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전후 유럽: 1945~2005. 2
- 대등서명
- Postwar
- 개인저자
- 토니 주트 지음 ; 조행복 옮김
- 발행사항
- 파주 : 열린책들, 2019
- 형태사항
- 716 p. : 삽화, 지도 ; 22 cm
- ISBN
- 9788932919720 9788932919706 (세트)
- 청구기호
- 920.5 J93p
- 일반주기
- 색인수록 원저자명: Tony Judt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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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7123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7123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역사가들이 인정한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 BBC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
2008년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된 『전후 유럽Postwar』(전2권)(초역판 제목은 『포스트 워』)이 11년 만에 개역판으로 독자를 만난다. 현대 유럽사의 탁월한 저술가 토니 주트가 집필한 이 책은 20세기 유럽사에 관한 필독서로 알려져 있으며, 2006 퓰리처상 후보, 2006 아서 로스 북어워드 수상에서 알 수 있듯 <역사가들이 인정한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개역판은 초역판에서 놓쳤던 번역 오류, 개념어 및 외래어 표기 등의 문제점 등을 최대한 수정했고, 그사이 바뀐 어문 규정을 적용했으며, 가독성을 높이고자 전반적으로 문장을 손봤다. 현대 유럽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모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전쟁이었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다. 폴란드는 전쟁 이전 인구의 5분의 1을, 유고슬라비아는 8분의 1을, 소련은 11분의 1을, 그리스는 14분의 1을 잃었다. 포로들의 운명도 비참했다. 독일군 포로가 된 소련군 550만 명 중 330만 명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유기, 학대로 사망했다. 비극은 전후에도 이어졌다. 전후 동유럽 지역에 살던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살던 곳에서 쫓겨났고, 1953년까지 본국으로 송환된 소련 국민 550만 명 중 다섯에 하나는 사살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전후 유럽은 본의 아니게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단일 민족 국가들로 재편되었다.
『전후 유럽』은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하나의 유럽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다. <백과사전처럼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스릴러의 속도감>으로 오늘날의 유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펼쳐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에서부터 냉전의 기원, 유럽 제국주의의 종언과 식민지 해방, 유럽 경제 공동체의 탄생과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구권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전쟁,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그리고 스포츠, 음악, 영화 등 유럽인들의 일상적 삶에 이르기까지 전후 유럽의 모든 것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유럽의 전후 60년은 정치, 경제, 사상의 거대한 실험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문명은 붕괴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기적처럼 1945년에서 1989년 사이에 유럽 대륙에서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사라졌다. 두 세대의 유럽인들은 평화를 마치 자연의 질서인 양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전쟁 또는 이데올로기적 대결은 제3세계가 떠맡았다). 유럽이 이처럼 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60년 전엔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유럽은 하나의 지리적 표현에서 개인과 국가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변신했다(유럽 모델은 유럽 연합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에게 횃불이자 본보기가 되었다). 도대체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20세기, 특히 전후 60년 동안의 유럽은 정치, 경제, 사상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전후 유럽』은 리스본에서 레닌그라드까지 유럽 34개국 60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6개 국어로 된 문헌들과 최근에야 비로소 개방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유럽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좇는다. 과거 청산과 통일, 지역 감정,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쇠퇴, 반미주의와 반공주의, 출산율 감소와 국민연금 고갈, 공기업 민영화, 이주 노동자 문제 등 각각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모든 현대 국가들이 마주한 문제들)이 어떻게 불거지고 어떻게 타협을 이뤄 가는지 추적한다. 특히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라 할 복지 국가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길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책 전체를 통해 논의되고 있다. 주트는 이를 통해 현대 유럽의 역사가 하나의 진실을 보여 준다고 강조한다. <계급>에 집착하며 <시장>을 고려하지 않는 좌파와 <복지>를 포기하고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 우파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이다. 좌파는 <계급>을 뛰어넘어야 하고 우파는 <시장>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자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산주의 vs. 자본주의 vs. 유럽
