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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동양을 만든 13권의 고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진짜 앎을 얻다

대등서명
遁世?救世
발행사항
파주 : 글항아리, 2011
형태사항
729 p. ; 24 cm
ISBN
9788993905526
청구기호
152 쑤819ㄷ
일반주기
원저자명: 徐緝熙, 翁基斌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4758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4758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동양을 대표하는 고전 13권에 대한 철저한 해부
당대 최고의 고전학자들이 고전의 배후를 읽었다


『논어』는 예禮를 얻는 대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묵자』는 왜 종교적 아우라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가
왜 통치자들은 얄미운 『장자』를 용인했던 것일까
『주자어류』는 왜 그렇게 인간을 가혹하게 다루는가


뒤집어서 탈탈 털면 고전古典도 먼지 난다
고전을 소개하고 이해하기 쉽게 떠먹여주는 것이 근대화 이후 우리 사회가 고전을 소화해온 방식이었다. 하지만 강요된 고전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오늘날의 용어와 사례로 지나치게 채색하는 일은 고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또한 작금의 독서계는 고전을 지나치게 실용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전의 경구들이 정치적·상업적인 슬로건으로 무차별적인 인용을 당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것은 고전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긴 해도, 그것을 음미하고 그것과 한 몸이 된 연후에 서서히 나만의 사유로 갈라져 나오는 귀중한 독서체험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들어 고전을 익힌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차이에 대한 경험적인 깨달음이 사람들을 즐거운 고전 읽기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고전을 알 때 삶은 견딜 만하며, 고전과 벗할 때 삶은 풍요롭고 즐거워진다.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것이 고전의 특징이라고 할 때 이제 우리의 고전읽기 문화도 어딘가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즉, 무조건적인 수용에서 조심스럽게 그 가치를 하나하나 검토하는 적당한 거리두기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동양 고전 원전번역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글항아리가 ‘고전 깊이 읽기’의 일환으로 선보이는 『동양을 만든 13권의 고전』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수천 년의 역사를 지배하고 만들어온 13권의 고전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소개한다. 『논어論語』 『묵자墨子』 『장자莊子』 『주역周易』 『한비자韓非子』 『논형論衡』 『사기史記』 『손자병법孫子兵法』 『육조단경六祖壇經』 『주자어류朱子語類』 『몽계필담夢溪筆談』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쑨중산전집孫中山全集』이 이 책에서 다뤄지는 고전들이다. 시기적으로는 춘추 이전부터 근대까지 내려오고 분야로 보아도 유가와 도가·불가를 아우르고, 지식인의 비판적인 현실 참여와 은둔적인 처세를 오간다. 동양적 예제禮制를 논한 책부터 과학적인 탐구와 현실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책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들 고전이 동양이라는 거대한 문명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진지하게 묻고 답하게 될 것이다.
그 방식은 철저하게 역사적이고 비판적으로 이뤄졌다. 『논어』를 통해서는 “철학과 심미의 실종”이라는 측면을 아프게 드러냈으며, 『주자어류』에 대해서는 “인간에 대한 가혹한 선언”이라는 판단까지 이끌어냈다. 『장자』의 처세를 문제삼기도 하고 겉으로는 배척당했지만 속으로는 알토란같이 활용된 『한비자』의 이중성도 남김없이 폭로한다. 집필자들은 모두 해당 분야 최고의 권위자들로서, 이들은 비판하는 것을 넘어 각각의 고전이 주장하는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미덕을 발휘해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 겹의 장막을 걷어내고 들어가 고전을 고전으로 만들어주는 그 핵심 가치, 바로 그것의 역사성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번역에는 김원중, 황희경 교수 등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해당 분야의 역량 있는 전문가들이 참가해서 정확성과 깊이를 추구했다. 이 또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각 챕터별 핵심내용

