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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도서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3

여수 14연대 반란 (여수 순천 사건): 1948년 10월 19일

개인저자
박윤식 지음
발행사항
부천 : 휘선, 2011
형태사항
205 p., 2장 (접지) :. 지도 ;. 26 cm
총서사항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ISBN
9788994106083 9788994106106 (세트)
청구기호
911.072 박67ㅇ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G0013738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G0013738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역사적 진실을 정밀하게 담은 불멸의 사료로서 온 국민의 필독 대작!
격동의 역사 현장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직접 목격한 저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45년간 연구하며 설교했던 조각들을 철저한 현장답사와 증언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4권의 시리즈로 집대성한 근현대사 이해의 길잡이!
6.25전쟁에 참전한 노병의 살아 있는 애국혼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일깨우는 불후의 명작!

◆근현대사 시리즈 3 : 여수 14연대 반란(여수 순천 사건)
/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은 제주도의 폭동 진압을 위해 출동 준비 중이던 여수 14연대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인사계 지창수 상사와 김지회 중위, 홍순석 중위의 주도로, 좌익 남로당원 50여 명이 일으킨 반란이다. 반란군들은 여수 시내에 있던 6백여 명의 좌익 세력과 합류하여 여수 시내의 양민들을 학살하고,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에 군 좌익 세력 뿐 아니라 지방 좌익 세력과 동조자들이 가담함으로써 그 세력은 여수에서 순천까지 확대되었다. 사건 발생 8일 만에 국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일부 반란군은 백운산을 경유, 지리산 일대로 도주하여 게릴라(일명 빨치산) 부대를 형성하게 된다.
목차

저자 서문
들어가면서
[별지 1]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와 그의 최후
[별지 2]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의 주동자 김지회·홍순석 사살 장소(1949년 4월 9일)

1.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 반란
(1) 남로당의 국방경비대 침투 공작
(2) 영암 군경 충돌 사건(1947년 6월 1일)
(3) 국방경비대 여수 14연대 창설과 반란 음모
(4) 우체국 일반 전보를 통해 하달된 제주도 출동 명령
(5) 인사계 지창수 상사의 반란 선동
(6) 반란군들의 무기고 점령
(7) 14연대 핵심 장교들의 죽음
(8) 여수 인민위원회 소속 23명의 반란 가담
(9) 5시간 만에 반란 성공, 여수 시내 점령[별지 3]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 반란 주변 지역 (10) 여수 경찰서장 고인수의 처형
(11) 순천 경찰서 장악
(12) 순천 경찰서장 양발원 총경의 처형
(13) 여수와 순천의 탈환
(14) 애양원교회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동인, 동신)의 처형
(15) 반란 지령을 내린 이중업·이재복

2. 여수 14연대 반란 진압 부대의 연속된 반란
(1) 1948년 10월 21일, 전투사령부 설치
(2) 1948년 10월 23일, 여수 순천 지구에 계엄령 선포
(3) 광주 4연대 2대대 1중대의 반란
(4) 마산 15연대 최남근 연대장, 반란 부대에 자진 투항
(5) 나주 주둔의 중대 반란(11월 2일)
(6) 군산 12연대 5중대장 김응록 중위 반란 음모
(7) 대구 6연대 반란

3.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
(1) 지리산에 들어간 김지회 부대의 12연대 공격
(2) 12연대장 백인기 중령의 자결
(3) 반란군의 구례 기습

4. 국가보안법 제정과 군 내부 좌익 숙군
(1) 국가보안법 제정 배경
(2) 국가보안법의 대상 및 개정
(3) 군 내부 좌익 세력 10,317명(숙군 4,749명 + 탈영 5,568명)
(4) 국가보안법 발표 후 강태무·표무원 소령의 월북 사건
(5) 국가보안법 존치(存置)의 당위성

5. 서울시당 홍민표와 그에 의한 33만 명 자수

6. 국회 내 프락치에 의한 미군 철수

7. 빨치산 토벌 작전
(1) 호남·지리산 지구 전투사령부의 빨치산 토벌 작전(1949년 3월1일-1949년4월4일)
(2) 군·경 합동 지리산 지구 토벌 작전(1949년 9월-1950년 2월)
(3) 빨치산 소탕을 위한 국군 11사단 창설(1950년 10월-1951년 4월 6일)
(4) 빨치산 토벌작전을 위한 3개 사령부 신설(1951년 5월)
(5) 백야전사령부(백선엽 야전전투사령부, Task Force Paik)(1951년 11월 26일)

8. 14연대 반란 주동자들의 최후(김지회, 홍순석, 지창수)
(1) 14연대 반란 주동자, 김지회 중위(육사 3기, 군번 10505)
(2) 14연대 반란 주동자, 홍순석 중위(육사 3기, 군번 10583)
(3) 14연대 반란 주동자, 인사계 지창수 상사

9. 남북 노동당 대남 공작 최고 책임자들의 최후
(1) 이재복(남로당 군사부 총책)
(2) 이중업(남로당 중앙조직부 총책)
(3) 이강국(남조선 민주주의 민족전선 사무국장)
(4) 국제 여간첩 김수임(이강국의 애인)
(5) 성시백(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 총책)
(6) 이주하(남로당 무장분야 총책)
(7) 김삼룡(남로당 총책)
(8) 박헌영(남로당 최고 총수)

10.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과 부사령관 이영회
(1)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1953년 9월 17일)
(2) 부사령관 이영회의 최후 (1953년 11월 27일)
(3) 허망하게 죽어간 빨치산 간부들
(4) 마지막 빨치산 최후 2인, 정순덕(여)과 이홍이(남)

[부록] 민족 중흥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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