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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김화영 평론집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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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화영 선생의 직함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시인이자 불문학자로, 한국인에게 카뮈, 파트릭 모디아노, 장 그르니에 문장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 유려한 문체의 프랑스어 번역가로, 고려대 명예교수로, 그리고 지금도 한국문단의 중심에서 쉼 없이 아름다운 소설들을 발굴해내는 탁월한 안목의 문학평론가로, 우리 문화계에서 전방위 활동을 펼쳐온 김화영 선생.
그에게 올해는 특별한 해이다.
1986년부터 매진해온 알베르 카뮈의 전집 번역작업이 마무리되어, 드디어 23년 만에 전 20권이 완간되는 해이며, 지난 9월에는 그간 우리 지성계와 문학계에 끼친 공적을 인정받아 인촌상 인문사회문학 부문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리고 2006년, 고려대를 정년퇴임하며 집필활동과 번역작업에 오롯이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된 선생이 이제 10년 만에 단단히 여며두고 날을 갈아왔던 평론들을 세상에 풀어놓는다. 평론집 『소설의 꽃과 뿌리―나의 시대의 소설가』 이후 꼭 10년 만이다.
10여 년 동안 선생은 “이 나라에서 발표되는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선생은 이 나라 작가들이 쓰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때론 의무였고 굴레였고 중노동이었고 고통이었으며, 즐거움이자 희망이었고, 때때로 “발견”이었노라 고백한다. 지난 시간, 한국소설의 숲을 고요히 걷고 길을 내며, 그가 “발견”한 진실은 무엇일까.
10년 만에 펴내는 이번 평론집에서 김화영 선생은 나지막하게 그 진실을 토론한다.
소설의 엑스터시,
이토록 황홀한 배회의 순간
“내가 어제 음악회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은 공연이었다. 그때 생각한 건데, 사람에게 엑스터시를 주는 건 문학과 음악이다. 책을 천천히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엑스터시가 있다. 마치 아름다운 음률이 순간적으로 황홀하게 하듯 말이다.”
소설가 김인숙은 한 인터뷰에서 김화영 선생이 들려준 이 말을 고스란히 전했다. 책을 읽으며 가슴 뛰어본 이라면, 소설의 황홀경 속에 한번이라도 몸 적셔본 이라면, 선생의 말에 고개 끄덕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화영 선생은 이번 평론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문장의 엑스터시를 체감하게 하고 황홀한 미학과 인생의 진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스물다섯 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신경숙의 『리진』, 조경란의 『혀』, 윤대녕의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를 중심으로 이 세 작가가 걸어온 소설미학의 도정을 짚어본다. 특히 윤대녕을 소설계의 ‘인상주의 화가’로 은유하고 근래 그의 인물을 끌어가는 자장이라 할 수 있는 문학, 미술, 천문학, 사랑의 네 가지 극을 짚어보며, 인상주의 화가 특유의 우수가 깃들어 있는 그의 소설들을 농밀하게 분석해낸 글은 윤대녕 미학의 심층을 보여준다.
2부에는 김화영 선생이 10여 년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선정작업에 참여하면서, 특별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던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박완서, 박범신, 은희경, 하성란, 오정희, 전경린, 김영하, 윤성희, 김연수, 편혜영, 정한아 등 우리 시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김화영 선생 특유의 미문에 실려 전해온다. 묵직한 울림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가득 품고 있는 글 마디마디에서, 선생은 이따금씩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또 정말 ‘좋은 소설’이 지닌 미덕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답한다.
