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정치경영연구소 기획총서 01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 발행사항
- 서울 : 폴리테이아, 2011
- 형태사항
- 350p. ; 23cm
- 총서사항
- 정치경영연구소 기획총서
- ISBN
- 9788992792288
- 청구기호
- 340.221 최832ㅈ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3519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3519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아니면 철 지난 과거 이념에 불과한가.
자유주의의 진보적 재해석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경제적 자유주의로 변질된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독자적 자유주의 노선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빈곤, 소외,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을 중시하는 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이었다. 이후 최소정부주의 혹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앞세우거나 수용하는 그 이전의 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 사회적 자유주의류의 사상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자유주의 앞에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하는 상황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방법론적 유연성 못지않게 중요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력의 근원은 대중 친화성일 것으로 여겨진다. 상기한 바와 같이, 실질적 사회문제에 대한 현대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공통해법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건설이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만이 아니라 중간 계층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시민 연대 혹은 복지 세력이 형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일반 시민들의 지지와 동원을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기초가 되는 이념은 일반 시민들과 상당 정도의 친화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이 같은 이념에 가까운 것은 아무래도 사회민주주의보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에 비해 진보적 자유주의가 더 많은 시민들을 복지 세력으로 초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 대부분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의 신자유주의 대안 이념으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 회복 운동이 복지자본주의 체제라는 결실을 맺었다면, 21세기 전반기에는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왜곡?오용되어 왔다. 이제 제대로 논의해 봐야 한다.”
자유주의는 애당초 진보적 이념이다
이 책은 소수의 사람들, 즉 자유주의는 본래 진보적이거나 혹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내세운 (자유주의가 진보적일 수 있는) 조건은 물론 서로 다르다. 그중 고세훈(3장)의 조건이 아마도 가장 까다로울 게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자유주의가 정녕 진보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정치를 통해 개혁에 대한 현실적인 실천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비해 최장집(2장)이 덤덤히 서술하는 자유주의의 진보성은 그저 당연한 것이다. 그는, 냉전 반공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시장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로 연결되는 자유지상주의는 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이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유주의란 법치주의, 입헌주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의미할 뿐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래부터 만인평등의 이념이다. 그러니 “만약 ‘진보’가 ……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와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
설령 (고전적) 자유주의가 애초에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사상이었다 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자유주의가 보수의 틀에 갇혀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근식(1장)이 정의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결별을 선언한 ‘새로운’ 자유주의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대신 사회적 자유주의로 자유주의 본래의 진보성을 회복, 유지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이념은 다시 진보적 자유주의다
이 책의 필자들 대부분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의 신자유주의 대안 이념으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 회복 운동이 복지자본주의 체제라는 결실을 맺었다면, 21세기 전반기에는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왜곡·오용되어 왔다. 이제 제대로 논의해 봐야 한다. 그것을 본래의 그 광명정대하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성격의 자유평등이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시민들이 그 진보적 자유주의의 가치에 공감해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대안 체제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만큼이나 진보적이다
지금의 한국에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재벌과 대기업 등의 자유를 통제할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정치권력보다는 경제 권력의 특권적 자유가 일반 시민들의 평등한 자유에 대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통제는 구미의 역사가 증명하듯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진보성에 관한 한 자유주의는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진보성에 관해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면 다음으로 따져 봐야 할 것은 그 진보성의 발현 능력, 즉 사회 개혁 실천 능력이다. 지금 한국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산적해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실천력 있는 진보 이념이라면, 고세훈의 지적대로 “확대와 심화일로에 있는 빈곤과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데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박동천(4장)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의 실제적 과제, 즉 공동체를 위한 실존적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의미 있는 진보 이념이라는 것이다. 과연 진보적 자유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못지않은 실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도 계급 교차적 시민 연대의 산물이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제 특정 계급의 이익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봉사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복지국가 전략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들은 노동 세력을 뛰어넘는 ‘복지 세력’의 연대를 강조한다.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이와 같이 계급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계급 교차적인 시민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것의 진보적 자유주의와의 차별성은 더욱 옅어진다. 결국 사회민주주의든 진보적 자유주의든 어느 깃발을 들던 간에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복지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양자 간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노동 정치만으로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봉급생활자이지만 그들 중 ‘노동계급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의식을 갖고 생활한다. 그러니 노동조합 조직률도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해 OECD 최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약한 노동이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의 경우와 같이, 아니 그 경우보다 더 절실하게 강한 시민 연대가 필요하다. 계급을 가로지르는 시민 연대가 하나의 복지 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열린다. 한국에서도 이젠 사회민주주의가 특별히 실천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민 민주주의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해 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 그것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동일할 뿐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방법론은 민주주의 확대론이다
