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근대서지총서 03
틀을 돌파하는 미술: 정현웅 미술작품집
- 발행사항
- 서울 : 소명출판, 2012
- 형태사항
- 444 p. : 천연색삽화, 초상 ; 29 cm
- 총서사항
- 근대서지총서
- ISBN
- 9788956267692 9788956264424 (세트)
- 청구기호
- 653.11 정79ㅌ
- 서지주기
- \"정현웅 연보\"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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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7140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7140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인쇄미술’의 기틀을 닦은 정현웅 화백을 모으다
從來와 같은 展覽會의 形式으로 作品을 發表하면서 틀(額)을 無視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美術은 當然히 갇혀있던 틀 속에서 거리로 뛰어와야 한다는 그들의 意圖만은 至極히 옳다고 생각하였다.
至今까지의 美術이란 틀 속에 끼워 象牙塔 속에 孤孤히 들어앉아 있었다. 作品은 반드시 틀에 끼워야 하고 족자로 꾸며야 하고 屛風을 만들어야 한다는 卽 틀에 끼우는 美術 족자의 美術만이 眞正한 藝術이라는 觀念에 젖어 왔다. 同時에 展覽會만이 作品을 發表하는 唯一의 形式이라고 생각해 왔다. 作品이 個人의 所有物이 되고 商品으로 된 資本主義社會에서 자라온 우리들에게 이 額式 美術 至上의 觀念은 當然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至今에 와서는 時代錯誤의 封建的 殘滓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현웅, <週間서울> 제19호, 1948.12.20, 5쪽
2012년, 소명출판에서 정현웅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화백의 미술작품집을 출간했다. 책 타이틀이 미술작품집이긴 하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문학적이다. 순수미술보다 당대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책의 장정과 삽화가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출판미술에서 정화백의 기여는 크다. 책의 장정이나 삽화가 정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여전히 미술이다. 정화백의 미술작품집 <틀을 돌파하는 미술>(소명출판, 2012)은 <해방기 간행도서 총목록 1945~1950>(2009)과 <‘삐라’로 듣는 해방 직후의 목소리>(2011)를 이은 세 번째 ‘근대서지총서’이다. 반년간 <근대서지>를 펴내며 서지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소명출판에서 심혈을 기울여 펴내는 ‘근대서지총서’이니만큼, 한 곳에서 찾아볼 수 없던 정화백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페이지를 빼곡히 채웠다.
‘출판미술’의 기틀을 세운 월북 화가, 정현웅
그렇다면 정현웅 화백은 누구인가? 정현웅은 선비집안 개화지식인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매동보통학교를 1920년에 입학하고, 월반하여 경성제2공립고등보통학교를 1924년에 입학, 1929년에 졸업하였다. 이것이 그의 학벌 전부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그의 집안이 빈한해졌기 때문이다. 졸업 후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했으나 집안의 원조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6개월만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서양화가로 등단했고, 특선작가라는 최고의 영예까지 안았다. 혼자 공부한 그는 서양화가에서 미술평론가, 문인, 언론인, 장정가, 삽화가로 변신하며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조선미술건설본부를 결성하여 서기장으로서 친일미술인들 10여 명을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작업의 중심 역할을 하였고, 1948년 좌익계일인 조선미술동맹 간부로 활약했다. 해방 후 남한의 어지러운 사회현실에서도 <신천지>의 편집에 전념하여 사회 여론을 이끌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아동미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6?25 인민공화국 치하에서는 남조선미술가동맹의 서기장을 맡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꿈꾸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실현을 기대했으나 전황의 급변으로 급히 피신해야했고, 남쪽의 가족을 두고 홀로 월북해야 했다. 월북 후에는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모사하여 남북한 미술사의 기념비적 위업을 달성하는 한편, 조선화를 배워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출판화분과위원장을 맡아 출판미술의 기틀을 세웠으며 아동화, 역사화에서도 혁혁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틀을 돌파하는 미술>에서는 남한에서의 작품뿐만 아니라 월북 후의 작품까지도 담아내며, 정현웅 화백의 전 생애를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집의 영역, 그 틀을 돌파하다
<틀을 돌파하는 미술>은 정현웅 화백의 미술작품 영역을 총망라했다. 정현웅 미술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화에서부터 정현웅 화백이 스스로 ‘인쇄미술’이라고 불렸던 출판 미술자료까지, 어느 것은 단 한 작품 구하기가 사금을 얻어내기처럼 어려웠고, 어느 것은 감당치 못할 정도의 양이 남아있어 정리하고 분류하기에 애를 먹었다.