예컨대 “조로증이 극심한” 우리 문단에서 아직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완서 작가를 논하면서, 굳이 “참신한 형식의 실험이나 기이한 문체, 감각의 낯설음”이 아니더라도 “한결같이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과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칠맛 나는 언어로 한 시대의 감성과 삶의 결을 소상하게 드러내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박완서 소설미학에 주목하며, 어쩌면 소설은 오히려 “이처럼 헷갈리고 두서가 없고 애매한 그 마음의 무늬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또, 지극히 일상적이고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한 한국의 가족주의를 소재로 한 이혜경의 「대낮에」를 평한 글에서는, 소설의 성패는 역시 “주제 못지않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즉 “걸음걸이나 호흡”에 의해 좌우되는 장르임을 역설한다. 더불어 윤대녕의 「탱자」에서는 소설이란 “귤이 되지 못한 파란 탱자에게 공감과 연민이 가득한 언어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직접 웨하스 한 봉지를 사다 먹으며 쓸쓸하게 읽어내려갔다는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을 평하면서는 “자신의 삶을 외국어처럼 바라보며 사는 삶, 소설은 우리들에게 그런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여기가 혹시 내 안의 이방은 아닌가? 나는 여기서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한편, 최일남의 「멀리 가버렸네」를 다룬 글에서는 김화영 선생의 독서습관의 일편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선생은 최일남의 소설을 “너무 크지 않은 사이즈의 국어사전을 꺼내어 그 갈피갈피에 손가락을 넣고 애완견의 털을 애무하듯 페이지를 뒤적이고 쓰다듬으며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소설의 어휘와 어조와 가락을 느릿느릿 음미”하며 읽는다. 그렇게 사전을 뒤적이고 사전 속의 어휘들을 좇아 단어의 숲을 헤매는 가운데 문득 숨을 고르며 말한다. “사전의 미로는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숲이다. 그러나 종종 그 미로 속에 서 길 잃고 싶다. 뻔하고 따분한 출구보다는 그런 방황과 배회가 더 황홀한 순간이 우리의 삶에는 더러 있어야 한다. 소설도 종종 그런 황홀한 배회의 순간이 된다”라고.
소설 속에서는 각종 이론과 현학적인 지식의 나열보다는 창밖에 내려앉은 콩새 한 마리가 더 웅변적이라고 믿는 이 눈 밝은 평론가는 그렇게 “삶의 앞뒤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아름다움”이 담긴 소설들을 찾아 지금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단어의 숲을, 그리고 소설의 숲을 누빈다.
현대시에 드러난 시인들의 밥벌이 이야기
이 책의 3부에는 김화영 선생이 잠시 소설숲에서 빠져나와 한국의 시단과 독서계의 일단을 짚어본 글들이 실려 있다. 이중 「현대시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서정주에서 김사인까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인들이 쓴 ‘돈’과 ‘생계’에 관한 시들을 분석한 글이다.
이 시대의 시인은 더이상 강가에 앉아 자연과 인생을 찬양하는 뮤즈일 수만은 없다. 심지어 그 옛날의 서정주조차 “밤새워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 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가나니 / 한 수에 오만원짜리 회갑 시 써달라던 /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찬술」)라는 시를 남겼고, 박철 시인은 가난한 생활에 조금쯤 낭만과 흥을 돋워줄 기타 하나를 사고는 밤새워 고민한다.( “덜컥 10만원에 기타 하나 주문하고 돌아와/ 밤새 뒤척인다 / (…) / 마누라도 등이 갈라지게 내동댕이칠라나 / 샘터 사에서 받을 원고료는 있는데 / 이 생각 저 생각에 / 잠이 안 온다”」) 우리의 현실을 잠식하는 ‘돈’과 ‘삶’의 관계에 대해 점점 더 절박하게 묻고 고뇌하는 이 시대의 시인들. 그들과 이 땅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연민과 슬픔으로 바라보며 김화영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종교에 의탁하든 서로의 마음을 연민으로 쓰다듬든 여전히 누추한 일상은 계속해야 하는 것. 돈의 결핍은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일상의 숫자와 계산의 반복은 강박을 낳는다. 소시민, 자영업자, 월급생활자, 이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수입과 지출을 셈한다. 현대의 모든 물질생활은 이런 것이다. 그들의 가난한 의식이 시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난은 물질적인 불편을 넘어서서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적 강박이 되어 그들의 내면을 남루한 계산기 같은 불모지로 탈바꿈시켜놓는다. ―「현대시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 중에서
프랑스의 전설적인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
한국의 정치인들이 독서토론 프로에 나간다면?
한편 「<아포스트로프>의 어제와 <느낌표>의 오늘」은 몇 년 전 한국 출판계를 들썩이게 했던, 한편에서는 독서 강권(强勸) 프로그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전 국민적인 독서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은 <느낌표>의 독서 프로그램과 프랑스의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를 비교하며 양국의 독서 문화를 진단한 글이다.