자유주의의 최대 장점은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유연성과 시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장집은 “자유주의의 힘은 그것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성을 갖는 원리와 가치를 함축하고, 인간의 사회경제적 발전, 문명·교육의 발전과 더불어 그 보편성을 확대시켜 왔다는 데 있다. 그런 평등의 이념은 전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한 사회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 왔다. 동시에 보편적 인권의 내용은 심화되어 왔다”라고 경탄한다. 자유주의는 어느 때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다른 때에는 경제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던 고전적 자유주의가 사회적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그리고 심지어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로까지 발전해 가는 까닭이다. 강조점은 이처럼 시의에 따라 적절히 달라지나,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늘 동일하다.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자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의 자유 수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지상과제다. 이 자유를 훼손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집단이나 조직의 권력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제한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 권력은 정부일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언론, 혹은 종교 집단일 수도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 방법론을 채용할 수도 있다
케인스주의 혹은 민주적 시장경제, 질서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민주주의 혹은 복지자본주의 등 명칭을 어떻게 하던 간에 전후에 등장한 구미의 조정시장경제 체제는 그 내용에 있어 모두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체였다. 달리 말하자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현지 사정에 맞는 방법론을 택해 자신의 가치를 시의 적절히 구현해 갔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방식도 그 다양한 방법론 중의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최장집이 강조하듯이, “자유주의의 장점은 그 개방성과 자체 교정 능력을 갖는 유연성으로 인해 현실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이념은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운영함에 있어 그 정치적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신’자유주의(현대의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즉 국가의 시장경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새로운 자유주의)가 될 수도,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력은 이와 같은 방법론적 유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민주적 시장경제의 발달로 구현될 수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진보성은 현대 사회민주주의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실천력은 한국적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더 우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 구축에 필요한 신자유주의의 대안 이념으로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충분히 훌륭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전반기에 구미 선진국들이 그리했듯이, 21세기 전반기의 한국도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해 한국형 조정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켜 갈 여지는 충분하다. 홍종학(5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이미 그런 실험이 행해졌음을 상기시킨다.
사실 ‘국민의 정부’는 한국 최초의 진보적 자유주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국정 목표 자체가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비록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서 민주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보고자 했던 의도는 분명했던 것이다. 홍종학은 김대중 정부의 실험이 성공에 이르지 못했던 요인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정부의 민주적 개혁 역량이 재계의 힘을 관리·조정하기에는 부족했던 탓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 진영의 담론이 실천적 정책으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맞는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적 시장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조건은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민주적 개입이 효과적이고 지속적일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조건을 갖추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된 민주적 시장경제 체제의 현실적 설계도를 제대로 작성하는 일이다. 유종일(6장)은 이 책에서 뒤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즉, 진보적 자유주의의 시각에서 민주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대안 체제의 구성 요소와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평등과 시장경제의 효율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체제”는 기회의 평등과 분배의 평등화를 위해 민주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적 조건에서 이 같은 사회경제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재벌 개혁,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의 민주화, 복지의 확대, 그리고 정부와 공공 부문의 개혁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선학태(7장)와 최태욱(8장)은 앞의 조건에 대해, 즉 정치적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채워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두 사람은 공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국형 사회적 합의주의의 창안과 정착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합의주의야말로 민주적 시장경제의 근간인 동시에 그 체제의 작동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학태는 한국형 모델로서 “동반 발전형 사회적 합의주의”를 제시한다. 한편, 최태욱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을 위한 정치적 조건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비로소 충족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다수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사회적 합의주의를 촉진시키는 제도적 기제를 내장하고 있는 바, 그것이 바로 민주적 시장경제를 포함한 조정시장경제 체제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제도적 기제란 다름 아닌 ‘포괄 정치’를 작동케 하는 비례대표제, 온건 다당제, 연립정부 등의 협의주의 정치제도들이다.
아니면 철 지난 과거 이념에 불과한가.
