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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15년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별 무기 수출액에서 미국이 1048억 달러로 1위, 러시아(548억 달러)가 크게 약진했고, 독일(204억 달러), 프랑스(201억 달러)와 중국(196억 달러)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일본은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 미쓰비시중공업(21위), 가와사키중공업(50위), IHI(70위), 미쓰비시전기(75위), NEC(77위) 등 5개사의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 방산매출 100대 기업 가운데 일본 기업 5개사가 미국 다음으로 100대 기업에 많은 숫자를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방위산업체들은 지난 70년간 정부를 상대로 죽는소리만 하고 살았다. 직접적 원인은 다름 아닌 방산업체들의 무기수출을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방산업체들은 자위대 납품에만 의존하다 보니 독자적인 생산설비를 운영·유지하는 데 한계점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훨씬 더 가혹했다. 미국 군사전문지 《Army Technology》가 2013년 11월 세계 10대 주력전차 선정에서 6위를 기록한 최신형 10식 전차는 우리의 K2 흑표전차보다 곱절이나 비싼 112억 원 수준이고, 99식 155mm 자주포는 독일의 PzH2000 자주포(10억 원)보다 11배나 비싼 110억 원, 일본 자위대의 돌격소총인 89식 소총의 1정당 가격은 한국의 K2소총(180만 원가량)보다 곱절이나 비싼 330만 원에 납품해야만 했다. 특히 가와사키중공업이 생산한 OH-1 닌자 정찰헬기는 무관절 힌지 메인로터 복합소재로 ‘하워드 휴즈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았으나, 25억 엔이라는 고가화의 벽에 막혀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2014년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작은 외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기시 노부스케의 동생)가 공표한 ‘무기수출 3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면서 일본 방산업계는 기대감으로 들썩이고 있다. 아베 내각은 자국의 하이테크 기술 기반을 앞세워 무기수출을 아베노믹스의 ‘불화살’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무기수출3원칙의 해금(解禁)으로 일본 방위산업은 이러한 고질적 약점을 일거에 해소하고 전세계 무기시장을 두드리면서 조만간 다크호스로 떠오를 전망이다. 2009~2013년 국제 무기거래 추이를 살펴보면, 미국이 단연 최대의 무기수출국이고, 러시아·프랑스·독일·중국도 주요 무기수출국 반열에 올라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국제 무기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기술적 잠재력으로 보아 프랑스나 독일에 버금가는 수출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록 중국의 견제로 아쉽게 패하기는 했으나 미쓰비시중공업은 44조 원 규모의 호주 차세대 잠수함 사업(12척)에 뛰어들어 프랑스와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였고, 신메이와공업은 세계 최고수준의 구난정 US-2 15대를 인도에 수출하기 직전이다. 글로벌 방산업체들은 실전경험이 없는 자위대용 무기를 만들어 온 일본이 브랜드 파워를 갖는 날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일본 방위산업과 한국 방위산업의 기술협력이나 상품시장으로서의 교역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일본이 100% 국산화를 달성한 육상장비를 발판으로 함정이나 항공기, 로켓·위성 등으로 국제 무기시장에서 한국 방산업체를 코너로 몰 가능성이 농후하다.
1967년 선언한 무기수출 3원칙의 족쇄를 방산업계가 반세기만에 푸는 데 성공한 비결은 게이단렌(經團連) 방위생산위원회(防衛生産委員會)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정부를 압박한 결과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1945년 패전 이후 해체됐던 일본의 방위산업이 냉전기를 거치면서 다시 부흥하고, 방산업체들이 게이단렌 방위생산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료집단과 정치인들에게 어떠한 요구들을 해 나가면서 방위정책의 변화를 추동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방위생산위원회의 영향력은 방위청을 통해 주로 이뤄지며, 방위청과 재계의 접점(接點)에 해당하는 방위장비국산화간담회, 심의회, 위원회와 같은 외곽조직, 즉 정부 부처와 민간기구를 연결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조직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방위정책 70년의 형성과정에서 방산업계가 활약한 것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가케무샤(影武者, 대역)’의 역할에 비견할 만하다. 일본 센고쿠(戰國)시대를 대표하는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자신의 얼굴과 흡사한 무사를 내세워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일파를 축출하고 자신을 보호한 것처럼 말이다.
게이단렌은 방위청장관을 지낸 바 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후나다 나카(船田中) 중의원 의장 등 일본 정관계의 실세들과 강한 스킨십을 유지하면서 무기수출 3원칙의 철폐를 강하게 요청하는 등 방위정책 형성에서 가케무샤 역할을 수행했음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밝힌다. 일례로 게이단렌은 1945년 패전 직후 미국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배상완화, 단독강화라는 재계 입장을 관철시켰으며, 미일경제제휴간담회(방위생산위원회의 전신)를 발족시켜 미국의 원조로 자립경제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아베 내각에서 무기수출 3원칙 폐지로 나타난 무기수출의 획기적 변화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안보적 측면까지 고려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필자는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시즈오카현립대 교수의 조언으로 2014년 11월 일본 국회도서관 열람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1953년 4월부터 방위생산위원회가 현안이 있을 때마다 회원사들에 속보형식으로 발행한 《특보(特報)》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일본 방위정책 판짜기에 게이단렌이 한 역할들이 통조림처럼 고스란히 잠자고 있었다.
