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 대등서명
- What world is this?
- 발행사항
- 파주 :,창비,,2023
- 형태사항
- 218 p. ; 21 cm
- ISBN
- 9788936479374
- 청구기호
- 132.4 주229ㅈ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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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9799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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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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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세계를 경제우선주의로부터 되찾아와야 한다”
팬데믹 이후 상호의존성의 세계를 위한 주디스 버틀러의 제언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불리는 주디스 버틀러의 신간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가 출간되었다. 젠더 및 퀴어 이론가로 이름을 알린 후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넘나들며 소수자 차별과 폭력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버틀러가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로 혼란에 빠진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현상학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이 책에서 버틀러는 상호의존성과 관계성 등 그간 강조해온 윤리학적 주제를 이어가는 가운데 현상학의 개념을 도입하여 팬데믹의 비극을 진단하고 앞으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세계상을 모색한다.
버틀러는 이 책을 시작하며 먼저 막스 셸러를 인용하여 짧고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란, 대체 어떤 세계란 말인가? 코로나는 개발도상국, 유색인종, 저소득층 등 취약 집단을 가장 먼저 공격하며 자본과 권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버틀러는 이처럼 세계의 불공정성과 정치권력의 폭력성이 팬데믹을 통해 가시화되었음을 꼬집는 한편, 국경과 면역체계를 넘나들며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역설적으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포착한다. 이를 단서로 버틀러는 팬데믹의 비극을 ‘살 만한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계기로 전환한다. 버틀러 담론의 총동원이라고 할 만한 이번 논의는 차별과 혐오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 사회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적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대체 어떤 세계에서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가
바이러스가 드러낸 취약성과 불평등성
이 책에 담긴 버틀러의 사유는 코로나 창궐의 충격이 생생하던 2020년에 시작되었다. 팬데믹의 충격은 양가적인 면모를 가지는데, 한편으로는 세계의 불공정성을 드러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호 연결과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의한 피해는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할 여력이 있는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 특히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특히 극심했다. 미국에서는 백인 대비 유색인종의 감염 확률이 세배, 사망 확률은 두배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집계되었다. 바이러스 탓에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는 말이 현실화된 듯하지만, 버틀러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같은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는 한 완전히 경계지어진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버틀러는 자신의 ‘상호의존성’ 개념과 메를로퐁티의 ‘상호 엮임’ 개념을 연결짓는다. 이 행성에 함께 사는 유기체로서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관계적이고 상호적인 존재”(69면)가 되었으며 서로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설파하며 팬데믹 문제의 윤리성을 도출한다.
팬데믹 시대의 정치에 윤리를 묻는다
왜 권력은 사람보다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가
버틀러는 “그냥 바이러스가 빨리 돌게 하라!”(Let [the virus] rip!)고 외쳤던 미국 트럼프 정권의 구호를 언급하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노인·장애인·면역저하자·빈곤층 등 취약계층을 희생하겠다는 권력의 뻔뻔한 결정에 신랄한 비판을 펼친다. 완전한 면역은 불가능함이 명백함에도 정부는 방역조치를 완화하여 시장경제를 섣부르게 ‘재개’했다. 버틀러는 이것이 어느 정도의 인구는 희생 가능하고,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발상에서 나온 폭력적인 조치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생명과 경제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을 음벰베의 개념을 빌려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로 표현하고, “의기양양한 공리주의”(148면)라고 문제시한다. 버틀러가 전작에서 이야기해온 ‘애도 가능성’의 문제도 다시금 제기된다. 미국 시민이고, 백인이고, 재산이 있고, 기혼인 이들의 죽음은 미등록 이주자이고, 유색인종이고, 가난하고, 퀴어인 이들의 죽음보다 더 슬프게 애도된다는 것이다(156면). 전자의 죽음은 신문의 부고란에 올라오고, 후자의 죽음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소간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비극 속에서 버틀러는 “세계를 경제로부터 되찾아오는 것이 가능할까”(95면)를 묻는다.
철학적 질문은 위기상황 앞에서 생겨난다
위기이자 선물, 슬픔이자 사랑이 된 팬데믹
코로나 시대 사회의 한편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배달노동자와 경제 사정이나 건강상 이유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현실을 외면하며 백신을 거부하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철폐를 외치는 이들도 존재했다. 미국의 정치권과 미디어는 코로나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며 혐오를 표출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논리를 여과 없이 퍼뜨렸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버틀러는 이러한 불평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Ni Una Menos!) 등 도덕적이고 비폭력적인 저항 역시 희망의 씨앗이다. 연대의 네트워크는 결코 한번에 이루어질 수 없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만 하기에 모두의 생명이 평등하게 애도 가능하며, 모든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옮긴이 김응산의 말처럼 버틀러의 이러한 논의는 현실에 대한 단순한 분석이나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이익과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 상호의존성의 윤리를 실천하자는 감동적인 제안”(205~206면)이다.
