들어주지 않는다면 상상해내기도 어려운 시대착오다.
안병직과 이영훈은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주도한 하나의 집단을 상정한다. 개항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지주층이 일제에 협력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 기술을 가진 실력자 집단으로 자라났고, 대한민국에서도 경제 발전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이 지금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 정부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은 이 집단의 본딩 조직력을 지키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 본문 115쪽 중에서
*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정보, 역사학자의 통찰이 녹아든 교양서
이 책은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이라는 부정적인 서술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서고금의 역사적·시사적 정보를 곳곳에서 엮어넣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거대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저자의 통찰을 통해 독자에게 풍부한 교양과 글맛을 제공한다. 또 역사를 보는 치우친 시각을 경계해온 저자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하여 ‘역사학자’로서 ‘방어’하러 나선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그만큼 취약한 한국 역사학계도 동시에 꼬집으며 ‘할 말은 하는’ 비판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기존의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냉철한 시각을 제시하며, 어느 정치적 성향에 있든지 합리적인 논리와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포괄적인 비평을 시도한다. 식민지, 친일파, 수탈, 근대화에 대한 냉철한 평가 작업은 이러한 바탕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인간이란 대단히 복잡하고 심오한 존재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인간이란 존재의 한 모퉁이라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진 여러 학문 가운데 하나가 역사학이다. 역사학자는 인간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해온 일들을 살펴 그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려 노력한다.
그런데 안병직과 이영훈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놓고 그 위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영훈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경제학의 가정적 명제를 인간 전체에 스스럼없이 적용한다. 이 자의적 규정이 우리 사회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논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홉스Thomas Hobbes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고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설명한 것은 1651년의 일이다. 이기심은 인간성의 엄연한 한 부분인데, 그때까지 인식되어온 것보다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홉스의 지적이었다. 당시의 시대 변화 속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 지적을 절대적 진리처럼 받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홉스 자신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 본문 19∼20쪽 중에서
* ‘상식’과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펼치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비판
‘뉴라이트’가 사방에서 들려오지만 막상 그들이 누구인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연구자나 관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뉴라이트의 실체와 현 정부 정책의 윤곽을 그리고 싶은 독자, 정확히 어떤 것이 잘못되어 불편한지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 독자, 촛불 집회를 계기로 정치와 역사 문제에 새삼 관심을 갖기 시작한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상식 수준에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역사가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당연한 전제를 바탕으로, 정치적 불만을 막상 표현하기 어려웠던 일반인들에게 생생하고 구체적인 준거들과 함께 눈앞의 그림과 전망을 제시한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1945년 8월 15일보다 1948년 8월 15일이 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본 식민 통치를 근대화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뉴라이트에게는 일본의 패전으로 이뤄진 민족의 광복이 반가운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광복 당시에 일본의 패전을 슬퍼한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에 속한 채 수십 년을 지낸 시점에서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그렇다 쳐도, 대한민국에 속한 채 수십 년을 지낸 시점에서 그런 사람들을 떼로 보게 되는 것은 참 뜻밖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나라 노릇에 결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부실했던가 하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본문 27∼28쪽 중에서
목차
머리말
01 뉴라이트의 인간관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인가?
정치인가, 정략인가 |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 | 연대하고 공존하는 인간 | 언어가 만들어준 ‘사회적 동물’ | 자기 사회를 배신하는 자들
02 뉴라이트의 국가관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건국절 논란 | 대한민국은 내게 무엇인가 | 한반도 분단을 보는 시선 | 이승만을 똑바로 보자 | 민족과 국가 이간질하는 건국절 주장
03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근대화’란 무엇인가?
일본 극우파 따르는 관점 | ‘연평균 3.6% 고성장’의 함정 | 달걀을 수탈하려면 닭에게 모이를 준다 | 식민 통치의 목적은 종속화 |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까닭
04 뉴라이트의 이념
어떤 ‘자유주의’인가?
‘신자유주의’로 이름을 바꾸어 단 자유주의 | 산업혁명의 선물 자유주의 | 경제 자유주의와 사회 자유주의 |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한 착근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의 효율성과 위험성 | 승자를 받들고 강자를 좇아
05 뉴라이트의 문명관
어떤 ‘뉴코리아’를 바라보는가?
자본주의를 유일한 문명으로 보는 뉴라이트 | 자본주의를 역사적 현상으로 본 마르크스 | 환상의 콤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 지구의 심복지환이 된 인류 | 자원의 벽 앞에 선 자본주의 | 새로운 계급사회를 바라보는 신자유주의
06 뉴라이트의 민족관
왜 민족주의를 미워하는가?
