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트랜스 소시올로지 012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르포르타주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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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3723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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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끝나지 않은 점거, 끝없이 갱신되는 민주주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현장에서 전하는 고병권의 르포르타주!!
2011년 가을, 월스트리트로부터 시작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진 ‘점거’(occupy) 운동. 그것은 ‘더 이상 이 체제를 참을 수가 없다’는 절박함의 분출구이자,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에 전면적 투쟁을 선포하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 운동의 현장인 월스트리트에 수유너머의 고병권이 있었다. 9월 17일부터 11월 15일까지 약 두 달간 이어진 점거에 직접 참여하고 그것을 관찰한 그에게 있어 이번 점거는 단발적이고 국지적인 시위 혹은 단순한 반체제 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 형식(거버넌스)을 함께 고민하고 실험하고 만들어 가는 실천의 과정이자, 그가 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그린비, 2011)의 실전편이었다.
이 책은 고병권이 월스트리트 점거가 시작된 직후부터 웹 공간(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와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들을 다듬고 꼭지들을 추가하여 묶은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대의제라는 민주주의의 통념에 근본적이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했던 고병권은 세계 금융자본의 심장부 점거라는 초유의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화두를 더욱 단단히 벼려 낼 수 있었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한때의 소란’으로 박제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맞서는 기록이자, 운동의 과정에서 꽃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민주주의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는 선언이다. 저자가 ‘occupy'의 번역어로 (이미 번역 출간된 다른 관련 도서들처럼) ‘점령’이 아닌 ‘점거’를 택한 것 역시 점거장을 ‘탈취하여 지배해야 할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머무름으로써 삶의 공동성이 복원되는 공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뉴욕 경찰이 리버티 스퀘어를 급습하여 점거장을 철거함으로써 운동의 물리적 공간은 사라졌고, 제도의 형태로 가시화된 어떠한 성과도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운동은 실패한 것인가? 결코 아니다. 이제 ‘occupy’라는 영어 단어를 이번 시위를 떠올리지 않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듯이, 이 운동의 흔적은 주체들의 삶과 기억에 강력히 각인되어 작동하고 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의 체제가 이런 우리를 대의(代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스로가 가꾸어 낸 공동체가 얼마나 활기 찰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낀 사람들이 있다. 세계 곳곳의 도시들에서, 그리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의 벅찬 가슴 속에서, 점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 이 책의 북트레일러 주소 : http://vimeo.com/40715398
모든 곳을 점거하라,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
점거, 그것은 사회의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약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다. 그것은 존재의 비가시화를 강요받고 쫓겨난 자들이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강제로 들리게 하는 방법”(『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01쪽)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거의 가까운 예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309일간 이어진 김진숙 씨의 크레인 점거 농성은 점거가 (비록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점거일지라도!) 얼마나 큰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 주었다.
나아가 점거라는 행위는 ‘새로운 거번먼트’를 만들어 낸다. 이 점에서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는 하나의 이정표였고, 저자가 가장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지배하거나 통치하지(govern) 않았다. 지도부도 없고 단일한 요구도 없는 그 공간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서로의 목소리와 몸짓에 집중하면서 질서를 만들고 삶을 가꾸어 갔다. 토론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청소를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명상을 했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통치(self-governing)라고 할 수 있을까. 지배자들의 전유물인 ‘거번먼트’는 이렇게 구체적 개인들의 삶 속에서 부활했다. 그런 의미에서 점거는 과거의 바리케이드나 전통적인 농성과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문을 열고 모두에게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사람들은 권력자들에게 말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해 말하고 또 듣고 싶어 한다”(19쪽). 김진숙 씨의 점거 역시 물리적으로는 고립되어 있었지만,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모두와 접속되어 있었다. 그 열린 공간 속에 모두의 이야기가 흘러들어 갔고 또 넘쳐났으며, 이를 통해 35미터 높이 크레인의 지평은 사방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있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해서 얻어 내는 문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수 언론의 공격처럼 점거자들이 통일된 요구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무능한 오합지졸이라서가 아니라 이들이 이 체제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노동, 인종, 교육, 정보, 생태, 주택, 의료, 도시 등등 서로 환원되지 않고 대체할 수도 없는 여러 요구들이 함께 엮이면서 점거자들의 요구가 얼마나 크고 급진적인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안은 개별 정책이나 제도가 아니라 다른 삶, 다른 체제라는 것 말이다”(8쪽). 모든 것을 요구해야 했기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운동, 그렇기에 운동 그 자체의 증식만을 목표로 하는 운동. 그럼으로써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리버티 스퀘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히지 않고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점거자들은 말한다. “모든 곳을 점거하라,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라고.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다!