자유주의의 진보적 재해석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경제적 자유주의로 변질된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독자적 자유주의 노선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빈곤, 소외,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을 중시하는 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이었다. 이후 최소정부주의 혹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앞세우거나 수용하는 그 이전의 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 사회적 자유주의류의 사상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자유주의 앞에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하는 상황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방법론적 유연성 못지않게 중요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력의 근원은 대중 친화성일 것으로 여겨진다. 상기한 바와 같이, 실질적 사회문제에 대한 현대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공통해법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건설이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만이 아니라 중간 계층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시민 연대 혹은 복지 세력이 형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일반 시민들의 지지와 동원을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기초가 되는 이념은 일반 시민들과 상당 정도의 친화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이 같은 이념에 가까운 것은 아무래도 사회민주주의보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에 비해 진보적 자유주의가 더 많은 시민들을 복지 세력으로 초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 대부분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의 신자유주의 대안 이념으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 회복 운동이 복지자본주의 체제라는 결실을 맺었다면, 21세기 전반기에는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왜곡?오용되어 왔다. 이제 제대로 논의해 봐야 한다.”
자유주의는 애당초 진보적 이념이다
이 책은 소수의 사람들, 즉 자유주의는 본래 진보적이거나 혹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내세운 (자유주의가 진보적일 수 있는) 조건은 물론 서로 다르다. 그중 고세훈(3장)의 조건이 아마도 가장 까다로울 게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자유주의가 정녕 진보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정치를 통해 개혁에 대한 현실적인 실천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비해 최장집(2장)이 덤덤히 서술하는 자유주의의 진보성은 그저 당연한 것이다. 그는, 냉전 반공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시장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로 연결되는 자유지상주의는 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이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유주의란 법치주의, 입헌주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의미할 뿐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래부터 만인평등의 이념이다. 그러니 “만약 ‘진보’가 ……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와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
설령 (고전적) 자유주의가 애초에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사상이었다 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자유주의가 보수의 틀에 갇혀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근식(1장)이 정의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결별을 선언한 ‘새로운’ 자유주의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대신 사회적 자유주의로 자유주의 본래의 진보성을 회복, 유지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이념은 다시 진보적 자유주의다
이 책의 필자들 대부분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의 신자유주의 대안 이념으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 회복 운동이 복지자본주의 체제라는 결실을 맺었다면, 21세기 전반기에는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왜곡·오용되어 왔다. 이제 제대로 논의해 봐야 한다. 그것을 본래의 그 광명정대하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성격의 자유평등이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시민들이 그 진보적 자유주의의 가치에 공감해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대안 체제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만큼이나 진보적이다
지금의 한국에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재벌과 대기업 등의 자유를 통제할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정치권력보다는 경제 권력의 특권적 자유가 일반 시민들의 평등한 자유에 대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통제는 구미의 역사가 증명하듯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진보성에 관한 한 자유주의는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진보성에 관해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면 다음으로 따져 봐야 할 것은 그 진보성의 발현 능력, 즉 사회 개혁 실천 능력이다. 지금 한국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산적해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실천력 있는 진보 이념이라면, 고세훈의 지적대로 “확대와 심화일로에 있는 빈곤과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데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박동천(4장)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의 실제적 과제, 즉 공동체를 위한 실존적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의미 있는 진보 이념이라는 것이다. 과연 진보적 자유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못지않은 실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도 계급 교차적 시민 연대의 산물이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제 특정 계급의 이익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봉사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복지국가 전략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들은 노동 세력을 뛰어넘는 ‘복지 세력’의 연대를 강조한다.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이와 같이 계급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계급 교차적인 시민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것의 진보적 자유주의와의 차별성은 더욱 옅어진다. 결국 사회민주주의든 진보적 자유주의든 어느 깃발을 들던 간에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복지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양자 간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노동 정치만으로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봉급생활자이지만 그들 중 ‘노동계급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의식을 갖고 생활한다. 그러니 노동조합 조직률도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해 OECD 최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약한 노동이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의 경우와 같이, 아니 그 경우보다 더 절실하게 강한 시민 연대가 필요하다. 계급을 가로지르는 시민 연대가 하나의 복지 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열린다. 한국에서도 이젠 사회민주주의가 특별히 실천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민 민주주의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해 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 그것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동일할 뿐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방법론은 민주주의 확대론이다