<아포스토로프>의 사회자 베르나르 피보는 매일 열 시간가량 그 주에 프랑스에서 나온 신간들을 샅샅이 읽고 다음 방송분에 출연할 저자들에 대해 철저하게 탐구하는 비범한 진행자였다. 그는 학자적인 면모로 저자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는 지성인이 되기보다는 ‘대중의 호기심을 번역하는’ 사회자이고자 했고, 그의 치열한 독서와 저자들을 향한 냉철한 인터뷰는 이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설적인 독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아포스트로프>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지스카르 데스탱 같은 대통령들도 출연해 모파상과 플로베르 등의 문학작품을 두고 자신만의 교양과 열정을 피력한 바 있는데, 김화영 선생은 이런 풍경에 한국의 현실을 대입해보았다가는 이내 “지워버린다”.
나는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 대통령 후보자들, 혹은 총리, 장관들이 이 방송에 초대받아한 권 이상의 “저서”가 필수겠지만―토론하는 장면을 공상의 스크린 위에서 부질없이 상영해보곤 한다. 그리고 부관도 비서관도 특별보좌관도 배석하지 않은 그 비극적인 혹은 희극적인 장면을 얼른 지워버린다.
―「<아포스트로프>의 어제와 <느낌표>의 오늘」 중에서
10년 만의 평론집을 내는 소회를 밝히는 서문에서 김화영 선생은 토도로프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을 모르면 무식하다 하겠지만 프랑스 문학에서 『악의 꽃』을 읽지 못한 사람은 무식하다. 루소, 스탕달, 프루스트는 현재의 유명한 비평이론가들의 이름이나 그 개념구조들이 다 잊힌 뒤에도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남을 것이다.”
문학비평가, 문학교수, 그 밖의 전문가들은 단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0년 동안 울창한 소설의 숲을 배회하며 개중 유독 아름다운 나무들을 찾아 빛을 쬐어주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했던 대가의 업적은, 선생의 겸양에도 결코 낮아지지 않는다.
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형식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10여 년 동안 소설을 통해 삶을 보고 또한 동시에 소설 그 자체를 살았던 우리 시대의 탁월한 평론가 김화영 선생. 이미 오래전에 루카치가 말했듯 더이상 우리의 하늘에 가야 할 길을 알려줄 별은 떠 있지 않으나, 김화영 선생은 자기만의 별을 찾기 위해 얼마든지 배회하고 방황할 권리는 있음을 말한다.
배회하지 않는 자, 고민하지 않는 자. 이 삶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시간 우리 문학의 숲을 걸으며, 끝없이 삶과 진실의 가치를 물어온 김화영 선생의 이번 평론집은 한국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이 휘황한 시대에 펜을 쥐고 시대의 진실을 묻는 이 땅의 작가들을 위한 지혜로운 나침반이다.
그에게 올해는 특별한 해이다.
1986년부터 매진해온 알베르 카뮈의 전집 번역작업이 마무리되어, 드디어 23년 만에 전 20권이 완간되는 해이며, 지난 9월에는 그간 우리 지성계와 문학계에 끼친 공적을 인정받아 인촌상 인문사회문학 부문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리고 2006년, 고려대를 정년퇴임하며 집필활동과 번역작업에 오롯이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된 선생이 이제 10년 만에 단단히 여며두고 날을 갈아왔던 평론들을 세상에 풀어놓는다. 평론집 『소설의 꽃과 뿌리―나의 시대의 소설가』 이후 꼭 10년 만이다.
10여 년 동안 선생은 “이 나라에서 발표되는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선생은 이 나라 작가들이 쓰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때론 의무였고 굴레였고 중노동이었고 고통이었으며, 즐거움이자 희망이었고, 때때로 “발견”이었노라 고백한다. 지난 시간, 한국소설의 숲을 고요히 걷고 길을 내며, 그가 “발견”한 진실은 무엇일까.
10년 만에 펴내는 이번 평론집에서 김화영 선생은 나지막하게 그 진실을 토론한다.
소설의 엑스터시,
이토록 황홀한 배회의 순간
“내가 어제 음악회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은 공연이었다. 그때 생각한 건데, 사람에게 엑스터시를 주는 건 문학과 음악이다. 책을 천천히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엑스터시가 있다. 마치 아름다운 음률이 순간적으로 황홀하게 하듯 말이다.”