리버티 스퀘어 한 켠에 자리한 피켓 제작 구역(14~15쪽 지도 참조)에서는 그야말로 수많은 각자의 다양한 불만과 요구가 분출해 나왔다. 감당할 수 없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비판, 무너져 가는 공교육에 대한 우려, 형편없는 의료보험에 대한 분노, 사회안전망에 대한 촉구,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고 등……. 이것들은 우리 삶의 기본적 조건들을 뿌리부터 뒤흔들면서도 결국 1%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모든 현실들의 몽타주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구성했다고 믿는 소위 ‘민주주의’ 정부가 우리 99%의 이익을 완전히 배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 퇴역 군인이 든 피켓은 이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다. “나는 기업지배체제(corporatocracy)가 아니라 민주주의(democracy)를 원한다.”
이처럼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지금의 지배적 체제가 얼마나 민주주의로부터 먼 곳에 위치한 것인지를 폭로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운동의 과정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점거운동에는 어떠한 중심적인 조직도 없었다. 이 운동은 점거자 전체 회합인 ‘제너럴 어셈블리’(General Assembly, 69~74쪽 참조)와 단체들의 회의인 ‘스포크스 카운슬’(Spokes Council, 75~78쪽 참조) 등의 협의체를 통해, 그리고 청소위원회, 식품위원회, 세탁 기부그룹 등 수많은 자발적 조직들의 활동을 통해 이끌어져 왔다. 발언은 육성으로 전달되면서 증폭되었고 의견은 미리 정해진 손동작(79쪽 참조)을 통해 조율되었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는 소수자 그룹의 비토권도 확실히 보장되었다. 누구도 대표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모두가 자기 삶의 대표였다.
리버티 스퀘어의 한쪽에는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다”(Democracy is Direct)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118쪽 사진). 이는 소위 ‘직접민주주의’를 환기시키는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정당 체제와 투표만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생각해 왔던 우리의 관성을 흔들어 깨우는 외침이며,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온 ‘대의’라는 통치 형식(거번먼트)의 바탕을 되묻는 폭로이다. 이번 점거는 누구도 내 삶을 온전히 대의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선언하는 자리에 다름 아니었다. 점거란 곧 새로운 거번먼트이고, 그러므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우리가 처한 곳곳에서, 다시 도래할 민주주의를 ‘직접’ 사유하고 행동하자는 것, 그것이 이번 점거운동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일 것이다. 이제 우리 역시 세계 시민들의 곁에 나란히 서야 할 때이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현장에서 전하는 고병권의 르포르타주!!
2011년 가을, 월스트리트로부터 시작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진 ‘점거’(occupy) 운동. 그것은 ‘더 이상 이 체제를 참을 수가 없다’는 절박함의 분출구이자,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에 전면적 투쟁을 선포하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 운동의 현장인 월스트리트에 수유너머의 고병권이 있었다. 9월 17일부터 11월 15일까지 약 두 달간 이어진 점거에 직접 참여하고 그것을 관찰한 그에게 있어 이번 점거는 단발적이고 국지적인 시위 혹은 단순한 반체제 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 형식(거버넌스)을 함께 고민하고 실험하고 만들어 가는 실천의 과정이자, 그가 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그린비, 2011)의 실전편이었다.