공산주의를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 스탈린주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며 여전히 교정될 수 있는 실수라는 환상, 민주적 다원주의의 핵심적 이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는 환상. 이러한 환상들은 1968년 8월 21일(프라하의 봄)에 탱크에 짓밟혔고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계속 비틀거렸으며 썩어 가던 송장은 1989년에 가서야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1988년 12월 7일 국제 연합에서 고르바초프가 <선택의 자유는 보편적인 원리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을 때, 이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선언은 <사회주의> 해석을 형제 국가들에 강요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고백에 머물지 않았다. 위성 국가들의 시민이 이제 사회주의든 아니든 자유롭게 자신들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는 선례가 없었다. 공산주의에서 갓 벗어난 동유럽 사람들이 이해한 바로는 자본주의는 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은 사유화를 뜻했다. 1989년 이후 동유럽에서 벌어진 공유 물자의 특별 판매는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서유럽에서 70년대 말부터 속도를 더하며 유행했던 사유화는 국가 소유로부터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동유럽에 모범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그들은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서유럽과 대서양 연안에서 등장한 자본주의에는 지난 400년 동안 법률, 제도, 규정, 관례가 축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탈공산주의 국가들에는 그러한 법률과 제도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에 불어 닥친 사유화 조치는 도둑 정치가 되고 말았다. 자본주의로 이행한 후, 경제는 소수의 수중에 떨어졌고 그들은 터무니없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2004년 서른여섯 명의 러시아 백만장자들이 국내 총생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100억 달러를 차지했다. 사유화와 단순한 절도 사이의 구분은 거의 사라졌다. 석유, 가스, 광물, 귀금속, 송유관 등 훔칠 것은 너무 많았고 이러한 자원 절도를 막을 사람도 제도도 전혀 없었다. 공적 자산과 공적 제도는 공무원들이 분해하여 서로 나눠 가졌다. 이들은 사적 패거리로 이전되거나 합법적으로 양도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빼내어 손에 넣었다.
하지만 동유럽인들이 권위적인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했다는 사실이 그들이 자본주의를 열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유럽으로 복귀하기를 바랐다(이는 반체제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다루었던 주요 주제들 중 하나였다). 유럽 공동체와 유럽 연합이라는 제도적 실체의 존재는 그러한 열망을 더욱 부추겼다. 개인의 권리와 시민의 의무, 표현과 이동의 자유 같은 <유럽적> 가치들에 이들은 쉽게 공명했다. 이제 유럽은 과거의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의 잃어버린 문화를 위한 만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의미했다. 그들에게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유럽>이었다.
유럽식 사회모델 vs. 미국식 생활양식
1945년 이후 유럽의 다양한 복지 국가들은 제도적 절차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의 반영이었다. 전후 유럽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물자는 극도로 부족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은 왜 그렇게 많은 자금을 보험과 기타 장기적인 복지 공급에 기꺼이 투입하려 했을까? 첫째,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후 복지 제도는 최소한의 정의나 공정함에 대한 보증서였다. 복지 제도는 전전의 절망과 냉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둘째, 서유럽 복지 국가는 정치적인 분열을 야기하지 않았다. 복지 국가의 전반적인 취지는 사회적 재분배였지만 전혀 혁명적이지 않았다. <부자들의 피를 빨아먹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즉각적으로 가장 큰 혜택을 느낀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실질적인 수혜를 입은 자들은 전문직과 상인들로 구성된 중간 계급이었다. 유럽의 복지 국가는 사회 계급들을 분열시켜 서로 적대하게 만들기는커녕 이전보다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켰고, 복지 국가의 보존과 방어는 공동의 관심사가 되었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게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유럽 특유의 사회 모델을 만들어 냈다. 복지 국가에 유럽 연합을 통한 국가 간 협력 관계를 결합시킨 이 모델은 인권, 시장,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식 사회모델과 달랐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이러한 유럽식 사회모델이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고 청년 실업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고율의 세금이 성장과 혁신을 방해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제 국가 소유와 국가 의존은 유럽의 문제이며, 위로부터의 구원을 과거의 환상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후 호황의 절정기에 마련된 복지 정책의 일부가 이제 심각한 부담이 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유럽 경제가 비효율적이라거나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2003년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경제는 노동 시간당 생산성의 척도로 측정했을 때 모두 미국에 견줄 만 했다(같은 기준으로 아일랜드,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는 모두 미국을 능가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생산성이 전체적으로 더 높았다면, 이는 미국인들 중에 유급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더 오래 일했고 휴가는 더 적고 짧았다.