이 책을 통해 버틀러는 전세계를 향해서 팬데믹을 성찰과 전환의 계기로 삼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버틀러의 사유가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팬데믹 이후 상호의존성의 세계를 위한 주디스 버틀러의 제언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불리는 주디스 버틀러의 신간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가 출간되었다. 젠더 및 퀴어 이론가로 이름을 알린 후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넘나들며 소수자 차별과 폭력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버틀러가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로 혼란에 빠진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현상학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이 책에서 버틀러는 상호의존성과 관계성 등 그간 강조해온 윤리학적 주제를 이어가는 가운데 현상학의 개념을 도입하여 팬데믹의 비극을 진단하고 앞으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세계상을 모색한다.
버틀러는 이 책을 시작하며 먼저 막스 셸러를 인용하여 짧고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란, 대체 어떤 세계란 말인가? 코로나는 개발도상국, 유색인종, 저소득층 등 취약 집단을 가장 먼저 공격하며 자본과 권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버틀러는 이처럼 세계의 불공정성과 정치권력의 폭력성이 팬데믹을 통해 가시화되었음을 꼬집는 한편, 국경과 면역체계를 넘나들며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역설적으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포착한다. 이를 단서로 버틀러는 팬데믹의 비극을 ‘살 만한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계기로 전환한다. 버틀러 담론의 총동원이라고 할 만한 이번 논의는 차별과 혐오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 사회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적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대체 어떤 세계에서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가
바이러스가 드러낸 취약성과 불평등성
이 책에 담긴 버틀러의 사유는 코로나 창궐의 충격이 생생하던 2020년에 시작되었다. 팬데믹의 충격은 양가적인 면모를 가지는데, 한편으로는 세계의 불공정성을 드러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호 연결과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의한 피해는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할 여력이 있는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 특히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특히 극심했다. 미국에서는 백인 대비 유색인종의 감염 확률이 세배, 사망 확률은 두배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집계되었다. 바이러스 탓에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는 말이 현실화된 듯하지만, 버틀러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같은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는 한 완전히 경계지어진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버틀러는 자신의 ‘상호의존성’ 개념과 메를로퐁티의 ‘상호 엮임’ 개념을 연결짓는다. 이 행성에 함께 사는 유기체로서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관계적이고 상호적인 존재”(69면)가 되었으며 서로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설파하며 팬데믹 문제의 윤리성을 도출한다.
팬데믹 시대의 정치에 윤리를 묻는다
왜 권력은 사람보다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가
버틀러는 “그냥 바이러스가 빨리 돌게 하라!”(Let [the virus] rip!)고 외쳤던 미국 트럼프 정권의 구호를 언급하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노인·장애인·면역저하자·빈곤층 등 취약계층을 희생하겠다는 권력의 뻔뻔한 결정에 신랄한 비판을 펼친다. 완전한 면역은 불가능함이 명백함에도 정부는 방역조치를 완화하여 시장경제를 섣부르게 ‘재개’했다. 버틀러는 이것이 어느 정도의 인구는 희생 가능하고,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발상에서 나온 폭력적인 조치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생명과 경제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을 음벰베의 개념을 빌려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로 표현하고, “의기양양한 공리주의”(148면)라고 문제시한다. 버틀러가 전작에서 이야기해온 ‘애도 가능성’의 문제도 다시금 제기된다. 미국 시민이고, 백인이고, 재산이 있고, 기혼인 이들의 죽음은 미등록 이주자이고, 유색인종이고, 가난하고, 퀴어인 이들의 죽음보다 더 슬프게 애도된다는 것이다(156면). 전자의 죽음은 신문의 부고란에 올라오고, 후자의 죽음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소간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비극 속에서 버틀러는 “세계를 경제로부터 되찾아오는 것이 가능할까”(95면)를 묻는다.
철학적 질문은 위기상황 앞에서 생겨난다
위기이자 선물, 슬픔이자 사랑이 된 팬데믹
코로나 시대 사회의 한편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배달노동자와 경제 사정이나 건강상 이유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현실을 외면하며 백신을 거부하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철폐를 외치는 이들도 존재했다. 미국의 정치권과 미디어는 코로나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며 혐오를 표출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논리를 여과 없이 퍼뜨렸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버틀러는 이러한 불평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Ni Una Menos!) 등 도덕적이고 비폭력적인 저항 역시 희망의 씨앗이다. 연대의 네트워크는 결코 한번에 이루어질 수 없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만 하기에 모두의 생명이 평등하게 애도 가능하며, 모든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옮긴이 김응산의 말처럼 버틀러의 이러한 논의는 현실에 대한 단순한 분석이나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이익과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 상호의존성의 윤리를 실천하자는 감동적인 제안”(205~206면)이다.
이 책을 통해 버틀러는 전세계를 향해서 팬데믹을 성찰과 전환의 계기로 삼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버틀러의 사유가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감사의 말
서문
1. 세계에 대한 감각: 셸러와 메를로퐁티
2. 팬데믹 시대의 권력들: 생활의 제약에 대한 단상
3. 윤리와 정치로서의 상호 엮임
4. 살아 있는 이들에 대한 애도 가능성
후기: 변혁
주
옮긴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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