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 개인저자
- 임경석 지음
- 발행사항
- 서울 :,역사비평사,,2008
- 형태사항
- 300 p. : 삽화, 지도, 초상 ; 23 cm
- ISBN
- 9788976965295
- 청구기호
- 911.06 임14ㅇ
- 일반주기
-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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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1572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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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11572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인간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 인간의 기억에 관한 기록”
역사학자 임경석이 들려주는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잊힌 사람들이다.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적대시했던 터라 그들의 존재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방 후에도 그랬다. 냉전과 분단체제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들의 행위와 사유의 궤적을 진실되게 형상화하는 일은 공적인 논의의 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주화가 진전된 뒤에는 금제의 벽이 얇아진 듯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걷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무서운 것은 세월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인지라 자료는 인멸되었고, 기억은 점차 색이 바라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망각 속의 존재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후, 반공이데올로기에 휘둘려 우리 현대사에서 은폐되고 왜곡된 사회주의운동사를 복원해내는 데 전력하고 있는 역사학자 임경석이 여덟 편의 글을 통해, 혁명가들의 초상을 그려냈다.
일제하 조선노동당을 주축으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윤자영(1장),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2장), 강달영(3장), 김철수(4, 5장), 고광수(6장)와 해방 후 6ㆍ25전쟁기 빨치산부대를 이끌었던 남도부(7장), 안병렬(8장) 등. 그들은 한평생 이상세계의 실현에 목표를 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의지로 조국 독립과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려고 투쟁했으나 반대파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사회주의의 기치 아래 싸웠다는 이유로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사회주의운동사는 냉전시대에는 잊을 것을 강요당했고, 사회주의혁명의 역사가 무모한 실험으로 치부되는 요즘에는 더욱 쉽게 잊어지고 있다. 사회주의운동이 한국 민족해방운동에서 가장 큰 갈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인정받기도 전에 이미 잊어진 초라한 역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남들이 팽개친 분야를 고집스레 부여잡고, 역사 연구와 서술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저자 임경석은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역사 서술이 무미건조하거나 지나친 이념적 편향으로 대중과의 폭넓은 소통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사회주의운동 전선에 섰던 이들의 신념과 사상에 대해 왈가왈부 시비를 가리거나 그들의 노선과 정책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다.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의 거대한 권력과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들의 용기와 심리상태를 형상화하는 것, 그것을 이 글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들은 딱딱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쉽게 읽힌다. 특히 역사 연구와 서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활발한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역사 서술을 꿈꾸며, 강제로 또 너무 허무하게 잊혔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들과 그 주변을 마치 옆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처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결코 픽션은 아니다. 역사가로서 필자의 새로운 글쓰기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광범하고 치밀한 사료 읽기가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러시아 구 코민테른 문서군에 소장된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한편,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던 사법당국과 고등경찰이 남긴 사법기록과 스파이가 작성한 정보문서들은 물론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남긴 편지와 학습노트 등 사적인 기록들까지 꼼꼼하게 검토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 행위에 내재하는 인간의 의도와 욕구, 논리와 심리를 독해해내고자 하였다.
혁명을 선택했던 사람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생전에 부귀공명과는 거의 무관했던 사람들이다. 권력도, 돈도, 명성도 이 사람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에게 직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몇몇은 학생이거나 교수였다. 몇몇은 농사를 지었으며, 또는 신문기자이거나 신문사 지국을 경영했다. 그러나 그들은 학교, 경작지, 신문사의 일에 전념하지 않았다. 다른 일에 마음을 두었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일제하 여러 혁명가들이 고난과 위기의 무대에 등장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그들의 용기와 정열로 역사는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역사에 투영된 이들의 자취는 너무도 척박하고 표정 없이 거칠다.
윤자영(1896~1938)1장은 2004년 훈장이 추서된 독립유공자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포상된 인물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 연구자뿐이다. 3·1운동 현장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데뷔해, 이후 고려공산당과 임시정부, 그리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서 활약하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나, 분단과 냉전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 속에서 그의 최후는 오리무중이었다. 마지막 활동지가 소련이어서 한동안 접근조차 힘들었고, 오랜 기간 남북한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넘어 그는 우리 앞에 독립유공자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김단야(1900~1937), 박헌영(1900~1956), 임원근(1900~1963)2장은 여명기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로, 그들의 개인사는 요즘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당시 ‘트로이카’라 불리던 이들은 1919년 3ㆍ1운동 후 사회주의에서 탈출구와 대안을 찾은 청년 지식인의 전형이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국내외를 잇는 초기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다. 그런가 하면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과 김단야의 죽음을 앞둔 사랑, 박헌영의 ‘사회주의 조국’에 의한 비참한 최후 등은 이들의 생애를 더욱 극적인 것으로 만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3ㆍ1운동 이후 경남 일대에서 폭발적으로 시위운동이 번져나갔고 그 기폭제가 된 진주시위운동의 주동자가 바로 강달영(1888~1942) 3장이었다. 강달영은 3ㆍ1운동 가담 혐의로 옥고를 치르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서울 무산자동맹회, 백정신분해방운동을 주도하는 등 대중과 밀착해 민족운동을 펼쳤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에 취임한 강달영은 민족주의 진영과의 공조에 힘썼지만 뜻을 채 펼치기도 전에 좌절하고 말았다. 옥중 모진 고문 속에서 정신질환으로 병감에 수용되곤 했던 그는 결국 해방을 3년 앞둔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김철수(1893~1986)4장, 5장는 국내 초기 사회주의운동을 이끌면서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20년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지낸 김철수는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북을 택하지 않고 1980년대까지 남한 땅에서 살았다.
