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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 왜 불평등의 오늘을 말하는가 ―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
누구에게나 자아실현의 기회를 보장하는 평등 국가에 살면서 우리는 왜 심각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효율성과 생산성, 가시적 성과를 추어올리고, 무차별적 경쟁을 강제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ㆍ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의 스물여섯 번째 권《평등》은 이러한 비인간적 불평등의 현실을 고찰하고 평등의 철학과 더불어 평등을 향한 실천 방안을 모색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구성원을 부자와 빈자로 구분하고, 이 두 계층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지배/예속 관계로 설정된다. 즉,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결국 불평등의 문제는 자아를 비롯한 자유의 상실이라는 실존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 외에도 평등은 도덕적ㆍ인간학적ㆍ다문화주의적ㆍ실존 철학적 차원의 포괄적인 문제이다. 이처럼 불평등의 문제는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불거져 나와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내적으로 서로 중첩되고, 긴밀히 연계된다. 결국 불평등의 문제를 ‘왜’ 극복해야 하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이론적 차원과 실천적 차원이 결합된 ‘이론적 실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 책은 평등의 다양한 의미와 내용 중에서도 근대적 가치로서 재조명된 평등, 즉 ‘사회적 평등’의 개념이 지닌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의미를 고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즉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해명하고 그러한 사태를 뛰어넘어 현실 사회에서 실현해야 할 사회적 평등의 이념과 유형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에 따르면 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와 연관 지어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자본주의 체제야말로 한국 사회를 비롯해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여 영위하는 ‘주도적인’ 사회 체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여겨졌던 ‘자유’와 ‘평등’의 조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평등을 둘러싼 이론적ㆍ실천적 논쟁과, 평등의 철학을 소개한다. 루소의 정치 철학, 마르크스의 평등주의적 사회 비판 철학, 롤스의 정의의 철학을 소개하고, 특히 ‘평등’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의 철학을 주목한다.
사회가 변화하고 진화해감에 따라 자유롭고 공정한 정의 사회로서의 이상적 평등 사회의 조건 역시 그 외연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이 책은 진정한 평등 사회의 자격 조건을 정의내리며 거기에 비춰 평등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가 위치하고 있는 좌표를 그려본다. 이 모든 연구는 한국 사회를 비롯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빚어지는 비인간적 불평등의 실태를 비판적으로 고찰해봄으로써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해보려는 지은이의 사회철학적인 의도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무엇이 진정한 평등인가 ― 평등의 유형과 분배적 평등
사회 내 불평등은 인류가 사회를 형성한 이래 줄곧 존재해왔다. 불평등에 관한 논쟁은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는 ‘사회 내 불평등은 자연 발생적이며 불가피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아퀴나스로 대변되는 스콜라철학에서 기독교적 평등은 영혼의 세계에 한정된 것이며 육체가 속한 세속적 세계에서의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 혁명 이후에 등장한 자유주의 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평등과 존엄성의 관점에서 불평등을 새롭게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했다. 근대의 비판적 인식을 통해 평등은 곧 ‘사회적 평등’이요, 불평등은 곧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된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적이며 헌신적으로 이뤄진 실천적 투쟁의 산물이다. 우리에게는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로 심화된 불평등의 현실을 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인간 해방 사회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사회 변혁 운동과 실천적 투쟁으로 사회적 평등을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앞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평등인가?’
이 책은 평등의 다양한 의미를 일일이 추적하는 대신 평등 전문 연구자인 브라이언 터너의 평등 유형론에 따라 평등을 네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본다. 사회적 평등의 본질적 의미와 내용을 파악하고, 실천적 차원에서 현실에 구현된 평등의 실태를 파악하게 하는 터너의 평등 유형은 평등을 ‘본체론적 평등’, ‘기회의 평등’, ‘조건의 평등’, ‘결과의 평등’으로 나눈다. 이는 ‘이념’으로서의 평등 유형과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평등 유형으로 묶이는데, 본체론적 평등이 이념으로서의 평등에, 나머지는 수단으로서의 평등에 해당된다.
