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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01년 출간된 『종횡무진 한국사』의 개정판.
(상)권에서는 단군에서부터 고려까지를 (하)권에서는 조선 건국에서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의 역사를 그렸다. 일반적인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해놓기만 한 통사들과 달리 ‘종횡무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건의 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서양이든 동양이든 앞시대든 뒷시대든 가리지 않고 파헤친다. 또, 한국사를 한민족이라는 단일 민족의 역사로만 보지 않고 한반도라는 지역적 틀에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다른 ‘비판적 한국사’의 입장에서 전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사극보다 재밌고 다큐보다 진지한 ‘한반도’의 역사
― 국사 교과서가 말하지 못한 한국사의 진면목
혹시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무심코 배웠던 국사가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활의 실체를 밝혀 주는 과목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국사 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뭔가 자랑스러운 점을 찾아내려 한다. 하여 고구려는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고, 칠지도는 백제가 일본에 내린 ‘하사품’이었으며, 조선 통신사는 미개한 일본에게 조선의 발전된 문물을 전수해 주기 위한 외교적 시혜였다고 믿고 싶어 한다. 또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흥분하고 야구든 축구든 한일전이라면 관전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만들어 온 ‘국사’는 없다는 것, 역사는 역사일 뿐 역사에는 국적도 민족도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입장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민족의 역사 대신 땅의 역사를 말한다. 땅의 역사는 하나의 민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온 여러 민족과 다양한 문명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한반도를 무대로 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이 책에서는 ‘한반도’의 역사를 다룬다. 민족의 역사, 즉 국사에서 강조되는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는 이 책에 없다.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해서 무작정 찬양하고 미화시키기보다는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들을 해부해서 낱낱이 밝히고 있으며, 그 왜곡된 부분들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도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서와 대중서를 통틀어 최초로 시도된 가장 통렬하고 비판적인 역사서가 바로 이 책의 정체다.
과대포장을 벗긴 한국사의 참모습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한국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 아닌 것일까? 우리는 반만 년 동안 단일 혈통을 유지해 온 우리 민족의 시조가 단군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때 단군의 실존 여부를 놓고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우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이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중국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사를 상징하기도 하는 민족의 시조 단군이 중국인이라니 경악스러운 주장이기는 하지만 지은이와 함께 근거가 되는 단군신화를 찬찬히 뜯어보면 아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아니다.
단군이 중국인이라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은 발해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보고 있지만 지은이는 유득공의 『발해고』가 쓰여진 18세기 조선은 물론 21세기의 대한민국 역시 발해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인데 발해가 고구려의 이름만 팔아먹었을 뿐 영토나 주민 면에서 전혀 고구려 계승자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 만적의 난을 들 수 있다. 무신정권기라는 혼란을 틈타 많은 민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만적의 난이다. 특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만적의 슬로건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면서 만적의 난을 신분해방운동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사실 이 만적의 난은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모의 단계에서 발각되어 만적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모두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는 만적을 신분 차별을 자각한 해방가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후대 역사가들이 신분해방이라는 후대의 이념으로 과대포장한 것일 뿐, 좋게 말하면 몽상가, 나쁘게 말하면 (혼란기를 틈탄) 기회주의자라는 냉정한 비판도 『종횡무진 한국사』에서는 서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냉정하다 못해 냉담하기까지 한 지은이의 비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불편함은 우리 ‘민족’이 한 일이라면 유난히 흥분하고 점수가 후했던 민족사에 우리가 익숙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한국사의 수많은 ‘위훈’(僞勳)을 삭제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박제된 위인이 아닌 살아 있는 인물
