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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고립감과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재난 시대의 고전을 읽다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돌보던 고전학자가 길어낸
사회적 재난을 넘어설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전염병을 다룬 문학 장르에 대한 헌사이자,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슬픔의 노래면서 질병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기쁨의 노래다.”
- 《랜싯Lancet》(의학전문저널)
코로나19가 퍼져나간 지 어느새 수년이 지났다.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확진자는 발생하고, 코로나로 숨진 수많은 목숨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바이러스가 누그러졌다고 생각할 때 연이어 발생한 참사는 지금이 바로 ‘사회적 재난의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팬데믹, 전쟁, 홍수, 다중인파 안전사고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난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이유는, 이와 같은 재난의 예방과 대응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몫이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초,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위해 봉사에 나선 한 고전학자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자레츠키는 거대한 규모의 재난 때문에 감금되다시피 한 사람들의 고립감과 두려움을 실감했고, 사람들이 계속 목숨을 잃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꼈다. 정부 당국이 부주의할 때마다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저자는 《페스트》의 한 구절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건강, 진실성, 순수 같은 것은 인간이 의지를 갖고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16쪽)라고.
저자는 팬데믹이 안긴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재난의 시대에 쓰인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과 전쟁이 온 세상을 휩쓸던 시대에 태어났다. 재난 시대의 고전이 들려준 이야기는 한결같다. 재난은 인간에게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알려주며, 부조리 앞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주의력’이라고. 우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삶이 품은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재난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보다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다고. 우리가 나와 타인의 삶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재난이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뒤흔드는 지금 꼭 필요한 책이다.
1. 재난 앞에서 왜 고전을 읽는가
― 요양원 자원봉사를 하며 깨달은 고전의 힘
저자는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을 휩쓸기 시작한 2020년 초 텍사스주의 한 요양원에서 자원봉사에 나섰다. 식당이 폐쇄되면서 치매나 각종 질환으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요양원에 격리된 채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단호한 대처 덕분에 입소자들은 무사히 지낼 수 있었지만, 그해 10월 주지사가 가족의 요양원 방문을 허용하면서 각지의 요양원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자신이 직접 밥을 먹여주던 사람들까지 목숨을 잃자, 저자는 큰 충격과 자괴감에 빠졌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정부 당국의 부주의 속에서 목숨을 잃었던 상황을 지켜본 저자는 주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다. 어떻게 우리는 고립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보다 잘 살피고 돌볼 수 있을까.
며칠에서 몇 주로, 몇 주에서 몇 달로 늘어난 자원봉사 기간 동안 저자는 재난 시대의 고전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려 애썼다. 그는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사망자 통계와 TV 속에서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을 지켜보며, 거짓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투키디데스의 용기를 떠올렸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죽음만을 갈망하는 입소자를 마주하면서는 죽는 날까지 이성에 따랐을 때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자각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를 생각했다. 평범한 치매 환자라고 생각했던 한 노인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서는 “노년이 좀 더 부드럽게 대접받기를 바라며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고 리라를 벗 삼아 살게 해달라”(152~153쪽)는 몽테뉴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고전은 단순히 옛날에 쓰인 책이 아니라 저자 자신을 비롯해 고립된 이들 모두를 세심하게 살피는 길잡이가 되었다.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부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까지 다양한 시대의 고전 읽기를 통해, 거듭되는 사회적 재난에서 다시금 우리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을 길어낸다.