1. 철학의 상실과 심미의 실종 - 『논어』
필자는 공자의 핵심사유를 ‘인仁’이 아니라 ‘예禮’로 파악한다. 극기복례하여 가정과 사회의 종법 등급관계를 윤리화, 제도화하는 것이 공자의 목적이었다고 본다. 공자가 가장 싫어한 것은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공자에게 난亂은 등급차별이 어지럽혀지고 전도된 것이며, 치治는 그것이 보호되고 유지된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난으로부터 치에 이르는 근본적인 길이 바로 “예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필자는 공자가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본주의’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지만 인간을 속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자와 공자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장자와 공자는 극과 극이라면서 공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또한 모든 것을 규범화하려고 한 유학에 맞서 유학에 반대하는 흐름을 완적의 「대인선생전」을 통해 선명하게 대비시켜서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철학의 상실’과 ‘심미의 실종’이라는 두 주제로 나아간다. ‘철학의 실종’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말한다. “노자는 진정한 철학자였다. 그는 천지, 음양, 만물 운행의 변화의 궤적을 탐색하고 관찰하는 데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왜 해는 뜨고 달이 지는 것이 결코 변하지 않는가? 왜 만물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영원히 그치지 않는가? 등을 사색했다. 반면 공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공자는 자연의 본질 문제에 대해 그다지 많이 사고하지 않았다. 그가 흥미를 느낀 것은 인간 세상에 어떠한 종류의 질서와 제도를 건립해야 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학설은 대부분 정치나 윤리에 속한다.”
‘심미의 상실’은 더욱 큰 문제이다. 공자는 예악禮樂을 함께 말했는데, 여기서 예는 주체이고 악은 예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윤리적 기능이 있었기에 악을 중요시했다. 공자가 “백성들의 생활과 더욱 가까운 신선한 민간 음악”인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한 것은 그것이 문란했기 때문이었으며,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잃었다”고 할 정도로 소악韶樂을 좋아한 것도 그것이 요순을 선양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시를 논할 때도 “슬픈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심신을 상하게 하지 않는 절도”를 중요시했다.
필자는 심미적인 예술에 깊이 영향을 미친 것은 유학이 아닌 노장사상이라며 그 이유를 “노장 철학은 일종의 존재론 철학이며 그 안의 ‘상망象罔’ ‘심재心齋’ ‘좌망坐忘’ ‘조철朝徹’ ‘견독見獨’ 등은 철학 개념이지만 동시에 미학적인 범주로 전환될 수 있고, 두 번째로 노장은 ‘도道’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상정했기에,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정신으로 만나야 했으며, 이것이 예술적 작용을 앞장서서 이끌었다고 보았다.

2. 천민에 의한, 천민을 위한 철학 - 『묵자』
저자는 『묵자』를 ‘천민에 의한, 천민을 위한 철학’으로 해석한다. 중국 문화사에서 확실히 『묵자』보다 더욱 천인 사상의 특징을 더욱 드러낸 저술은 찾아볼 수 없다. 책에 따르면 묵자는 어떤 일이든지 이利를 기준으로 삼는데, 그것도 정신적인 이로움이 아닌 물질적인 이로움이다. 이것이 천인의 고유한 특징이다. 또한 묵자는 귀신을 믿고 천지를 숭상하며 늘 하늘을 기둥으로 여긴다. 이는 시대정신과 엇박자를 내는 것이었다. 당시는 바로 인간의 발견, 인간의 각성의 시대로 사람들은 천도에 대해 이미 여러 가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정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은 “천도는 너무나 멀고 인도는 가깝소. 인도는 천도에 미치는 것이 아닌데 무엇을 근거로 천도로써 인도를 안다는 것이오?”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묵자는 오히려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천지, 귀신의 관념이 없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것 역시 천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후세 농민봉기의 지도자들도 늘 묵자처럼 하늘을 후원자로 하여 자기의 뜻과 욕망을 하늘에 반영시켜 공평하고 정직한 주재로 세계를 통치하고 귀족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들 역시 이 만들어낸 주재主宰앞에서 포복匍匐하여 일체를 바치려 한다. 이것이 천인의 공통 심리이다. 유가는 효를 중시하여 부모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불효는 가장 큰 죄악으로 본다. 묵가도 효를 말하지만 유가처럼 절대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며, 효를 그렇게 지고무상의 위치에 놓지 않는다. 묵자는 이렇게 말한다. 묵자는 공맹을 겨냥해 부모를 법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단언하며 부모를 본받는 것이 바로 어질지 않음을 본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자가 들었다면 정말 얼마나 화를 냈을지 알 수 없다. 유가는 묵학을 홍수나 맹수같이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3. 고답적 철학과 순응적 처세 - 『장자』
저자는 『장자』를 ‘고고하고 비판적인 철학’과 ‘순응적 처세’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읽어낸다. 초지일관하게 반권위적 사상과 상대주의 이론이 관철되는 장자는 특히 유가를 철저하게 조롱했다. 『장자』에 따르면 ‘성인’과 강도는 원래 같은 놈들이다. ‘성인의 지혜와 인의’는 일반 백성들을 쥐어짜는 도구이다. 도덕군자인 양 점잔을 빼는 유자들은 모두 통치자의 졸개들이거나 혹은 아첨꾼들인 것이다. 하지만 『장자』는 현실을 바꾸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내일과 모래 그리고 영원토록 현실은 여전히 엉터리라고 선포하였다. 바로 여기서 고답적 철학과 서로 표리가 되는 순응의 처세 방법이 등장한다. 현실적 대립이 초래할 수도 있는 비극적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장자학파는 결국 해학 쪽으로 나아갔고, 희극적 결말로 나아갔다. 옮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좋고 나쁜 것을 묻지 않고, 남이 울면 따라 울고, 남이 웃으면 따라 웃으면서 정신적으로 이른바 대도大道를 추구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행위의 표현은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환상 속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서 ‘소요유逍遙遊’하면서 현실 생활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반항하지 않으며, 모든 액운을 운명으로 알고 편안하게 따르는 총명한 한 무리의 사람들로서 비록 그들의 비판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를 싫어하게 하고 세상을 불안하게 느끼도록 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또 무슨 용인 못할 것이 있겠는가? 전반적으로 볼 때 중국 역사에 끼친 『장자』의 영향은 소극적인 부분이 많았다. 지식인의 구차하고 비겁하고 약삭빠른 품성은 『장자』와 절대적으로 큰 관련이 있다. 루쉰도 젊은 시절에는 『장자』를 좋아하였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에 대하여 크게 반감을 가졌고, 『장자』를 읽도록 청년들을 이끄는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격렬하게 공격했다.