유럽인은 마음먹기에 따라 적게 일하고 적게 벌기를, 그리고 더 잘 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유럽인은 유례없이 높은 세금의 대가로 무료나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의료 서비스를 받았으며 빨리 은퇴했고 막대한 사회 복지와 공공 서비스를 보장받았다. 또한 중등학교를 통해 미국인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 더 안전한 생활을 누렸고 그 덕에 더 오래 살았으며 더 건강했고, 가난한 사람도 훨씬 더 적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식 사회모델>이었다.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모델임은 분명했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직업의 안정과 누진세, 대규모 사회적 이전 지출에 대한 약속은 시민 상호 간의 약속임과 동시에 정부와 시민 간의 약속을 의미했다.
절대 다수의 유럽인이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빈곤을 완화시키는 데 쓰인다면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는 국가가 불운이나 시장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 폭넓은 국제적, 계급 간 합의가 존재했다.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이익이 상호 배제 관계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성장>은 추구할 만한 것이었지만 어떤 비용을 치르고라도 얻어야 할 것은 아니었다.
수상 내역
2006 아서 로스 북어워드 수상
2006 퓰리처 상 최종심
2006 새뮤얼 존슨상 최종 후보작
2005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2005 『타임』 선정 올해의 책
2005 『가디언』 선정 올해의 책
2005 『옵서버』 선정 올해의 책
2005 『선데이 헤럴드』 선정 올해의 책
2005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 선정 올해의 책
2005 『인디펜던트』 선정 올해의 역사책
2005 『선데이 타임스』 선정 올해의 역사책
2008 문광부 우수 교양 도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
2008년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된 『전후 유럽Postwar』(전2권)(초역판 제목은 『포스트 워』)이 11년 만에 개역판으로 독자를 만난다. 현대 유럽사의 탁월한 저술가 토니 주트가 집필한 이 책은 20세기 유럽사에 관한 필독서로 알려져 있으며, 2006 퓰리처상 후보, 2006 아서 로스 북어워드 수상에서 알 수 있듯 <역사가들이 인정한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개역판은 초역판에서 놓쳤던 번역 오류, 개념어 및 외래어 표기 등의 문제점 등을 최대한 수정했고, 그사이 바뀐 어문 규정을 적용했으며, 가독성을 높이고자 전반적으로 문장을 손봤다. 현대 유럽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모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전쟁이었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다. 폴란드는 전쟁 이전 인구의 5분의 1을, 유고슬라비아는 8분의 1을, 소련은 11분의 1을, 그리스는 14분의 1을 잃었다. 포로들의 운명도 비참했다. 독일군 포로가 된 소련군 550만 명 중 330만 명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유기, 학대로 사망했다. 비극은 전후에도 이어졌다. 전후 동유럽 지역에 살던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살던 곳에서 쫓겨났고, 1953년까지 본국으로 송환된 소련 국민 550만 명 중 다섯에 하나는 사살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전후 유럽은 본의 아니게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단일 민족 국가들로 재편되었다.