2.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재난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 투키디데스의 용기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
이 책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시작한다. 저자는 수많은 고전 중에서 왜 이 책을 먼저 이야기했을까.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운명을 바꾼 아테네 대역병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전역에 퍼진 역병은 기원전 430년 아테네를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기원전 426년까지 아테네는 수차례에 걸친 역병으로 전체 인구의 1/3인 약 10만 명이 죽었고, 그때까지 국가를 이끌었던 걸출한 지도자는 물론 중무장 보병과 같은 핵심 전력까지 잃었다. 아이러니는 전쟁을 대비해 주민을 도시에 모아놓은 바람에 전염병이 창궐하기 아주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재난의 대비가 또 다른 재난의 조건이 된 현실 앞에서 아테네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저항력을 떨어뜨려 질병의 손쉬운 먹잇감으로”(34쪽) 만드는 절망은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면서 “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이 만든 법”(36쪽)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이토록 가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했다는 점에서 투키디데스의 탁월함을 발견한다. 투키디데스는 철학자 니체에게서 “자신을 통제했기에 사물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44쪽)는 상찬을 받을 만큼 재난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재난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예언을 편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가차 없이 비판한 그의 용기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며 뻔뻔하게 말을 바꾸는 지금의 정치인들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재난은 시대를 넘어 반복된다.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제위에 오른 지 몇 년 되지 않아 안토니누스 역병이라는 대재난을 마주해야 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로마는 공동묘지에서 “다른 사람의 묫자리를 빼앗거나 가족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형편이 못 되는 빈민이 구걸하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83쪽). 역병 때문에 산업이 붕괴되면서 세수가 부족해지자 황제는 황실의 물건을 경매로 팔 정도로 내몰렸다. 적게는 150만 명부터 많게는 2,500만 명까지 죽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대역병 앞에서 황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을 위해 쓴 일기, 《명상록》을 통해 그의 생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재위 초에는 제국 한가운데를 휩쓴 역병 속에서, 말년에는 변경을 위협하는 이민족과의 전쟁 속에서 쓰인 《명상록》에는 오염으로부터 내면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 황제의 지혜가 담겨 있다. 《명상록》에서 역병과 전쟁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마음의 타락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오염으로 변질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역병”(101쪽)이라는 구절에서, 진짜 재난은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거짓된 인식에서 벗어나 충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재난에 대처하기는커녕 더 큰 재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3. 죽음이 도사리는 세계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 미셸 드 몽테뉴의 자기 탐구와 대니얼 디포의 현실 비판
비극의 무대는 16세기 프랑스와 17세기 영국으로 옮겨간다. 1585년 6월 프랑스의 보르도에 가래톳 페스트가 퍼졌다. 그해 말 도시의 절반에 해당하는 14,000~1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에게 《수상록(에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미셸 드 몽테뉴는 당시 보르도 시장이었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다음 시장에게 업무를 막 넘긴 참이었다. 역병이 도시를 휩쓸어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성과 재산을 버린 채 가족을 데리고 멀리 달아났다. 그렇지만 몽테뉴와 그의 가족은 가는 곳마다 잠재적 보균자 취급을 받았고 혹시나 자신들이 정말로 감염된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다. 힘겹게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6개월 후에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의 그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역병에서 도피한 이야기를 자신에 대한 탐구인 《수상록》에 남겼다.
몽테뉴가 자신을 탐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불확실한 현실 때문이다. 정신이 발을 굳건하게 디딜 발판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현상학적 혼란에 삼켜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 위에서 섬처럼 가만히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코르크처럼 휩쓸리는 처지에 놓인다”(132쪽). 사방이 죽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몽테뉴가 의지한 것은 글쓰기였다. 가래톳 페스트가 보르도를 휩쓸 때도 가혹한 종교 전쟁이 프랑스 전역을 광기로 물들일 때도 몽테뉴는 글을 쓰며 죽음을 숙고하고 삶을 존중하고자 했다. 그는 “오늘날의 병폐 중에서도 가장 야만스러운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경멸하는 일”(151쪽)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생애를 자연스럽게 잘 사는 법”(152쪽)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존재에 충실한 것이 고통에 함몰된 것보다 언제나 더 낫기 때문이다.