4. 하늘과 인간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다 - 『주역』
이 장에서는 『주역』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동양 고대의 원시사유가 어떻게 동양 특유의 철학적 체계로 나아갔는가를 살피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거대한 문화 전통을 이루었던 『주역』 속에는 원시의 무속학, 수학, 천문지리학, 문자부호학, 사학, 철학, 윤리학, 미학 및 문예학 등의 다양한 요소가 들어 있으며, 고대 명리命理, 수리, 천리, 성리聖理, 철리哲理, 심리, 문리文理 등이 융합된 지혜로운 문화를 함축하고 있다. 더욱이 『주역』만이 가지고 있는 괘효卦爻라는 부호 체계는 아주 매력적이고도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람을 상당히 곤혹스럽게도 만들지만 종종 영감을 주기도 하며, 케케묵은 곡조인 듯하지만 그 오래된 가락은 사람을 심취하게 만든다. 『주역』은 아득한 상고시대의 무속인 동시에 과학의 광채를 담고 있으며, 유치한 듯하면서도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스테레오타입 같은 사유 방식인 듯하면서도 시적인 미학이 들어 있고, 시골 훈장님 같은 너절한 설교인 듯하면서도 그 속에는 심오한 철학 사상이 들어 있으며, 쉴 틈 없이 역동하는 역사 속에서의 흐릿한 정감과 더불어 날카로운 역사의식이 떫으면서도 달콤한 이중주를 연주하고 있다. 필자는 『주역』이 고대 중국의 방대하고도 복잡한 ‘지식의 백화점’이지만, 그 심층의 문화 구조는 바로 ‘천인합일’이란 원시적 사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천인합일의 사유 방식은 고대 중국 문화의 기본 특징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역』의 총 설계도로서 『주역』 전체의 품격과 격조를 결정한다. 이것을 특히 서양과의 차이점을 통해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고 분명하다. 고대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늘과 사람의 관계[天人關係]를 대립적으로 보았다. 자연을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은 하늘과 사람을 조화관계로 인식하고 있었다. 고대 서양에서는 하늘의 압제를 고통스럽게 여긴 관계로 하늘을 경외하게 되었고, 이는 후세에 종교문화로 발전되었다.
『주역』의 길흉은 흉을 피해서 길을 추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 상태를 도모하는 것이다. 흉이라는 천인간의 대립 투쟁 상태를 애써 피하려는 내면 심리 속에는 본능적으로 대립을 혐오하고 있다. 이러한 고대 중국의 원시 무속은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에 필적할 종교로 발전해나가지 못했다. 고대 중국은 ‘종교성이 옅어서’ 고대 인도의 불교처럼 흑암 지옥이나 악귀의 재앙 같은 이야기를 창조해내지 않았다. ‘마귀’라는 관념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고대 중국에는 그럴듯하게 계보를 갖춘 신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시조신들이 있지만 모두 선성善性을 지니며, 사람들 앞에 출현할 때는 위대하고 온화하며 친근한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런 현상의 근원에는 천인관계를 친화적으로 보는 고대 중국인의 생각과 정감이 놓여 있다. 필자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 『주역』에 나타난 미학과 철학을 수미일관하게 살펴내고 있다.

