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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자료

단행본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07

한국 근대사. 1: 국민 국가 수립 운동과 좌절

발행사항
서울: 푸른역사, 2016
형태사항
293 p.: 삽화, 연표, 초상; 22 cm
ISBN
9791156120667 9791156120438(세트)
청구기호
911.06 한11ㅎ
서지주기
참고문헌(p. 275-277)및 찾아보기(p. 284-294) 수록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6695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6695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근대화의 특성과 우리 민족의 분투기
《한국 근대사 1─국민 국가 수립 운동과 좌절》은 1860년대부터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제로 빼앗기 전까지 근대 국민 국가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좌절을 다루고 있다. 총 네 개의 장으로, 1장은 19세기 말 나라 안팎에서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대원군 정권이 등장하고 물러나기까지의 과정과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룬다. 2, 3장은 1884년부터 1898년까지 국민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시도들을 다각도로 서술하고 있으며, 4장은 대한제국의 성립과 근대화, 그리고 러일전쟁 이후 식민지화의 진행 과정을 설명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과 경쟁이 격심하던 당시의 국제적 조건하에서 근대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도들은 좌절되었다. 실패의 원인이 외부의 압력일 수도 있고, 일정 부분 개혁을 시도한 사람들의 과오일 수도 있다. 여러 원인들이 복합된 것이겠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사실 고종 친정 이후 대한제국의 멸망에 이르는 시기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주로 근대화를 추진한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다. 기존 통설은 갑오개혁을 이끈 개화파 정권이 일본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하고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1896년 아관파천으로 붕괴된 후 고종 황제에 의한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독립협회 운동의 반발을 억압하면서 진행된 근대화 정책은 군비 증강을 통한 전제 군주국 수립, 양전·지계사업과 식산흥업 정책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은 근대적 외형만 갖춘 수구 반동 정책이며, 진정한 근대화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운동, 재야 개혁파의 신교육·신산업 운동, 애국계몽 운동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양전·지계 사업은 토지 소유를 근대법으로 보장하기보다 정부 재정 수입을 증대시키고자 했을 뿐이며, 황실 중심의 정책은 국가를 황제의 사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이었므로 근대화를 달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본의 식민지화는 필연적이었다. 《한국 근대사 1》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독립협회 내부의 급진화가 운동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보거나, 양전·지계 사업을 토지 소유의 국가적 법인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고 절충하는 등 다층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관련 최신 연구 성과 총망라
《한국 근대사 2─식민지 근대와 민족 해방 운동》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식민지하 우리 사회의 추이와 민족 해방 운동을 다루고 있다. 일제 식민지기를 1910년대, 1920~30년대 중반, 그리고 1937년 이후 전시 체제기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으며, 사회 내부의 다양한 ‘근대적’ 양상들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우리 사회의 성격에 대한 논쟁은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식민지 수탈론’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자주적 근대화의 가능성이 압살되었다고 본다. 일제의 민족 차별과 수탈로 생산력 발전이 제약되고, 성장의 열매는 일본으로 유출되어 정치적 굴종과 경제적 몰락을 강요당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근대적 사회이기는커녕 민족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었던 시기다.
이에 반해 ‘식민지 근대화론’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화의 싹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한국은 서구 자본주의의 이식을 통해서 비로소 근대화의 계기를 맞이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사회 간접 시설을 건설하고 근대적 제도를 도입하여 식민지를 개발했으며, 일본의 개발에 자극받은 한국이 근대적 기술과 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성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수탈론’의 관점에 서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주장하는 자본주의화 현상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과정에는 항상 식민지적 차별과 억압이 수반되었고, 그에 따라 민족 해방 운동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책의 1장에 해당하는 1910년대에서는 민족 해방 운동의 동력으로 성장하는 기독교와 천도교, 학생층에 관한 서술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1920년대 이후를 다루는 2장에서는 교육과 언론 매체의 확대를 통해 새로운 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새로운 계층인 노동자·소년·여성의 등장, 대중문화 확산의 첨병으로서 서적·영화·라디오의 급속한 보급 현상을 상세히 살핀다. 3장에서는 1930년대 이후 이루어진 자본주의 발전이 일본의 침략 전쟁과 전시 동원을 위한 것이었음을 공들여 입증한다. 창씨개명, 징용과 징병, 일본군 ‘성노예’ 등 일제의 획책과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뿐 아니라, 그에 저항한 국내 민중의 개별적 투쟁, 국내외의 민족통일전선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최근 우리 역사, 그 중에서도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개설서와 시대사 출간도 부쩍 많아졌다. 대개 개설서는 입문서나 교양서 역할을 하고, 시대사는 주로 전공자들에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높아진 관심은 기존 개설서만으로는 채우기 부족한 반면,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시대사는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한국 근대사 1·2》는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이나 국내외 정세, 사회·경제 구조 등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다듬었으며, 전문적 용어나 어휘들은 알기 쉽게 풀었다. 그러면서도 기존 개설서에 비할 수 없는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일반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교양 역사서로서는 물론, 우리의 근대 사회 형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논의의 최전선을 이 책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를 발간하며
머리말

위기의식의 심화와 부국강병의 추구─1863~1882, 흥선대원군의 척화와 고종의 개화(연갑수)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부국강병 정책 | 고종의 친정과 부국강병 정책 | 개화 정책의 추진과 저항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운동의 출발─1884~1894, 갑신정변에서 1894년 농민전쟁까지(주진오)
1880년대 초 조선과 국제 정세 | 1884년 10월 17일, 정변 | 1884년 정변 이후의 국제 정세 | 왕실 주도의 근대 국가 수립 정책 1|8 94년 농민전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운동의 발전─1894~1898, 근대 국민 국가 수립의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주진오)
갑오개혁의 추진과 정치적 갈등 | 대한제국의 수립과 독립협회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운동의 좌절과 일본의 한국 병탄─1899~1910, 황실 중심 근대화 책의 결말(도면회)
전제군주정의 확립과 국가 체제 정비 |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 | 경제 구조의 변화와 민중 운동 | 급변하는 동아시아 질서 | 황제권 위축과 입헌군주제론의 등장 | 고종의 강제 퇴위와 일본의 한국 국가 기구 장악 | 의병 투쟁과 일본의 한국 병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