한편 1665년 런던 대역병과 1722년 마르세유 페스트는 파국을 반복하는 인간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페스트가 잠잠해진 연말까지 도시 인구 45만 명 중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런던 대역병은 영국 국민 모두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런데 1722년 마르세유에서 페스트가 퍼지고 영국에서 가혹한 새 방역법이 선포되는 와중에, 방역을 명분으로 무자비한 정책을 집행한 프랑스 정부의 행태는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 마르세유 인근의 툴롱에도 페스트가 퍼지자, 프랑스 정부는 군대로 도시를 포위했고 그곳에서 빠져나가려는 주민을 학살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대니얼 디포는 인명을 구하겠다는 정부가 정작 인명을 살상하는 부조리를 접하며 《전염병 연대기》를 썼다. 사망자 통계라는 숫자에 가려진,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디포는 H. F.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 삼아 페스트가 퍼진 런던 한복판을 배회한다. “평소 같으면 인산인해였을 거리에는 이제 적막이 가득했고,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179쪽)로 런던은 죽음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가산을 챙겨 간신히 전염병에서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빈민은 도시에 남아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디포를 분노케 한 것은 격리자들에 대한 정부의 가혹하고 무감한 통제였다. 시 당국이 ‘이상이 없는 자’와 ‘병자’를 구별하지 않았기에, 아직 확진되지 않은 사람까지 확진자와 같이 산다는 이유로 전염병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디포는 죽음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가족의 시신이 다른 이들의 시신에 섞여 구덩이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통곡하는 남자, 페스트에 걸린 가족을 있는 힘껏 부양하는 가장,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도 가짜 약을 파는 사기꾼들에, 역병이 물러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치를 누리는 위정자들까지, 역병은 인간의 따뜻함과 냉담함을 모두 드러냈다. 디포의 글은 타인의 삶에 무감한 방역 정책은 항상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4. 우리는 때가 되었을 때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 세계의 부조리와 알베르 카뮈의 사랑
우리는 의학이 전염병을 다루기에는 힘에 부쳤던 고대나 중세와 달리,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생물학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무감하게 만드는 사상 또한 전염병이라고 진단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파시즘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전염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군대가 적군을 잘 막아낼 것이라는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순식간에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는 우울과 절망이 가득했다. 세계 전체가 죽음의 도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카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투키디데스나 디포가 묘사했던 시대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세상은 이전의 재난 시대와 마찬가지로 부조리로 가득했던 것이다.
카뮈의 대표작인 《페스트》는 그가 살았던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무대로 전염병이 창궐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소설은 어느 날 수천 마리의 쥐가 이곳저곳에서 기어 나와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시민들은 그들보다 먼저 죽어간 쥐들처럼 목숨을 잃는다. 이에 의사 베르나르 리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자원보건대를 조직해 방역에 나선다. 이처럼 병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전염병의 창궐을 내심 기뻐하며 죽어가는 이들을 조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 저항자와 부역자는 무엇이 올바른지를 아는가 모르는가로 나뉜다. 소설의 주인공 리외는 “2+2가 정말로 4가 맞는지 아닌지 아는 것”(229쪽)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객관적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이 뒤따라오기”(229쪽) 때문이다. 페스트는 결국 물러가지만, 주인공은 전염병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고 비극도 반복될 것임을 예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페스트와 삶의 대결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앎과 기억”(247쪽)뿐이지만, 때가 되었을 때 바르게 행동할 줄 아는 윤리를 되새기는 한 우리는 다시금 재난에서 일어설 것임을 배울 수 있다.
저자는 책을 마치기에 앞서 인간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재난으로 밀어넣는 소설 한 편을 더 소개한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1826년에 쓴 《최후의 인간》이다. 셸리는 가족과 친구 들을 모두 잃고 우울감과 절망감 속에서 쓴 이 책을 통해 전염병으로 인류가 소멸한 2092년의 미래를 묘사했다. 재난 앞에서 이성은 정념의 노예가 되고,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은 제 한 몸 살겠다고 도망치다 결국 목숨을 잃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잃은 주인공이 폐허를 방황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설의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은 재난 앞에 선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저자는 카뮈의 미완성 유고인 《최초의 인간》에서 카뮈를 침묵 속에서 지켜보는 어머니의 사랑을 읽어낸다. 우리는 이토록 황폐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가지만 사랑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는 왕이지만 사랑이 우리를 부조리에서 구한다”고(265쪽). 사랑은 타인에 대한 깊은 주의력의 다른 이름이며, 사랑을 할 수 있는 한 ‘최후의 인간’인 우리는 ‘최초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재난이 반복되는 지금 이 순간 더없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재난 시대의 고전을 읽다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돌보던 고전학자가 길어낸
사회적 재난을 넘어설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전염병을 다룬 문학 장르에 대한 헌사이자,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슬픔의 노래면서 질병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기쁨의 노래다.”