5. 법 위에 군주 있다 - 『한비자』
필자는 『한비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본문에서 『한비자』는 극단적 왕권론으로 비판받는다. 진화의 역사관,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인성관, 힘을 숭상하는 국가관의 세 가지를 기초로 형성된 한비의 학설은 난세를 안정시킬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권위를 건립하는 것, 군주를 중심으로 한 법의 권위를 건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군주를 법 위에 두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아무리 법을 잘 지켜도 군주가 수십 만명 분의 악행을 저질러도 막을 길이 없다. 이것은 한비자식 법치의 모순이다. 그는 법을 창성하게 하는 중요성, 법을 실행하는 절차 등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을 늘어놓지만 입법권의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법은 이미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고 백성을 통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또한 한비는 유가의 예치禮治 시스템을 통째로 부정했는데 이것은 “예가 추상적 윤리 원칙 혹은 범주일 뿐만 아니라 지대한 실천성의 품격을 갖추고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전통의 도덕규범임을 잊은”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작은 것만을 보는 매우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필자는 비판한다.

6. 진리를 잃어버린 책들을 향한 열변 - 『논형』
한漢대의 뛰어난 사상가이자 시대사상에 대한 비판자인 왕충王充(27~97)이 『논형』을 지은 것은 “수많은 책들이 모두 진실을 잃어버리고, 허망한 말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말을 이기는 것에 분기한 것이다.” 필자는 세가지 측면에서 왕충의 『논형』을 평가하고 있다.
첫째, 왕충의 독립적 사고다. 그는 특히 통치자의 권위적 사상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왕충은 일찍이 유학자들을 몇 종류로 나누었는데, 최고의 등급은 “치밀한 사고를 통해 글을 지어서 문장을 체계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논형』은 양한시대의 신학화된 경학의 붕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상이 일단 스스로를 절대적 진리라고 여기고, 천지天地 사이의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열거하여 해석할 수 있다고 스스로 여길 때, 특히 통치 권력의 힘을 빌려서 그 사상에 대해 의심해서도 따져서도 안 되며, 또한 더 이상 발전할 필요도 없는 유일한 표준이 되었을 때, 그 사상은 실질적으로 쇠퇴하여 사망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독립적인 사고의 정신과 진리를 위한 투쟁, 그리고 진리를 위한 헌신이 진정으로 더욱더 요구된다.
둘째, 폭넓은 연구 태도이다. 왕충 스스로 「자기自紀」 편에서 왕충은 자신이 “옛 문장을 폭넓게 읽고, 기이한 말들을 즐겨 들었다”고 말하듯 그의 독립적 사고는 폭넓은 연구로 뒷받침되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전문가들도 “경서 한 권만을 배부르도록 읽고서 가만히 앉아서 스승의 법도를 지키면서 믿는” 장구章句만을 묵수하는 무리가 아닌지 『논형』은 질문하게 만든다.
셋째, 과감하게 허망함을 질타하는 비판의 용기이다. 『논형』 85편은 “거짓을 제거하고 진리를 보존하며, 허망함을 질타하고 실제를 확립한다[去僞存眞, 疾虛立實]”는 여덟 글자로 개괄할 수 있다.