이 책은 고병권이 월스트리트 점거가 시작된 직후부터 웹 공간(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와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들을 다듬고 꼭지들을 추가하여 묶은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대의제라는 민주주의의 통념에 근본적이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했던 고병권은 세계 금융자본의 심장부 점거라는 초유의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화두를 더욱 단단히 벼려 낼 수 있었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한때의 소란’으로 박제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맞서는 기록이자, 운동의 과정에서 꽃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민주주의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는 선언이다. 저자가 ‘occupy'의 번역어로 (이미 번역 출간된 다른 관련 도서들처럼) ‘점령’이 아닌 ‘점거’를 택한 것 역시 점거장을 ‘탈취하여 지배해야 할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머무름으로써 삶의 공동성이 복원되는 공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뉴욕 경찰이 리버티 스퀘어를 급습하여 점거장을 철거함으로써 운동의 물리적 공간은 사라졌고, 제도의 형태로 가시화된 어떠한 성과도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운동은 실패한 것인가? 결코 아니다. 이제 ‘occupy’라는 영어 단어를 이번 시위를 떠올리지 않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듯이, 이 운동의 흔적은 주체들의 삶과 기억에 강력히 각인되어 작동하고 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의 체제가 이런 우리를 대의(代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스로가 가꾸어 낸 공동체가 얼마나 활기 찰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낀 사람들이 있다. 세계 곳곳의 도시들에서, 그리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의 벅찬 가슴 속에서, 점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 이 책의 북트레일러 주소 : http://vimeo.com/40715398
모든 곳을 점거하라,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
점거, 그것은 사회의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약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다. 그것은 존재의 비가시화를 강요받고 쫓겨난 자들이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강제로 들리게 하는 방법”(『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01쪽)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거의 가까운 예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309일간 이어진 김진숙 씨의 크레인 점거 농성은 점거가 (비록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점거일지라도!) 얼마나 큰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 주었다.
나아가 점거라는 행위는 ‘새로운 거번먼트’를 만들어 낸다. 이 점에서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는 하나의 이정표였고, 저자가 가장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지배하거나 통치하지(govern) 않았다. 지도부도 없고 단일한 요구도 없는 그 공간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서로의 목소리와 몸짓에 집중하면서 질서를 만들고 삶을 가꾸어 갔다. 토론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청소를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명상을 했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통치(self-governing)라고 할 수 있을까. 지배자들의 전유물인 ‘거번먼트’는 이렇게 구체적 개인들의 삶 속에서 부활했다. 그런 의미에서 점거는 과거의 바리케이드나 전통적인 농성과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문을 열고 모두에게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사람들은 권력자들에게 말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해 말하고 또 듣고 싶어 한다”(19쪽). 김진숙 씨의 점거 역시 물리적으로는 고립되어 있었지만,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모두와 접속되어 있었다. 그 열린 공간 속에 모두의 이야기가 흘러들어 갔고 또 넘쳐났으며, 이를 통해 35미터 높이 크레인의 지평은 사방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있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해서 얻어 내는 문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수 언론의 공격처럼 점거자들이 통일된 요구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무능한 오합지졸이라서가 아니라 이들이 이 체제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노동, 인종, 교육, 정보, 생태, 주택, 의료, 도시 등등 서로 환원되지 않고 대체할 수도 없는 여러 요구들이 함께 엮이면서 점거자들의 요구가 얼마나 크고 급진적인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안은 개별 정책이나 제도가 아니라 다른 삶, 다른 체제라는 것 말이다”(8쪽). 모든 것을 요구해야 했기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운동, 그렇기에 운동 그 자체의 증식만을 목표로 하는 운동. 그럼으로써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리버티 스퀘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히지 않고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점거자들은 말한다. “모든 곳을 점거하라,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라고.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다!
리버티 스퀘어 한 켠에 자리한 피켓 제작 구역(14~15쪽 지도 참조)에서는 그야말로 수많은 각자의 다양한 불만과 요구가 분출해 나왔다. 감당할 수 없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비판, 무너져 가는 공교육에 대한 우려, 형편없는 의료보험에 대한 분노, 사회안전망에 대한 촉구,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고 등……. 이것들은 우리 삶의 기본적 조건들을 뿌리부터 뒤흔들면서도 결국 1%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모든 현실들의 몽타주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구성했다고 믿는 소위 ‘민주주의’ 정부가 우리 99%의 이익을 완전히 배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 퇴역 군인이 든 피켓은 이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다. “나는 기업지배체제(corporatocracy)가 아니라 민주주의(democracy)를 원한다.”