천부적 재능이나 성실성 같은 개인적 차이는 인정하되, 사회적 지위나 정치권력, 물질적 부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의 분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하려는 ‘기회의 평등’, 환경이나 조건 등을 특정 개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공평하고 동등하게 조성하려는 ‘조건의 평등’, 재화나 소득, 자산 등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분배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정당한 평등을 구현하려는 ‘결과의 평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인격체로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함을 이념적 지표로 내세우는 ‘본체론적 평등’. 이 네 가지 평등의 유형은 결국 정치ㆍ경제적 가치를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분배적 평등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평등의 이념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차별 없이 동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재화와 같은 주요한 사회적 가치들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지은이가 평등 구현을 위해 강조하는 것은 분배적 평등이다. 분배적 평등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 모든 인간을 목적적 존재로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은, 분배적 평등이야말로 평등의 이념이 실현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관건이라는 점을 말해준다는 것. 평등의 이념은 결국 경제적 부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들에 대한 분배의 평등이 제대로 이뤄질 때 현실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3. 평등을 둘러싼 논쟁 ―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흔히 자유냐 평등이냐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급기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간주되었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 안에서의 자유와 평등 가운데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 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분배적 평등은 근본적으로 상호 모순된다는 점을 내세워 양자 간의 양립 불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반면 분배적 평등 이념의 실현을 통해 부자만이 아닌 빈자들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시도하는 수정 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은 서로 보완적이며 조화로운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내세워, 양자의 양립 가능성을 강하게 밀어붙여 왔다. 자유만을 일방적으로 중시하는 체제 이념인 자유 지상주의 옹호자들과 평등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자유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체제 이념인 수정 자유주의 혹은 마르크스적 평등주의 주창자들은 평등의 이념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펼쳐왔다.
이는 복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진다. 복지 정책은 약자의 처우 개선인가 강자의 자유 훼손 방지인가. 복지 정책을 둘러싼 재분배적 자유주의, 즉 수정 자유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간의 논쟁은 사실상 자유와 평등 간 양립 불가능성 문제에 관한 이념 논쟁의 연장선에 있다. 복지 정책을 뒷받침할 재원을 얻기 위해서는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는데, 부유층은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논리를 펴면서 복지 정책의 실시를 반대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 논쟁을 사회적 약자의 처지 개선을 위해 사회 제도의 혁신적 재구성을 주장하는 철학적 공세와 그에 맞서 부자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 철학적 반격 간의 투쟁이라고 본다.
또한 그는 루소의 평등주의적 정치 철학과 마르크스의 평등주의적 사회 비판철학, 롤스의 정의의 철학을 개괄한 뒤, 평등이 홀대받는 시대에 새로운 평등의 철학을 제시한 드워킨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드워킨의 평등 철학은 모든 사회 체제가 이상적인 인간 사회를 구현함에 있어 평등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져 마땅한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여태껏 ‘모든 개인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어온 평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한 끝에 평등을 ‘모든 개인을 평등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으로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사회주의나 평등주의뿐 아니라 자유주의 체제에서도 왜 평등이 근본적 가치로서 수용되어야 하는가를 확실히 논증한다. 자유주의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경제적 평등’이라는 비자유주의적 가치를 자유주의 내로 끌어들여 ‘자원의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가치로 제시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상호 모순적 관계에 있다는 이전의 인식을 불식했다. 드워킨은 자유와 평등이 상호 의존적이며 제약적인 관계를 통해 내적으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양립 가능성을 그 어떤 철학보다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
4. 공정한 정의 사회로서의 평등 사회 ―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정의 사회란 수량이 제한되어 있는 재화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상태이다.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신체적 결함이 있는 구성원들을 위해서 제도적ㆍ정책적 장치를 마련해야 비로소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와 삶을 유지하는 정의 사회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정의란 ‘공정한 절차’를 의미한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평등한 자격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거쳐 도달한, 상호 이해와 합의에 의거해 특정 정책이나 제도 등을 수립하는 사회라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칭할 수 있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극심한 불평등 현실을 타개하여, 누구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면서 동등한 인격적 존엄체로 대우받으며 살아가게 해주는, 그처럼 자유롭고 공정한 이상적 정의 사회는 과연 어떤 형태의 사회인가?”
