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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주요 내용
2013년 2월 현재 한국에는 50여만 명이 넘는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부터이다. 조선족동포들의 본격적인 한국생활이 20여년이 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하여 살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여곡절과 간난신고를 견디어낸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동포들은 여전히 한국에서의 생활을 낯설어 하고 힘겨워 한다. 몸과 마음을 한국에 의탁하고 있지만 한국정부와 한국사회가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세월 한국정부의 동포정책에 일희일비해야 했고 한국사회의 홀대와 멸시를 묵묵히 견뎌야 했다. 그런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은 잘 사는 고국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며 한국을 찾았건만 한국정부와 한국사회는 자신들을 동포로 대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적 필요에 의해 한국생활을 선택했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한국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 못지않게 마음에 응어리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조선족동포들은 중국공산당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중국 동북지역에서 동포들끼리 한데 어우러져 살아왔다. 그 결과 이들은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이 매우 강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동포들은 어떤 형태로든 중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인척들과 매우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에서의 경험이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조선족동포들에게 빠르고 강하게 전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들이 50여만 명이 넘었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 적극적 관계 맺기를 한 시간이 20여년이 넘었다는 것은 양자 관계가 양적 질적으로 크게 변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사회가 조선족동포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은 물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보다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더불어 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조선족동포들을 많이 그리고 깊이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선족동포는 한민족의 일원이다. 비록 한반도 밖에 위치한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중국 공민으로서 조선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때로는 애써 한민족임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분명 한민족의 일원이다.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의 일원임은 역사와 문화는 물론 말과 글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기실 한민족의 일원이면서 말과 글을 공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특별하다. 그만큼 조선족동포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이들을 특별하게 평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중하지도 않는다.
오늘날 한민족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지난 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 때문이다. 20세기 초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나라는 나약하기 그지없었고 그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 당연히 백성을 돌보지 못했다. 급기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반도 안에서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한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살길을 찾아 한반도를 떠나 낮선 타국에서 둥지를 틀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채 35여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어 낸 후에야 한민족은 그들로부터의 핍박과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지 않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 졌고 해외에 거주하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와 사정으로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하게 됐다. 조선족동포들은 해방의 기쁨을 뒤로 한 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조선족동포들은 적어도 해방 이전까지는 우리와 같이 조선인으로 불렸던 사람들이다.
한민족이 겪은 20세기의 역사는 참담했다. 그 슬픈 역사 중에서도 조선족동포들은 더 힘겨웠다. 일본의 식민통치 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은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크고 작은 역경을 견뎌야 했다. 간난신고 끝에 상처가 치유될 쯤에는 또 다른 역사(歷史)로부터 시험을 치러야하는 시지프스의 역사(役事)와도 같은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이방인이라는 낙인은 훈장처럼 따라 다녔다. 지금도 그들은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채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오랜 단절의 시간이 지나 마음속에 그리던 고국을 다시 찾은 지금도 그들은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을 겪고 있다.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고국을 찾았건만 고국과 고국의 동포들이 외면하고 홀대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국에서 겪는 아픔은 이전에 겪었던 것보다 더 가슴을 저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애써 눈물을 감춘 채 그 모든 것을 숙명처럼 부여잡고 안으로 삭이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울어야 하는 피에로와 같은 슬픔을 간직한 채….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다. 그런 만큼 누구나 자신의 삶이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바란다. 스스로 당당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세속적 잣대에 의한 사회적 편견과 폄하가 그 이유일 때가 많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정해진 틀에 맞춰 판단하려는 사회적 속성이 존중되어야 할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아픔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사회는 조선족동포들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면서도 이해부족과 편견 등으로 차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에는 상당한 정도의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을 촉발하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부족이 주된 이유의 하나이다. 한국사회는 조선족동포들이 살아온 고단한 역사와 동포로 살아가고 싶은 원초적 바람을 외면한 채 이들을 중국 동북지역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친북한적·친공산당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틀 속에서 단선적으로 이해하며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모두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조선족동포를 구성하는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고 적극 포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이들이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 때문만도 아니다.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여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남북한 통합, 다문화사회로의 이행,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 이라는 한국사회가 추구해야할 현실적 과제들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몰이해를 메우고 이들이 온전히 한민족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한다.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가장 적나라한 체험자인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은 물론 행동의 근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및 국공내전 시기, 그리고 동서 냉전시대에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써 이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한민족이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것의 민망함을 달래기 위해 『조선상고사』를 썼다고 했다. 나는 한국사회가 한민족의 일원인 조선족동포들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들의 현재의 모습과 그들이 처한 현실만으로 평가하며 홀대하는데 대한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삶의 궤적을 찾아 나섰다. 나는 또한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오늘을 보다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당연히 이 글을 역사서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역사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조선족동포들과 함께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그들이 겪은 지난 역사를 돌아보려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한 토대이다. 그런 만큼 한민족 모두는 지난 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를 되새기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한민족의 슬픈 역사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며 그 일차적 과제는 조선족동포들의 역사를 한민족 민족사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족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조선족역사를 한민족사의 관점에서 서술하려는 목적에서 준비됐다. 따라서 조선족의 형성 시점을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했던 조선인이 1945년 8월 해방 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로 보았다. 이에 따라 해방 후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해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으로 자리잡아가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개설서 형태로 정리했다.