이처럼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지금의 지배적 체제가 얼마나 민주주의로부터 먼 곳에 위치한 것인지를 폭로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운동의 과정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점거운동에는 어떠한 중심적인 조직도 없었다. 이 운동은 점거자 전체 회합인 ‘제너럴 어셈블리’(General Assembly, 69~74쪽 참조)와 단체들의 회의인 ‘스포크스 카운슬’(Spokes Council, 75~78쪽 참조) 등의 협의체를 통해, 그리고 청소위원회, 식품위원회, 세탁 기부그룹 등 수많은 자발적 조직들의 활동을 통해 이끌어져 왔다. 발언은 육성으로 전달되면서 증폭되었고 의견은 미리 정해진 손동작(79쪽 참조)을 통해 조율되었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는 소수자 그룹의 비토권도 확실히 보장되었다. 누구도 대표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모두가 자기 삶의 대표였다.
리버티 스퀘어의 한쪽에는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다”(Democracy is Direct)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118쪽 사진). 이는 소위 ‘직접민주주의’를 환기시키는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정당 체제와 투표만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생각해 왔던 우리의 관성을 흔들어 깨우는 외침이며,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온 ‘대의’라는 통치 형식(거번먼트)의 바탕을 되묻는 폭로이다. 이번 점거는 누구도 내 삶을 온전히 대의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선언하는 자리에 다름 아니었다. 점거란 곧 새로운 거번먼트이고, 그러므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우리가 처한 곳곳에서, 다시 도래할 민주주의를 ‘직접’ 사유하고 행동하자는 것, 그것이 이번 점거운동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일 것이다. 이제 우리 역시 세계 시민들의 곁에 나란히 서야 할 때이다.
목차
머리말 … 4
현장리포트 01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ㆍ17
현장리포트 02 꽃을 든 점거자ㆍ22
<노트 1>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_운동을 준비한 이들ㆍ31
현장리포트 03 이것이 민주주의다ㆍ36
현장리포트 04 USA와 OSAㆍ42
현장리포트 05 이집트로부터 배우자ㆍ51
현장리포트 06 처음으로 적을 알게 되다ㆍ58
현장리포트 07 빈 중심 _제너럴 어셈블리ㆍ69
<노트 2> 단체들의 회의 _스포크스 카운슬ㆍ75
<노트 3> 점거 시위에 쓰인 핸드 제스처ㆍ79
현장리포트 08 미국의 가을 _행진 스케치ㆍ80
현장리포트 09 미래가 도래할 수 있을까 _채무자본주의 비판ㆍ93
<노트 4> 통계로 보는 미국 사회ㆍ104
현장리포트 10 운동은 수단인가ㆍ110
현장리포트 11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다ㆍ115
현장리포트 12 시각 _어느 토론회의 요약(1)ㆍ123
현장리포트 13 일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ㆍ135
현장리포트 14 탐욕과 금욕 _욕망의 거번먼트ㆍ142
현장리포트 15 폭력 비판을 위하여ㆍ151
현장리포트 16 불가능한 것을 실행하기 _합의 만들기에 관하여ㆍ159
현장리포트 17 운동의 도덕성ㆍ163
현장리포트 18 “모든 곳을 점거하라 : 기업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와 운동의 가능성” _어느 토론회의 요약(2)ㆍ173
현장리포트 19 점거와 철거 _운동의 물리적 장소를 둘러싼 싸움ㆍ192
현장리포트 20 불복종ㆍ200
현장리포트 21 지상의 운동 _사라진 것과 남은 것ㆍ210
현장리포트 22 지하의 운동 _가능한 깊게, 가능한 멀리ㆍ218
<노트 5> 아큐파이 오클랜드 _‘함께할 권리’에 대하여ㆍ233
<부록 1> 데이비드 그레이버 _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의 아나키스트적 뿌리ㆍ252
<부록 2> 가야트리 스피박 _ 총파업ㆍ263
<부록 3> 주디스 버틀러 _ 불안정을 위하여, 그리고 불안정에 반대하며ㆍ267
출판사 책 소개글(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