고려 태조 왕건을 떠올려 보자. 중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대로 고려 제1대왕, 「훈요 10조」, 혼인정책, 사성정책, 북진정책 등등의 사실이 나열될 것이다. 이 정도의 사전적 정보만 주어진다면 『종횡무진 한국사』가 아니다. 지은이는 왕건을 러키보이로 명명한다. 이유인즉슨 견훤의 눈치를 살피던 신라의 경순왕이 견훤 아들의 반란으로 그의 힘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재빨리 왕건에게 복속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괘씸하게 여긴 견훤도 왕건에게 투항해 후백제의 멸망에 일조한다. 왕건은 손 안 대고 코푼 격이니 러키보이라고 할 수밖에. 장난스럽기는 하지만 왕건의 캐릭터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왕건만큼이나 재수가 좋은 인물은 조선 제1의 신데렐라, 민비다. 한미한 몰락 양반 집안의 규수였던 민비는 시아버지 요정을 만나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비로 등극한다. 한때 「명성황후」라는 뮤지컬과 드라마를 통해 열강의 침탈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려다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조선의 국모’로 재조명받았지만 지은이가 볼 때 명성황후란 이름은 과분하기만 하다. 일관된 정치관 없이 반대파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나라도 가리지 않았던 민비는 위정자가 아닌 신데렐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선 4대왕 세종은 성군 중의 성군이지만 그는 “조선을 말아먹을 악의 씨앗”을 뿌렸다는 의외로 혹독한 평을 받았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사대부 세력은 조선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자라났고 애초에 셋째 아들의 몸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조선의 왕권을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본인은 지하에서 억울함을 호소할지 모르겠지만 세종 이후 펼쳐지게 될 사대부와 국왕의 관계와 그로 인한 조선이라는 국가의 행보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뭐니뭐니해도 재발견에 가장 성공한 인물은 묘청이다. 묘청은 흔히 사대주의자 김부식과 대비되는 자주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가 금에 대한 사대를 거부하고 서경 천도를 주장하며 좌절된 북진 정책을 재추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인종을 설득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서경에 새 나라를 세우고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하는 등 확실히 자주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꼭 그렇게 자주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이 발굴해 낸 특종이다. 그가 금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고려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금이 중화의 적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금은 송나라처럼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닌 오랑캐가 세운 나라이므로 금을 받들 수 없다는 것이 묘청의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반란은 중화의 세상이 오랑캐로 더럽혀졌다는 망상에서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묘청의 역사적 지위 역시 과분한 것이라 하겠다. 『종횡무진 한국사』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공과 과를 가려 줌으로써 한국사와 그것을 이끈 인물들에 대해 좀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현장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모습을 재현하여 TV 드라마보다도 재밌고,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 준다.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는 지은이의 말은 『종횡무진 한국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조선 땅에서 일어났지만 종전 후 전쟁 최대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조선은 뒤로 밀려나고 명나라와 일본만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 역사는 400여 년 뒤에 한국전쟁으로 똑같이 반복된다. 임진왜란 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서방세계와 사회주의 세계의 세력 과시장으로 이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상 과정에서는 UN과 북한이 협상 주체였듯이 말이다.
무능한 지배층의 역사는 지겹도록 반복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해놓고는 사흘 만에 한강 다리를 끊고 달아난 이승만의 모습에는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마자 의주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겹친다. 그뿐인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몽골의 침입에 수도 개경을 비롯한 다른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이 일단 자신들부터 살기 위해 강화도로 도망친 무신정권도 그 죄가 이들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또한 신군부 이성계 세력에 맞선 정몽주의 죽음에는 1979년 쿠데타 세력에 정권을 내어주고도 평생토록 침묵을 지켰던 어느 대통령을 비교한다. 하지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뭐니뭐니 해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다. 1910년 8월 29일의 한일합병은 결코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죽음을 불사하고 끝까지 합병 조약의 비준에 반대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라가 환란을 당하는 것은 1차적으로 지배층의 잘못이지만 그들의 잘못에 관대했던 일반 백성들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국치’로 불릴 만큼 한일합병은 역사적이고 국가적인 치욕이지만, 진정한 치욕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런 못난 지배자를 두었다는 사실”이라는 경고는 우리가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를 무엇보다 잘 알려주고 있다.
비판적 한국사의 최강,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한국사』는 사실 나열에 불과하기만 한 다른 통사와 달리 저자의 일관적인 사관으로 한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역사서다. 그 일목요연함이 장점 중의 장점이지만 그 사건마다의 해석과 평가는 『종횡무진 한국사』의 강점 중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큰 흐름과 후미진 곳을 섬세하게 아우르며 때로는 가슴 아프고, 때로는 가슴이 뜨끔하고, 때로는 한숨이 나오는 우리 역사에 대한 엄준한 평가는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해 준다.