『전후 유럽』은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하나의 유럽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다. <백과사전처럼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스릴러의 속도감>으로 오늘날의 유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펼쳐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에서부터 냉전의 기원, 유럽 제국주의의 종언과 식민지 해방, 유럽 경제 공동체의 탄생과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구권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전쟁,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그리고 스포츠, 음악, 영화 등 유럽인들의 일상적 삶에 이르기까지 전후 유럽의 모든 것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유럽의 전후 60년은 정치, 경제, 사상의 거대한 실험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문명은 붕괴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기적처럼 1945년에서 1989년 사이에 유럽 대륙에서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사라졌다. 두 세대의 유럽인들은 평화를 마치 자연의 질서인 양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전쟁 또는 이데올로기적 대결은 제3세계가 떠맡았다). 유럽이 이처럼 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60년 전엔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유럽은 하나의 지리적 표현에서 개인과 국가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변신했다(유럽 모델은 유럽 연합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에게 횃불이자 본보기가 되었다). 도대체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20세기, 특히 전후 60년 동안의 유럽은 정치, 경제, 사상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전후 유럽』은 리스본에서 레닌그라드까지 유럽 34개국 60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6개 국어로 된 문헌들과 최근에야 비로소 개방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유럽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좇는다. 과거 청산과 통일, 지역 감정,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쇠퇴, 반미주의와 반공주의, 출산율 감소와 국민연금 고갈, 공기업 민영화, 이주 노동자 문제 등 각각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모든 현대 국가들이 마주한 문제들)이 어떻게 불거지고 어떻게 타협을 이뤄 가는지 추적한다. 특히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라 할 복지 국가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길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책 전체를 통해 논의되고 있다. 주트는 이를 통해 현대 유럽의 역사가 하나의 진실을 보여 준다고 강조한다. <계급>에 집착하며 <시장>을 고려하지 않는 좌파와 <복지>를 포기하고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 우파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이다. 좌파는 <계급>을 뛰어넘어야 하고 우파는 <시장>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자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산주의 vs. 자본주의 vs. 유럽
공산주의를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 스탈린주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며 여전히 교정될 수 있는 실수라는 환상, 민주적 다원주의의 핵심적 이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는 환상. 이러한 환상들은 1968년 8월 21일(프라하의 봄)에 탱크에 짓밟혔고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계속 비틀거렸으며 썩어 가던 송장은 1989년에 가서야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1988년 12월 7일 국제 연합에서 고르바초프가 <선택의 자유는 보편적인 원리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을 때, 이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선언은 <사회주의> 해석을 형제 국가들에 강요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고백에 머물지 않았다. 위성 국가들의 시민이 이제 사회주의든 아니든 자유롭게 자신들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는 선례가 없었다. 공산주의에서 갓 벗어난 동유럽 사람들이 이해한 바로는 자본주의는 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은 사유화를 뜻했다. 1989년 이후 동유럽에서 벌어진 공유 물자의 특별 판매는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서유럽에서 70년대 말부터 속도를 더하며 유행했던 사유화는 국가 소유로부터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동유럽에 모범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그들은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서유럽과 대서양 연안에서 등장한 자본주의에는 지난 400년 동안 법률, 제도, 규정, 관례가 축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탈공산주의 국가들에는 그러한 법률과 제도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에 불어 닥친 사유화 조치는 도둑 정치가 되고 말았다. 자본주의로 이행한 후, 경제는 소수의 수중에 떨어졌고 그들은 터무니없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2004년 서른여섯 명의 러시아 백만장자들이 국내 총생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100억 달러를 차지했다. 사유화와 단순한 절도 사이의 구분은 거의 사라졌다. 석유, 가스, 광물, 귀금속, 송유관 등 훔칠 것은 너무 많았고 이러한 자원 절도를 막을 사람도 제도도 전혀 없었다. 공적 자산과 공적 제도는 공무원들이 분해하여 서로 나눠 가졌다. 이들은 사적 패거리로 이전되거나 합법적으로 양도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빼내어 손에 넣었다.
하지만 동유럽인들이 권위적인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했다는 사실이 그들이 자본주의를 열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유럽으로 복귀하기를 바랐다(이는 반체제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다루었던 주요 주제들 중 하나였다). 유럽 공동체와 유럽 연합이라는 제도적 실체의 존재는 그러한 열망을 더욱 부추겼다. 개인의 권리와 시민의 의무, 표현과 이동의 자유 같은 <유럽적> 가치들에 이들은 쉽게 공명했다. 이제 유럽은 과거의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의 잃어버린 문화를 위한 만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의미했다. 그들에게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유럽>이었다.