책의 범위는 해방 후부터 조선족동포들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에서의 잇단 정치투쟁 속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중국 공민으로 거듭난, 문화대혁명 시기까지를 담았다. 책의 내용은 조선족동포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사회문화사나 경제생활사 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변화 속에서 살펴보았다. 책의 구성은 조선족동포들이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을 시대적 상황에 맞춰 시대구분한데 따라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했다.
필자는 조선족동포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중국 정착기(해방 후?1946년 6월까지)’, ‘중국 건국 참여기(1949년 10월까지)’, ‘중국공민으로서의 생활기(1976년 말까지)’ 등으로 시대구분 하고자 한다. 그러나 해방 직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4여년의 격동의 세월과 6?25전쟁 기간 동안 조선족동포들이 겪은 엄청난 시련을 단순히 시대구분 속에 맞추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국제정세와 국공내전의 전개과정, 북한과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조선족동포들의 역할과 의식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해방 직후 조선인들이 중국에 정착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중국 동북지역의 정세 변화를 다룬 ‘해방 전후 중국 동북지역과 조선인’, 조선인들이 중국에 정착을 결심한 이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 과정에 깊이 연루된 과정을 정리한 ‘해방 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조선인’,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질서재편이 마무리된 이후 조선인이 중국 공민의 일원인 조선족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을 담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조선족으로서의 삶’ 등 3부로 나누어 기술했다. 다만 6?25전쟁과 관련된 부분은 시기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발생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2부에서 다루었다.
2013년 2월 현재 한국에는 50여만 명이 넘는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부터이다. 조선족동포들의 본격적인 한국생활이 20여년이 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하여 살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여곡절과 간난신고를 견디어낸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동포들은 여전히 한국에서의 생활을 낯설어 하고 힘겨워 한다. 몸과 마음을 한국에 의탁하고 있지만 한국정부와 한국사회가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세월 한국정부의 동포정책에 일희일비해야 했고 한국사회의 홀대와 멸시를 묵묵히 견뎌야 했다. 그런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은 잘 사는 고국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며 한국을 찾았건만 한국정부와 한국사회는 자신들을 동포로 대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적 필요에 의해 한국생활을 선택했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한국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 못지않게 마음에 응어리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조선족동포들은 중국공산당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중국 동북지역에서 동포들끼리 한데 어우러져 살아왔다. 그 결과 이들은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이 매우 강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동포들은 어떤 형태로든 중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인척들과 매우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에서의 경험이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조선족동포들에게 빠르고 강하게 전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들이 50여만 명이 넘었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 적극적 관계 맺기를 한 시간이 20여년이 넘었다는 것은 양자 관계가 양적 질적으로 크게 변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사회가 조선족동포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은 물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보다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더불어 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조선족동포들을 많이 그리고 깊이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선족동포는 한민족의 일원이다. 비록 한반도 밖에 위치한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중국 공민으로서 조선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때로는 애써 한민족임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분명 한민족의 일원이다.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의 일원임은 역사와 문화는 물론 말과 글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기실 한민족의 일원이면서 말과 글을 공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특별하다. 그만큼 조선족동포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이들을 특별하게 평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중하지도 않는다.
오늘날 한민족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지난 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 때문이다. 20세기 초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나라는 나약하기 그지없었고 그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 당연히 백성을 돌보지 못했다. 급기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반도 안에서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한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살길을 찾아 한반도를 떠나 낮선 타국에서 둥지를 틀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채 35여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어 낸 후에야 한민족은 그들로부터의 핍박과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지 않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 졌고 해외에 거주하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와 사정으로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하게 됐다. 조선족동포들은 해방의 기쁨을 뒤로 한 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조선족동포들은 적어도 해방 이전까지는 우리와 같이 조선인으로 불렸던 사람들이다.