또한『종횡무진 한국사』를 든든히 받쳐 주는 도판과 그 해설, 주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하)권 449쪽을 보면 머리에는 일장기가 그려진 머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두 손을 단전에 모으고 진지한 모습으로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있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도판의 제목은 「40년대의 국민교육헌장」. 짧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와 더불어 해방된 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식민지의 구태를 벗어나기는커녕 정권 유지에 악용하고 있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 (하)권 415쪽 주석에서는 일본의 경제적 침탈에 대항한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채보상운동의 허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일본이 당시 조선에 차관을 제공한 것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용도인 만큼 일본은 차관을 반환받을 의지가 없었으므로 저항의 의미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그림 해설, 주석들이 본문과 똘똘 뭉쳐 되돌아봐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한군데도 어물쩍거리지 않고 비판의 시선을 겨누고 있다. 비판적 한국사의 최강 『종횡무진 한국사』는 앞으로도 그 지위를 잃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권에서는 단군에서부터 고려까지를 (하)권에서는 조선 건국에서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의 역사를 그렸다. 일반적인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해놓기만 한 통사들과 달리 ‘종횡무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건의 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서양이든 동양이든 앞시대든 뒷시대든 가리지 않고 파헤친다. 또, 한국사를 한민족이라는 단일 민족의 역사로만 보지 않고 한반도라는 지역적 틀에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다른 ‘비판적 한국사’의 입장에서 전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사극보다 재밌고 다큐보다 진지한 ‘한반도’의 역사
― 국사 교과서가 말하지 못한 한국사의 진면목
혹시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무심코 배웠던 국사가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활의 실체를 밝혀 주는 과목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국사 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뭔가 자랑스러운 점을 찾아내려 한다. 하여 고구려는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고, 칠지도는 백제가 일본에 내린 ‘하사품’이었으며, 조선 통신사는 미개한 일본에게 조선의 발전된 문물을 전수해 주기 위한 외교적 시혜였다고 믿고 싶어 한다. 또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흥분하고 야구든 축구든 한일전이라면 관전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만들어 온 ‘국사’는 없다는 것, 역사는 역사일 뿐 역사에는 국적도 민족도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입장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민족의 역사 대신 땅의 역사를 말한다. 땅의 역사는 하나의 민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온 여러 민족과 다양한 문명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한반도를 무대로 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이 책에서는 ‘한반도’의 역사를 다룬다. 민족의 역사, 즉 국사에서 강조되는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는 이 책에 없다.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해서 무작정 찬양하고 미화시키기보다는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들을 해부해서 낱낱이 밝히고 있으며, 그 왜곡된 부분들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도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서와 대중서를 통틀어 최초로 시도된 가장 통렬하고 비판적인 역사서가 바로 이 책의 정체다.
과대포장을 벗긴 한국사의 참모습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한국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 아닌 것일까? 우리는 반만 년 동안 단일 혈통을 유지해 온 우리 민족의 시조가 단군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때 단군의 실존 여부를 놓고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우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이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중국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사를 상징하기도 하는 민족의 시조 단군이 중국인이라니 경악스러운 주장이기는 하지만 지은이와 함께 근거가 되는 단군신화를 찬찬히 뜯어보면 아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아니다.
단군이 중국인이라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은 발해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보고 있지만 지은이는 유득공의 『발해고』가 쓰여진 18세기 조선은 물론 21세기의 대한민국 역시 발해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인데 발해가 고구려의 이름만 팔아먹었을 뿐 영토나 주민 면에서 전혀 고구려 계승자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 만적의 난을 들 수 있다. 무신정권기라는 혼란을 틈타 많은 민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만적의 난이다. 특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만적의 슬로건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면서 만적의 난을 신분해방운동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사실 이 만적의 난은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모의 단계에서 발각되어 만적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모두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는 만적을 신분 차별을 자각한 해방가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후대 역사가들이 신분해방이라는 후대의 이념으로 과대포장한 것일 뿐, 좋게 말하면 몽상가, 나쁘게 말하면 (혼란기를 틈탄) 기회주의자라는 냉정한 비판도 『종횡무진 한국사』에서는 서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냉정하다 못해 냉담하기까지 한 지은이의 비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불편함은 우리 ‘민족’이 한 일이라면 유난히 흥분하고 점수가 후했던 민족사에 우리가 익숙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한국사의 수많은 ‘위훈’(僞勳)을 삭제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박제된 위인이 아닌 살아 있는 인물
