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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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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개인저자
김사과 지음
발행사항
서울: 작가정신, 2019
형태사항
223 p. ; 20 cm
ISBN
9791160261530
청구기호
813.7 김51ㅇ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7847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7847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작품은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이다.
전위적인 서사, 파격적인 형식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낯설게 인지하게끔 만드는 작가 김사과. 폭력과 범죄, 자본과 권력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양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거칠 것 없이 파멸까지 나아가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김사과 월드’는 이제 이 세계의 균열과 모순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더욱 확장된 시야로 비추며, 새로운 환상이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바 있다. 이번 『0 영 ZERO 零』에서 김사과가 선보이는 것은 더욱 사소하고, 더더욱 은밀해서 명확히 짚어내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이, 특수한 악惡함이 평범성으로 전환되는 도시의 익명성에 숨어 소리 없이 이 한 사람의 생 전체를 휘감고 무너뜨리는 방식에 대해서다.
『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먹잇감이 되어 망가지기 전에 먼저 타인을 내외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포식자가 됨에 따라 다른 한쪽이 피식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에서 ‘나’는 사소하고도 은밀한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림에 따라 살아남고자 한다. 마치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로 이 세계의 부질없음과, 그러므로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이번 김사과의 『0 영 ZERO 零』에는 김사과와 황예인 평론가의 대담이 수록되었다.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문제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일상사에 대하여 보다 열린 지평에서 논의하는 기회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해석보다는 ‘나’의 세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식인하는 세계관 내에서 악이 곧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사유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한낮 도심의 한가한 스타벅스에서 주인공인 ‘나’는 남자친구인 성연우와 이별 중이다. 성연우는 ‘나’가 “오만하며 고압적이기 짝이 없는 세상을 향한 시선,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무례를 포함한 온갖 무례, 더럽고 무가치한 협잡,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펼치는지 모르겠는 역겨운 장난질들”을 일삼는다며 비난을 성급하게 늘어놓지만, 정작 그 앞에서 ‘나’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가 말하는 비난의 내용이 아닌 자신과 성연우의 모양새가 외부의 시선에 비치는 방식이다. 마음속으로는 성연우를 조롱하면서도 마치 연극 속의 주인공이 대사를 읊듯 순진하고 무결한 인물을 연기하는 ‘나’는 현재의 모든 상황을 자기의 주도권하에 주조해간다고 생각하며 완벽하게 스스로를 치장한다.

나는 스스로도 믿기지도 않을 정도로 맑고 또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고, 아마도 연애라는 관계에 대해서 내가 많이 서툴렀던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본심만은 아니었다고, 오빠를 향한 내 마음은 진심, 그것만은, 꼭 믿어달라고…… (18p)

『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이 세계란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다. 그렇기에 ‘나’는 도시에서 “가장 쉽고 싸고 안전한” 데다 감정까지 지닌 재화인 인간을 적절히 이용하여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의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독립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라는 타이틀, 그 타이틀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얻는 맹목적인 신뢰, 이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듯한 견자見者적인 태도,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나’는 “개화, 문명화된 도시의 식인종”으로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은밀하고도 사소한 방법을 통해 타인의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46p)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나’의 사냥 행위, 즉 먹잇감을 찾아 헤매고 덫을 놓으며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전반의 과정이 아주 사소하고도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인에게 ‘나’는 쉽사리 간파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나’가 자처하는 것은 바로 구원자이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 ‘김명훈’을 만나는데, 99퍼센트 백인으로 채워진 학급에서 명훈은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완벽한 바닥의 시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명훈에게, ‘나’가 다가선다.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하고 자신만의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나’의 모습은 일면 명훈을 돕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행위는 타인의 더 완벽한 추락을 위한 하나의 실험과 다름없다. 명훈의 자살, 즉 명훈의 ‘피식’을 통해 연쇄먹이사슬을 연상하듯 주변 사람들의 포식 단계를 짚어가며 ‘나’가 하는 생각은 “하나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이다.

명훈이 아버지와 명훈이는 산 채로 먹혔다. 독일이라는 음침한 나라가 꿀걱 삼켜버렸다. 아니면, 마리아 슐츠 씨가 잡아먹은 건가? 그리고 마리아 슐츠 씨는 토마스 슐츠 씨한테 잡아먹혔다. (...)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즉,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46-47p)

‘나’의 교양 강의 수업을 듣는 학생 ‘박세영’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명훈 이후 세영에게 다시 한번 구원자의 역할을 맡기로 하지만 ‘나’의 구원적 행위란 “자신에게 미래가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인 세영에게 재능이 빛을 발할 수 없는 길을 안내함으로써 길을 잃게 하는 것이다. ‘나’는 친밀한 친구로, 좋은 선배이자 선생으로, 그리고 유순함을 지닌 여자친구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학살을 이어가며 사냥감들에게 은밀하게 속삭인다. 당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내 탓이 전―혀 아니”라고.

진실된 자기 고백, 혹은 거짓 농락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인물


『0 영 ZERO 零』는 시종일관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자기고백적 서사로 이루어진 일인칭소설이다. ‘나’는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듯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잡아먹어야 한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타인을 이용해 평범하고 소박한 수준에서 행복을 바라는 건 상식적인 수준의 요구다.’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남자친구, 동료, 제자,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을 향한 악마적인 ‘나’의 시선을 따라 우리의 시선도 함께 이동하다가, ‘나’의 내밀한 고백에 경악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타당성과 합리성을 찾고자 하며, 이윽고는 직접적으로 사냥감이 되기 전에 먼저 사냥꾼이 될 것을 제안하는 ‘나’와 우리의 거리는 이미 좁혀져 있다. “김사과 소설을 읽을 때의 가장 큰 쾌감은 이상한 인물을 생상하게 체험하는 데서 온다”는 황예인 평론가의 말처럼 우리는 ‘나’와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순식간에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동하며 소설 속에서 헤매고, 또 헤매게 된다. 너도 사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느냐고, 나도 너랑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나’의 속삭임을 듣는 채로.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김지영 선배는 미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_123p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선善도 악惡도 교훈도 없는 세계, 이 세계는 텅 빈 ‘제로’다


‘나’는 모든 것이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사냥’, 그리고 ‘피가 없는 전쟁’을 계속해나가며 이 세계의 공허함을 폭로한다.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포식과 피식의 과정일 뿐이며,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선언하는 ‘나’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맹독성의 구원자’이다. 김사과 소설의 특성이 독자들을 작품 속 세계에 깊숙이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작품 내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인 만큼 우리는 김사과의 이번 소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온한 세계를, 다시금 낯설게 인지하게 될 것이다.
목차

1부 09
2부 97
텅 빈 세계, 맹독성의 구원자 ― 김사과 × 황예인 대화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