이는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평등 사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과 내용이 담겨야 하느냐는 질문과 같다. 지은이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캘리니코스를 불러온다. 캘리니코스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인본주의 정신과 인간 해방의 이념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어야만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그 어떤 시도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참된 의미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만큼 대안적 체제로서 완결적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현실 사회주의의 운영 실태를 보았을 때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적 체제 이념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가장 유효한 해법은 자본주의 체제를 평등주의에 의거해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특히 롤스나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입론에 대한 검토가, 자유 지상주의의 현실태로서의 신자유주의 논리의 무차별적 확산을 저지하고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개선하면서,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평등 사회를 현실화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아실현의 기회를 보장하는 평등 국가에 살면서 우리는 왜 심각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효율성과 생산성, 가시적 성과를 추어올리고, 무차별적 경쟁을 강제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ㆍ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의 스물여섯 번째 권《평등》은 이러한 비인간적 불평등의 현실을 고찰하고 평등의 철학과 더불어 평등을 향한 실천 방안을 모색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구성원을 부자와 빈자로 구분하고, 이 두 계층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지배/예속 관계로 설정된다. 즉,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결국 불평등의 문제는 자아를 비롯한 자유의 상실이라는 실존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 외에도 평등은 도덕적ㆍ인간학적ㆍ다문화주의적ㆍ실존 철학적 차원의 포괄적인 문제이다. 이처럼 불평등의 문제는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불거져 나와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내적으로 서로 중첩되고, 긴밀히 연계된다. 결국 불평등의 문제를 ‘왜’ 극복해야 하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이론적 차원과 실천적 차원이 결합된 ‘이론적 실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 책은 평등의 다양한 의미와 내용 중에서도 근대적 가치로서 재조명된 평등, 즉 ‘사회적 평등’의 개념이 지닌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의미를 고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즉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해명하고 그러한 사태를 뛰어넘어 현실 사회에서 실현해야 할 사회적 평등의 이념과 유형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에 따르면 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와 연관 지어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자본주의 체제야말로 한국 사회를 비롯해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여 영위하는 ‘주도적인’ 사회 체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여겨졌던 ‘자유’와 ‘평등’의 조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평등을 둘러싼 이론적ㆍ실천적 논쟁과, 평등의 철학을 소개한다. 루소의 정치 철학, 마르크스의 평등주의적 사회 비판 철학, 롤스의 정의의 철학을 소개하고, 특히 ‘평등’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의 철학을 주목한다.
사회가 변화하고 진화해감에 따라 자유롭고 공정한 정의 사회로서의 이상적 평등 사회의 조건 역시 그 외연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이 책은 진정한 평등 사회의 자격 조건을 정의내리며 거기에 비춰 평등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가 위치하고 있는 좌표를 그려본다. 이 모든 연구는 한국 사회를 비롯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빚어지는 비인간적 불평등의 실태를 비판적으로 고찰해봄으로써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해보려는 지은이의 사회철학적인 의도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무엇이 진정한 평등인가 ― 평등의 유형과 분배적 평등
사회 내 불평등은 인류가 사회를 형성한 이래 줄곧 존재해왔다. 불평등에 관한 논쟁은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는 ‘사회 내 불평등은 자연 발생적이며 불가피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아퀴나스로 대변되는 스콜라철학에서 기독교적 평등은 영혼의 세계에 한정된 것이며 육체가 속한 세속적 세계에서의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 혁명 이후에 등장한 자유주의 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평등과 존엄성의 관점에서 불평등을 새롭게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했다. 근대의 비판적 인식을 통해 평등은 곧 ‘사회적 평등’이요, 불평등은 곧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된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적이며 헌신적으로 이뤄진 실천적 투쟁의 산물이다. 우리에게는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로 심화된 불평등의 현실을 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인간 해방 사회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사회 변혁 운동과 실천적 투쟁으로 사회적 평등을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앞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평등인가?’
이 책은 평등의 다양한 의미를 일일이 추적하는 대신 평등 전문 연구자인 브라이언 터너의 평등 유형론에 따라 평등을 네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본다. 사회적 평등의 본질적 의미와 내용을 파악하고, 실천적 차원에서 현실에 구현된 평등의 실태를 파악하게 하는 터너의 평등 유형은 평등을 ‘본체론적 평등’, ‘기회의 평등’, ‘조건의 평등’, ‘결과의 평등’으로 나눈다. 이는 ‘이념’으로서의 평등 유형과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평등 유형으로 묶이는데, 본체론적 평등이 이념으로서의 평등에, 나머지는 수단으로서의 평등에 해당된다.
천부적 재능이나 성실성 같은 개인적 차이는 인정하되, 사회적 지위나 정치권력, 물질적 부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의 분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하려는 ‘기회의 평등’, 환경이나 조건 등을 특정 개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공평하고 동등하게 조성하려는 ‘조건의 평등’, 재화나 소득, 자산 등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분배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정당한 평등을 구현하려는 ‘결과의 평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인격체로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함을 이념적 지표로 내세우는 ‘본체론적 평등’. 이 네 가지 평등의 유형은 결국 정치ㆍ경제적 가치를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분배적 평등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평등의 이념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차별 없이 동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재화와 같은 주요한 사회적 가치들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지은이가 평등 구현을 위해 강조하는 것은 분배적 평등이다. 분배적 평등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 모든 인간을 목적적 존재로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은, 분배적 평등이야말로 평등의 이념이 실현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관건이라는 점을 말해준다는 것. 평등의 이념은 결국 경제적 부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들에 대한 분배의 평등이 제대로 이뤄질 때 현실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3. 평등을 둘러싼 논쟁 ―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흔히 자유냐 평등이냐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급기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간주되었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 안에서의 자유와 평등 가운데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 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분배적 평등은 근본적으로 상호 모순된다는 점을 내세워 양자 간의 양립 불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반면 분배적 평등 이념의 실현을 통해 부자만이 아닌 빈자들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시도하는 수정 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은 서로 보완적이며 조화로운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내세워, 양자의 양립 가능성을 강하게 밀어붙여 왔다. 자유만을 일방적으로 중시하는 체제 이념인 자유 지상주의 옹호자들과 평등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자유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체제 이념인 수정 자유주의 혹은 마르크스적 평등주의 주창자들은 평등의 이념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펼쳐왔다.