자유주의의 최대 장점은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유연성과 시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장집은 “자유주의의 힘은 그것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성을 갖는 원리와 가치를 함축하고, 인간의 사회경제적 발전, 문명·교육의 발전과 더불어 그 보편성을 확대시켜 왔다는 데 있다. 그런 평등의 이념은 전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한 사회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 왔다. 동시에 보편적 인권의 내용은 심화되어 왔다”라고 경탄한다. 자유주의는 어느 때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다른 때에는 경제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던 고전적 자유주의가 사회적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그리고 심지어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로까지 발전해 가는 까닭이다. 강조점은 이처럼 시의에 따라 적절히 달라지나,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늘 동일하다.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자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의 자유 수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지상과제다. 이 자유를 훼손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집단이나 조직의 권력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제한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 권력은 정부일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언론, 혹은 종교 집단일 수도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 방법론을 채용할 수도 있다
케인스주의 혹은 민주적 시장경제, 질서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민주주의 혹은 복지자본주의 등 명칭을 어떻게 하던 간에 전후에 등장한 구미의 조정시장경제 체제는 그 내용에 있어 모두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체였다. 달리 말하자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현지 사정에 맞는 방법론을 택해 자신의 가치를 시의 적절히 구현해 갔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방식도 그 다양한 방법론 중의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최장집이 강조하듯이, “자유주의의 장점은 그 개방성과 자체 교정 능력을 갖는 유연성으로 인해 현실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이념은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운영함에 있어 그 정치적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신’자유주의(현대의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즉 국가의 시장경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새로운 자유주의)가 될 수도,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력은 이와 같은 방법론적 유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민주적 시장경제의 발달로 구현될 수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진보성은 현대 사회민주주의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실천력은 한국적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더 우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 구축에 필요한 신자유주의의 대안 이념으로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충분히 훌륭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전반기에 구미 선진국들이 그리했듯이, 21세기 전반기의 한국도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해 한국형 조정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켜 갈 여지는 충분하다. 홍종학(5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이미 그런 실험이 행해졌음을 상기시킨다.
사실 ‘국민의 정부’는 한국 최초의 진보적 자유주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국정 목표 자체가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비록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서 민주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보고자 했던 의도는 분명했던 것이다. 홍종학은 김대중 정부의 실험이 성공에 이르지 못했던 요인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정부의 민주적 개혁 역량이 재계의 힘을 관리·조정하기에는 부족했던 탓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 진영의 담론이 실천적 정책으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맞는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적 시장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조건은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민주적 개입이 효과적이고 지속적일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조건을 갖추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된 민주적 시장경제 체제의 현실적 설계도를 제대로 작성하는 일이다. 유종일(6장)은 이 책에서 뒤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즉, 진보적 자유주의의 시각에서 민주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대안 체제의 구성 요소와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평등과 시장경제의 효율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체제”는 기회의 평등과 분배의 평등화를 위해 민주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적 조건에서 이 같은 사회경제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재벌 개혁,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의 민주화, 복지의 확대, 그리고 정부와 공공 부문의 개혁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선학태(7장)와 최태욱(8장)은 앞의 조건에 대해, 즉 정치적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채워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두 사람은 공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국형 사회적 합의주의의 창안과 정착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합의주의야말로 민주적 시장경제의 근간인 동시에 그 체제의 작동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학태는 한국형 모델로서 “동반 발전형 사회적 합의주의”를 제시한다. 한편, 최태욱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을 위한 정치적 조건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비로소 충족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다수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사회적 합의주의를 촉진시키는 제도적 기제를 내장하고 있는 바, 그것이 바로 민주적 시장경제를 포함한 조정시장경제 체제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제도적 기제란 다름 아닌 ‘포괄 정치’를 작동케 하는 비례대표제, 온건 다당제, 연립정부 등의 협의주의 정치제도들이다.
목차
서문|진보적 자유주의의 진보성과 실천력에 대하여_최태욱
제1부|왜 자유주의이고 왜 진보인가
1장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_이근식
2장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_최장집
제2부|자유주의인가 사회민주주의인가
3장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_고세훈
4장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_박동천
제3부|진보적 자유주의의 제도적 모색 1 : 민주적 시장경제
5장 김대중 정부의 진보적 자유주의 실험_홍종학
6장 민주적 시장경제의 구성 요소와 핵심 과제_유종일
제4부|진보적 자유주의의 제도적 모색 2 : 합의제 민주주의
7장 시장조정기제로서의 사회적 합의주의: 한국형 모델_선학태
8장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_최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