- 《랜싯Lancet》(의학전문저널)
코로나19가 퍼져나간 지 어느새 수년이 지났다.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확진자는 발생하고, 코로나로 숨진 수많은 목숨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바이러스가 누그러졌다고 생각할 때 연이어 발생한 참사는 지금이 바로 ‘사회적 재난의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팬데믹, 전쟁, 홍수, 다중인파 안전사고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난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이유는, 이와 같은 재난의 예방과 대응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몫이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초,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위해 봉사에 나선 한 고전학자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자레츠키는 거대한 규모의 재난 때문에 감금되다시피 한 사람들의 고립감과 두려움을 실감했고, 사람들이 계속 목숨을 잃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꼈다. 정부 당국이 부주의할 때마다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저자는 《페스트》의 한 구절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건강, 진실성, 순수 같은 것은 인간이 의지를 갖고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16쪽)라고.
저자는 팬데믹이 안긴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재난의 시대에 쓰인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과 전쟁이 온 세상을 휩쓸던 시대에 태어났다. 재난 시대의 고전이 들려준 이야기는 한결같다. 재난은 인간에게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알려주며, 부조리 앞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주의력’이라고. 우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삶이 품은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재난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보다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다고. 우리가 나와 타인의 삶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재난이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뒤흔드는 지금 꼭 필요한 책이다.
1. 재난 앞에서 왜 고전을 읽는가
― 요양원 자원봉사를 하며 깨달은 고전의 힘
저자는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을 휩쓸기 시작한 2020년 초 텍사스주의 한 요양원에서 자원봉사에 나섰다. 식당이 폐쇄되면서 치매나 각종 질환으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요양원에 격리된 채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단호한 대처 덕분에 입소자들은 무사히 지낼 수 있었지만, 그해 10월 주지사가 가족의 요양원 방문을 허용하면서 각지의 요양원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자신이 직접 밥을 먹여주던 사람들까지 목숨을 잃자, 저자는 큰 충격과 자괴감에 빠졌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정부 당국의 부주의 속에서 목숨을 잃었던 상황을 지켜본 저자는 주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다. 어떻게 우리는 고립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보다 잘 살피고 돌볼 수 있을까.
며칠에서 몇 주로, 몇 주에서 몇 달로 늘어난 자원봉사 기간 동안 저자는 재난 시대의 고전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려 애썼다. 그는 요양원에 고립된 이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사망자 통계와 TV 속에서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을 지켜보며, 거짓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투키디데스의 용기를 떠올렸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죽음만을 갈망하는 입소자를 마주하면서는 죽는 날까지 이성에 따랐을 때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자각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를 생각했다. 평범한 치매 환자라고 생각했던 한 노인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서는 “노년이 좀 더 부드럽게 대접받기를 바라며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고 리라를 벗 삼아 살게 해달라”(152~153쪽)는 몽테뉴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고전은 단순히 옛날에 쓰인 책이 아니라 저자 자신을 비롯해 고립된 이들 모두를 세심하게 살피는 길잡이가 되었다.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부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까지 다양한 시대의 고전 읽기를 통해, 거듭되는 사회적 재난에서 다시금 우리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을 길어낸다.