수많은 《특보》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연구주제와 관련한 내용들을 추출하다 보니 마침내 벽에 부딪혔던 문제들이 봄눈 녹듯 해결되기 시작했다. 《특보》에는 방산업체들이 정계·관계·재계가 함께 참여하는 방위산업 관련 협의단체인 방위장비국산화간담회를 조직했으며, 이 단체의 활동들이 일본 방위정책의 형성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일본의 방위정책이 정사(正史)라면, 방위생산위원회의 《특보》는 야사(野史)라고 할 만하다.
필자는 본 책을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CHAPTER 1에서는 일본 방위산업의 기본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왜 일본의 방위산업을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CHAPTER 2에서는 비군사화규범의 개념과 형성과정·변동에 대해 검토하고, 방위정책의 정책결정 구조에 간여하는 내외부 변수들과 함께 일본의 방위정책을 이론적으로 검토한 마이클 친워드, 리처드 사무엘스, 마이클 그린, 크리스토퍼 휴즈, 김진기(金珍基) 부경대 교수, 박영준(朴榮濬) 국방대 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CHAPTER 3는 일본 방위정책 전개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사례 중 패전 이후 황폐화된 일본의 방위산업이 재건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이 시기 중국의 공산화와 6·25 전쟁 등으로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에 전환이 생기면서 일본의 재계가 앞장서 헌법에 의해 금지당한 방위생산을 재개하는 과정을 적었다. 방산업체들은 게이단렌 산하에 방위생산위원회를 설치했고, 이 위원회를 발판으로 미·일 양국 정부에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해 나가는 과정도 포함했다.
CHAPTER 4는 1967년 무기수출 3원칙 선포 이후 일본의 방위정책에서 비군사화규범이 본격적으로 생성되는 시기를 맞아 방산업체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추적했다. 특히 1972년부터 시작하는 제4차 방위력정비계획(이하 4차방)이 결정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 사례는 4차방을 계기로 일본의 방위산업이 질량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자주방위 구상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의 발발로 일본의 방위산업은 무기의 국산화를 추진하며 또 한 번의 활로를 찾는 듯했다. 그러나 1967년 사토 내각이 무기수출 3원칙을 발표하고, 일련의 비군사화규범이 양산되면서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 방산업계는 국산화를 통해 기술력을 높였고, 게이단렌을 통해 통산성과 의회, 그리고 방위산업 재건에 관심을 가진 보수인사들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생존을 모색했다. 나카소네 방위청장관이 자주국방론의 기치를 내걸고 방위산업을 육성한 반면, 방위청의 구보 다쿠야(久保卓也) 사무차관을 중심으로 한 방위청 관료들은 기반적 방위력이란 개념을 내놓으면서 방산업체들을 압박했다.
CHAPTER 5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경제적 전성기의 구가, 방위산업의 기술력 축적으로 미국의 경계대상이 된 일본이 무기기술 공여국(供與國)으로 전환하는 시기다. 일본의 방위산업과 방위정책을 제약하던 비군사화규범들이 이완되는 시기로서, 그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사례는 FS-X 개발계획이었다. FS-X 공동개발 착수과정에서 미·일이 서로 상대방에게 요구한 사항들은 정치·경제 면에서 양국 관계의 위상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CHAPTER 6는 ‘일본의 재계, 즉 게이단렌 방위생산위원회가 다른 독립변수(관료, 정치인, 미국)들과 함께 방위산업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필자가 세운 가설의 근거를 확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시장의 석권을 노리는 일본 방위산업의 실력을 항공무기 편, 해상무기 편, 육상무기 편, 미사일·로켓·정찰위성 편으로 나눠 소개했다. 무기수출 3원칙 폐지 이후 동남아 국가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일본정부, 그리고 방위산업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목차
머리글 / 일본 방위정책 70년과 가케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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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경단련 방위생산위원회의 존재와 비군사화규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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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왜 일본의 방위산업체를 주목해야 하나
Ⅰ. 경단련 방위생산위원회의 활발한 로비 활동
Ⅱ. 일본 방위정책과 방위산업에 관한 연구사례들
CHAPTER 2 비군사화규범의 이해
Ⅰ. 비군사화규범의 개념과 형성과정
1. 맥아더 사령부의 일본 재군비 차단