한민족이 겪은 20세기의 역사는 참담했다. 그 슬픈 역사 중에서도 조선족동포들은 더 힘겨웠다. 일본의 식민통치 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은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크고 작은 역경을 견뎌야 했다. 간난신고 끝에 상처가 치유될 쯤에는 또 다른 역사(歷史)로부터 시험을 치러야하는 시지프스의 역사(役事)와도 같은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이방인이라는 낙인은 훈장처럼 따라 다녔다. 지금도 그들은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채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오랜 단절의 시간이 지나 마음속에 그리던 고국을 다시 찾은 지금도 그들은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을 겪고 있다.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고국을 찾았건만 고국과 고국의 동포들이 외면하고 홀대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국에서 겪는 아픔은 이전에 겪었던 것보다 더 가슴을 저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애써 눈물을 감춘 채 그 모든 것을 숙명처럼 부여잡고 안으로 삭이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울어야 하는 피에로와 같은 슬픔을 간직한 채….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다. 그런 만큼 누구나 자신의 삶이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바란다. 스스로 당당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세속적 잣대에 의한 사회적 편견과 폄하가 그 이유일 때가 많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정해진 틀에 맞춰 판단하려는 사회적 속성이 존중되어야 할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아픔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사회는 조선족동포들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면서도 이해부족과 편견 등으로 차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에는 상당한 정도의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을 촉발하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부족이 주된 이유의 하나이다. 한국사회는 조선족동포들이 살아온 고단한 역사와 동포로 살아가고 싶은 원초적 바람을 외면한 채 이들을 중국 동북지역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친북한적·친공산당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틀 속에서 단선적으로 이해하며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모두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조선족동포를 구성하는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고 적극 포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이들이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 때문만도 아니다.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여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남북한 통합, 다문화사회로의 이행,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 이라는 한국사회가 추구해야할 현실적 과제들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몰이해를 메우고 이들이 온전히 한민족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한다.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가장 적나라한 체험자인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은 물론 행동의 근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및 국공내전 시기, 그리고 동서 냉전시대에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써 이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한민족이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것의 민망함을 달래기 위해 『조선상고사』를 썼다고 했다. 나는 한국사회가 한민족의 일원인 조선족동포들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들의 현재의 모습과 그들이 처한 현실만으로 평가하며 홀대하는데 대한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삶의 궤적을 찾아 나섰다. 나는 또한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오늘을 보다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당연히 이 글을 역사서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역사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조선족동포들과 함께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그들이 겪은 지난 역사를 돌아보려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한 토대이다. 그런 만큼 한민족 모두는 지난 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를 되새기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한민족의 슬픈 역사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며 그 일차적 과제는 조선족동포들의 역사를 한민족 민족사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족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조선족역사를 한민족사의 관점에서 서술하려는 목적에서 준비됐다. 따라서 조선족의 형성 시점을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했던 조선인이 1945년 8월 해방 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로 보았다. 이에 따라 해방 후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해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으로 자리잡아가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개설서 형태로 정리했다.
책의 범위는 해방 후부터 조선족동포들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에서의 잇단 정치투쟁 속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중국 공민으로 거듭난, 문화대혁명 시기까지를 담았다. 책의 내용은 조선족동포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사회문화사나 경제생활사 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변화 속에서 살펴보았다. 책의 구성은 조선족동포들이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을 시대적 상황에 맞춰 시대구분한데 따라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했다.
필자는 조선족동포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중국 정착기(해방 후?1946년 6월까지)’, ‘중국 건국 참여기(1949년 10월까지)’, ‘중국공민으로서의 생활기(1976년 말까지)’ 등으로 시대구분 하고자 한다. 그러나 해방 직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4여년의 격동의 세월과 6?25전쟁 기간 동안 조선족동포들이 겪은 엄청난 시련을 단순히 시대구분 속에 맞추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국제정세와 국공내전의 전개과정, 북한과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조선족동포들의 역할과 의식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해방 직후 조선인들이 중국에 정착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중국 동북지역의 정세 변화를 다룬 ‘해방 전후 중국 동북지역과 조선인’, 조선인들이 중국에 정착을 결심한 이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 과정에 깊이 연루된 과정을 정리한 ‘해방 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조선인’,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질서재편이 마무리된 이후 조선인이 중국 공민의 일원인 조선족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을 담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조선족으로서의 삶’ 등 3부로 나누어 기술했다. 다만 6?25전쟁과 관련된 부분은 시기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발생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2부에서 다루었다.