7. 지식인의 모범, 절개의식과 상대적 사유 - 『사기』
“당나라 시가, 진晉나라 문자, 한나라 문장”이라는 말이 있다. 한나라 문장의 우수함을 대표하는 것으로 『한서』에서 일컫기를 맨 먼저 사마천의 『사기』를 든다. 고대의 문장에서는 늘 문학과 역사, 철학이 분리되지 않고 서사, 의론, 서정을 한 용광로에 용해하였다. 이로 인하여 ‘문장’이란 마땅히 넓게는 문화를 지칭하기도 했다. 필자는 『사기』의 기조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풍격은 웅장하고 호방하며 색채는 화려하고 다양하다고 평가한다. 『사기』는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지 않았으며, 선비들이 절개를 키워 억눌린 속에서도 인격이 피어나고 문화가 번영될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또 아첨하고, 황제의 명을 받들고, 노예근성으로 아부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인간 주체의식의 각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였으며, 지식인의 고상한 인격 형성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작용을 했다. 『사기』가 직접 체험하고 그려내고 있는 봉건사회 상승기의 문화는 삼라만상을 삼키고 뱉는 거대한 장관을 연출하며, 그것은 중국의 각 지역 각 민족의 문화 정수를 융합하고 외래문화의 정수를 흡수하여 중국 문화 발전에 새로운 피와 새로운 활력을 증진시켜 그 개척과 뿜어냄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또한 『사기』는 문화의 역사적 차이성에 주의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문화의 지역적 차이성에도 민감했다. 이것은 학술적으로 나아가 각 학파의 파벌을 존중하고 하나만 받드는 정통 유학의 고정된 사유를 비판하면서 문화적 다원성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사상적, 문화적 좌표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외에 필자는 사마천 개인의 굴욕적 삶과 그것을 이겨낸 위대한 기록정신을 평전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8. 전쟁이란 무엇인가 - 『손자병법』
유가, 법가, 도가와 묵가학파는 전쟁과 전쟁 관련 행위에 대해서 각자의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전쟁과 군사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다만 각 학파는 군사가의 안목을 사용하여 전쟁을 살펴보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 이론 체계의 중심적인 경향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하며 실제로 전쟁에 그들 이론을 이용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들 각 학파의 전쟁학설 중 합리적인 부분은 대체적으로 『손자병법』으로 귀납된다. 그렇다고 여러 학파의 학설이 『손자병법』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손자병법』은 비록 군사전문가의 전쟁을 논한 것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전쟁의 규칙과 구체적인 전법, 진을 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검토하였으며, 그 이론을 이용하여 전쟁을 이끌 수 있는 유효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중국 고대문화에서 ‘전쟁의식’이 무엇이며, 유가로부터 시작해 도가, 묵가, 법가, 병가의 전쟁관은 어떻게 같고 다르며, 전쟁의 원인, 전쟁의 본질, 정치나 의례문화, 건축문화와 전쟁이 갖는 관련 등을 포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에 “국가의 대사는 제사와 전쟁에 있다”고 했다. 아울러 제사도 전쟁을 강화하고 추진하기 위해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제사와 전쟁은 얼핏 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 다른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춘추시대를 보면 출병 전에 “사당에서 제물을 받는” 의식이 있었으며, 제사 지낼 때는 “고기를 받는” 의식이 있었다. 이 두 의식은 모두 귀신의 힘을 빌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존엄을 강화하고 매사가 뜻대로 되기를 기원하는 의례였다. 전쟁은 실용적인 건축과 기물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전쟁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대사臺?’라고 하는 원림 건축은 보통은 왕공이나 귀족들이 놀면서 머무는 곳에 세워진다. 그곳은 통치자들이 군사나 정치적인 사무에서 잠시 떠나 쉬면서 즐기는 용도로 제공된다. 『시경』에는 주왕이 “영대靈臺를 짓기 시작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서 영대와 영소靈沼는 정치를 개명시키는 장식으로 인식되었다. 전쟁 덕분에 ‘대사’는 또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었다. 초나라 영왕은 장화章華의 대를 건조하였는데, 그 미관을 보고 찬탄하였다. 그러나 오거伍擧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왕이 대사를 만든 것에 대해 “‘사?’는 단지 군사를 논하는 곳에 불과하며, ‘대臺’는 조짐을 살펴보는 곳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대사의 공간 위치와 형태는 “논하고 바라보는”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름다우면서도 필요에 합당해야 그런 건축물의 본의에 부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나라는 건물을 지으면서 군사적인 용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태로웠던 것이다.