하이퍼내셔널리즘에 대한 반성 | 민족과 민족지상주의 혼동하는 뉴라이트 | 있던 민족이 우긴다고 없어지나 |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국사 해체’ 주장 |
민족주의에 웬 색깔? | 민족주의와 싸우는 희한한 극우파
07 뉴라이트의 대미관
왜 미국 아니면 못 살까?
원교근공에서 근교원공의 세계로 | 절대적인 것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 | 미국의 신제품, 대한민국 건국 | 졸개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보스 | ‘뉴’라이트 아닌 ‘올드’라이트 | 새로운 세계의 부적응 국가, 미국 | 자원 한계 무시하는 캐치업 이론
08 뉴라이트의 경제정책
선진화, 어느 방향인가?
민영화가 ‘선진화’로 둔갑한 사정 | 자연독점의 문제 |
캐치업 이론의 비현실성 | 비상한 목표를 위한 비상한 수단 | 고속 성장을 위한 공안 정국
09 뉴라이트의 자본관
‘자본’은 돈만을 의미하는가?
‘도덕적 해이’ 아닌 ‘도덕적 파탄’ | 자본주의도 잘 모르는 뉴라이트 | 만수, 청수,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 |
조직력의 두 종류, 본딩과 브리징 |
사회적 자본 성장을 차단한 박정희 정권 |
브리징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
10 뉴라이트와 친일파
아마노 미치오를 뒤따르려는가?
뉴라이트의 선지자, 아마노 미치오 | 내선일체동화론자의 절규 | 내선일체동화론자의 논리 | 전향자의 열정 |
동화일체론의 부활인가 | 친일의 다양한 스펙트럼
11 뉴라이트와 친미 내셔널리즘
그들은 ‘친미 내셔널리즘’을 꿈꾸는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재인식 | 빈약한 비전과 과잉된 정치성의 산물 | 조관자의 논문을 왜곡하지 말라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실린 아까운 논문들 |
조관자의 이광수와 이영훈의 이광수 | 편집자의 책임과 권한, 그리고 양심
12 뉴라이트와 주류 역사학계
뉴라이트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겠다
치료받지 못한 민족의 트라우마 |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넘어서 | 뉴라이트에 빌미를 준 민족 과잉 역사관 |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운 카터 에커트의 분석 |
권위주의 정권은 식민지 시기의 유산 | 극우의 눈에는 모두가 좌익이다
13 뉴라이트의 대북관
사악한 것인가, 우둔한 것인가?
사악하고 우둔한 자, 과연 누구인가 | 북한의 파멸을 바라는 세력 | 벨벳 혁명의 허점 | 정말로 2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가 | 제발 남북 관계만은……
14 뉴라이트와 ‘대안 교과서’
역사를 ‘과학’이라고 보는가?
학문에 ‘특허권’이 없다니? | 학문적 책임 지지 않는 교과서 집필 | 사회과학자와 역사학자는 어떻게 다른가 | 민중사의 대안으로 제출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 |
학문적 도전 아닌 정치적 책략
15 뉴라이트의 승리주의
‘승리’가 곧 ‘성공’인가?
역사의 의미가 ‘성공’에만 있는가 | 경쟁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인가 | 파국을 격화시킨 신자유주의 노선 | 자본주의 신앙고백 뉴라이트의 역사관 | 북한을 실패한 국가로만 보려는 집착 | ‘실패’의 역사에서 배우라
16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파동
‘교과서’를 불쏘시개로 아는가?
교과서란 원래 융통성 없는 물건 | 역사교육은 양날의 칼 | 민주화의 결실, 교과서 검인정 제도 | 역사학계 폐쇄성보다 뉴라이트 폐쇄성이 문제 | 절차가 중요하다
17 뉴라이트와 보수주의
이 땅의 보수를 죽이려는가?
합리적 보수를 향한 열망 | 역사관 없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 자본주의 신앙의 편협성과 독단성 |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점 | “이 땅의 합리적 보수는 죽었는가?”
18 뉴라이트 대처법
그들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까?
200년 전 세상에서 찾아온 타임머신 | 무리한 역사관과 무리한 정책 노선 | 정치 발전을 보여주는 ‘촛불’ | 위기를 기회로 | 되살려야 할 인간적 가치들
부록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서평
_ 역사책? 글쎄다, 교과서? 아니다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