서양화로 출발하여 출판미술에서 그 꽃을 피운 정현웅 화백의 미술작품집은 출간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근대미술의 초기 작가들 가운데 출판미술에 종사하지 않은 이가 드문 현실에서 순수미술이라 할 수 있는 서양화는 물론 상업미술로 분류될 수 있는 출판미술 작품까지 모아서 작품집으로 엮어 낸 것은 이 책이 처음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미술작품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왔으나 비단 미술학도, 혹은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정현웅 화백의 발자취가 그러하듯 이 책은 미술학도를 비롯하여 서지학도, 언론사학도, 문학도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고, 이와 같은 분야에 관심을 두는 독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풍이 붉게 떨어지는 이 가을, 우습고 서글프고 흥미로우며 스토리가 있는 정현웅 미술작품집으로 감성을 수 놓아보기를 추천한다.
從來와 같은 展覽會의 形式으로 作品을 發表하면서 틀(額)을 無視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美術은 當然히 갇혀있던 틀 속에서 거리로 뛰어와야 한다는 그들의 意圖만은 至極히 옳다고 생각하였다.
至今까지의 美術이란 틀 속에 끼워 象牙塔 속에 孤孤히 들어앉아 있었다. 作品은 반드시 틀에 끼워야 하고 족자로 꾸며야 하고 屛風을 만들어야 한다는 卽 틀에 끼우는 美術 족자의 美術만이 眞正한 藝術이라는 觀念에 젖어 왔다. 同時에 展覽會만이 作品을 發表하는 唯一의 形式이라고 생각해 왔다. 作品이 個人의 所有物이 되고 商品으로 된 資本主義社會에서 자라온 우리들에게 이 額式 美術 至上의 觀念은 當然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至今에 와서는 時代錯誤의 封建的 殘滓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현웅, <週間서울> 제19호, 1948.12.20, 5쪽
2012년, 소명출판에서 정현웅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화백의 미술작품집을 출간했다. 책 타이틀이 미술작품집이긴 하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문학적이다. 순수미술보다 당대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책의 장정과 삽화가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출판미술에서 정화백의 기여는 크다. 책의 장정이나 삽화가 정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여전히 미술이다. 정화백의 미술작품집 <틀을 돌파하는 미술>(소명출판, 2012)은 <해방기 간행도서 총목록 1945~1950>(2009)과 <‘삐라’로 듣는 해방 직후의 목소리>(2011)를 이은 세 번째 ‘근대서지총서’이다. 반년간 <근대서지>를 펴내며 서지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소명출판에서 심혈을 기울여 펴내는 ‘근대서지총서’이니만큼, 한 곳에서 찾아볼 수 없던 정화백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페이지를 빼곡히 채웠다.
