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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산문집

개인저자
최영미 지음
발행사항
파주: 문학동네, 2009
형태사항
246 p.: 삽화, 사진; 21 cm
ISBN
9788954608732
청구기호
816.6 최64ㄱ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2112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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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12112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다음날 아침에는 지도를 보며
새로운 도시를 정복할
구두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길을 잃어본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_최영미, 「나의 여행」 중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을 넘어
‘인간’ 최영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신작 산문집!


시대를 바라보는 집요하리만치 열렬한 시선, 대담하고 날카로운 풍자로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우리 문단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시인 최영미의 새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유럽 미술 기행서 『시대의 우울』 이후 12년, 본격 미술에세이 『화가의 우연한 시선』 이후 7년 만에 새로 엮는 산문집이다. 새 산문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미술’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건축물과 그림, 영화, 책, 음식, 사람)을 찾아나선 여행기라는 점에서 『시대의 우울』의 뒤를 잇고, 예술가들의 삶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화가의 우연한 시선』의 맥을 잇지만, ‘시인 최영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두 작품과 달리 ‘인간 최영미’가 ‘제대로 살기 위해’ 끝없이 방황하는, 더없이 진솔한 발자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롭게 읽힌다.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에는 그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들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한 글들을 담았다. “상상력은 이런 거다, 라고 시위하는 듯한” 가우디의 건축을 탐험하고 돌아온 바르셀로나 여행, “살아서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화가의 자화상 안에”서 미켈란젤로의 삶의 진실을 추적한 바티칸 여행, 서로 부둥켜안은 콜비츠의 인물화와 조각에서 인간을 향한 끈질긴 사랑을 공감한 쾰른 여행 등 예술에 대한 저자의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여정이 펼쳐진다. 그러나 예술 기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 하루지만 집시여인으로 살아본 리옹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 독일의 여배우 한나 쉬굴라와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나눈 파리에서의 추억, “눈동자와 머리 색깔”이 다른 낯선 이들로부터 “나의 언어를, 나의 목소리를 이해”받는다는 감동을 맛본, 시인으로서 가장 특별한 시간을 보낸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의 닷새 등 “헛되지 않으리라고 믿”어 떠났고, “길눈이 밝”지 못해 헤맸고, 헤맸기에 “숨은 보물”들을 얻어올 수 있었던 여행을 성실히 기록해놓았다.

2부 ‘화가의 초상’에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저자의 짧은 사색이 담겨 있다. 2000년에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저자의 첫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에 실렸던 원고의 일부가 이곳에 담겼고, 절판된 책의 나머지 원고는 새로 쓴 생활수필들과 함께 엮어 올해 하반기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2부에 담긴 글들은 화가 박수근과 세잔의 그림, 영화 <꽃잎>과 <일 포스티노>, 레비스트로스와 바흐만의 책, 시인 박남준과 김용택 등 주로 예술을 화두로 한 에세이들이지만,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서 방황하고 공감하고 자신을 납득하고,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이 역시도 자아를 찾고 삶을 긍정하기 위한 넓은 의미의 ‘여행 기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삶의 복사판이다. 별 3개와 싸구려 숙소를 쉬지 않고 왕복하는 여행방식을 내가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내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나를 고치지 못하듯이. 별 하나에 깨끗한 호텔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접지 못하는, 나는 현실 감각이 모자라는 낭만주의자. 그래서 그토록 방황했었다. _「완벽한 여행은 없다」 중에서