9. 외래사상에서 진보를 발견하다 - 『육조단경』
『단경』은 하나의 불교 전적이지만, 이것의 의의는 종교 범위를 멀리 벗어나서 중국 봉건사회 후기의 사상 문화에 대해 거대하고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첫째, 외래 사상(인도 불교철학)에 근거하여 형성된 유일한 중국 전적이다. 이는 중국 전통문화의 혁신적인 발전 및 사회에서 추진된 진보가 때로는 외래 사상에서 도움을 취할 필요가 있었음을 설명한다.
둘째, 외래 사상문화가 중국 민족의 전통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그것이 중국 토양에 적응했다는 데 있다. 먼저 자신이 변모된 뒤에야 중국의 전통문화를 변모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단경』의 많은 교의敎義 설법은 인도 대승 경전에서 나왔으나 본래의 요의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고, 혜능 자신의 창조가 발휘되어 있으며, 심지어 도가道家와 유학儒學적 성분이 들어가 있다.
셋째, 『단경』이 선양한 것은 승려주의 철학이지만, 전통문화 속에서 그것은 해방정신의 진취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당송 시기는 중국 전통문화가 찬란하게 빛난 시기였으나, 자체적인 위기가 잠복되어 있었다. 즉, 유가는 전주箋注 경학이 성행했으나 이론 사유가 부족하여 사람들은 공명功名에 골몰하며 내심의 완벽과 정신의 충실을 소홀히 여기며, 교조와 우상을 숭배하며 자기의 가치를 망각하고, 선인들의 전적은 배우면서도 자신의 독창은 홀시 하였고, 사회의 요익을 강조하면서도 예술 자체의 규율을 망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승 유종의 『단경』이 발전되어 나와 불성·인성·자심이 삼위일체 하는 독특한 사상 체계를 통해서 정신적인 해방을 촉진시켰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습因襲된 문화의 무거운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옛 문화를 다시 새롭게 이해하고 평가하고 바꿔 사람들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을 드러내게 하였다.

10. 만세성인은 어떻게 인간을 왜소화시켰는가 - 『주자어류』
“주희가 죽은 뒤 역대 통치자들은 7세기에 걸친 장구한 세월 동안 그를 신화화하여 공자와 같이 지극히 존귀한 우상으로 만들었고, ‘만세성인’이란 후광을 씌워 탁자 위에 모셔놓았다”라고 서두에서 강조하듯이 필자는 주희와 『주자어류』를 철저히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체계로 다루고 있다. 그 결론은 “인간에 대한 너무나 가혹한 선언”이라는 것이다. 송나라 때 이학理學 사조가 일어선 것은, 근본적으로는 쇠퇴한 유가가 당시 창궐하고 범람하던 불교와 도교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구제하고자 한 문화운동이었다. 이는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는 동시에 융합하는 모순적인 운동 속에서 유가의 구조에 새로운 조정을 가했고, 구체적으로 유가를 통해 전통문화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바꿔 그것의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임무가 주희의 이학 체계 속에서 완성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주희의 인본의 인학이 추상화로 나아가 사람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주희는 “마음의 근본”(심본)과 “하늘의 근본”(천본)의 모순을 통일하여, ‘마음’으로 말미암은 유가의 자율적 주체 윤리학을 ‘하늘’로 향하는 타율적 종교윤리학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사람의 주체성은 실천을 매개로 하여 능동적으로 객체를 파악하고 개조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객체를 변화시키는 가운데 주체적 역량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희가 말하는 ‘절적함과 조화를 다하는’ 수행법은 주체의 형세와 밖으로 향하는 장력이 없는 폐쇄된 자아의 내성 공부이고, 이러한 내심을 향하여 자신을 돌이켜 스스로 구하는 것은 도리어 사람의 주체성의 역량을 금지하고 해치게 되어, 결과적으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멸하는” 절대도덕 명령 아래에서, ‘사람’의 주체성은 완전히 외재적 ‘하늘’의 의지에 복종하여, 도덕적 자율은 타율로 변화되고, 윤리는 종교로 변화되며, 유학은 유교로 변화한다. 이러한 도덕주의는 법의 영역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의 도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법의 인격화, 윤리화라는 문제를 낳았다. 짐이 국가이고, 장관의 의지가 법이고, 강권이 법이고, 정치를 담당하는 자의 한마디가 법이고, 관료는 법을 대표하고, 임시변통이 법보다 큰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모두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의지가 법을 능가하고, 사람의 의지로 법의 행사를 대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인치사상의 뿌리가 바로 주희의 이론에서 나온다. 통치사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것이고, 통치자는 ‘리理를 살인의 도구로 삼는’ 권력을 획득했고, 마침내 사상으로 정죄를 하고, 문자로 큰 옥사를 만들고, ‘짐의 말’을 법이라고 하고, 유가 경전으로 죄를 판결하고, 공맹의 말씀으로 사람을 죽여서 자유와 민주의 이념이 문화 전통과 분리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분석한다.
(이하 생략)

지은이

쑤치시徐緝熙
문화대혁명 기간에 문예소조에서 활동했고, 상하이사범대 인문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논어』 등을 통해 유랑과 떠돎의 미학을 살핀 『여유미학旅遊美學』 등이 있다.