저자는 김철수가 남긴 회상기(『지운 김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편, 1999)를 바탕으로 조선공산당 제2회 당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기까지 당시의 정황과 그의 심리상태를 복원해냈다.
조선의 앞길이 제 한 몸에 달려 있다는 자부심,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큰 기쁨, 격렬한 분노, 쓰디쓴 배신감……. 노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은 모두 다 1926년 12월에 열린 조선공산당 제2회 당 대회와 연관을 맺고 있다. 두 번째 김철수의 회상은 1927년 1~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조선위원회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철수는 조선공산당 제2회 대회를 대표하여 그 위원회에 출석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을 이끌어간 인물의 고뇌와 함께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조선공산당과 코민테른의 맨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고광수(1903~1930)6장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식민지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 중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광수는 식민지시대 공산주의 그룹인 엠엘(ML)파의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그룹은 찬성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던 말썽 많은 공산당 내 분파였다. 이 글에는 엠엘파 형성 과정에서 고광수가 수행한 역할이 복원되어 있다. 조선공산당 내부에 숨어 있던 엠엘파의 존재양태도 밝혀져 있다.
1950년 6월 인민군의 전면 남침과 더불어 시작된 빨치산들의 투쟁은, 2여 년이 지난 1952년 중반기 이후에도 비록 약화되기는 했지만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남하 후 북으로부터 병력 보충은 물론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 동해남부전구를 이끌던 사령관 남도부(1921~1955)7장 와 남도부 부대 정치위원 안병렬(1917~?)8장 은 고립상태에서 생애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발굴된 남도부의 ‘비장문건’과 노획된 안병렬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 묻혀 있던 빨치산 부대의 고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역사학자 임경석이 들려주는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잊힌 사람들이다.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적대시했던 터라 그들의 존재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방 후에도 그랬다. 냉전과 분단체제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들의 행위와 사유의 궤적을 진실되게 형상화하는 일은 공적인 논의의 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주화가 진전된 뒤에는 금제의 벽이 얇아진 듯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걷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무서운 것은 세월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인지라 자료는 인멸되었고, 기억은 점차 색이 바라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망각 속의 존재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후, 반공이데올로기에 휘둘려 우리 현대사에서 은폐되고 왜곡된 사회주의운동사를 복원해내는 데 전력하고 있는 역사학자 임경석이 여덟 편의 글을 통해, 혁명가들의 초상을 그려냈다.
일제하 조선노동당을 주축으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윤자영(1장),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2장), 강달영(3장), 김철수(4, 5장), 고광수(6장)와 해방 후 6ㆍ25전쟁기 빨치산부대를 이끌었던 남도부(7장), 안병렬(8장) 등. 그들은 한평생 이상세계의 실현에 목표를 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의지로 조국 독립과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려고 투쟁했으나 반대파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사회주의의 기치 아래 싸웠다는 이유로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사회주의운동사는 냉전시대에는 잊을 것을 강요당했고, 사회주의혁명의 역사가 무모한 실험으로 치부되는 요즘에는 더욱 쉽게 잊어지고 있다. 사회주의운동이 한국 민족해방운동에서 가장 큰 갈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인정받기도 전에 이미 잊어진 초라한 역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남들이 팽개친 분야를 고집스레 부여잡고, 역사 연구와 서술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저자 임경석은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역사 서술이 무미건조하거나 지나친 이념적 편향으로 대중과의 폭넓은 소통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사회주의운동 전선에 섰던 이들의 신념과 사상에 대해 왈가왈부 시비를 가리거나 그들의 노선과 정책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다.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의 거대한 권력과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들의 용기와 심리상태를 형상화하는 것, 그것을 이 글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들은 딱딱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쉽게 읽힌다. 특히 역사 연구와 서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활발한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역사 서술을 꿈꾸며, 강제로 또 너무 허무하게 잊혔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들과 그 주변을 마치 옆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처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결코 픽션은 아니다. 역사가로서 필자의 새로운 글쓰기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광범하고 치밀한 사료 읽기가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러시아 구 코민테른 문서군에 소장된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한편,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던 사법당국과 고등경찰이 남긴 사법기록과 스파이가 작성한 정보문서들은 물론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남긴 편지와 학습노트 등 사적인 기록들까지 꼼꼼하게 검토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 행위에 내재하는 인간의 의도와 욕구, 논리와 심리를 독해해내고자 하였다.