여행은 ‘존재’하지 않고 ‘살기’ 위한 과정이다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진”, “인생에서 단지 몇 시간을 공유”했을 뿐인 사람들에게 저자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아픈 과거를 보여주고, “다 지난 일이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라는 위로를 듣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남의 일도 나의 일처럼 여길 수 있다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무모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묘하게 들뜬 리옹의 공기를 느끼며 “바람에 펄럭이는 자유의 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저자는 집시여인으로 변신하는, “인생에 단 한 번 다른 사람이 되는 모험”을 감행했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태도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그래서 인생에서 한 번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수도 있다는 저자의 ‘무모한’ 상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대 로마 극장 후르비에(Fourviere)를 뚜벅뚜벅 걸으며 저자는 “지상에서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들이 용서되었다”고 말했다. 그 모든 실수와 오류 들이 결국엔 인생의 한 과정임을 이해하고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무모한’ 희망을 저자는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현실 감각이 모자라는 낭만주의자”였고 그래서 “그토록 방황했었”고, 그래서 그녀의 여행과 삶은 비로소 “진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드문 게 진짜로 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To live is the rarest thing in the world. Most People exist, that is all. _오스카 와일드

저자의 삶에서 여행은 언제나 필연적인 것이었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이냐고, 왜 떠나느냐고 묻는 질문에 저자는 “나를 재생산하는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여행은 저자에게 “나를 압박하는 의무로부터의 해방, 직업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참석하는 의례적인 행사와 사교모임들과 가족들과의 약속들로 꽉 찬 달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일상에 휘둘리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그저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인간이 되기 위해 저자는 끝없이 여행가방을 싸고 낯선 풍경 속을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이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을 때, 가방을 보러 다니”는 일이라도 해야 할 만큼 여행은 저자의 삶에 물과 빛과 공기 같은 존재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생에 일어났던 얼마나 많은 사건들, 울고 웃었던 숱한 시간과 장소들을 떠올리는가. 80년대와 90년대가 극적으로 교차하던 어느 환장할 봄날, 현실을 잊으려 찾은 극장문을 나서며 나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 시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그걸 알기까지 아마도 우리에게 서투른 망각은 없으리라. _「망각은 없다」 중에서

여행은 삶과 마주하기 위한 것이다
한때 저자에게 세상과 시대와 현실은 온몸과 온 마음으로 투쟁하고 부딪쳐 깨어지고 아프게 살아내야 하는 고통스런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때로 “현재 감당할 수 없는 현실 대신에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은유의 세계로, 시로, 영화로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썼다. 그러나 “시의 밀도는 언어의 밀도이기 이전에 시인 자신의 삶의 밀도”라고 말한 것처럼 저자는 예술작품을 박물관에 박제된 작품으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서 예술가들의 삶을 읽고 그들의 애환에 공감하고 다시금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그 삶의 언어로 글을 쓴다. 그래서 저자에게 예술작품을 보고 그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이며, 그것과 당당하게 마주하고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연습이고 과정이다.

이모와 친구였던 한나 쉬굴라 아줌마가 함께 작업했던 괴짜감독 파스빈더에 대해 언론에 이렇게 말했지. “그는 그의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래. 그게 바로 영화의, 문학의, 미술의 힘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우리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깊고 넓어진단다. _「교토의 바위정원을 추억하며」 중에서
마흔이 넘은 저자에게 빈센트 반 고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이며 “극복하고픈 순수의 표상”이다. “주변 사람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키며 한시도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던” 그에게서, “죽도록 떠돌며 집을 짓지 못한” 그의 쓸쓸했던 삶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감을 통해 저자는 마음 깊숙이 묻혀 있던 외로움의 근원을 이해하고 위로받고 자신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또 “어떤 화려한 카메라 워크도 없고, 극적인 장면전환이나 충격적인 영상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면서 영원히 아물지 않을 듯 쓰라리기만 한 시대의 상처를 부인하거나 억지로 잊거나 섣불리 미화하는 대신 담담하게 마주하여, 그것이 시간과 함께 “물 흐르듯 자연스레” 우리를 떠나줄 때까지 깊숙이 묻어두고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작지만 들여다볼수록 거대해지는 공간”인 교토의 바위정원 료안지(龍安寺)에서는 크나큰 세상 속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국은 “삭막하고 살벌한 현대도시”일 거라는 편견을 뒤집고 너무도 여유로웠던 샌프란시스코의 길거리 풍경과 느긋한 분위기에 이 세상 어디라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삶은 정겨울 수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도시를, 그 속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평소 몸이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 마흔다섯에 혼자 짐가방을 끌고, 단 하루도 미리 잘 곳을 정해놓지 않고 낯선 땅을 헤매는” 자신을 돌아보며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루비누도 없이 세탁한 옷을 걸쳐 입으며 짜증 부리는 대신 그냥 웃는다. 삶의 “어처구니없음”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행은 저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지고 인정하여 다시 살아갈 힘을 북돋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파괴시키기도 한다. 지루하더라도 내가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처럼 치사하고 고귀하며 흥미로운 우연을 나는 모르므로. _‘작가후기’ 중에서