목차
책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제1부 해방 전후 중국 동북지역과 조선인
1장 해방 전후 중국 동북지역 정세 개관
1. 일본의 항복과 동북지역 세력 판도
2. 해방 직후 미국 및 소련의 동북지역 개입
3. 소련의 동북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중적 태도
4.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정부 간 세력경쟁
5. 조선인 밀집지역으로서 연변의 정세
2장 해방 전후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인
1. 해방 전 동북지역 조선인의 삶
2. 해방 후 조선인의 한반도로의 귀환
3. 해방 후 조선인의 동북지역 정착
4. 해방 후 동북지역 조선인의 정치사회적 위상
5. 해방 후 동북지역 조선인사회의 생활상
3장 중국공산당과 동북지역 조선인 간 상호관계
1. 중국공산당-조선인 관계의 기원
2. 중국공산당의 동북지역 통치 구조
3. 중국공산당 내 조선인의 위상과 역할
4. 해방 후 중국공산당의 조선인 정책
5. 해방 후 중국공산당의 연변지역에서의 활동
4장 해방 후 동북지역 조선인의 정세관
1. 해방 후 동북지역 및 한반도 역내 질서와 조선인
2. 해방 후 동북지역 내 조선인의 이념적 지형
3. 조선인의 중국공산당 및 국민당정부에 대한 인식
4. 조선인의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한 인식
5. 조선인의 남북한 및 한반도통일에 대한 인식
제2부 해방 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조선인
1장 동북아시아 질서재편 과정과 조선인
1. 동북아시아 질서재편 과정에 대한 이해 (1)
2. 동북아시아 질서재편 과정에 대한 이해 (2)
3. 질서재편 과정에서 조선인의 위상과 역할
4. 질서재편 과정에서 동북지역 내 조선인 무장력
5. 질서재편 과정에서 조선인의 참여 및 희생
2장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과정과 조선인
1.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과정에 대한 이해
2. 중국공산당의 동북근거지론과 조선인
3. 중국공산당의 토지개혁과 조선인의 참군 참전 운동
4. 국공내전에서 조선인의 역할
5. 국공내전에서 북한의 역할
3장 조선인민공화국 수립과 동북지역 조선인
1. 해방공간 북한/동북지역 조선인 관계에 대한 이해
2. 중국공산당의 북한/동북지역 조선인 관계에 대한 시각
3. 동북지역 조선인의 북한정권 수립을 보는 시각
4. 북한의 동북지역 및 역내 조선인사회에 대한 관심
5. 북한과 동북지역 조선인사회 간 인적 네트워크
4장 6.25전쟁과 조선인
1. 동북아시아 질서재편 과정에서 본 6.25전쟁
2. 동북지역 조선인의 6.25전쟁에 대한 인식
3. 동북지역 조선인의 6.25전쟁 참여 및 역할
4. 조선인의 6.25전쟁 참여 성격
제3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조선족으로서의 삶
1장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조선족의 위상 변화
1.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대한 조선족의 입장
2.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3. 이중국적에서 중국 단일국적으로
4. 소작농에서 토지를 소유한 노동계급으로
5. 다중 조국관에서 중국 지향의 단일 조국관으로
2장 중화인민공화국 소수민족정책과 조선족
1.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입장과 조선족
2.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정책과 조선족
3.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 식별 과정과 조선족
4.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 민족구역자치제 실시
3장 중국내 정치투쟁과 조선족의 수난
1. 중국에서의 정치투쟁에 대한 이해
2. 반우파투쟁과 민족 정풍운동, 그리고 조선족
3. 인민공사와 대약진운동, 그리고 조선족사회
4. 문화대혁명과 조선족사회 (1)
5. 문화대혁명과 조선족사회 (2)
4장 북한-중국 관계의 부침과 조선족
1. 북한-중국 관계의 부침에 대한 이해
2. 북한-조선족 관계에 대한 이해
3. 북한의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포용
4. 조선족사회의 북한-중국 관계의 부침을 보는 입장
에필로그
책을 마치며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인) 관련 일지
참고문헌
책을 시작하며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