유럽식 사회모델 vs. 미국식 생활양식
1945년 이후 유럽의 다양한 복지 국가들은 제도적 절차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의 반영이었다. 전후 유럽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물자는 극도로 부족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은 왜 그렇게 많은 자금을 보험과 기타 장기적인 복지 공급에 기꺼이 투입하려 했을까? 첫째,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후 복지 제도는 최소한의 정의나 공정함에 대한 보증서였다. 복지 제도는 전전의 절망과 냉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둘째, 서유럽 복지 국가는 정치적인 분열을 야기하지 않았다. 복지 국가의 전반적인 취지는 사회적 재분배였지만 전혀 혁명적이지 않았다. <부자들의 피를 빨아먹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즉각적으로 가장 큰 혜택을 느낀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실질적인 수혜를 입은 자들은 전문직과 상인들로 구성된 중간 계급이었다. 유럽의 복지 국가는 사회 계급들을 분열시켜 서로 적대하게 만들기는커녕 이전보다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켰고, 복지 국가의 보존과 방어는 공동의 관심사가 되었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게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유럽 특유의 사회 모델을 만들어 냈다. 복지 국가에 유럽 연합을 통한 국가 간 협력 관계를 결합시킨 이 모델은 인권, 시장,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식 사회모델과 달랐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이러한 유럽식 사회모델이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고 청년 실업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고율의 세금이 성장과 혁신을 방해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제 국가 소유와 국가 의존은 유럽의 문제이며, 위로부터의 구원을 과거의 환상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후 호황의 절정기에 마련된 복지 정책의 일부가 이제 심각한 부담이 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유럽 경제가 비효율적이라거나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2003년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경제는 노동 시간당 생산성의 척도로 측정했을 때 모두 미국에 견줄 만 했다(같은 기준으로 아일랜드,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는 모두 미국을 능가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생산성이 전체적으로 더 높았다면, 이는 미국인들 중에 유급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더 오래 일했고 휴가는 더 적고 짧았다.
유럽인은 마음먹기에 따라 적게 일하고 적게 벌기를, 그리고 더 잘 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유럽인은 유례없이 높은 세금의 대가로 무료나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의료 서비스를 받았으며 빨리 은퇴했고 막대한 사회 복지와 공공 서비스를 보장받았다. 또한 중등학교를 통해 미국인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 더 안전한 생활을 누렸고 그 덕에 더 오래 살았으며 더 건강했고, 가난한 사람도 훨씬 더 적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식 사회모델>이었다.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모델임은 분명했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직업의 안정과 누진세, 대규모 사회적 이전 지출에 대한 약속은 시민 상호 간의 약속임과 동시에 정부와 시민 간의 약속을 의미했다.
절대 다수의 유럽인이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빈곤을 완화시키는 데 쓰인다면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는 국가가 불운이나 시장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 폭넓은 국제적, 계급 간 합의가 존재했다.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이익이 상호 배제 관계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성장>은 추구할 만한 것이었지만 어떤 비용을 치르고라도 얻어야 할 것은 아니었다.
수상 내역
2006 아서 로스 북어워드 수상
2006 퓰리처 상 최종심
2006 새뮤얼 존슨상 최종 후보작
2005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2005 『타임』 선정 올해의 책
2005 『가디언』 선정 올해의 책
2005 『옵서버』 선정 올해의 책
2005 『선데이 헤럴드』 선정 올해의 책
2005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 선정 올해의 책
2005 『인디펜던트』 선정 올해의 역사책
2005 『선데이 타임스』 선정 올해의 역사책
2008 문광부 우수 교양 도서
목차
3부 퇴장 송가 1971~1989
14장 줄어든 기대
15장 새로운 정치
16장 이행기
17장 새로운 현실주의
18장 무력한 자들의 권력
19장 구질서의 종말
4부 몰락 이후 1989~2005
20장 분열하기 쉬운 대륙1
21장 청산
22장 구유럽과 신유럽
23장 유럽의 다양성
24장 유럽, 하나의 생활양식
에필로그 죽음의 집에서 나오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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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개역판 출간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