2. 국내외 정세 급변과 비군사화규범의 변동
Ⅱ. 비군사화규범의 탄생과 소멸을 부른 변수들
1. 일본 방위(산업)정책과 관련한 견해들
2.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외부 변수
3. 일본의 관료계, 정계, 방산업계 등 내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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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비군사화 규범 해체과정과 경단련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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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비군사화규범 공백기 경단련의 활동
Ⅰ. 방위산업 재건과 방위생산위원회의 출범
1. 일본의 방위산업 태동과 전후 해체과정
2. 미국의 점령정책 변화와 재계의 움직임
3. 강화조약의 체결과 미일경제제휴간담회 발족
4. 6·25전쟁의 발발과 방위산업 재시동
5. 미일상호원조협정 체결과 재계의 3.3.3플랜
Ⅱ. 1, 2차방과 방위생산위원회의 활동
1. 1차방의 결정과 장비국산화의 요구
2. 2차방의 책정과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
Ⅲ. 방위장비국산화간담회와 방위생산위원회의 활동
1. 방위장비국산화간담회의 발족
2. 항공기 국산화와 방위생산위원회의 역할
(1) 항공기 공업 육성과 제도의 정비
(2) YS-11 국산 중형수송기의 개발
(3) F-104 전투기 계속생산 문제
Ⅳ. 수출시장 개척과 방위생산위원회의 활동
1. 남베트남 시장 개척 활동
2. 해외시장 개척의 문제점과 시장대책위원회의 발족
Ⅴ. 3차방과 장비국산화론
1. 3차방 성립과 재계의 장비 국산화 본격 추진
(1) 3차방 성립의 경과
(2) 3차방의 내용과 재계의 활동
2. 자민당 방위족과 재계와의 인적 네트워크
Ⅵ. 소결론; 패전국 일본과 전승국 미국과의 연결고리 역할
CHAPTER 4 비군사화규범 형성기 경단련의 활동
Ⅰ. 무기수출3원칙의 성립과 방위생산위원회의 대응
Ⅱ. 4차방과 방위생산위원회의 활동
1. 나카소네 장관 취임과 자주국방론의 대두
(1) 4차방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
(2) 나카소네 구상과 최초의 『방위백서』 발간
2. 4차방의 출범
(1) 나카소네 구상의 좌절과 4차방의 최종 결정
(2) 나카소네 원안과 구보 다쿠야의 기반적 방위력의 대립
Ⅲ. 미일가이드라인과 방위계획대강의 성립
1. 방위계획대강의 성립과 방위비 GNP 1% 각의 결정
2. 미일가이드라인 합의
3. 53.56 중기업무견적과 방위계획대강 재검토론의 부상
4. 라이샤워 발언과 비핵 3원칙
5. 나카소네 정권 등장과 일본 열도 불침항모론
6. 자주국방론의 퇴조와 국산화의 좌절
Ⅳ. 소결론; 4차방과 미일가이드라인 책정을 견인
CHAPTER 5 비군사화규범 완화기 경단련의 활동
Ⅰ. 미일방산협력과 무기수출 3원칙의 예외화
1. 방위비의 GNP 1% 벽 돌파
2. 59중기업무견적의 수립
3.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 움직임
(1) 미국의 무기수출 3원칙에 대한 불만
(2) 무기수출 3원칙 수정요구의 확산
(3) 미일기술포럼 창설
Ⅱ. 미일 무기 공동생산과 방위생산위원회의 활동
1. FS-X 개발 결정 과정
2. 항공업계의 국내개발을 위한 노력
Ⅲ. 무기수출 3원칙 완화와 방위생산위원회의 역할
1. 방위산업체들의 위상과 국산화 역량
(1) 일본 방산업체의 현황과 글로벌 위상
(2) 주요 생산품과 기술력
2.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와 폐지
Ⅳ. 소결론; F-2전투기 미일공동개발로 무기수출3원칙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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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비군사화규범 해체 이후 일본 방위산업계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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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무기수출3원칙 폐지 이후 일본 방위산업의 미래
Ⅰ. 세계시장 석권 노리는 일본 방위산업의 실력-항공무기편
1. 103년의 항공기 제작 노하우 보유
2. 호리코시 지로가 제작한 여객기 YS-11
3. F-2전투기 미국과 공동개발
4.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프랑스와 공동 연구개발
5.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 독자개발 추진
Ⅱ. 세계시장 석권 노리는 일본 방위산업의 실력-해상무기편
1.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 건조
2. 일본의 경항모로 부활한 이즈모
3. 잠수함 독자설계가 가능한 나라
4. 원자력잠수함 보유 가능성
Ⅲ. 세계시장 석권 노리는 일본 방위산업의 실력-육상무기편
1. 세계 10대 전차로 손꼽히는 10식 전차
2. 전차병에게 옥쇄를 강요한 97식 중전차
3. 64식 소총가격 874만원
4. 독자개발 정찰헬기, 닌자 OH-1
Ⅳ. 세계시장 석권 노리는 일본 방위산업의 실력-미사일·로켓·정찰위성편
1. 영토분쟁에 동원하는 일본의 미사일 전력
2. SM-3 미사일 미국과 공동개발
3. 군사용 고체연료 로켓 개발
4. 미국 키홀과 맞먹는 첩보위성 4기 보유
Ⅴ. 소결론; 한일 간 안보협력 관계 전망
참고문헌
부록: 전후 역대 내각의 방위성(청)장관과 사무차관, 일본의 방위력정비계획·방위계획대강 일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