여행은 사람과 마주하기 위한 것이다
“40일 남짓 유럽에 체류하며 나는 미술관을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미의 전당에 가까이 가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고 저자는 ‘작가후기’에서 회고한다.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진, 이방인이며 동지였던 사람들에게”라고 부친 헌사만 봐도 알 수 있듯,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사람을 향한 저자의 뜨거운 애정과 동지애가 그간 출간된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보르도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여성에게 “동지애에 가까운 친밀감”을 느끼고 만난 지 30분도 안 되어 자신의 인생 여정을 들려주었는가 하면,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역시 우연히 만난 독일의 영화배우 한나 쉬굴라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깊은 속내를 털어놓고 “너를 이해한다”는 공감에 위로받는다. 또, 자신의 시에 “정열적이며 직접적인 반응”을 보여준 미국 청중들을 만나고 “무대에 서면 펄펄 살아 움직이는” 자신의 “변신”에 놀라워하며 “오랜만에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즐”기기도 한다.

실제 여행을 통해 “길에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빼놓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예인데, 저자는 그의 연설장면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가 쓴 책들을 읽으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문학의 승리이며, 양심의 승리”라고 말하며 그를 만나고 “다시 나를 믿고 싶었고,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나를 내던지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비록 미디어를 통해서였지만 오바마와의 만남이 저자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오바마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쓴 저자의 시카고 여행기를 읽어보면 금세 실감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오바마가 자주 출입했다는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고, 그가 단골이었던 이발소를 창문 너머에서나마 구경하고, 부인 미셸과 처음 데이트를 했다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찾아가보기도 한다. 사람에게 공감하고 감동하고 영감을 얻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은사인 그분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워 단어를 고르느라, 너무 긴장한 탓에 독감을 된통 앓으며” 썼다는 김용택 시인에 관한 글에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기대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암스테르담에서 쾰른으로, 리옹에서 교토로, 버클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시카고에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저자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여행 기록을 통해 우리는 여행이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희망하게도 해주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이 삶이 살아볼 만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진정으로 살기’ 위한 여행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발길이 닿는 땅이 넓어질수록 이 세상 어디에 집을 짓고 살든, 우리 ‘마음의 고향’이 넓어지고 마음의 깊이도 함께 자라난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시인 최영미가 지난 수년간 길 위에서 몸과 마음을 부딪쳐 얻은, 이 책이 품고 있는 가장 고마운 가르침일 것이다.
목차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
다시 여행을 시작하며 11|황혼의 사랑 32|베네치아에서의 유혹 44|꽃 피는 아몬드 나무 아래 52
죽음만이 이들을 갈라놓으리 62|완벽한 여행은 없다 71|집시여인이 되어 떠돌다 82
한나와 나 95|반 고흐, 나처럼 불쌍한 사람 107|교토의 바위정원을 추억하며 117
버클리의 동백꽃 126|샌프란시스코에서 44시간 139|오바마, 문학의 승리 147

2부: 예술가의 초상
박수근, 그 목숨의 뿌리를 찾아서 175|영화, 그리고 시대의 우울 184
광주는 언제 신파를 극복할 것인가 190|망각은 없다 198|바흐에서 바르톨리까지 206
사라진 세계에 바치는 연가 210|누구든 뒤돌아볼 때는 217|푸른 하늘을 마실 자유 220
눈물의 빛 224|세잔의 회상 231|김용택 선생님 235

작가후기 240
도판목록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