혁명을 선택했던 사람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생전에 부귀공명과는 거의 무관했던 사람들이다. 권력도, 돈도, 명성도 이 사람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에게 직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몇몇은 학생이거나 교수였다. 몇몇은 농사를 지었으며, 또는 신문기자이거나 신문사 지국을 경영했다. 그러나 그들은 학교, 경작지, 신문사의 일에 전념하지 않았다. 다른 일에 마음을 두었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일제하 여러 혁명가들이 고난과 위기의 무대에 등장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그들의 용기와 정열로 역사는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역사에 투영된 이들의 자취는 너무도 척박하고 표정 없이 거칠다.
윤자영(1896~1938)1장은 2004년 훈장이 추서된 독립유공자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포상된 인물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 연구자뿐이다. 3·1운동 현장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데뷔해, 이후 고려공산당과 임시정부, 그리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서 활약하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나, 분단과 냉전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 속에서 그의 최후는 오리무중이었다. 마지막 활동지가 소련이어서 한동안 접근조차 힘들었고, 오랜 기간 남북한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넘어 그는 우리 앞에 독립유공자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김단야(1900~1937), 박헌영(1900~1956), 임원근(1900~1963)2장은 여명기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로, 그들의 개인사는 요즘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당시 ‘트로이카’라 불리던 이들은 1919년 3ㆍ1운동 후 사회주의에서 탈출구와 대안을 찾은 청년 지식인의 전형이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국내외를 잇는 초기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다. 그런가 하면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과 김단야의 죽음을 앞둔 사랑, 박헌영의 ‘사회주의 조국’에 의한 비참한 최후 등은 이들의 생애를 더욱 극적인 것으로 만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3ㆍ1운동 이후 경남 일대에서 폭발적으로 시위운동이 번져나갔고 그 기폭제가 된 진주시위운동의 주동자가 바로 강달영(1888~1942) 3장이었다. 강달영은 3ㆍ1운동 가담 혐의로 옥고를 치르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서울 무산자동맹회, 백정신분해방운동을 주도하는 등 대중과 밀착해 민족운동을 펼쳤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에 취임한 강달영은 민족주의 진영과의 공조에 힘썼지만 뜻을 채 펼치기도 전에 좌절하고 말았다. 옥중 모진 고문 속에서 정신질환으로 병감에 수용되곤 했던 그는 결국 해방을 3년 앞둔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김철수(1893~1986)4장, 5장는 국내 초기 사회주의운동을 이끌면서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20년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지낸 김철수는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북을 택하지 않고 1980년대까지 남한 땅에서 살았다.
저자는 김철수가 남긴 회상기(『지운 김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편, 1999)를 바탕으로 조선공산당 제2회 당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기까지 당시의 정황과 그의 심리상태를 복원해냈다.
조선의 앞길이 제 한 몸에 달려 있다는 자부심,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큰 기쁨, 격렬한 분노, 쓰디쓴 배신감……. 노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은 모두 다 1926년 12월에 열린 조선공산당 제2회 당 대회와 연관을 맺고 있다. 두 번째 김철수의 회상은 1927년 1~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조선위원회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철수는 조선공산당 제2회 대회를 대표하여 그 위원회에 출석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을 이끌어간 인물의 고뇌와 함께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조선공산당과 코민테른의 맨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고광수(1903~1930)6장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식민지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 중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광수는 식민지시대 공산주의 그룹인 엠엘(ML)파의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그룹은 찬성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던 말썽 많은 공산당 내 분파였다. 이 글에는 엠엘파 형성 과정에서 고광수가 수행한 역할이 복원되어 있다. 조선공산당 내부에 숨어 있던 엠엘파의 존재양태도 밝혀져 있다.
1950년 6월 인민군의 전면 남침과 더불어 시작된 빨치산들의 투쟁은, 2여 년이 지난 1952년 중반기 이후에도 비록 약화되기는 했지만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남하 후 북으로부터 병력 보충은 물론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 동해남부전구를 이끌던 사령관 남도부(1921~1955)7장 와 남도부 부대 정치위원 안병렬(1917~?)8장 은 고립상태에서 생애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발굴된 남도부의 ‘비장문건’과 노획된 안병렬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 묻혀 있던 빨치산 부대의 고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목차
책머리에
01. 만남
첫 대면 | 재회 | 그 사람의 행적 | 뒷소식
02. 트로이카
세 청년 | 3ㆍ1운동의 후예들 | 죽음의 집 | 탈출 | 계속되는 수난 | 희생 | 후기
03. 일그러진 초상
비밀편지 | 조선공산당 구중앙과 신중앙 | 당 책임비서|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 재앙 | 일그러진 초상
04. 김철수의 회상Ⅰ
조선공산당의 위기 | 당 조직의 복원 | 제2회 당 대회 | 분노
05. 김철수의 회상Ⅱ
모스크바 가는 길 | 동행 | 코민테른집행위원회 산하 조선위원회
공방전 | 조선 문제 결정서 | 일생에서 제일 좋았던 때
06. 희생자
한 청년의 죽음 | 3ㆍ1운동의 세례 | 해외에서 |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 엠엘(ML)파 | 추모
07. 땅에 묻은 노트
비장 문건 | 하산 | 신상필벌 | 최후 | 후기
08. 산에서 쓴 편지
발신인 안병렬 | 행간에 담긴 남도부 부대의 역사 | 전달되지 못한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