‘출판미술’의 기틀을 세운 월북 화가, 정현웅
그렇다면 정현웅 화백은 누구인가? 정현웅은 선비집안 개화지식인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매동보통학교를 1920년에 입학하고, 월반하여 경성제2공립고등보통학교를 1924년에 입학, 1929년에 졸업하였다. 이것이 그의 학벌 전부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그의 집안이 빈한해졌기 때문이다. 졸업 후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했으나 집안의 원조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6개월만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서양화가로 등단했고, 특선작가라는 최고의 영예까지 안았다. 혼자 공부한 그는 서양화가에서 미술평론가, 문인, 언론인, 장정가, 삽화가로 변신하며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조선미술건설본부를 결성하여 서기장으로서 친일미술인들 10여 명을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작업의 중심 역할을 하였고, 1948년 좌익계일인 조선미술동맹 간부로 활약했다. 해방 후 남한의 어지러운 사회현실에서도 <신천지>의 편집에 전념하여 사회 여론을 이끌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아동미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6?25 인민공화국 치하에서는 남조선미술가동맹의 서기장을 맡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꿈꾸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실현을 기대했으나 전황의 급변으로 급히 피신해야했고, 남쪽의 가족을 두고 홀로 월북해야 했다. 월북 후에는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모사하여 남북한 미술사의 기념비적 위업을 달성하는 한편, 조선화를 배워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출판화분과위원장을 맡아 출판미술의 기틀을 세웠으며 아동화, 역사화에서도 혁혁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틀을 돌파하는 미술>에서는 남한에서의 작품뿐만 아니라 월북 후의 작품까지도 담아내며, 정현웅 화백의 전 생애를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집의 영역, 그 틀을 돌파하다
<틀을 돌파하는 미술>은 정현웅 화백의 미술작품 영역을 총망라했다. 정현웅 미술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화에서부터 정현웅 화백이 스스로 ‘인쇄미술’이라고 불렸던 출판 미술자료까지, 어느 것은 단 한 작품 구하기가 사금을 얻어내기처럼 어려웠고, 어느 것은 감당치 못할 정도의 양이 남아있어 정리하고 분류하기에 애를 먹었다.
서양화로 출발하여 출판미술에서 그 꽃을 피운 정현웅 화백의 미술작품집은 출간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근대미술의 초기 작가들 가운데 출판미술에 종사하지 않은 이가 드문 현실에서 순수미술이라 할 수 있는 서양화는 물론 상업미술로 분류될 수 있는 출판미술 작품까지 모아서 작품집으로 엮어 낸 것은 이 책이 처음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미술작품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왔으나 비단 미술학도, 혹은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정현웅 화백의 발자취가 그러하듯 이 책은 미술학도를 비롯하여 서지학도, 언론사학도, 문학도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고, 이와 같은 분야에 관심을 두는 독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풍이 붉게 떨어지는 이 가을, 우습고 서글프고 흥미로우며 스토리가 있는 정현웅 미술작품집으로 감성을 수 놓아보기를 추천한다.
목차
발간사
일러두기를 겸하여
제1부 앨범으로 본 생애
제2부 서양화가 정현웅
제3부 정현웅, ‘삽화계의 폭탄적 경이’
제1장 장정, 삽화 그리고 인쇄미술
장정의 변
삽화기
틀을 돌파하는 미술
* 장정과 관련된 도서 각 부분의 명칭에 대하여
제2장 단행본 장정
1. 일제강점기
2. 해방기
제3장 신문잡지의 출판미술
1. 잡지 표지화
2. 잡지 삽화
3. 신문 삽화
제4장 아동도서의 출판미술
1. 단행본
2. 잡지
3. 삽화
단행본 삽화
잡지 삽화
신문 삽화
제4부 캐리커처 및 기타 작품들
제5부 월북 후의 작품활동
1.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
2. 역사화
3. 아동화
4. 출판화
5. 기타
제6부 해제와 목록
식민지 조선의 무중풍경(霧中風景)을 밝히는 정현웅의 예술세계 __ 유정아
1930년대 문화 운동과 정현웅의 역할 __ 조영복
신문지면을 그림으로 빛낸 언론인 __ 정진석
정현웅 - 화가, 언론인, 삽화가, 문인의 일생
정현웅의 장정 이야기 __ 오영식
정현웅 출판미술 목록
정현웅 연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