2.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재난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 투키디데스의 용기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
이 책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시작한다. 저자는 수많은 고전 중에서 왜 이 책을 먼저 이야기했을까.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운명을 바꾼 아테네 대역병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전역에 퍼진 역병은 기원전 430년 아테네를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기원전 426년까지 아테네는 수차례에 걸친 역병으로 전체 인구의 1/3인 약 10만 명이 죽었고, 그때까지 국가를 이끌었던 걸출한 지도자는 물론 중무장 보병과 같은 핵심 전력까지 잃었다. 아이러니는 전쟁을 대비해 주민을 도시에 모아놓은 바람에 전염병이 창궐하기 아주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재난의 대비가 또 다른 재난의 조건이 된 현실 앞에서 아테네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저항력을 떨어뜨려 질병의 손쉬운 먹잇감으로”(34쪽) 만드는 절망은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면서 “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이 만든 법”(36쪽)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이토록 가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했다는 점에서 투키디데스의 탁월함을 발견한다. 투키디데스는 철학자 니체에게서 “자신을 통제했기에 사물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44쪽)는 상찬을 받을 만큼 재난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재난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예언을 편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가차 없이 비판한 그의 용기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며 뻔뻔하게 말을 바꾸는 지금의 정치인들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재난은 시대를 넘어 반복된다.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제위에 오른 지 몇 년 되지 않아 안토니누스 역병이라는 대재난을 마주해야 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로마는 공동묘지에서 “다른 사람의 묫자리를 빼앗거나 가족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형편이 못 되는 빈민이 구걸하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83쪽). 역병 때문에 산업이 붕괴되면서 세수가 부족해지자 황제는 황실의 물건을 경매로 팔 정도로 내몰렸다. 적게는 150만 명부터 많게는 2,500만 명까지 죽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대역병 앞에서 황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을 위해 쓴 일기, 《명상록》을 통해 그의 생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재위 초에는 제국 한가운데를 휩쓴 역병 속에서, 말년에는 변경을 위협하는 이민족과의 전쟁 속에서 쓰인 《명상록》에는 오염으로부터 내면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 황제의 지혜가 담겨 있다. 《명상록》에서 역병과 전쟁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마음의 타락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오염으로 변질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역병”(101쪽)이라는 구절에서, 진짜 재난은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거짓된 인식에서 벗어나 충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재난에 대처하기는커녕 더 큰 재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3. 죽음이 도사리는 세계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 미셸 드 몽테뉴의 자기 탐구와 대니얼 디포의 현실 비판
비극의 무대는 16세기 프랑스와 17세기 영국으로 옮겨간다. 1585년 6월 프랑스의 보르도에 가래톳 페스트가 퍼졌다. 그해 말 도시의 절반에 해당하는 14,000~1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에게 《수상록(에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미셸 드 몽테뉴는 당시 보르도 시장이었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다음 시장에게 업무를 막 넘긴 참이었다. 역병이 도시를 휩쓸어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성과 재산을 버린 채 가족을 데리고 멀리 달아났다. 그렇지만 몽테뉴와 그의 가족은 가는 곳마다 잠재적 보균자 취급을 받았고 혹시나 자신들이 정말로 감염된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다. 힘겹게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6개월 후에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의 그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역병에서 도피한 이야기를 자신에 대한 탐구인 《수상록》에 남겼다.
몽테뉴가 자신을 탐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불확실한 현실 때문이다. 정신이 발을 굳건하게 디딜 발판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현상학적 혼란에 삼켜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 위에서 섬처럼 가만히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코르크처럼 휩쓸리는 처지에 놓인다”(132쪽). 사방이 죽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몽테뉴가 의지한 것은 글쓰기였다. 가래톳 페스트가 보르도를 휩쓸 때도 가혹한 종교 전쟁이 프랑스 전역을 광기로 물들일 때도 몽테뉴는 글을 쓰며 죽음을 숙고하고 삶을 존중하고자 했다. 그는 “오늘날의 병폐 중에서도 가장 야만스러운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경멸하는 일”(151쪽)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생애를 자연스럽게 잘 사는 법”(152쪽)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존재에 충실한 것이 고통에 함몰된 것보다 언제나 더 낫기 때문이다.