소설가 김인숙은 한 인터뷰에서 김화영 선생이 들려준 이 말을 고스란히 전했다. 책을 읽으며 가슴 뛰어본 이라면, 소설의 황홀경 속에 한번이라도 몸 적셔본 이라면, 선생의 말에 고개 끄덕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화영 선생은 이번 평론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문장의 엑스터시를 체감하게 하고 황홀한 미학과 인생의 진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스물다섯 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신경숙의 『리진』, 조경란의 『혀』, 윤대녕의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를 중심으로 이 세 작가가 걸어온 소설미학의 도정을 짚어본다. 특히 윤대녕을 소설계의 ‘인상주의 화가’로 은유하고 근래 그의 인물을 끌어가는 자장이라 할 수 있는 문학, 미술, 천문학, 사랑의 네 가지 극을 짚어보며, 인상주의 화가 특유의 우수가 깃들어 있는 그의 소설들을 농밀하게 분석해낸 글은 윤대녕 미학의 심층을 보여준다.
2부에는 김화영 선생이 10여 년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선정작업에 참여하면서, 특별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던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박완서, 박범신, 은희경, 하성란, 오정희, 전경린, 김영하, 윤성희, 김연수, 편혜영, 정한아 등 우리 시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김화영 선생 특유의 미문에 실려 전해온다. 묵직한 울림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가득 품고 있는 글 마디마디에서, 선생은 이따금씩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또 정말 ‘좋은 소설’이 지닌 미덕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답한다.
예컨대 “조로증이 극심한” 우리 문단에서 아직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완서 작가를 논하면서, 굳이 “참신한 형식의 실험이나 기이한 문체, 감각의 낯설음”이 아니더라도 “한결같이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과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칠맛 나는 언어로 한 시대의 감성과 삶의 결을 소상하게 드러내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박완서 소설미학에 주목하며, 어쩌면 소설은 오히려 “이처럼 헷갈리고 두서가 없고 애매한 그 마음의 무늬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또, 지극히 일상적이고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한 한국의 가족주의를 소재로 한 이혜경의 「대낮에」를 평한 글에서는, 소설의 성패는 역시 “주제 못지않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즉 “걸음걸이나 호흡”에 의해 좌우되는 장르임을 역설한다. 더불어 윤대녕의 「탱자」에서는 소설이란 “귤이 되지 못한 파란 탱자에게 공감과 연민이 가득한 언어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직접 웨하스 한 봉지를 사다 먹으며 쓸쓸하게 읽어내려갔다는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을 평하면서는 “자신의 삶을 외국어처럼 바라보며 사는 삶, 소설은 우리들에게 그런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여기가 혹시 내 안의 이방은 아닌가? 나는 여기서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한편, 최일남의 「멀리 가버렸네」를 다룬 글에서는 김화영 선생의 독서습관의 일편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선생은 최일남의 소설을 “너무 크지 않은 사이즈의 국어사전을 꺼내어 그 갈피갈피에 손가락을 넣고 애완견의 털을 애무하듯 페이지를 뒤적이고 쓰다듬으며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소설의 어휘와 어조와 가락을 느릿느릿 음미”하며 읽는다. 그렇게 사전을 뒤적이고 사전 속의 어휘들을 좇아 단어의 숲을 헤매는 가운데 문득 숨을 고르며 말한다. “사전의 미로는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숲이다. 그러나 종종 그 미로 속에 서 길 잃고 싶다. 뻔하고 따분한 출구보다는 그런 방황과 배회가 더 황홀한 순간이 우리의 삶에는 더러 있어야 한다. 소설도 종종 그런 황홀한 배회의 순간이 된다”라고.
소설 속에서는 각종 이론과 현학적인 지식의 나열보다는 창밖에 내려앉은 콩새 한 마리가 더 웅변적이라고 믿는 이 눈 밝은 평론가는 그렇게 “삶의 앞뒤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아름다움”이 담긴 소설들을 찾아 지금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단어의 숲을, 그리고 소설의 숲을 누빈다.
현대시에 드러난 시인들의 밥벌이 이야기
이 책의 3부에는 김화영 선생이 잠시 소설숲에서 빠져나와 한국의 시단과 독서계의 일단을 짚어본 글들이 실려 있다. 이중 「현대시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서정주에서 김사인까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인들이 쓴 ‘돈’과 ‘생계’에 관한 시들을 분석한 글이다.