고려 태조 왕건을 떠올려 보자. 중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대로 고려 제1대왕, 「훈요 10조」, 혼인정책, 사성정책, 북진정책 등등의 사실이 나열될 것이다. 이 정도의 사전적 정보만 주어진다면 『종횡무진 한국사』가 아니다. 지은이는 왕건을 러키보이로 명명한다. 이유인즉슨 견훤의 눈치를 살피던 신라의 경순왕이 견훤 아들의 반란으로 그의 힘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재빨리 왕건에게 복속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괘씸하게 여긴 견훤도 왕건에게 투항해 후백제의 멸망에 일조한다. 왕건은 손 안 대고 코푼 격이니 러키보이라고 할 수밖에. 장난스럽기는 하지만 왕건의 캐릭터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왕건만큼이나 재수가 좋은 인물은 조선 제1의 신데렐라, 민비다. 한미한 몰락 양반 집안의 규수였던 민비는 시아버지 요정을 만나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비로 등극한다. 한때 「명성황후」라는 뮤지컬과 드라마를 통해 열강의 침탈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려다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조선의 국모’로 재조명받았지만 지은이가 볼 때 명성황후란 이름은 과분하기만 하다. 일관된 정치관 없이 반대파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나라도 가리지 않았던 민비는 위정자가 아닌 신데렐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선 4대왕 세종은 성군 중의 성군이지만 그는 “조선을 말아먹을 악의 씨앗”을 뿌렸다는 의외로 혹독한 평을 받았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사대부 세력은 조선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자라났고 애초에 셋째 아들의 몸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조선의 왕권을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본인은 지하에서 억울함을 호소할지 모르겠지만 세종 이후 펼쳐지게 될 사대부와 국왕의 관계와 그로 인한 조선이라는 국가의 행보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뭐니뭐니해도 재발견에 가장 성공한 인물은 묘청이다. 묘청은 흔히 사대주의자 김부식과 대비되는 자주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가 금에 대한 사대를 거부하고 서경 천도를 주장하며 좌절된 북진 정책을 재추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인종을 설득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서경에 새 나라를 세우고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하는 등 확실히 자주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꼭 그렇게 자주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이 발굴해 낸 특종이다. 그가 금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고려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금이 중화의 적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금은 송나라처럼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닌 오랑캐가 세운 나라이므로 금을 받들 수 없다는 것이 묘청의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반란은 중화의 세상이 오랑캐로 더럽혀졌다는 망상에서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묘청의 역사적 지위 역시 과분한 것이라 하겠다. 『종횡무진 한국사』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공과 과를 가려 줌으로써 한국사와 그것을 이끈 인물들에 대해 좀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현장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모습을 재현하여 TV 드라마보다도 재밌고,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 준다.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는 지은이의 말은 『종횡무진 한국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조선 땅에서 일어났지만 종전 후 전쟁 최대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조선은 뒤로 밀려나고 명나라와 일본만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 역사는 400여 년 뒤에 한국전쟁으로 똑같이 반복된다. 임진왜란 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서방세계와 사회주의 세계의 세력 과시장으로 이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상 과정에서는 UN과 북한이 협상 주체였듯이 말이다.
무능한 지배층의 역사는 지겹도록 반복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해놓고는 사흘 만에 한강 다리를 끊고 달아난 이승만의 모습에는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마자 의주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겹친다. 그뿐인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몽골의 침입에 수도 개경을 비롯한 다른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이 일단 자신들부터 살기 위해 강화도로 도망친 무신정권도 그 죄가 이들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또한 신군부 이성계 세력에 맞선 정몽주의 죽음에는 1979년 쿠데타 세력에 정권을 내어주고도 평생토록 침묵을 지켰던 어느 대통령을 비교한다. 하지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뭐니뭐니 해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다. 1910년 8월 29일의 한일합병은 결코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죽음을 불사하고 끝까지 합병 조약의 비준에 반대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라가 환란을 당하는 것은 1차적으로 지배층의 잘못이지만 그들의 잘못에 관대했던 일반 백성들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국치’로 불릴 만큼 한일합병은 역사적이고 국가적인 치욕이지만, 진정한 치욕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런 못난 지배자를 두었다는 사실”이라는 경고는 우리가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를 무엇보다 잘 알려주고 있다.
비판적 한국사의 최강,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한국사』는 사실 나열에 불과하기만 한 다른 통사와 달리 저자의 일관적인 사관으로 한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역사서다. 그 일목요연함이 장점 중의 장점이지만 그 사건마다의 해석과 평가는 『종횡무진 한국사』의 강점 중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큰 흐름과 후미진 곳을 섬세하게 아우르며 때로는 가슴 아프고, 때로는 가슴이 뜨끔하고, 때로는 한숨이 나오는 우리 역사에 대한 엄준한 평가는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해 준다.
