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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느냐”던 노무현, 이제 그가 그 ‘밭’을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 후회와 참회, 분노와 비난이 들끓는 가운데 한 주가 지나갔다. 더불어 많은 매체들이 저 뜨거운 추모 열기의 정체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으면서 ‘소통 문제’는 다시금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간 중간파를 자임하며 편가르기와 승자독식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해온 강준만 교수가 ‘대한민국 소통법,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책을 내놓았다. 그의 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소통 불능 시대의 비극으로 진단하고 그 처방을 담은 ‘보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에 잘 응축되어 있다.
노무현의 진짜 유언과 ‘제2의 국민사기극’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故 노무현, 웹사이트 <사람사는세상>, 2009년 3월 4일)
저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하지 마라’는 발언이야말로 그의 진짜 유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하라’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 그것이 그의 진정한 메시지”일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자신의 죽음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보는 이 비극적 사태의 핵심은 ‘제2의 국민사기극’이란 데 있다. 저자는 지난 2001년 4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에서 “한국인은 정치가 제일 썩었다고 침을 뱉으면서도 기존 정치판의 문화에 저항하는 정치인은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배척하는 사기극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고 있다. 차라리 정치가 썩었다는 말이나 하지 말든가.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 지겨운 사기극의 주연 노릇을 계속할 셈인가?”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 국민사기극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극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해피엔딩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가? 정치판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와 입장에 과연 바람직한 변화가 있었던가?
내가 말하려는 ‘제2의 국민사기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급한 ‘지옥 같은 터널’로 전락한 정치에 대해 우리 모두가 취하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우린 그걸 잘 알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 (…) 노동조합 선거, 대학총장 선거, 성직자 선거, 봉사단체 선거 등등 선거의 모범을 보여줄 것 같은 그런 선거들은 깨끗한가? 그런 선거들이 온갖 부정이나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런 풍토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동시에 증폭할 뿐인 정치판 선거에 대해서만 침을 뱉는가? 단지 누워서 침뱉기는 곤란하니, 정치판을 향해서만 돌을 던지자는 건가? 과연 그렇게 해서 정치가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질 수 없다면, 이거야말로 ‘국민사기극’이 아니고 뭔가. 아니, 그 이전에 “깨끗해선 정치 할 수 없다”는 상식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그대로 방관한 채 정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사기극’이 아닐까?(이 책, 266-268쪽)
그렇다면 이 국민사기극을 조기종영하기 위한 방법이 있긴 한 것일까?
저자는 국민사기극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정치의 과부하’에 주목한다. “정치가 제공해줄 수 있는 줄의 위력과 그에 따른 이권이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정치 과부하를 당연시하는 한 정치는 결코 바뀔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정치의 힘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제가 아니라 지지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편가르기가 일어나는 과도한 인물중심주의부터 넘어서야 한다. 정당이 단지 과도한 인물중심주의를 반영하는 조직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선 정치학 교과서의 정당민주주의도 당분간은 답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다시 문제는 소통이다
승자독식주의를 전제로 정권쟁탈전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과연 편가르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자는 ‘소통’이 가능하기나 한 얘기일까? 저자는 소통 불능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서 ‘한 방’에 뭔가를 해결하겠다는 조급증만 버린다면 그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민생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과정상의 문제로 차이와 분열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모든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 이슈들에서부터 출발해 그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데에도 수긍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해서 정치의 개념이 지금과는 달라진다면, 그때 가선 “우리 모두 정치 하자”고 외쳐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이 책, 276쪽)
문제는 여전히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권력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섯 가지 의제 겸 제안을 말한다.
첫째, 중앙정부에서 기초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예산과 인사의 투명성을 가급적 많이 확보하자.
둘째, 권력을 가급적 많이 시민사회 영역에 이전시키자.
셋째, 정치인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자율적 의무’로 해보자.
넷째, 인물 중심 정치의 변화를 시도해보자.
다섯째, 인물 중심 지지모임의 변화를 시도해보자.
목차
머리말: ‘커뮤니케이션 코리아’로 가자!
제1장 소통의 구조적 장애
왜 ‘대중매체 사회’가 소통을 죽이나?
왜 ‘승자 독식주의’가 소통을 죽이나?
왜 ‘맥시멀리즘’이 소통을 죽이나?
왜 높은 ‘대외의존도’가 소통을 죽이나?
왜 ‘두 문화’가 소통을 죽이나?
왜 ‘분열’은 우리의 운명인가?
제2장 정치와 소통
왜 ‘정치의 이종격투기화’가 일어나나?
‘형님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국회는 최악의 저질집단인가?
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가?
왜 ‘이념투쟁’이 ‘돈 투쟁’인가?
‘급진적 보수’와 ‘보수적 급진’은 어떻게 다른가?
제3장 개혁·진보세력의 소통 장애
의식의 ‘경로의존’이란 무엇인가?
왜 이념이 ‘지위재’로 전락했는가?
왜 ‘내부비판’을 금기시하는가?
전교조는 진보세력인가?
왜 ‘강자와의 동일시’가 위험한가?
왜 ‘약자의 원한’은 두 얼굴인가?
제4장 소통의 심리학
왜 ‘집단 극화’가 일어나는가?
왜 ‘집단사고’가 일어나는가?
왜 ‘치팅컬처’가 만연하는가?
시각주의는 사람을 어떻게 바꾸나?
‘사실 물신주의’는 사람을 어떻게 바꾸나?
‘라이벌 의식’은 사람을 어떻게 바꾸나?
제5장 소통의 인간학
‘친목·접대’는 ‘세속종교’인가?
인격은 사교술인가?
왜 ‘상처는 내 친구’인가?
‘연역적 인간’과 ‘귀납적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왜 ‘싸가지’가 ‘메시지’인가?
왜 ‘재미’가 소통인가?
제6장 소통의 실천전략
왜 통섭이 필요한가?
왜 ‘성찰적 사회학’이 필요한가?
왜 ‘경계긋기’가 필요한가?
왜 ‘기우뚱한 균형’이 필요한가?
왜 ‘공공적 연고주의’가 필요한가?
왜 지역의 연인이 되어야 하나?
맺음말_ 편가르기를 넘어서
보론_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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