이 시대의 시인은 더이상 강가에 앉아 자연과 인생을 찬양하는 뮤즈일 수만은 없다. 심지어 그 옛날의 서정주조차 “밤새워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 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가나니 / 한 수에 오만원짜리 회갑 시 써달라던 /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찬술」)라는 시를 남겼고, 박철 시인은 가난한 생활에 조금쯤 낭만과 흥을 돋워줄 기타 하나를 사고는 밤새워 고민한다.( “덜컥 10만원에 기타 하나 주문하고 돌아와/ 밤새 뒤척인다 / (…) / 마누라도 등이 갈라지게 내동댕이칠라나 / 샘터 사에서 받을 원고료는 있는데 / 이 생각 저 생각에 / 잠이 안 온다”」) 우리의 현실을 잠식하는 ‘돈’과 ‘삶’의 관계에 대해 점점 더 절박하게 묻고 고뇌하는 이 시대의 시인들. 그들과 이 땅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연민과 슬픔으로 바라보며 김화영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종교에 의탁하든 서로의 마음을 연민으로 쓰다듬든 여전히 누추한 일상은 계속해야 하는 것. 돈의 결핍은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일상의 숫자와 계산의 반복은 강박을 낳는다. 소시민, 자영업자, 월급생활자, 이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수입과 지출을 셈한다. 현대의 모든 물질생활은 이런 것이다. 그들의 가난한 의식이 시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난은 물질적인 불편을 넘어서서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적 강박이 되어 그들의 내면을 남루한 계산기 같은 불모지로 탈바꿈시켜놓는다. ―「현대시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 중에서
프랑스의 전설적인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
한국의 정치인들이 독서토론 프로에 나간다면?
한편 「<아포스트로프>의 어제와 <느낌표>의 오늘」은 몇 년 전 한국 출판계를 들썩이게 했던, 한편에서는 독서 강권(强勸) 프로그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전 국민적인 독서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은 <느낌표>의 독서 프로그램과 프랑스의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를 비교하며 양국의 독서 문화를 진단한 글이다.
<아포스토로프>의 사회자 베르나르 피보는 매일 열 시간가량 그 주에 프랑스에서 나온 신간들을 샅샅이 읽고 다음 방송분에 출연할 저자들에 대해 철저하게 탐구하는 비범한 진행자였다. 그는 학자적인 면모로 저자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는 지성인이 되기보다는 ‘대중의 호기심을 번역하는’ 사회자이고자 했고, 그의 치열한 독서와 저자들을 향한 냉철한 인터뷰는 이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설적인 독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아포스트로프>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지스카르 데스탱 같은 대통령들도 출연해 모파상과 플로베르 등의 문학작품을 두고 자신만의 교양과 열정을 피력한 바 있는데, 김화영 선생은 이런 풍경에 한국의 현실을 대입해보았다가는 이내 “지워버린다”.
나는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 대통령 후보자들, 혹은 총리, 장관들이 이 방송에 초대받아한 권 이상의 “저서”가 필수겠지만―토론하는 장면을 공상의 스크린 위에서 부질없이 상영해보곤 한다. 그리고 부관도 비서관도 특별보좌관도 배석하지 않은 그 비극적인 혹은 희극적인 장면을 얼른 지워버린다.
―「<아포스트로프>의 어제와 <느낌표>의 오늘」 중에서
10년 만의 평론집을 내는 소회를 밝히는 서문에서 김화영 선생은 토도로프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을 모르면 무식하다 하겠지만 프랑스 문학에서 『악의 꽃』을 읽지 못한 사람은 무식하다. 루소, 스탕달, 프루스트는 현재의 유명한 비평이론가들의 이름이나 그 개념구조들이 다 잊힌 뒤에도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남을 것이다.”
문학비평가, 문학교수, 그 밖의 전문가들은 단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0년 동안 울창한 소설의 숲을 배회하며 개중 유독 아름다운 나무들을 찾아 빛을 쬐어주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했던 대가의 업적은, 선생의 겸양에도 결코 낮아지지 않는다.
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형식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10여 년 동안 소설을 통해 삶을 보고 또한 동시에 소설 그 자체를 살았던 우리 시대의 탁월한 평론가 김화영 선생. 이미 오래전에 루카치가 말했듯 더이상 우리의 하늘에 가야 할 길을 알려줄 별은 떠 있지 않으나, 김화영 선생은 자기만의 별을 찾기 위해 얼마든지 배회하고 방황할 권리는 있음을 말한다.
배회하지 않는 자, 고민하지 않는 자. 이 삶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시간 우리 문학의 숲을 걸으며, 끝없이 삶과 진실의 가치를 물어온 김화영 선생의 이번 평론집은 한국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이 휘황한 시대에 펜을 쥐고 시대의 진실을 묻는 이 땅의 작가들을 위한 지혜로운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