이는 복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진다. 복지 정책은 약자의 처우 개선인가 강자의 자유 훼손 방지인가. 복지 정책을 둘러싼 재분배적 자유주의, 즉 수정 자유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간의 논쟁은 사실상 자유와 평등 간 양립 불가능성 문제에 관한 이념 논쟁의 연장선에 있다. 복지 정책을 뒷받침할 재원을 얻기 위해서는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는데, 부유층은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논리를 펴면서 복지 정책의 실시를 반대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 논쟁을 사회적 약자의 처지 개선을 위해 사회 제도의 혁신적 재구성을 주장하는 철학적 공세와 그에 맞서 부자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 철학적 반격 간의 투쟁이라고 본다.
또한 그는 루소의 평등주의적 정치 철학과 마르크스의 평등주의적 사회 비판철학, 롤스의 정의의 철학을 개괄한 뒤, 평등이 홀대받는 시대에 새로운 평등의 철학을 제시한 드워킨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드워킨의 평등 철학은 모든 사회 체제가 이상적인 인간 사회를 구현함에 있어 평등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져 마땅한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여태껏 ‘모든 개인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어온 평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한 끝에 평등을 ‘모든 개인을 평등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으로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사회주의나 평등주의뿐 아니라 자유주의 체제에서도 왜 평등이 근본적 가치로서 수용되어야 하는가를 확실히 논증한다. 자유주의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경제적 평등’이라는 비자유주의적 가치를 자유주의 내로 끌어들여 ‘자원의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가치로 제시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상호 모순적 관계에 있다는 이전의 인식을 불식했다. 드워킨은 자유와 평등이 상호 의존적이며 제약적인 관계를 통해 내적으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양립 가능성을 그 어떤 철학보다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
4. 공정한 정의 사회로서의 평등 사회 ―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정의 사회란 수량이 제한되어 있는 재화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상태이다.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신체적 결함이 있는 구성원들을 위해서 제도적ㆍ정책적 장치를 마련해야 비로소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와 삶을 유지하는 정의 사회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정의란 ‘공정한 절차’를 의미한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평등한 자격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거쳐 도달한, 상호 이해와 합의에 의거해 특정 정책이나 제도 등을 수립하는 사회라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칭할 수 있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극심한 불평등 현실을 타개하여, 누구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면서 동등한 인격적 존엄체로 대우받으며 살아가게 해주는, 그처럼 자유롭고 공정한 이상적 정의 사회는 과연 어떤 형태의 사회인가?”
이는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평등 사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과 내용이 담겨야 하느냐는 질문과 같다. 지은이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캘리니코스를 불러온다. 캘리니코스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인본주의 정신과 인간 해방의 이념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어야만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그 어떤 시도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참된 의미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만큼 대안적 체제로서 완결적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현실 사회주의의 운영 실태를 보았을 때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적 체제 이념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가장 유효한 해법은 자본주의 체제를 평등주의에 의거해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특히 롤스나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입론에 대한 검토가, 자유 지상주의의 현실태로서의 신자유주의 논리의 무차별적 확산을 저지하고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개선하면서,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평등 사회를 현실화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왜 평등이 문제인가
1장 평등이란 무엇인가
1. 근대적 가치로서의 평등
2. 평등의 다양한 의미와 내용
3. 평등의 기본 유형
4. '이념'으로서의 평등 유형과 이념의 '구현 수단'으로서의 평등 유형
5. 분배적 평등으로서의 평등 유형
2장 평등을 둘러싼 이론적.실천적 논쟁
1. 이념 논쟁 - 자유와 평등은 양립 불가능한가
2. 복지 논쟁 - 약자의 처우 개선인가 강자의 자유 훼손 방지인가
3장 평등의 철학
1. 루소의 평등주의적 정치 철학
2. 마르크스의 평등주의적 사회 비판 철학
3. 롤스의 정의의 철학
4.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의 철학
4장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실과 이상적 정의 사회로서의 평등 사회
1.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실태
2. 한국 사회 불평등 실상 - 빈곤층 양산 및 사회 양극화 구조의 고착화
3. 불평등 현실에 관한 비판적 통찰과 대안 모색의 필요성
4.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 - 자유롭고 공정한 이상적 정의 사회로서의 평등 사회
나가는 말 - 진정한 평등 사회의 구현을 둘러싼 또 다른 문제들
개념의 연표 - 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