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과 역사를 담은 도시, 그리고
그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을 읽는 인문지리학자의 시선

이 책에 등장하는 공간은 시장, 아파트, 동네 학원가를 비롯하여 광장과 동물원, 추억의 공간까지 그 범위에 거의 한계가 없다. 지리학자의 공간들이라 낯설거나 진부하리라 예상될 수도 있겠지만, 공간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세상과 인간의 소소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거부감이 전혀 없다.
일상적 공간을 텍스트로서 바라보고 감성적으로 독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동안 당연하거나 상식으로 여겨 왔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도시 공간과 그곳을 채우는 다양한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읽어 보는 것은 생각 외로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반영한 도시와 건축이 지리학자의 시선을 거쳐 공간 스스로 어떠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일상에서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실감하고, 고민하고, 해석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


공간으로 세상을 읽는다

이 책은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공간에 대한 담론에서는 관련 이론을 소개하고 필요에 따라 용어를 정의하였다. 제2장 지식의 공간에서는 감시와 훈육의 공간으로서 감옥, 동물원, 병원, 수용소, 학교, 도시 등을, 지식인의 재창출 공간으로서 노량진 학원가, 대학가, 신림 고시촌 등을 살펴본다. 제3장 정치적 상징의 공간에서는 정치적 이념과 힘의 상징 공간으로서 종로, 청와대, 광화문광장, 시청광장, 청계천광장 등을, 약탈과 전시의 건축으로서 뮤지엄(박물관)을 살펴본다. 제4장 경제적 상징의 공간에서는 보다 높고, 넓고, 강하고, 영원하게 지어지는 건축물들을 사례로서 살펴보며 권력이 건축에 내재하는 의미를 분석한다. 제5장 소비문화의 공간에서는 소비 욕망을 길러 내는 건축으로서 백화점과 이와는 다른 소비문화를 보여 주는 시장을 살펴보았다. 제6장 사회구조적 불평등의 공간에서는 영토성, 군집, 분리라는 이론을 적용할 만한 대표적인 공간으로서 집창촌을 바라보았다. 제7장 추억과 일상의 공간에서는 추억이 가시화된 공간으로서 벼룩시장을, 일상을 대표하는 공간으로서 재래시장과 아파트를 사례로 살펴보았다. 제8장 종교적 상징의 공간에서는 빛과 시간을 이용한 건축 경관에 대해 살펴본다.
공간에 대한 담론을 시작으로 인간의 역사를 담은 도시와 건축을 간결하지만 정성스럽게 설명하는 이 책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많은 도시들을 사례로 들어 깊이와 균형이 있는 교양서로서 완성되었다. 인문학을 테마로 세계여행을 다녀온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지리학자를 가이드로 문화 탐방 한번 잘 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