웡치빈翁其斌
상하이사범대 교수. 대표작으로 『중국시학사中國詩學史-先秦兩漢』 등이 있다.

뤄위밍駱玉明
1951년 생. 푸단대 중문학 교수. 한漢, 위魏, 육조六朝시대 문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노장철학 에세이老莊哲學隨談』 『중국문학사』 등이 있다.

왕쩐푸王振復
1945년 상하이 출생. 푸단대 중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천인합일-중화심미문화의 혼天人合一:中華審美文化之魂』 『주역의 미학과 지혜周易的美學智慧』 『건축미학建築美學』 등이 있다.

왕용하오汪涌豪
1962년 상하이 출생. 푸단대 중문학 교수. 저서로 『중국고전미학 풍골론中國古典美學風骨論』『당대적 시야에서 본 문학이론의 전통當代視界中的文論傳統』 『중국유협사中國遊俠史』 『범주론範疇論』 등이 있다.

푸강傅剛
1956년 장쑤성 수닝 출생. 베이징대 교수. 저서로 『위진남북조 시가사론魏晋南北朝詩歌史論』 『소명문선연구昭明文選硏究』 『위진 풍도魏晋風度』 등이 있다.

장판蔣凡
1939년 푸젠성 취안저우泉州 출생. 푸단대 중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선진양한문학비평사』 『고대 10대 산문유파』 『당송문정화唐宋文精華』 『주역정의周易精義』 등이 있다.

류청劉誠
남해정치학원南京政治學園 상하이분원 교수. 『손자병법』을 중심으로 전쟁(문화)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손자병법고금담』 『손자병법도독孫子兵法導讀』 등이 있다.

주쩐위祝振玉
상하이사범대 교수. 저서로 『황정견선학원류술략黃庭堅禪學源流述略』 『시소매력詩騷魅力』 등이 있다.

수징난束景南
1945년생. 저장浙江대 교수. 중국의 대표적인 주희 연구자로 『주자대전-다각적 문화시야 속에서의 주희』로 중국도서상을 받았다. 그 외의 저서로 『주자대전』 『주희연보』(전2권), 『주희의 실전 시문 연구』 『장자철학의 요체』 등이 있다.

후샤오징胡小靜
중국 현대과학사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저명한 학자 후댜오징胡道靜의 큰 아들로, 상해인민출판사 역사실에서 20년 동안 편집인을 지냈다. 아버지의 필생의 작업이었던 『몽계필담』 역주 작업을 사후에 이어받아 완성시켰다. 이는 귀주인민출판사에서 『몽계필담역주』로 출간되었으며, 본인도 책이 나오고 4년 만에 작고했다.

마메이신馬美信
1946년 상하이 출생. 1985년 이후 푸단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원명청元明淸 문학과 중국고대소설 및 희곡 연구에 주력했다.『만명소품문정수晩明小品文精粹』를 비롯해 다수의 저술이 있다.

저우원화朱文華
1949년 상하이 출생. 푸단대학교 타이완 문화연구소 소장 겸 중문과 교수. 저서로 『후스평전胡適評傳』을 비롯해 『루쉰·후스·궈모뤄 비교평전』 등 다수의 사상가 평전을 집필했으며 『전기통론傳記通論』 등 전기에 대한 전문적인 통찰을 담은 저술도 펴냈다.

옮긴이

황희경 영산대 학부대학 교수. 저서로 『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공저서로 『신 지식의 최전선 1』, 역서로 『논어』 『역사본체론』, 공역서로 『중국철학문답: 중국철학을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 등이 있다.

박문현 동의대 철학과 교수. 공저로 『철학』 『세계고전 오디세이 2』 『동양 환경사상의 현대적 의의』(일본 출간), 『묵자 연구』(중국 출간), 역서로 『묵자』 『기氣 사상 비교연구』 등이 있다.