한편 1665년 런던 대역병과 1722년 마르세유 페스트는 파국을 반복하는 인간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페스트가 잠잠해진 연말까지 도시 인구 45만 명 중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런던 대역병은 영국 국민 모두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런데 1722년 마르세유에서 페스트가 퍼지고 영국에서 가혹한 새 방역법이 선포되는 와중에, 방역을 명분으로 무자비한 정책을 집행한 프랑스 정부의 행태는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 마르세유 인근의 툴롱에도 페스트가 퍼지자, 프랑스 정부는 군대로 도시를 포위했고 그곳에서 빠져나가려는 주민을 학살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대니얼 디포는 인명을 구하겠다는 정부가 정작 인명을 살상하는 부조리를 접하며 《전염병 연대기》를 썼다. 사망자 통계라는 숫자에 가려진,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디포는 H. F.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 삼아 페스트가 퍼진 런던 한복판을 배회한다. “평소 같으면 인산인해였을 거리에는 이제 적막이 가득했고,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179쪽)로 런던은 죽음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가산을 챙겨 간신히 전염병에서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빈민은 도시에 남아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디포를 분노케 한 것은 격리자들에 대한 정부의 가혹하고 무감한 통제였다. 시 당국이 ‘이상이 없는 자’와 ‘병자’를 구별하지 않았기에, 아직 확진되지 않은 사람까지 확진자와 같이 산다는 이유로 전염병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디포는 죽음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가족의 시신이 다른 이들의 시신에 섞여 구덩이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통곡하는 남자, 페스트에 걸린 가족을 있는 힘껏 부양하는 가장,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도 가짜 약을 파는 사기꾼들에, 역병이 물러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치를 누리는 위정자들까지, 역병은 인간의 따뜻함과 냉담함을 모두 드러냈다. 디포의 글은 타인의 삶에 무감한 방역 정책은 항상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4. 우리는 때가 되었을 때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 세계의 부조리와 알베르 카뮈의 사랑
우리는 의학이 전염병을 다루기에는 힘에 부쳤던 고대나 중세와 달리,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생물학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무감하게 만드는 사상 또한 전염병이라고 진단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파시즘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전염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군대가 적군을 잘 막아낼 것이라는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순식간에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는 우울과 절망이 가득했다. 세계 전체가 죽음의 도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카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투키디데스나 디포가 묘사했던 시대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세상은 이전의 재난 시대와 마찬가지로 부조리로 가득했던 것이다.
카뮈의 대표작인 《페스트》는 그가 살았던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무대로 전염병이 창궐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소설은 어느 날 수천 마리의 쥐가 이곳저곳에서 기어 나와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시민들은 그들보다 먼저 죽어간 쥐들처럼 목숨을 잃는다. 이에 의사 베르나르 리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자원보건대를 조직해 방역에 나선다. 이처럼 병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전염병의 창궐을 내심 기뻐하며 죽어가는 이들을 조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 저항자와 부역자는 무엇이 올바른지를 아는가 모르는가로 나뉜다. 소설의 주인공 리외는 “2+2가 정말로 4가 맞는지 아닌지 아는 것”(229쪽)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객관적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이 뒤따라오기”(229쪽) 때문이다. 페스트는 결국 물러가지만, 주인공은 전염병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고 비극도 반복될 것임을 예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페스트와 삶의 대결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앎과 기억”(247쪽)뿐이지만, 때가 되었을 때 바르게 행동할 줄 아는 윤리를 되새기는 한 우리는 다시금 재난에서 일어설 것임을 배울 수 있다.
저자는 책을 마치기에 앞서 인간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재난으로 밀어넣는 소설 한 편을 더 소개한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1826년에 쓴 《최후의 인간》이다. 셸리는 가족과 친구 들을 모두 잃고 우울감과 절망감 속에서 쓴 이 책을 통해 전염병으로 인류가 소멸한 2092년의 미래를 묘사했다. 재난 앞에서 이성은 정념의 노예가 되고,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은 제 한 몸 살겠다고 도망치다 결국 목숨을 잃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잃은 주인공이 폐허를 방황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설의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은 재난 앞에 선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저자는 카뮈의 미완성 유고인 《최초의 인간》에서 카뮈를 침묵 속에서 지켜보는 어머니의 사랑을 읽어낸다. 우리는 이토록 황폐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가지만 사랑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는 왕이지만 사랑이 우리를 부조리에서 구한다”고(265쪽). 사랑은 타인에 대한 깊은 주의력의 다른 이름이며, 사랑을 할 수 있는 한 ‘최후의 인간’인 우리는 ‘최초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재난이 반복되는 지금 이 순간 더없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목차
들어가며
1장. 투키디데스와 아테네 대역병
-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질병 앞에 두려움 없이 서는 용기
2장.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안토니누스 역병
- 오염에 맞서 내면의 왕국을 다스리는 지혜
3장. 미셸 드 몽테뉴와 가래톳 페스트
- 죽음이 도사리는 세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글쓰기
4장. 대니얼 디포와 런던 대역병
- 통계의 빈틈에 놓인 인간을 세심하게 포착하는 이야기
5장. 알베르 카뮈와 갈색 페스트
- 때가 되었을 때 바르게 행동할 줄 아는 윤리
후기 《최후의 인간》부터 《최초의 인간》까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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