또한『종횡무진 한국사』를 든든히 받쳐 주는 도판과 그 해설, 주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하)권 449쪽을 보면 머리에는 일장기가 그려진 머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두 손을 단전에 모으고 진지한 모습으로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있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도판의 제목은 「40년대의 국민교육헌장」. 짧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와 더불어 해방된 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식민지의 구태를 벗어나기는커녕 정권 유지에 악용하고 있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 (하)권 415쪽 주석에서는 일본의 경제적 침탈에 대항한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채보상운동의 허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일본이 당시 조선에 차관을 제공한 것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용도인 만큼 일본은 차관을 반환받을 의지가 없었으므로 저항의 의미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그림 해설, 주석들이 본문과 똘똘 뭉쳐 되돌아봐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한군데도 어물쩍거리지 않고 비판의 시선을 겨누고 있다. 비판적 한국사의 최강 『종횡무진 한국사』는 앞으로도 그 지위를 잃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목차
『종횡무진 한국사』(상)
책머리에
프롤로그 : 한국사를 시작하면서
1부 깨어나는 역사
1. 신화에서 역사로
분명한 시작 / 누락된 시대 / 두번째 집단 / 중국과의 접촉 / 지배인가, 전파인가
2. 왕조시대의 개막
마이너의 역사 / 새 역사의 출발점 / 중국의 위기 = 고구려의 기회 / 고구려의 성장통 / 물보다 흐린 피 / 포위 속의 생존 / 이주민 국가 / 세 편의 건국신화 / 미스터리의 세기 / 마지막 건국신화
2부 화려한 분열
1. 고구려의 역할
중국발 통신 / 대륙 국가의 성격 / 남으로 기수를 돌려라
2. 깨어나는 남쪽
백제의 도약 / 생존이 미덕 /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3. 뒤얽히는 삼국
비운의 왕 / 불세출의 정복군주 / 고구려의 대중국 노선 / 믿을 건 외교뿐 / 뭉쳐야 산다 / 백제의 멸망?
4. 진짜 삼국시대
기묘한 정립 / 바뀌는 대륙풍 / 제2의 건국
3부 통일의 바람
1. 역전되는 역사
밀월의 끝 / 기회를 놓치는 고구려 / 대륙 통일의 먹구름 / 고구려의 육탄 방어
2. 통일 시나리오
동북아 네 나라의 입장 / 신라의 성장통 / 중국의 낙점 / 새로운 동맹 / 공존할 수 없는 두 영웅 / 사대주의 원년
3. 통일의 무대
시나리오 1 : 약한 고리 끊기 / 두번째 멸망 / 시나리오 2 : 사슬을 해체한다 / 삼국에서 일군으로
4부 한반도의 단독 정권
1. 새 질서와 번영의 시대
큰 통일과 작은 통일 / 지방 정권의 한계 / 남북국시대? / 중국화의 물결
2. 소용돌이의 동아시아
흔들리는 중심 / 두 명의 신라인 / 북방의 새로운 기운
3. 단일왕조 시대의 개막
왕실의 진통 / 다시 분열의 시대로 후삼국의 쟁패 / 러키보이 왕건
5부 국제화 시대의 고려
1. 모순된 출발
첫째 모순 : 중앙 정부 vs 지방 호족 / 킹메이커들의 내전 / 둘째 모순 : 관료 vs 귀족 / 과거제가 어울리지 않는 체제 / 소유권과 수조권 / 셋째 모순 : 먼 친구 vs 가까운 적
2. 고난에 찬 데뷔전
중국화 드라이브 / 외교로 넘긴 위기 / 전란에의 초대 / 동북아 국제사회
3. 안정의 대가
전성기 코리아 / 완성과 동시에 시작된 해체 / 북방의 새 주인 / 국왕의 쿠데타 / 북벌의 망상 / 『삼국사기』미스터리
6부 표류하는 고려
1. 왕이 다스리지 않는 왕국
쿠데타의 조건 / 한 세기를 끈 쿠데타 / 하극상의 시대 : 윗물 / 하극상의 시대 : 아랫물 / 틀을 갖춘 군사독재 / 격변의 동북아
2. 최초의 이민족 지배
다시 부는 북풍 / 무모한 항쟁 / 반군과 용병 / 황제의 사위들 / 식민지적 발전?1 / 식민지적 발전?2
3. 해방, 재건, 그리고 멸망
개혁의 실패가 부른 몰락 / 수구와 진보 / 구국의 쿠데타? / 개혁이냐, 건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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