김갑수 호서대 연구교수. 저서로 『현대중국의 도가연구 현황과 전망』 『장자와 문명』 『노자의 도덕경』 『마음이 담긴 동양예술 산책』, 공저로 『예술, 인문학과 통하다』, 역서로 『민주사강』 『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론』 『장자를 읽다』 『장자 멘토링』 『동양의 자연과 인간 이해』 등이 있다.

임채우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 역서로 『왕필의 노자주』 『도교의 주역풀이-주역천진』 『주역 왕필주』 『술수와 수학 사이의 중국문화』 등이 있다.

김예호 성균관대 수석연구원. 저서로 『고대중국의 사상문화와 법치철학』 『Easy 고전: 진정한 리더를 꿈꾼다면-대학·중용』 『한비자-법치로 세상을 바로 세운다』, 논문으로 「직하 황로도가의 정치철학적 세계관 연구」, 「『황제사경』과 『할관자』를 통해 본 황로학의 전개양상」 등이 있다.

김동민 성균관대 강사. 공저로 『동양사상』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 공역서로 『중국 고전 명언 사전』 『왕부지 대학을 논하다』 등이 있다.

김원중 건양대 중문과 교수. 저서로 『중국문화사』 『중국문학이론의 세계』 『중국문화의 이해』 『혼인의 문화사』, 역서로 『사기열전』 『사기본기』 『사기세가』 『정사 삼국지』 『한비자』 『정관정요』 『당시』 『송시』 『염철론』 등이 있다.

임태홍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저서로 『일본사상을 만나다』, 공저로 『중국의 지역문화』 『사상과 문화로 읽는 동아시아』, 역서로 『50인으로 읽는 중국사상』, 공역서로 『중국의 긴급과제 50가지』 등이 있다.

김진무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교수. 저서로 『근대 동아시아의 불교학』 『동아시아 불교』『근대와의 만남』 『나,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 편서로 『한국불교문화사전』, 역서로 『지장』 1·2 『혜능 육조단경』 『선과 노장』 『선학과 현학』 『불교와 유학』 『조사선』 『분등선』 등이 있다.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저서로 『주희-중국철학의 중심』, 역서로 『주자의 후기철학』, 논문으로 「모종삼의 주희비판과 그에 대한 재평가」 등이 있다.

송춘남 민족의학연구원 연구원. 연변교육 출판사 등에서 30여 년간 편집일을 했다. 국역한 책으로, 『세상을 뒤흔든 368일, 대장정』 『중국 고대 명언집』 『소설 대장정』(전5권) 등이 있다.

김덕균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저서로 『명말청초 사회사상』 『새시대를 꿈꾸며 황종희의 명이대방록』 『왕양명 철학연구』 『공문의 사람들』, 역서로 『명이대방록』 『역주 고문효경』 『잠서』 상·하, 『중국 봉건사회의 정치사상』 『현대 중국의 모색』 등이 있다.

강중기 한림대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 저서로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 비판』 『황종희 <명이대방록>』 『양수명 <동서 문화와 철학>』, 역서로 『동서 문화와 철학』, 공역서로 『천연론』 『관념사란 무엇인가』 1·2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철학을 잃고 아름다움을 버리다 - 『논어』, 유학, 그 외의 것들 제2장 천민에 의한, 천민을 위한 철학 - 『묵자』 비평 제3장 인생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하여 - 『장자』, 결함 많은 보물창고 제4장 원시적 사유에서 철학적 사유로 - 주역의 지혜가 지닌 심층 구조 제5장 극단적인 권위론 속에서 길을 잃다 - 『한비자』 정치사상의 철학 비판 제6장 경학의 질곡을 떨친 시대의 이단자 - 『논형』 평론 제7장 분노의 붓에서 탄생한 위대한 기록정신 - 『사기』의 정신을 탐색하다 제8장 전쟁은 명예보다 이익이다 - 『손자병법』을 읽고 난 후의 연상 제9장 외래사상에서 진보를 발견하다 - 『육조단경』의 효용을 논함 제10장 인간에 대한 가혹한 선언 - 『주자어류』의 사상 체계 비판 제11장 은거 노인의 매력적인 과학 유토피아 - 『몽계필담』을 읽고 제12장 봉건주의를 성토하는 격문 - 『명이대방록』 찰기를 읽고 제13장 마오쩌둥이 인정한 마지막 고전 - 『쑨중산전집』 독후감